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4
74화. 할머니는 배고픈 아이를 지나칠 수 없어 (2)
“그럼 우리 손녀를 찾아주는 거지? 억지로 집에 데려올 필요는 없어. 그저 잘 지내고 있는지만 확인해도 좋다우.”
“우리가 쿠키 찾아올게요.”
“이렇게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다 있나.”
달리아는 불쌍한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노인에게 매달렸다. 만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누가 보면 저쪽이 친족이고 내가 외부인이었다. 노인이 달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달리아는 낯선 이의 품에 얼굴을 문지르며, 당장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내게 당당히 요구했다.
“유모가 그랬어요. 가족을 잃는 건 슬픈 일이라고. 오라버니는 훌륭한 사람이니까 할머니를 도와줄 거죠?”
초롱초롱한 눈에 대고 ‘아냐, 오라버니의 장래 희망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두통이 올 것 같아 미간을 문지르는데, 노인과 달리아의 대화가 묘했다.
“어이구, 어이구 마음씨도 고와라. 아가씨는 아직 가족과 헤어진 적이 없구나?”
“맞아요. 달리아는 이별을 몰라요.”
“그런데도 이 늙은이의 마음을 알아주다니 기특해라.”
“달리아 기특해? 맞아, 달리아는 기특한 아이예요.”
가족과 헤어진 적이 없다……?
달리아의 대답이 이상했다. 달리아는 조금 맹한 구석이 있긴 해도 엔비 수준의 멍청이는 아니었다. 원작에 따르면 오히려 우등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재적인 아네모네와 겨루는 노력파 악녀. 그게 달리아 글러토니였다.
노력도 머리가 있어야 할 수 있다. 나중에 아카데미 수석을 차지할 달리아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장례식까지 다녀와 놓고 ‘부모님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숨기고 싶은 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창피해서. 일부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건지도 모르지.
“달리아. 이리 와.”
“네.”
달리아가 내게 다가와 답삭 안겼다.
“오라버니, 쿠키 찾으러 갈 거죠?”
“그래. 네가 그렇게 부탁한다면 어쩔 수 없지.”
노인이 허허 웃으며 앙상한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 쿠키를 찾아준다면, 그때는 정말 대단한 과자를 만들어 주겠다우. 내 혼신의 실력을 발휘해서 말이야!”
“……분명히 약속하신 겁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약속하고 말고! 이 데어리의 이름을 걸고 약속해주지. 엄청난 과자를 잔뜩 구워주겠다고! 우리 손녀만 찾아준다면!”
나는 달리아의 손을 꽉 붙잡고 흔들었다.
“달리아. 산책이 좀 길어지겠는데, 괜찮지?”
“좋아요!”
저 멀리 피핀과 엔비가 머리채를 잡고 다투는 와중에, 우리 달리아는 해맑기만 했다.
***
호수로 가는 길. 나는 달리아의 손을 잡고 걷다가, 계속 신경 쓰였던 부분을 물었다.
“달리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질문 놀이?”
“어, 그래. 놀이라고 하자. 아까 할머니랑 얘기할 때 가족과 이별한 적이 없다고 한 말……. 무슨 뜻이야?”
달리아가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모르겠어요.”
아. 왠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무슨 대단한 생각이 있진 않겠지. 어쩌면 이별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사용한 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봐.”
달리아는 내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다리를 크게 휘적거리며 걷는 달리아가 경쾌하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가족은 헤어진 적이 없어요.”
“…….”
“달리아는 오라버니와 몇 번이고 만날 수 있으니까.”
“……뭐?”
걸음을 멈추자, 흥겹게 팔을 휘적거리던 달리아도 우뚝 섰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뜻이야? 몇 번이고 만날 수 있다니?”
혹시 달리아 너, 이 게임이 몇 번이나 반복됐던 걸 알고 있는 거야? 혹시, 진짜 그 악녀 달리아야? 게임 속 달리아의 기억이 있어?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달리아 이 녀석, 일부러 내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있는 거 아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심 가득한 눈으로 달리아를 내려다봤다. 초롱초롱하고 순진무구한 눈빛에서 악녀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독심술사가 아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 없다.
달리아는 더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내 의구심에 불을 붙였다.
“어머니가 알려주셨어요. 달리아는 오라버니와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어머니가……?”
“네. 아주 오래전에.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너무 옛날이에요.”
세상을 떠난 글러토니 공작부인. 그녀는 시에라와 달리아를 지독히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뒤에서는 달리아에게 상냥한 말을 건넸을 리가 없다.
혹시 예전에는 달리아에게 상냥했던 적이 있었던 건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셨다고?”
“아. 그 어머니.”
달리아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달리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마치 감정 없는 인형을 보는 기분이었다.
“오라버니. 우리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 해요.”
“달리아. 잠시만, 난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야겠어. 너…… 뭔가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그게, 네가 환각의 마녀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야?
“제대로 설명해 봐. 네가 말하는 어머니가 누구야? 얼마 전에 돌아가신 그 어머니를 말하는 거 맞아?”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걸까? 뭔가 의심스럽지만, 다섯 살짜리가 뭘 알겠나 싶은 마음에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으음. 오라버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 꽃이 많다. 꽃들이 반짝반짝.”
달리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꽃을 발견하고 손을 뻗는 행위가 뻣뻣하고 이질적이었다. 딱 봐도 말을 돌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더 추궁할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피핀이 엔비를 내던지며 내게 바짝 붙었다.
“아! 깜짝아. 얼굴 치워. 부담스럽잖아.”
“나으리, 호수로 가시는 거죠? 가시는 길에 저 물고기를 내다 버리심이 어떠십니까?”
