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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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도 예고편이 있다면 (2)
황태수는 대답 대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이거 지금 블라인드 테스트잖습니까.”
최지철은 황태수의 반응에 그저 입술을 일자로 오므렸고,
변덕규는 그 사이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4화도 괜찮긴 한데··· 아무래도 저는 5화에 조금 더 마음이 가긴 하네요. 시청자라면 기대감이 엄청나게 생길 것 같거든요.”
“지철이 형님은요?”
황태수의 물음.
최지철은 5화로 기울어진 여론에 다시 수평을 맞추기 위해 운을 뗐다.
“나도 5화가 더 마음에 든다.”
“그러면 만장일치로···.”
“근데 말이다. 꼭 하나만 택해야 하냐?”
“형님···!”
“남은 예고편도 홀수 편은 계속 5화 만든 놈한테, 짝수 편은 계속 4화 만든 놈한테 맡기면 어떠냐?”
“그러면 블라인드 테스트한 의미가 없잖습니까?”
“너 지금 테스트를 위한 테스트를 하려던 거였냐? 아니잖냐.”
“그건 그렇죠.”
“홀수 편은 자극적으로 캐릭터 매력을 잘 뽑는 놈이 계속 맡고, 짝수 편은 드라마의 결을 잘 살리는 놈이 계속 맡으면··· 인혁이 래원이 두 놈들은 실력 키우기 좋고, 둘이 나눠 만드니까 시간 여유도 생기니 더 공들여 만들겠지.
그럼 우리 작품에도 가장 좋은 선택 아니겠어?”
황태수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최지철이 내놓은 의견에 순간 솔깃했지만 신중하게 결정하고자 함이었다.
“뭣보다, 어쨌든 인혁이가 계속 우리 팀 1번 조연출인데 걔 자존심 건드려서 당장 작품에 좋을 게 뭐가 있겠냐? 그리고 우리로서도, 예고편을 두 가지 결로 다르게 번갈아서 내보내면 다양한 시청자들을 잡을 수 있을 거고.”
최지철이 덧붙인 말에
황태수와 변덕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하나하나 일리가 있었다.
“전 찬성입니다.”
변덕규의 말이었다.
“사실상 홀수 화 예고편이 조금 더 중요한데, 5화 만든 놈한테 홀수 편을 맡긴다면 짝수 편은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지철이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업무 분담도 시킬 겸요.”
최지철은 이를 놓치지 않고 거들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홀수 편은 6일 후에도 우리 드라마를 까먹지 않고 다시 보게 만들어야 하니까···. 더 강력한 자극이 연출적으로 필요해. 예를 들면···.”
“······?”
“예를 들면, 우리 하이라이트 티저 나갔을 때 반응 좋았던 것처럼 말이지.”
잠잠히 생각에 잠겨있던 황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기 시작했다.
“하이라이트 티저처럼요? 그럼 태수 형, 5화 만든 게 도래원이에요?”
“··· 맞아. 4화가 인혁이, 5화가 래원이.”
“와, 대박! 도래원 걔 진짜 뭐예요?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타고난 놈이네, 타고났어.”
최지철은 이제 순순히 자신과 김 부국장이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될 거라는 기대감에 흡족한 듯 미소지었다.
‘하인혁, 도래원. 둘 다 잘 키워 볼 수 있겠어.’
* * *
황태수는 곧바로 하인혁과 도래원, 단둘을 불러다가 앞에 앉혔다.
“종방 때까지,”
두 사람에게 뜸 들이지 않고 최지철 선배 및 변덕규와 함께 결정한 사항을 단도직입적으로 전했다.
“짝수 화의 예고편은 인혁이가,
홀수 화의 예고편은 래원이가 맡기로 했어.”
“네?!!”
이에 하인혁과 도래원은 외마디 반문을 던지며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도래원은 겉으로는 어안이벙벙한 듯 잠자코 황태수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쾌재를 질렀다.
하인혁의 심기가 불편했는지 두 눈썹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상황이 닥쳤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선배님, 왜.. 그런 결정이 떨어졌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원래 제 일이었는데··· 제 예고편이 뭔가 부족했던 건가요?”
하인혁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황태수는 이를 캐치했다.
‘지철이 형 말대로 하길 잘했어. 지금도 이렇게 반응하는데, 예고편 전편을 도래원한테 맡겼었다간···.’
황태수는 침착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설명했다.
“부족한 거? 4화, 5화. 어느 하나만 가릴 것 없이 둘 다 아쉬운 게 있었어.”
“······.”
“하지만 너희 둘 모두에게 실력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게 우리 드라마 시청률을 위해서도, 너희에게도 좋을 거라 판단했다.”
역시 칭찬보다는 지적이 어울리는 황태수였다.
그의 말에 하인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고,
이번에는 래원이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외람되지만, 어떤 점을 아쉽게 보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다음 예고편은 더 잘 만들어보고 싶어서요.”
황태수는 래원의 진심 어린 질문에 당황했으나 짐짓 태연하게 답했다.
