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이미 녹은 빙하는 어쩔 수 없으니 남은 얼음이라도 지키자 (2)
내 눈앞에는 원념의 편도결석을 아주 비싸게 팔겠다는 여자가 서 있다.
입 안을 떠도는 여러 가지 질문 중에서, 내가 가장 물어보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제정신이세요?”
“왜요? 뭐가 문제죠? 제가 아니었다면 두 분은 그 괴물의 끝나지 않는 재생을 견디다 못해 패배했을 거예요. 식사할 시간도 없이. 결정적인 일격을 준 건 저였으니, 이 돌을 가지는 것도 저여야 하죠.”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럼요.”
나는 가까스로 표정을 바꿀 수 있었다. 황당한 만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품 있는 공작을 연기했다.
“블렛 영애가 아니었다면 저희는 크게 고생했을 겁니다. 물론 우리가 그 마수를… 원념이라고 부르시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걸 해치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블렛이 아니라 편하게 소이라고 불러주세요.”
“백작가의 영애이신 분을 제가…….”
“블렛 백작님은 저희를 떠맡은 것뿐이니까요.”
저희라고? 블렛 백작가에 입양된 사람이 더 있는 건가?
“그럼 소이…….”
나는 문제의 돌멩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의 소유인 그 원념의 핵 말입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쓸데없는 짓을 하시는군요. 공작님께는 필요 없는 물건일 거예요.”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죠. 소이 당신이야말로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 돌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을 찾을 거라고? 암시장을 돌아다닐 건가요? 위험할 텐데. 당신의 화살은 확실히 위력적이었습니다만, 악독한 마음을 먹은 사람 앞에서도 여전히 강할까요.”
“으흠…….”
“덧붙여서.”
그녀의 손에서 돌멩이를 뺏어왔다. 만졌을 때 뭔가 대단히 신기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고, 마력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미미했다. 다 쓴 디퓨저에 향기의 흔적이 남은 정도랄까.
“내가 사는 건 이 돌멩이 하나가 아닙니다. 당신이 이 돌에 관해 알고 있는 것에 관해, 여신이라고 부르는 심연의 악마에 관해 아는 건 다 말해주세요. 그 정보까지 사는 겁니다.”
“그래요?”
소이는 팔짱을 낀 채 허공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원래라면 그런 건 숨겨야 하는 거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의미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렵지만 이미 선택하긴 했죠. 빙하의 주인께서 저를 용서하시면 좋겠네요. 뭐, 신경도 안 쓰시겠지만.”
소이는 덥석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우리는 이제 공범이에요. 중요한 비밀을 알려면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거 아시나요?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뜻이거든요. 비밀은 사건을 불러오는 힘이 있어요.”
“골치라면 이미 매일, 매 순간 아픕니다. 주변에 별사람이 다 있어서요. 당신 하나 늘어난다고 죽는 거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비싸게 팔 겁니다.”
“얼마나 비쌀지 기대되네요.”
악수를 마친 뒤, 소이는 목소리를 큼큼 가다듬더니 말했다.
“미리 자기소개를 조금 더 보충해서 해드리죠.”
“네? 아, 네, 그러시죠…….”
“소이 블렛이라고 했으나, 과거에는 그저 소이였습니다. 오늘은 동생을 데리러 온 거고요.”
“동생이라면…….”
“스위트피예요. 스위트피 블렛.”
“아아…….”
그러고 보니 지금쯤 달리아와 정원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을 애들이 있었다. 스위트피라면 가장 조용하고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꼬맹이였지. 소이는 그 녀석의 언니였다.
“스위트피와 유치원의 아이들은 지금쯤 정원에서 놀고 있을 겁니다.”
“일단 실내에서 얘기 이어가실까요?”
소이는 손가락으로 돈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기품 있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스위트피는 더위를 많이 타거든요.”
“아, 어린아이들은 몸이 약하니까요.”
“그것도 그런데, 본래는 성수라서 어쩔 수 없어요.”
“네?”
“제 자기소개, 끝난 거 아니에요.”
소이가 말을 이었다.
“빙하의 전사라고 불리던 북쪽의 성수 카멜리아는, 정체 모를 마수 떼에게 공격받아 죽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힘은 제 동생에게 깃들었죠.”
소이는 점심 메뉴를 언급하듯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동생이 성녀였나 봐요.”
내 입이 천천히 벌어졌는데, 당사자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다.
성녀였다고?
에드먼드가 성자인 것처럼, 그런 성녀 말하는 거 맞지?
“너무 어려서 신탁을 받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성녀였다……. 이렇게 추측하고는 있어요. 신도 별거 아니죠. 위급한 상황이 되니 다섯 살짜리의 영혼으로 도피하다니. 뭐,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그때 저희 영지 사람들은 다 죽어서. 자세히 설명해 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성수였다고요? 그 말은 곧, 또 하나의 성전이 무너졌다는…….”
“아. 다른 성전들도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제 알 바는 아니지만.”
이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성전이 무너지고 있어요. 해안가에 마수가 파도치듯 몰려온 지 오랩니다. 북쪽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겠군요. 막아야 할 텐데…….”
“그걸 왜 걱정하세요?”
“예? 그럼 어떻게 안 걱정합니까?”
“부자들은 한가해서 일일이 세상의 요모조모를 걱정하는 모양인데, 저 같은 사람은 달라요. 제 목표는 우리를 떠맡은 백작가를 어서 떠나는 거거든요. 스위트피를 데리고 자유롭게 살 거예요. 성녀든 성전이든 모르는 세상에서. 설령 그 세상이 망하더라도.”
