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빙 돌아오는 길 (5)
“안 돼!”
“뭐?”
아네모네가 나를 돌아봤다.
“방금은 구하라며.”
“하지만 건전하게 구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에 의아해하던 아네모네는, 한숨을 확 쉬더니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곧 타이머스에게로 아네모네의 산뜻한 마력이 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건전하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회복시킬 거라면 확실하게 해야 하잖아.”
“…….”
메인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은 어떻게든 이뤄진다는 건가?
일단 우리의 생존을 위해 타이머스를 죽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를 갈며 달리아의 눈을 가렸다.
“달리아. 잠깐만 참아. 교육상 안 좋은 장면은 가려야겠어.”
“왜요?”
“그런 게 있어.”
아네모네는 이어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주먹을 쥐었다. 표정이 무척 비장했는데, 다정함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다.
“이 주먹에 마력을 실어서, 단숨에 심장을 때리면 일어날 거야.”
“뭐?”
“간다.”
아네모네는 말릴 새도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안 돼! 그건 그거대로 안 되는……!”
아네모네의 치료법은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좋은 소식은 타이머스가 일단 깨어났다는 것이고, 안 좋은 소식은 깨어나자마자 아네모네를 죽이려고 검을 뽑아 들었다는 것이다.
“참으세요! 전하! 생명의 은인입니다! 저 무뢰배는 전하의 생명의 은인이에요!”
“진정하세요! 아네모네! 도망쳐!”
피핀과 나는 필사적으로 타이머스를 말리며 아네모네를 살려냈다.
우리는 억지로 타이머스를 앉힌 뒤, 체력을 더 회복하도록 종용했다. 당장이라도 아네모네를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에서 나는 일말의 애정도, 낭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음. 계획대로군.”
내가 중얼거리자 피핀이 코를 씰룩거렸다.
“진심이세요?”
“심연의 악마는 황실에 맡기고. 우리는 테네리페를 도우러 가자.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사령술사끼리 도우며 살아야지.”
나는 팔을 붕붕 휘두르며 테네리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데미안은 사령에 뒤덮여 그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크기도 아까보다 줄어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착각이 아니었다.
“데미안의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이렇게 말하는 테네리페는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데미안은 제압당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러나 그게 좋은 소식이냐면 그건 잘 모르겠다. 테네리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스승님이 뭔가 약점을 제대로 공략하신 모양이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더 창백해진 테네리페의 얼굴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언제까지 사령으로 덮어 누를 수만은 없을 테고. 제가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가까이 간다고 답이 나오려나 모르겠지만. 피핀, 너는 스승님과 달리아를 지키고 있어.”
“네.”
달리아를 피핀에게 떠넘기는 순간, 달리아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응, 달리아. 이것 좀 놓고 얘기하자. 교양 있는 아가씨는 오라버니의 멱살을 잡지 않는 거예요.”
“곧 멈출 거예요. 그 전에 꺼내야 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달리아는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눈가에 가져다 댔다. 내게 상태창을 알려줬을 때와 같았다. 달리아는 데미안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눈에 담고 있는 듯했다.
“잔뜩 쌓여 있는데, 힘들어 보이잖아. 오라버니가 도와주러 가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도와주러 가는 거지!”
달리아는 이어 빽빽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는데, 어린아이의 논리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달리아와 말싸움을 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 이기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알았어, 알았어.”
“좋아!”
달리아의 뒤로 검은 먹물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불쑥 테네리페를 향해 돌진했다. 넋이 빠져 있던 테네리페는 달리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아마 반격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달리아는 테네리페의 몇 안 되는 보석 중 하나를 훔쳤다. 달리아를 안은 피핀도, 그 앞에 선 나도 당황해서 눈을 굴리는데 당당한 도둑과 피해자만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라버니, 이거 가져가.”
“달리아……! 남의 물건을 이렇게 마음대로! 죄송합니다! 이리 내!”
“상관없어.”
테네리페는 남은 보석까지 탈탈 바닥에 털어내며 영혼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비어 있는 보석이야. 안에 사령은 들어 있지 않아. 전부 꺼내서 데미안을 누르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까.”
“아……. 하지만…….”
“…….”
테네리페의 눈동자는 완전히 빛을 잃어서, 그 어떤 진귀한 보물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반응하지 않을 것 같았다.
“빨리! 오라버니 빨리!”
도대체 달리아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달리아가 억지로 안겨주는 푸른 보석을 손에 쥐고, 나는 데미안이 있는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어색한 자리를 피하듯이 달려 데미안의 앞으로 달려왔다. 사령이 우글우글 쌓여 있어서 그런지 몹시 음산했다.
“어디 보자…….”
데미안은 더 이상 파괴적이지 않았고, 점점 크기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사라지게 두면 될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달리아가 한 말이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뭔가를 꺼내야 한다고 했지. 데미안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쪼그라들기를 기다리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현명하다. 앞니가 덜 자란 우리 초월자가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았으리라.
“관리자 스킬을 한 번 사용해 볼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관리자 스킬을 사용했다.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마구잡이로 마력을 소모하는 식이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상태창에 같은 메시지만 반복해서 떠오르기를 수십 번.
