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1
“이모님, 여기 깍두기 더 주세요!”
자신과 래미의 미래에 대한 투자를 마친 래원은, 휴대폰을 넣고 다시 수저를 들었다.
뚝배기 그릇의 바닥이 보이게 콩나물 국밥을 싹싹 긁어 비우며 빈속을 채우고는 의지를 다졌다.
래원에게서는 이제 막 30대가 된 청년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여유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남들은 주식에 돈을 넣어두고 전전긍긍하면서 수익을 올리지만 래원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
* * *
불의의 화재 사고 이후,
영혼이 바뀐 이란성 쌍둥이
형 [요한]과 동생 [유진].
[요한(유진)], 즉 요한의 몸속에 들어간 유진의 영혼은, 그동안 톱스타로 살면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한다.일단 잠을 푹 잔다.
알람도 없고 깨우는 사람도 없다.
매니저 없이 번화한 명동 길거리를 마음대로 거닐고,
한강에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며 취해보기도 하고,
지나가던 예쁜 여자의 번호를 따고,
영화관에서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봐도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형이 누려온 자유를 대신 누리는 삶도 나쁘지 않은 유진이다.
.
.
래원이 대본에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그렸다.
“이건 몽타주 처리를 하긴 하는데···. 컷 수를 늘리고 호흡을 빨리 가져가 보자. 나중에 유진이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공허함을 표현하는 씬이랑 대조적으로 보일 수 있게···.”
이내 태블릿에 쓱쓱 콘티를 그리는 래원.
자신의 머릿속 장면을 시각적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하루에 몇 씬까지 찍느냐가 관건인 드라마 현장에서,
콘티 작업을 꼼꼼히 해놔야 촬영을 경제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콘티를 잘 따놓으면 그대로 찍기만 하면 되니까.
이어지는 다음 장면들은 [유진(요한)]의 시퀀스였다.
즉 유진의 육체에 들어간 요한으로,
요한은 배우로서의 꿈이 좌절됐던 인물인 만큼, 유진의 인기와 연기력을 늘상 부러워했었다.
동생 유진의 육체 속에서 그의 인기와 배우로서의 스케줄을 대신 즐긴다.
영화 홍보 인사, 팬 사인회, 기자 간담회, 각종 인터뷰, 잡지 화보 촬영, 차기작 검토 및 내로라하는 감독이나 작가와의 미팅 등등···.
꿈을 꾸는 듯, 갑자기 하루아침에 그간 꿈꿔온 삶을 살 수 있게 된 유진(요한)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행복하다.
.
.
래원은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해당 대본을 이리저리 째려보다가, 옥영임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본에 나온 것과 다르게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촬영 후반부나 바쁠 때는 대본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감독 재량껏 찍어도 되지만,
지금은 드라마 초반부인 데다가 사전 제작이기에 여유 시간이 있는 만큼,
작가에게 먼저 알리고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었다.
“옥 작가님, 저 래원입니다.”
– 어머, 도 피디이이! 무슨 일?
“3부에 17씬 몽타주요,”
– 3부 17씬? 잠깐만. 대본 펼칠게.
“동생 [유진]의 스타 인생을 대신 사는 [유진(요한)]을 보여주는 몽타주 장면이요.”
– 어어, 찾았다. 17씬, 이게 왜?
“이거 앞에 14, 15씬에 [유진]이 [요한]에게 영화 홍보 인사나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차기작은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가르쳐주잖아요.”
– 어어.
“그 시퀀스를 하나의 장면으로 묶으면 어때요?”
– 하나로 묶는다고?
“네네. [유진(요한)]이 영화 홍보 인사가는 장면에서는 [유진]의 목소리로 설명 나레이션을 넣기도 하고요. 또, ‘[요한]의 눈에만 보이는 [유진]’ 이라는 설정으로 라운드 인터뷰나 차기작 미팅에서, [유진]이 옆에 등장해서 설명해주는 거죠.”
– 근데 도 피디, [유진(요한)]도 육체가 [유진]이니까 장모건이 연기하는 거고, 옆에 등장해서 설명하는 것도 [유진]이면 장모건이 연기할 텐데···?
“맞습니다, 옥 작가님. 둘 다 장모건 씨가 연기할 거고요. 현장에서는 테이크를 따로 간 다음에 후작업때 CG로 합쳐야죠.”
– 아하! 뭔 말인지 접수됐어! 대박! 근사하게 나오겠는데? 역시 도 피디야!
