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8
머릿속에는 촬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번 비엔나 로케이션은 원작에 없는 장면을 래원이 월미도88에게 요청해서 컨펌을 받아낸 것이었다.
게다가 ‘스튜디오 다이아’는 래원을 믿고서 예산을 넉넉하게 지원해주었다.
래원은 기대와 포부, 약간의 부담을 안고서 비엔나 땅을 다시 밟을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우리 드라마의 화룡점정을 찍을 차례다!’
한편, 옆자리 안정원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 감독님 실력이면···. 1차 각색, 감독님이 직접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영미권은 드라마 감독이 각색에 참여하는 게 흔하기도 하고, 어차피 2차 각색 겸 번역이 따로 붙을 거니까.’
이렇게 도래원의 이름을 건 2개의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지금 래원을 태운 비행기가 막힘없이 활주로를 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71화 – 리디북스
* * *
“액션!!”
수백, 수천 번 쯤 외쳐봤지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소리치는 것은 사뭇 달랐다.
이곳에 도착한 5일 남짓한 시간 동안 합의가 된 장면은 반 이상 다 찍었고,
이제 주력해야 할 씬은 [보라], [두빈], [나나], [보준]이 함께 월미도에서 살기로 합심하는 장면이었다.
위이이이잉——
슈우우우웅——
금속의 마찰음이 요란하게 들리더니,
4명의 주인공을 실은 대관람차가 출발한다.
배낭여행의 마무리이자 네 사람이 헤어지기 전 마지막 코스, 비엔나 프라터 공원의 대관람차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비엔나의 풍광이 가득 펼쳐지기 시작한다.
굽이치는 도나우강.
건너편 시청의 뾰족한 첨탑.
멀리서도 화려한 자태를 자아내는 궁전과 왕국 그리고 여러 박물관.
황홀함과 벅차오름 그리고 아쉬움.
갖가지 감정의 홍수 속에서 네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간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가 풀이 죽어있는 가운데,
“월미도 우리 집 비었는데, 같이들 살래?”
[보라]가 불쑥 제안하자 다른 3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본다..
.
“컷!! 좋았어요. 좋았는데, 보라 대사만 바스트샷으로 한 번 더 딸게요. 대사 톤 조금 다운해서요.”
민세라가 래원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고는 흔쾌히 보완해서 한층 차분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어서 래원과 경훈 촬영 감독은 다른 3명의 놀라는 표정만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4명의 인물이 빈 정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신할 드론캠을 날려서 촬영했다.
대관람차에서 보는 각도대로, 대신 더 선명하게 말이다.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할게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임상순 작가의 대본 대로 촬영이 끝났다.
내일은 같은 시퀀스를 래원의 의견대로 고친 수정고를 토대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푹 쉬고 내일 뵐게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스텝과 배우들도 이를 알기에 그저 인사만 힘차게 나눌 뿐, 그 이상의 언행은 조심하는 눈치였다.
감독과 작가의 의견이 다를 때, 보통은 자신과 의견이 같은 쪽을 따라 파벌이 갈리기도 한다.
허나 팀은 래원과 임상순의 의견을 모두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
설사 각자의 마음속에 더 선호하는 버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두 가지 버전 모두 촬영을 마치기 전까지는 각자의 호불호를 애써 함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일 촬영분 역시 똑같이 4명의 주인공이 함께 월미도에서 살기로 합심하는 장면이지만,
장소 배경이 ‘이름 없는 자들의 묘지’로 바뀌게 된다.
래원은 일단 숙제를 해치운 느낌에 홀가분했고,
내일은 자신이 직접 쓴 수정고로 찍을 생각에 걱정 반과 설렘 반의 기분이 되었다.
* * *
이튿날.
비엔나 외곽. 동남쪽 변두리의 ‘이름 없는 자들의 묘지’
6개의 씬을 위해, 수십 번의 ‘액션!’과 수십 번의 ‘컷!’ 소리가 터져 나오던 가운데,
“컷! 오케이!”
드디어 마지막 오케이 사인이 터졌다.
“와아!”
이에 경훈 촬영 감독이 탄성을 질렀고,
다른 스텝과 배우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이제 막 노을이 지기 시작하던 찰나라서 자칫 잘못하면 내일 추가 촬영을 앞둔 상황까지 벌어질 뻔했더랬다.
모두가 모니터 화면 앞으로 모여들었다.
재촬영이 없기를 바라는 하나의 마음이었다.
.
.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이라···. 우리들의 삶도 이렇게 저버리는 거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래. 돈 다 날리고 나니까 다들 날 벌레 취급하더라?”
[두빈]의 의기소침한 말에 [보준]이 왼손을 절며 고개를 끄덕인다.“저도 비슷해요. 의병 제대하고 나서, 다들 저를 불쌍한 병신 보듯 하는데···. 왼손 하나 이렇게 됐다고 제 인생 끝난 것처럼 보는 게 너무 화가 나요.”