그러던 와중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데이터를 저장 중입니다.]“어라?”
다른 곳에 대고 스킬을 사용하면,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사령이 잔뜩 있는, 쪼그라들고 있는 이 거대한 사령 더미 한가운데에 마력을 집중하면 다른 메시지가 뜬다.
데이터를 저장 중이라는 메시지가.
꽤 의미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갔더니, 웅웅, 라기아가 진동하며 반응했다.
[시에라, 이봐. 내가 뭔가 느껴지는데 말이야. 물론 나에게는 생물의 오감이 없으니 더 특별한 감각을 통해 느끼는 거지만! 아하하하!]“뭔데? 뭐가 느껴지는데……?”
“뭐? 공간이라니?”
[말 그대로 공간 말이야. 공간.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사령과 마수와 마력……. 이 모든 게 혼잡하게 엉켜 있는 거대한 덩어리 안쪽에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있어. 그 공간에 뭔가 중요한 게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어.]“흠…….”
나는 달리아가 훔쳐 온 보석을 괜히 만지작거렸다가, 라기아를 들어 올렸다.
“그 공간 안에 있는 게 초월자의 본체라고 해줘. 데미안의 영혼이라면 들어갈 가치가 있으니까.”
[하여간 눈치는 빨라서. 그렇게까지 다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지.]라기아가 킬킬거렸다.
[개성 있는 마력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가? 하지만 자신만의 색과 향을 가진 마력이야. 점점 옅어지고 있긴 한데……. 지금 쫓아간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좋아. 밑져야 본전이지. 해보자고.”
푸른 보석을 주머니에 넣고, 라기아를 낫으로 변형시킨 뒤 단단히 잡았다. 사령이 덮고 있는 괴물 그 어딘가, 독특한 마력이 풍기는 곳을 의식하며 공간을 베어 갈랐다.
“데미안! 내가 꺼내줄게에에엑-!”
라기아가 괴물의 몸을 가르는 순간, 검붉은 진액이 파도처럼 솟아 나를 덮쳤다. 안에 무슨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조금 더 신중하게 갈랐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잠깐 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뭔가 길게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괴물의 몸통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라기아를 꼭 붙든 채 나는 정체 모를 급류에 휩쓸렸다. 이때 스스로가 조금 한심했던 것 같다.
***
이대로 데미안의 안에서 소화가 되는 걸까. 혹시 라기아가 말했던 공간은 데미안의 위장이었나? 나는 지금 데미안의 위액을 헤엄치는 건가? 이거 위액이지? 위액인 거지?
눈과 입을 꽉 닫고 차라리 기절하기만을 기다리던 그때. 누군가 내 몸통을 잡더니 확 끌어당겼다. 그 순간 눈을 확 떴고, 숨이 트였다.
“푸억! 헉!”
“괜찮아?”
바닥을 뒹굴었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바닥이 푹신푹신한 덕분이었다.
“꾸룩…….”
내 손에 짓눌렸던 토끼…를 닮은 마수가 나를 노려보더니 폴짝폴짝 뛰어가며 사라졌다.
“와. 이번에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우…….”
이걸 아수라장이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여긴 실내도 실외도 아닌 이상한 곳이었다. 일단 뭔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천장에 있어야 하는 샹들리에가 바닥에서 빛나고 있는데, 그 옆을 죽어가는 마수들이 배회하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망가진 가구들이 둥둥 떠다녔다. 사방팔방에 의복들도 잔뜩 쌓여 있었고, 그 위를 짐승과 마수와 사람들이 뒹굴었다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정신이 좀 없지?”
멀쩡한 말소리에 놀라 퍼뜩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아보자,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이 있었다. 아마 인물이기는 할 것이다.
“누구…….”
멍청히 중얼거리다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확신했다.
“데미안……. 네가 바로 데미안이지!”
“하하…….”
어색하게 웃는 걸 보니 분명했다. 순박하고 사람 좋을 듯한 목소리였다.
“이곳이 하나둘 정리되고 있어서 알아차렸어. 네가 관리자인 거지? 고마워. 덕분에……. 덕분에 버려졌던 세상이 기록되고 있어.”
데미안은 어쩐지 들뜬 기색이었다.
“리드의 페이지에 이곳을 완전히 기록하면, 이 난장판도 사그라들 거야. 관리자가 나타나다니……. 정말 고마워. 고맙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어. 너는 누가 불러낸 거야? 심연께서 마음을 돌리셨나? 아니면 네가 직접,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거야?”
“잠깐, 잠깐만.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아. 그런 대화는 밖에 나가서 하자고. 일단 나가자.”
나는 식은땀이 묻은 손을 바지에 싹싹 닦은 뒤, 데미안의 요모조모를 훑어봤다. 어디를 붙잡아 끌고 나가야 할지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로브를 푹 뒤집어쓴 모습이었는데, 마치 식탁보를 덮어쓴 핼러윈 유령 같았다.
“팔이라도 내밀어 봐. 붙잡고 나가게. 아니면 내 뒤를 잘 따라올 수 있어? 나를 놓치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아……. 나는 나갈 수 없어.”
데미안은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며 로브를 살짝 벗어 보였다. 그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기도 전에, 나는 데미안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