“어후, 말만 근사하게 하면 안 되고 잘 찍어서 결과물을 근사하게 내야 할 텐데요. 하하하.”
– 자기가 어련히 잘하겠어! 내가 이래서 자기랑 예전부터 작업하겠다고 노래 노래 불렀잖아! 메인 연출이면 더 좋았겠지만···. 뭐, 지금도 보통 B팀 감독이랑은 다르니까. 내가 자기 덕분에 아주 든든해, 도 피디!
래원의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해주고 흔쾌히 오케이한 옥영임 작가.
래원은 전화를 끊고, 머릿속에 그려둔 그림을 손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해당 시퀀스의 콘티가 완성되어 가며 래원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그려지던 찰나,
지이이이이잉——
[ 유찬 ]휴대폰의 요란한 울림에
래원은 순간적으로 안 좋은 직감이 들었다.
“··· 여보세요?”
– 형, 큰일 났어! 여기 지금 강동 세트장인데 윤지협 선배가 지금 응급실에 실려 갔어!
“뭐? 뭔데? 사고 났어?”
– 그건 아닌데, 모르겠어. 쉴 때 잠깐 화장실 다녀왔더니 갑자기 선배가 쓰러져서 배 붙잡고 뒹굴고 있더라. 의식은 있었는데···.
래원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전조 증상의 시작일 것이다.
윤지협 PD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기 직전의 전조증상 말이다.
– 지금 막 막내한테 근처 응급실에 잘 도착해서 치료 잘 받고 있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다행이네!”
– 하아, 여기는 어쩌지? 우리 오늘 원래 찍을 거 반의반도 못 찍었는데⋯. 일단 오늘 촬영은 접고 상황을 지켜⋯
“아니. 접지 마! 내가 지금 갈게, 찬아. 15분이면 도착해.”
래원이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B팀 감독을 자처했던 것은,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오늘치 제작비 몇천 만원을 공중에 날릴 수는 없었으니까.
다행히 오늘 사고가 래원의 집 근처 세트장에서 터져준 것도 하늘이 도운 것 같았다.
래원은 차 키를 집어 들고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99화 – 리디북스
* * *
래원이 한걸음에 달려온 강동 세트장.
2화 하이라이트 씬을 촬영하기 위해 수많은 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화재 사고 씬이라 소방서에도 협조 요청을 받고 소방차 1대와 함께 곁을 지키는 중이었다.
래원의 눈에,
무기한 대기 중이던 스텝들과 배우들의 얼굴이 보였다.
축 늘어진 그 모습이 흡사 선장을 잃은 선원들,
중력을 잃고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 같았다.
“윤지협 선배는 치료 잘 받고 계시다고 하니, 우리도 힘을 내야죠! 쓰러진 사람이 미안하지 않을 수 있게요!”
래원이 이처럼 외치며 서둘러 메가폰을 잡자,
현장 스텝들과 배우들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도 감독님! 같이 잘 찍어봐요!”
“구원투수, 잘 부탁해.”
래원은 자신을 믿어주고 따라주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래원 역시 마음은 급했지만 겉으로는 여유 있게 대처하면서 현장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싶었으니까.
“바로 슛 들어가겠습니다.”
유찬이 옆에서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래원은 이를 들으며 원래 예정됐던 촬영 일정을 차질없이 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윤지협 선배의 콘티대로 찍겠습니다. [요한]이랑 [유진]이 디렉팅 받은 대로 리허설 한 번 해주세요.”
이에 함현우와 장모건이 배란다 세트장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함께 뛰어내리는 장면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래원은 팔짱을 낀 채 날카로운 눈으로 이를 살폈다.
[유진]이 [요한]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 [요한]은 잔뜩 취해있다.“형, 일단 나와! 위험해 거기!”
“아니, 난 여기가 좋아. 밖은 너무 추운데, 여기는 따뜻하잖아.”
“형은 왜 그렇게 매사에 비관적이야!”
“너한텐 세상이 마냥 축복이지? 넌 다 가졌으니까. 절대로 몰라.”
“제발···. 제발, 쫌! 나도 형을 이해하고 싶다!”
“아니, 아무도 날 이해 못 해.”
러프하게 리허설을 마친 함현우와 장모건이 도래원의 디렉팅을 들으러 가까이 다가왔다.
“현우 형, 이 장면은 [요한]이가 완전히 더 취해야겠는데요?”