[나나] 역시 씁쓸하게 웃는다.“나는 사람들이 날 잊어버렸으면 좋겠고, 동시에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이해된다, 언니.”
“‘있잖아, 내 귀가 점점 안 들려.’ 말하고 싶은데 입술이 안 떨어져. 내가 이 말을 하면 다들 나를 연민하겠지? 그건 싫어서 사람들한테서 잊히고 싶어. 근데 또, 영영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하면 슬플 것 같아.”
“우리가 기억해줄게. 언니 귀가 안 좋아져서 언니 목소리를 언니가 잊어도 대신 우리가 잊지 않을게.”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긴 네 사람.
돌연 보라가 제안을 하나 한다.
“우리 같이 모여 살래? 이름 없는 죽음들도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다들 기억해주고, 찾아주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끼리 모여서 같이 갈래?”
.
.
모니터 화면을 둘러싸고 스텝과 배우들 사이에 훌쩍거리는 소리가 잦아졌다.
어느새 숙연해진 분위기.
“이 장면 너무 좋네요···. 저 원래 이런 자뻑 배우 아닌데, 진짜 가슴을 울리는 씬이에요. 일단 연지 누나랑 세라 연기 완전 최고고···.”
곽보겸이 메이크업이 번지지 않도록 티슈로 눈가를 콕콕 두드리며 말했고,
이재윤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애교를 부렸다.
“형님, 누님들. 이제 우리 케미 꽤 괜찮은 듯?”
스텝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서로를 마주 보는 것으로 표현을 대신했다.
경훈 촬영 감독 역시 말을 아꼈다.
‘어제 찍은 임 작가님 버전도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 도 감독님 수정고 촬영분이 진짜 대박 압권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은 확실했다.
‘이거 방영되면 1화부터 무조건 이슈 된다! 내 촬영 감독 커리어를 걸고 장담할 수 있어.’
* * *
한편, 서울의 방송가에서는
겉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월요일과 화요일.
유찬PD의 SBC 미니시리즈와
하인혁PD의 TBN 미니시리즈가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뜨거운 접전을 펼치는 반면,
금요일과 토요일은 조금 다른 양상을 띠었다.
문철PD의 SBC 미니시리즈와
김희숙 작가의 M본부 미니시리즈가 맞붙은 가운데, 후자가 월등한 차이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SBC 드라마국 안에서도 치열하게 내부전이 벌어졌다.
유찬PD의 월화 편성은 복덩이 취급을 받는 중이었고,
문철PD의 금토 편성은 골칫덩이 취급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을 래원에게 중계해준 이는 다름 아닌 황태수 국장이었다.
래원의 휴대폰 너머 황태수의 목소리는 속 시원했다.
– 캬! 래원아, 사이다도 이런 사이다가 없다니까? 요즘처럼 출근길이 신난 적이 없어. 아, 너 퇴사한 이래로 그렇다는 말이야. 껄껄껄.
“오죽하실까요? 저는 선배 말씀만 전해 들어도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인데···.”
– 너는? 비엔나 로케는 잘 되어가냐?
“중간 이상은 하고 있는 거 같네요.”
– 너야 뭐, 잘하겠지···. 내가 널 어떻게 놔줬는데···. 잘해야지!
“넵.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좋냐? 나한테서 벗어나니까 좋냐고?!
“에이···. 그럴 리가요! 선배 생각 자주 나죠.”
– 새끼, 말이라도 못 하면···.
“하하하. 다 선배 밑에서 배운 거죠.”
– 임상순 작가랑은 잘 맞고?
“으음···. 작가님이랑은 ‘나쁘지 않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거 같아요.”
– 여어···. 이거 임상순이랑 뭐가 있네, 있어.
“잡음 없는 프러덕션은 없잖아요. 그냥 그 정도예요.”
– 그래, 너야 잡음도 결국에는 환호로 바꿔버리는 놈인데, 잡음 좀 있어봤자 껌 아니냐? 파이팅 해라.
“넵! 선배!”
– 계속 수고하고 한국 와서 밥 한번 먹자.
이곳 비엔나보다 7시간을 빨리 사는 서울의 이 같은 소식에, 래원은 뷔페라도 먹은 듯이 배가 불렀다.
“힘을 얻었으니 편집이나 얼른 해치워버리자.”
래원은 호텔 방 안에서
조연출 임현서가 가져다준 포장 음식을 먹으며 노트북 앞에 매달려 있었다.
6개 장면의 가편집 본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임상순 작가와 의견이 갈려서 결국 2개의 버전으로 따로 촬영한 것.
비엔나 일정이 끝나기 전에 이를 서울의 임 작가에게 보내주어 합의점을 찾아야 했으니까.