무덤덤하기에 오히려 진심처럼 느껴졌다. 소이에게서 어쩐지 나의 조각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그러니 그 돌도 비싸게 받을 거고. 지금 말해준 것도 전부 값을 받을 거예요. 엄청 비싸게.”
“그거 기대되네요. 얼마나 비쌀지.”
내가 대충 손을 흔들자, 마수의 잔해를 줍고 있던 피핀이 달려왔다. 어째 싸울 때보다 지금이 더 더러운 것 같은데…….
피핀은 조금, 뭐랄까 개… 같았다. 욕이 아니라 말 그대로. 흙탕물에서 놀다가 주인이 부르니 일단 달려온, 지능은 뛰어나지만 그래도 착한 개…….
“네! 저 부르셨어요?”
“단델에게 전해. 하에스토 자매를 집으로 보내고 달리아와 스위트피 블렛은 이쪽으로.”
“알겠습니다.”
꼴이 말이 아닌 장소를 벗어나며 나는 파티에 온 것처럼 소이를 에스코트했다. 소이 또한 정중히 나의 에스코트를 받아, 괴물의 잔해를 발로 밟아가며 질척질척 걸음을 옮겼다.
“성녀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소이는 끝까지 한결같았다.
“큰돈 벌 생각에 두근두근하네요.”
***
모두가 잠든 새벽, 아네모네는 건초더미를 빠져나왔다.
“가까이에 있다…….”
엊저녁 그녀의 도적단은 마을 하나를 털었다. 영주가 불한당이었으니 혼쭐을 내준다는 명분이 있긴 했는데, 그런 건 사실 핑계였다. 사람들은 아네모네가 이끄는 도적단을 호전적인 들짐승처럼 생각하기 일쑤였다. 또 머저리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곳을 지휘하는 대장이 열댓 살 소녀라니 제대로 된 집단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 소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혹은 그 정체가 풍기는 위압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도적단은 그저 불량배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중 그 작은 소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성녀를 뛰어넘은 악마. 그들의 대장은 그렇게 불렸다.
다른 세상에서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주인공이라 불렸지만, 그건 이쪽에서는 모르는 이야기다.
“아. 이제 나오셨네요. 다행이에요. 캠프까지 찾아가기에는 조금 무서워서…….”
아네모네는 어둠 속에서도 겁먹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큰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코카가 뛰어내렸다.
‘보통 녀석이 아니야.’
뛰어내리는 모습만 보고도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인기척을 완전히 숨긴 채 도적단을 따라온 것만 해도 그렇다.
어느 미친 도련님이 채워놓은 팔찌가 연신 웅웅거리지 않았다면, 아네모네 자신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왜 따라온 거야? 복수하고 싶냐? 우리가 네 가족이라도 죽였어?”
아네모네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코카는 당황하며 눈을 굴렸다. 무슨 반응을 보이려는 걸까. 무슨 죄를 물으러 찾아온 거지? 동료는 더 있나?
아네모네는 또래답지 않은 영특한 머리로 갖은 수를 다 계산했으나, 코카가 영 딴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모조리 상관없어졌다.
“가족이 죽는 게 중요한가요……?”
“뭐?”
“그, 제가 가족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요……. 또 있더라도, 그, 얘기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말하자면 길어지는데, 공작님께 그런 대화를 하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고…….”
“공작님?”
“네!”
코카는 해맑게, 일말의 악의 없이 대답했다.
“당신의 시체를 거두라는 공작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나한테 이 팔찌를 채운 게, 무려 공작님이었다?”
아네모네가 씨익 웃었다. 어디로 보나 불길한 악당의 웃음이었다.
“정의의 용사 놀이나 하는 뜨내기 도련님인 줄 알았더니, 이거 대어가 엮였네?”
“말씨가 참……. 안 어울리시네요.”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그건 그래요!”
아네모네는 코카의 반응에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너 정체가 뭐야?”
아네모네는 코카의 마력을 읽어보려 했다. 하지만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음을 알아냈다.
‘뭐지?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보통 자신에게 겁 없이 접근하는 자들에게는 특징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공작이었던 도련님도 마력 보유량이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이외에도 에드먼드인가 뭔가 하는 놈도 이상했고, 은발 머리에 재수 없는 미소를 은은하게 띠고 있었던 남자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마치 신에게 직접 마력을 부여받은 듯 그릇의 크기가 남달랐다.
그러나 저놈은 그냥, 일반인 같다.
“너, 나랑 싸우러 온 게 아니지? 별 볼 일 없는 놈 같은데.”
아네모네는 방향을 바꿔 생각하기로 했다. 저 녀석이 싸움을 걸어오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싸울 상대는 따로 있겠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아네모네는 정답에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코카는 마력 대신 오로지 체술과 정신력으로 승부하는 암살자였다. 정신력을 너무 한곳에 집중한 나머지 남들이 보기엔 나사가 세 개 반쯤 풀려 있는 듯 보였지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자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암살자가 나설 때가 아니었다.
“그 공작 나부랭이의 심부름꾼 같은 거냐?”
“심부름꾼이라뇨! 어엿한 호위 기사입니다. 아직 작위는 받지 못했지만요……. 무기는 받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자랑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 그리고 공작 나부랭이가 아니고, 공작님이십니다.”
“그래서. 내 상대는 누군데? 그 공작? 그 자식이라면 한 번 더 붙어보고 싶었어.”
아네모네는 예민하게 주변을 탐색했다. 그 녀석의 마력이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펄럭펄럭 무언가 묵직한 날갯짓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네모네는 순간 멍해져서, 달을 덮은 용의 그림자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나랑… 마력의 색이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