“더 취한다는 게 어떤 걸까요? 취해서 폭주하고 분노하는 쪽일까요?”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것 보다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자포자기하는 스탠스가 대사랑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으음, 알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인지. 그렇게 다시 해볼게요.”
함현우는 빠르게 수긍했고,
래원에게 디렉팅 받은 대로 다시 한번 리허설을 해보고는 감을 잡았다는 듯 빙긋 웃어 보였다.
이제 촬영에 들어가야 할 시간.
래원이 힘차게 소리쳤다.
“한 번에 가봅시다! 불붙여 주세요.”
래원의 말에 스텝들이 세트장에 불을 붙였다.
화르르르——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보며,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자신의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도 감독님, 더 붙일까요? 불?”
“아뇨.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CG로 후작업 할 거라서요.”
풀샷 담당, 각 배우의 클로즈업 담당, 여러 각도에서 투 샷 담당···.
지금 이 순간, 여러 대의 카메라가 자기 몫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포커싱을 하면서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디렉션을 기다리며 조용해진 현장.
래원이 그 침묵 사이로 외쳤다.
“레디··· 액션!”
.
.
두 형제의 본가.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유진]이 물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요한]을 애타게 찾는다.“형! 요한이 형! 어딨어? 대답해!”
이윽고, [요한]을 발견한 [유진].
[요한]은 잔뜩 취해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다.“형, 일단 나와! 위험해 거기!”
“아니, 난 여기가 좋아. 밖은 너무 추운데, 여기는 따뜻하잖아.”
“형은 왜 그렇게 매사에 비관적인 건데!”
뜨거운 불길을 피해 [요한]에게 물수건을 내밀며 다가서는 [유진].
그런 동생을 피해 배란다 쪽으로 뒷걸음질 치는 [요한].
“너한텐 세상이 마냥 축복이지? 넌 다가졌으니까. 절대로 몰라.”
“제발···. 제발, 쫌! 나도 형을 이해하고 싶다!”
[요한]은 끝내 배란다 난간에 등을 기댄 상태로 , [유진]을 향해 비릿하게 웃는다.“아니, 아니···. 이 세상 그 누구도 날 이해 못해.”
그리고는 배란다 바깥으로 몸을 던지는 [요한].
그런 형을 붙잡다가 함께 추락하는 [유진].
두 형제는 그렇게 사라지고,
타오르는 화염만 남는다.
.
.
“컷! ··· 오케이!”
래원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소방차와 살수차가 시원하게 물을 내뿜었다.
얼마 후,
불이 모두 꺼지자 뜨거웠던 현장이 차갑게 식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몸을 던진 후 세트장 바깥쪽에 설치된 매트리스로 떨어진 함현우와 장모건은,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두 배우는 초반부의 하이라이트 씬이자 가장 어려운 씬을 해낸 뒤의 보람을 만끽하면서
얼굴에 칠했던 그을음 분장을 지웠다.
그들을 지켜보던 래원 역시 자기 몫을 해냈다는 뿌듯함에 목소리가 상기됐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리하고 10시부터 12씬 엄마 장면 갈게요!”
“옙! 알겠습니다!”
“감독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준비할게요!”
현장 스텝들과 배우들이 래원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척척 움직였다.
다행히 윤지협의 빈 자리가 차질 없이 메워지고 있었다.
* * *
“지협 선배!!!”
자정을 넘기고서야 촬영을 마친 래원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다.
윤지협이 실려 온 응급실이 있는 병원 말이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들이닥친 병실에는 윤지협의 부인과 어린 아들도 함께였다.
두 사람의 옷차림이 홈웨어와 잠옷인 것으로 보아, 윤지협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침상 위의 윤지협은 응급 수술을 마친 뒤 링거를 맞으며 회복 중이었다.
아직 마취에서 깨지 못한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지협 선배와 같은 팀에서 드라마 찍는 도래원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여! 아저씨!”
수척한 얼굴의 부인,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는 어린 아들과 인사를 나눈 뒤,
래원의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잠시 후,
윤지협이 깨어났다.
“여보! 정신이 좀 들어? 나 알아보겠어?”
윤지협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아내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아들은 윤지협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아빠아아!! 왜 이렇게 늦잠을 자아!”
이 같은 풍경에 래원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곧 의료진이 들어와서 윤지협에게 지난 처치 과정과 병색, 그리고 경과까지 설명해준 후 다시 병실을 나섰다.
이제 상황 파악을 끝낸 윤지협의 관심은 래원에게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