사실은 하인혁이 만든 4화를 타깃으로 하는 대답이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에 치우치지 않으려 단어와 표현을 신중히 고르고 골랐다.
“예고편에서 유려하게 드라마를 압축하고, 기대감을 주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들에 너무 치우쳐서 우리 작품의 색을 잃으면 안 돼.”
“네.”
하인혁과 도래원은 눈을 빛내며 황태수의 말에 집중했다.
“너희가 예고편에 프렌치 파인다이닝 간판을 달아두면, 그거에 끌려서 들어온 시청자들은 뭘 기대할까?”
“정갈한 프렌치 코스 요리요.”
“그렇지. 근데 화려한 파티 음식을 대접하면 어떻게 되겠냐?”
“오히려 실망하고 채널을 돌릴 겁니다.”
“그래. 그러곤 다신 우리 작품을 안 보겠지.”
“······.”
“이걸 염두에 두면서 각자 6화, 7화 예고편 잘 준비해보고. 내일 촬영장에서 보자.”
“네!”
“네···.”
황태수는 하인혁의 풀 죽은 대답이 신경 쓰였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인혁아. 대신 후반에 최소 한번은 C팀 감독으로 투입될 거니까 준비하고 있고.”
“네? 네..네! 섭섭하지 않습니다!”
하인혁은 C팀 연출 기회를 주겠다는 황태수의 말에 한층 목소리가 높아졌다.
“래원이는 촬영 현장에서 메이킹 영상 틈틈이 찍어놓고 편집도 할 수 있음 해놔. 나중에 공홈이랑 유튜브에 올릴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과거의 삶에서 래원이 메이킹 영상을 만지게 된 것은 입사한 지 1년도 더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래원은 메이킹과 7화 예고편을 만들 생각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 * *
한편, 래원이 처음 만든 예고편이 방송을 탔다.
4화 방영이 끝난 후.
실시간으로 포털의 토크톡 채팅방에, 5화 예고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 유하나 우는 거 오지게 이쁘다ㅜㅜㅜ 울디마ㅜㅜㅜ ] [ 한나은 쌍년 캐인줄 알았는데 뭥미??? ]ㄴ 쌍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담주 5화에 나올 듯ㅠㅠ
ㄴㄴ ㅇㅇ 나도 저 예고보고 급 한나은 맘 됐자나
이후 시청률은 서서히 오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6, 7화까지 중반부 방영이 되면서 SBC는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다.
‘청춘 런웨이’ 팀에 광고주들의 문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었다.
래원은 방송이 거듭될수록 즐기고 있었다.
이전의 삶과 달리 초고속으로 연출부에 들었고, 일반적인 막내 조연출이 받기 힘든 신뢰와 임무를 받았다.
연출부로 현장을 서포트 하는 것도,
예고편 작업과 메이킹 영상을 만다는 것도
전부 래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신나는 일이었다.
반면, 하인혁은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매번 예고편을 만들 때마다 도래원을 의식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선배들이 보기에는 래원의 것과 비교해 2% 부족한 결과물이었다.
* * *
간만에 드라마국 신입 동기들끼리 점심을 먹을 짬이 난 어느 날.
도래원, 지혜영, 유찬.
세 사람은 구내식당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잠깐만! 나 화장실 좀!”
급히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유찬.
쏴아-
잠시 후 물 내리는 소리와 세면대 수돗물 소리가 나고는
유찬이 부리나케 나왔다.
“형, 이거 형 USB 아냐?”
“어?”
유찬이 래원에게 USB 하나를 내밀었다.
래원은 자신의 폰을 꺼내 살펴보고는 거기 달려있어야 할 USB가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어. 내 꺼 맞네. 언제 흘렸지? 어딨었어?”
“··· 화장실 세면대에서.”
“응? 화장실? 세면대에 이게 왜?”
“형 오늘 화장실 언제 갔었어?”
“여기 화장실은 안 갔는데.”
래원의 대답에 유찬은 의심스러운 듯
래원의 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폰에 작은 USB를 매달았던 끈이 끊어져 있었다.
“이거··· 설마 누군가 끊어놓은 걸까? 꼼꼼한 형이 이런 거 잃어버릴 사람도 아니고.”
“에이, 누가 그런 짓을 해.”
유찬의 의심에 래원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 속에 철심이 박혀있는 끈이라 쉽게 안 끊길 거 같은데, 왜 끊어졌지?”
유찬의 말처럼 USB 끈은 마치 누군가 칼이나 가위로 끊어놓은 것처럼 깔끔하게 끊어져 있었다.
“멀쩡하게 달린 거 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야?”
“오늘 아침.”
“그럼 드라마국 안의 누군가네. 래원이 형 옆자리는 나랑 하인혁 선배고.”
“설마···. 하 선배는 같은 팀이잖아. 래원 오빠 사수기도 하고.”
“혜영이 누난 몰라. 그 자식이 평소에도 얼마나···. 아니다. 그래도 같은 팀인데, 누워서 침 뱉기 할 수는 없지. 암튼 우리 래원이 형이 워낙 낭중지추(囊中之錐)라 고생이 많네. ”
물론 심증일 뿐이었다.