내가 방심한 틈을 타 달리아는 금세 내게서 도망쳐서 엔비에게 달라붙었다. 엔비가 달리아를 등에 올리고 숲의 바닥을 헤집었다. 꽤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더 추궁하기는 글렀나.’
달리아 본인이 말하기를 꺼리고 있으니…….
게다가 달리아가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점도 마음에 걸린다. 너무 어려서 헛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키즈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많이 겪어봤다. 집에서 사자를 키운다고 자랑하던 애도 있었고, 부모님이 다 죽었다더니 한 시간 뒤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온 애도 있었다. 저맘때의 아이들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아니겠지, 설마. 저 멍청한 얼굴에 진지한 생각이 깃들어 있을 리가 없어.’
나는 한발 물러서서 피핀이나 상대하기로 했다.
“엔비 님에겐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해.”
“혹시 각별하게 내다 버리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넌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있기는 한 거야? 손님이라고 했잖아.”
“나으리 저게 어떻게 손님입니까, 바다에서 온 멧돼지지.”
피핀이 눈짓했다. 엔비는 엔비 나름대로 숲 바닥을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짐승처럼 냄새를 맡고 있었다. 바닥에 끌리지 않게 치맛단을 들어 올린 달리아가 그런 엔비 뒤를 졸졸 따랐다.
“킁킁, 바다와는 완전 다른 냄새가 나는군.”
“우와, 손님 네 발로도 잘 다닌다.”
나는 피핀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 손님이 바다 멧돼지인 걸 이제 슬슬 받아들여.”
“나으리……. 에효.”
엔비는 흙을 집어 올려보기도 하고, 풀떼기를 주워 입에 넣어보기도 하며 요란을 떨었다. 달리아가 그런 엔비를 마치 동네 들개 구경하듯이 쫓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와 들개의 쇼가 진행되길 한참, 결국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피핀이 달리아를 들어 올렸다.
“아가씨, 지지입니다. 저런 비린내 나는 멧돼지 근처에는 가지 마세요.”
“피피! 고마워! 마침 다리가 아팠는데.”
이후 호수로 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나비 두어 마리가 포로롱 날아다니며 달리아 주변을 배회했다.
“아가씨, 나비예요. 보이세요? 예쁘죠? 저건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라고 해요.”
“와아… 이름 길어…….”
“저기 보이는 나무는 메타세쿼이아인데 아주 길게 자라는…….”
“와아…….”
달리아는 피핀의 이런저런 설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피핀이 가리키는 방향은 꼬박꼬박 쳐다보고, 저 나름대로 반응해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피핀도 말재주가 없어서 그렇지, 최선을 다해 달리아와 놀아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이렇게만 보면 평화로운 한때였다. 호위 기사와 꼬마 아가씨의 산책이라니.
나는 엔비가 멀리 도망치지 못하도록 옷자락을 개 목줄처럼 붙잡은 채, 고개는 피핀과 달리아 쪽으로 돌렸다.
“달리아, 피핀한테 너무 정붙이면 안 돼.”
농담처럼 건넨 말이지만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나중에 달리아를 배신하고 아네모네에게 언제 홀랑 넘어갈지 모르는 녀석이다. 피핀은 어엿한 배신자 후보다.
“예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피핀이 억울하다는 듯 우는 표정을 지었다. 달리아는 그새를 못 참고 피핀의 머리를 한껏 잡아당겨 땋고 있었다.
“저는 앞으로도 나으리와 아가씨에게 충성할 거라고요.”
“진심이야?”
“당연하죠. 저한테 밥도 주고, 잠자리도 주고, 책도 빌려주는 나으리를 두고 제가 어딜 가겠어요.”
“그 마음 변하면 처형이야.”
“안 변한다니까요.”
달리아가 키득키득 웃으며 피핀에게 매달렸다.
“그런데 쿠키라는 여자애는 도통 보이지를 않네요.”
피핀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쿠키! 쿠키! 어디에 있어!”
“쿠키!”
피핀과 달리아가 소리높여 소녀를 찾았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쿠키라는 애는 호수 바로 앞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가는 길에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건 의외지만, 호수 앞에서는 발견할 수 있겠지.
나는 바닥의 벌레를 구경하고 있는 엔비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엔비 님.”
“으어, 응? 내가 싸울 만한 상대라도 나타났어?”
“호수가 어딨는지 아시겠습니까? 물 냄새, 맡을 수 있겠어요?”
“물 냄새?”
엔비가 주변을 둘러보며 인어의 피부로 몸을 변화시켰다.
“물 냄새라. 아까부터 바닷물하고는 다른 묘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
이어 엔비가 나를 휙 돌아봤다. 일단 물 냄새를 찾아주고는 있었지만 뭔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그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인간을 찾고 있던 게 아니었나?”
“그 인간이 호수 근처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서요. 인간 냄새도 맡아보시죠.”
“인간 냄새라면 너희가 풍기고 있어.”
“우리 말고 다른 인간 냄새 말입니다.”
그때 허리춤에 매달아뒀던 라기아가 징징 진동했다.
[하하핫, 힘들어? 힘들어? 나는 비록 엔비처럼 냄새는 못 맡지만 마력은 감지할 수 있지. 그거 알아? 그 노인네에게서 마수의 마력이 느껴졌어. 아주 약하지만 말이야.]“마수라고? 뭔가 착각한 건 아니고?”
[이 라기아 님은 착각의 착도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지! 아, 참! 난 사람이 아닌데~ 하하하핫! 그럼 착각도 모르고 사람도 아닌 완전한 존재로구만!]“…….”
진짜 닥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