래원이 노트북과 한 몸이 된 지 몇 시간이나 더 흘렀을까?
타다다다닥— 타다다닥타닥—
마지막으로, 손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파일을 컨버팅해서 임상순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 래원.
탁— !
노트북을 덮고 쾌재를 부르는 래원의 표정이 몹시도 밝았다.
“이 정도면 확신이 든다. 임 작가님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 * *
전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래원이 보낸 메일은 곧바로 서울의 임상순 작업실 컴퓨터에서 열렸다.
“얘들아, 하던 거 멈추고 빨랑 와봐! 비엔나 로케 가편집본 왔다!”
임상순 작가가 보조작가들을 자신의 자리로 불러모았다.
그는 긴장이 됐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동영상 첨부 파일 2개 중 1개를 재생시켰다.
대관람차를 배경으로 찍은 버전이었다.
“대본대로 잘 나왔네요?”
끝까지 확인 후, 고개를 끄덕이는 임상순과 보조작가들.
이윽고 임상순이 나머지 파일을 재생시켰다.
“여기가 어디예요? 공원이야, 공동묘지야?”
“다른 서양 묘지에 비해서는 공동묘지스럽고, 동양권 묘지에 비해서는 공원같고 그러네.”
“으음···. 이제야 알겠네요, 도 감독님이 어떤 그림을 원하셨는지···.”
이렇게 보조작가들이 서로 묻고 답하는 동안,
‘감독님 말로 들었을 때보다는, 낫네. 걱정했던 것보다 작위적이진 않아···.’
임상순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보조작가들 역시 조용히 감상하며 각자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가편집본인데도 배우들 감정선이 튀지 않고 매끄럽게 살아있는 건 인정.’
‘재미 면에서는 아까 버전보다 이게 더 낫네.’
잠시 후,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막내 보조 작가가 임상순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작가님, 한 번 더 틀까요?”
이미 2가지 버전 영상을 3번씩 재생한 시점.
“아니. 니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 섰지?”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보조 작가들.
“도 감독님 각색 버전도 나쁘지는 않았어. 근데 나는 솔직히 근소한 차이로 내 대본이 더 맞다고 생각해. 어쨌든 더 자연스러운 건 맞으니까.”
임상순은 이렇게 말하며 막내까지 3명의 보조 작가에게 작은 메모지를 나누어주었다.
“대관람차냐, 묘지냐. 더 마음에 들었던 거 적어 봐.”
임상순의 대본대로 찍은 대관람차 버전,
도래원 감독의 각색으로 찍은 묘지 버전.
2명의 기존 보조작가들은 망설임 없이 적고 메모지를 두 번 접었다.
임상순이 작업실에서 의사 결정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막내 보조 작가가 홀로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막내야, 내 눈치 보지 말고 빨랑 적어.”
그렇게 모인 4개의 종이 쪼가리.
임상순이 직접 펼쳐본 결과는
대관람차가 1표, 묘지가 2표였다.
“쳇···. 내가 이래서 니들 좋아하지. 내 눈치 절대 안 보고 솔직해서.”
막내는 여전히 임상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막내야, 봤지? 우리 작업실 분위기가 이래. 다음부터는 솔직하게 의견 내라.”
임상순은 고집이 세지만 인정 또한 빠른 타입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래원이 각색한 버전의 촬영본은 임상순이 우려했던 것들이 전부 무색할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으니까.
배우들의 감정선, 캐릭터 개연성, 장면 연출, 미장센, 서사의 완성도와 텐션 및 진행 속도까지. 전부 그랬다.
“나는 대관람차 버전이 더 좋지만, 뭐···. 나쁘지 않았어. 시청자들도 묘지 버전을 더 좋아할 것 같네···.”
* * *
비엔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로케이션 일정 막바지가 되었다.
귀국까지 딱 사흘을 남겨둔 늦은 오후.
래원은 안정원과 한창 티타임 중이었다.
“실장님, 임 작가님한테 회신은 아직인가요?”
“예. 여기 시각으로 오늘 저녁 시간 전까지 보내주시기로 하셨어요.”
“곧 오겠네요? 좋아요. 만약에 재촬영 필요하면 오늘 저녁에 일정 짜서 내일이랑 모레 쓰면 되니까···.”
“그런데요, 도 감독님. 입국 일정을 하루 늦춰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무슨 일 있어요?”
“ 일정은 아니고요. 다리오와 팀이 주말 저녁에 비엔나로 온다고 합니다. 감독님 뵈러요.”
“와우···. 누구누구 오는 거죠?”
“다리오, 에바 페이지, 촬영감독 션 파크, 세트 디자이너 레이 쿠퍼, 그리고 안소니 주드. 이렇게 온다는 것 같습니다.”
이에 래원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어? 그럼 안소니 주드, 픽스 됐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