“근데 이 USB에 뭐 들었었어?”
“9화 예고편.”
“어머, 이거 물에 젖어서 망가졌을 텐데··· 어떻게 해, 오빠?”
래원은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 문제없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연출부에서 이미 10년 이상 굴러온 래원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자료를 하드디스크와 웹하드에 이중, 삼중으로 백업해두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
정말 하인혁이 한 짓이 맞대도,
이런 식으로 재롱부려봤자 래원에게 타격감은 없었다.
* * *
“태수야, 우리 13화부터 대본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최지철 부장은 책임 프로듀서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이 말을 전했다.
현재, 촬영은 11화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상황.
방송은 9화 방영을 앞두며 촬영 스케줄을 바짝 뒤쫓아오고 있었다.
스텝과 배우들 모두 마음이 급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3화부터 대본이 전면 수정이 결정됐다.
이 국장과 감사 측이 시청자 반응을 토대로 결말을 수정하라는 호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황태수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하아···. 라이브만큼은··· C팀, 아니 D팀까지 투입해서라도 어떻게든 피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드라마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빨리 대책을 세우는 것이 황태수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명희경 작가는 베테랑답게 이 같은 SBC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결말을 바꾸려면 최소한 13화부터 손을 대야 해요. 개연성과 설득력 있는 캐릭터 구축을 위해서요.’
자신의 이름에 먹칠하기는 싫다는 투로 더욱 광범위한 대본 수정을 주장했다.
이에 늦은 밤, 연출부 비상 회의가 소집됐다.
황태수가 변덕규, 하인혁, 도래원, 유찬에게 새로운 일정표를 건넸다.
“다들 이거부터 받아라.”
스케줄러로부터 급하게 공지받은 촬영 일정표에는
A팀, B팀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C팀의 촬영 일정이 더 생겨나 있었다.
“인혁아, C팀 스케줄 맞춰서 준비해”
“가..감사합니다!”
변덕규가 하인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야···! 드디어 우리 인혁이 ‘레디, 액션!’ 외쳐보겠네? 짜식, 축하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래원과 유찬도 옆에서 축하해주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전개였다.
어차피 하인혁은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조연출을 졸업하게 될 거다.
‘그래. 그때 하인혁이 C팀 촬영도 나름 나쁘지 않게 진행했었···.’
이때 별안간,
래원의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른 기억.
“맞다, 그 사고!”
래원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너무 놀란 나머지 이를 입 밖으로 뱉어버렸다.
“사고라니?”
황태수가 놓치지 않고 되잡아 물었다.
“아··· 아닙니다. 잠깐 딴생각을 해서요.”
래원이 당황한 얼굴이 되자,
하인혁은 자신이 C팀 연출을 맡은 것 때문에 그런 것이라 넘겨짚으며 래원을 소리 없이 비웃었다.
래원에게는 지금 하인혁 따위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전혀 중요치 않았다.
당시 하인혁이 감독을 맡았던 C팀 촬영장에서, 유하나 배우가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촬영장의 소품용 유리에 문제가 생겨서 손과 팔이 찢어지는 바람에 총 20바늘을 꿰맸던 대형 사고.
젊은 여배우에게는 치명상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촬영 일정 막바지에 난 사고라, 유하나가 연기하는 한나은의 분량이 많이 남지는 않은 상황이었고, 방송에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 사고에 대해 악의적인 보도가 나가면서 당시 연출부와 소품팀 모두가 경위서를 썼고,
사고로 인해 유하나 배우의 차기작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서 SBC 측에서 거액을 변상을 해줘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땐 강 건너 불구경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연출부에 소속된 이상!
우리 촬영장에서 그 누구도 다쳐서는 안 돼!’
이것은 래원이 지난 삶부터 지켜온 연출 철학이었다.
촬영장에서 스텝이든 배우든 누군가 다치면 그건 전부 감독 탓이자 연출부의 과오다.
드라마 팀의 선장이나 다름없는 연출자는, 반년 가까이 되는 이 항해를 무사히 마친 후 팀 사람들 전원을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려보낼 의무가 있다.
래원은 단호한 얼굴로 입술을 꼭 다물었다.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다행히 지금 모든 게 과거와 똑같이 가고 있지만은 않아.’
과거와 달리 유하나한테 사고가 안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과거보다 더 큰 사고로 더 크게 다칠 수도 있다면···?’
막아야 한다.
예고편이 없는 지금의 삶에서 그 예고편을 편집할 수 있는 건 오직 도래원 뿐이었다.
과거의 경험과 정보를 최대한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래원은 당시의 사고 기억을 더듬으며 하인혁의 C팀 촬영 스케줄을 꼼꼼히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래원이랑 찬아, C팀 서포트는 누가 할래? 인혁이는 누구 데려가고 싶냐?”
황태수의 물음에 래원이 칼같이 답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래원은 하인혁을 똑바로 응시하며,
‘내가 유하나 사고를 어떻게든 막을 거다!’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인혁 선배, 제가 조연출로 서포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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