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42
* * *
“자, 약속대로 선물이다.”
비엔나에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래원은 호텔에서 미리 인쇄해둔 대본 하나를 임현서에게 내밀었다.
“오오!! 4부작 단막극 ‘완생’?”
그것을 받아든 임현서의 눈이 500원짜리 동전만큼 커졌다.
래원은 임현서의 눈이 이렇게 큰지 처음 알았더랬다.
“어. 대본 괜찮게 잘 빠졌더라. 거기 연출자 이름에 빈칸 있지? 네 이름 채워 넣을 수 있게 열심히 해라.”
4부작 단막극
아직 편성은 받기 전이지만, 류소현과 류지현 자매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만큼 순항이 예상되는 작품이었다.
대본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지난 몇 주간 래원은 임현서를 관찰하며 그가 이 대본의 적임자라는 확신을 굳혀왔다.
“신인 작가인가 봐요?”
“어. 입봉 작가야. 차여름 작가님 1번 보조작가.”
설마 입봉 감독 주제에 입봉 작가를 가리는 건가 싶었는데,
“이건 대박 날 수밖에 없네요!”
의외의 반응이 나왔고, 래원은 임현서를 빤히 보았다.
“그렇잖아요. 도래원 감독님의 1번 조연출과, 차여름 작가님의 1번 보조 작가가 만났다? 이건 뭐, 슈퍼 루키의 만남 아니겠어요?”
참을 사이도 없이 래원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래. 그 기세 좋다, 임현서. 내 밑에서 조연출 4년씩이나 했는데, 당연히 대박 내야지!”
임현서가 눈을 반짝이며 대본을 넘겨보기 시작했고,
래원은 그 모습을 보며 전생을 떠올렸다.
전생의 임현서는 래원이 아니라 하인혁을 사수로 삼았더랬다.
줄을 잘못 탄 벌로, 조연출 생활만 전전하며 결국 입봉을 하지 못했다.
물론 훗날 데뷔를 했을 수도 있겠으나, 래원이 살다 온 시기까지는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연도로 따지면 지금으로부터 4년 후의 일이었다.
‘이번 작품 잘 해내면, 전생에서보다 최소 4, 5년은 일찍 입봉하는 거다, 임현서. 잘 해봐라.’
표현을 길게 하지 않아도 래원은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번 생에서 임현서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뿐더러, 자신을 믿고 시간과 몸을 바쳐준 후배였기에 그의 성공적인 입봉을 누구보다 바라는 래원이었다.
* * *
새해를 며칠 앞둔 시점.
한국에 온 래원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형, 우리가 찍은 거 1차 편집은 나랑 혜영 누나가 다 해놨어. 형이 검토해보고 괜찮다 싶은 건 넘겨줘 최종 편집도 우리가 할게.”
일단 가장 먼저 래원을 찾은 이들은 지혜영과 유찬이었다.
“오빠가 찍은 것 중에서도 우리가 가편집 해도 될만한 것들은 넘겨줘.”
이제 대략 두 달간의 마지막 편집 일정을 빡세게 소화하고 나면, 드디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연출부의 말이 끝나자 강채령과 안정원도 할 말을 전했다.
“제작 발표회는 다음날 말로 일정 조율 중입니다.”
“홍보 일정도 제작 발표회 픽스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동 걸 계획이고요.”
포스트 프러덕션.
마지막 스퍼트를 다 할 차례였다.
“현서야, 넌 오늘부터 빠져라.”
“네? 중요한 때인데⋯.”
“이제부터는 너 밑에 조연출 애들이 해도 돼. 넌 네 작품이나 준비해.”
래원의 칼 같은 말.
임현서는 감동한 눈으로 래원을 쳐다보았다.
“또또 그 눈빛. 그렇게 보지 말고 빨리 대본이나 꺼내서 분석해. 모레 작가 만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읽어야지.”
“네! 선배!”
임현서는 래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핀잔도 좋았다.
임현서에게 4부작 드라마 은 그냥 ‘임현서’의 작품이 아니라, ‘도래원 감독 1번 조연출 임현서’의 작품이었다.
‘잘 해내자!’
겉으로는 래원을 향해 헤헤 웃어 보이는 임현서였으나 속으로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는 중이었다.
* * *
올해의 마지막 날.
“안녕하세요, 이수지 작가입니다.”
래원은 차여름 작가의 작업실에 갔다.
옆에 임현서를 끼고 말이다.
차여름 작가도 옆에 보조 작가를 끼고는 두 남자를 맞아주었다.
‘이수지? 이름은 생소하지만 낯이 익은 얼굴인데, 누구지⋯?’
래원은 이 같은 속내를 감춘 채로 차여름이 내온 커피를 마셨다.
네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임현서와 이수지는 서로 낯을 가리는 건지 조용했고,
보다 못한 차여름이 판을 깔아주었다.
“우리 수지가 이렇게 얌전해 보여도 안에 똘끼가 장난 아니거든요. 임 감독님이 얘를 잘 자극해보시면 좋은 작품 하나 나올 거예요.”
“이 작가님, 잘 부탁드립니다! 힘 합쳐서 좋은 드라마 만들어보죠.”
임현서가 말을 건네며,
이수지와 임현서의 대화가 시작됐다.
“제 대본에서 제일 괜찮게 보신 부분이랑, 제일 아쉽다고 느끼신 부분이 어떤 건지 여쭤보고 싶어요.”
이수지의 물음에 임현서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고,
“로맨스가 없는 거요.”
“아⋯. 그게 아쉬우셨던 거죠?”
이수지는 예상했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뇨. 그게 제일 괜찮은 부분이었어요.”
“⋯ 정말..요? 로맨스가 없는 게?”
임현서가 의외의 대답을 내놓은 건지 그녀의 표정이 달라졌다.
“네, 제가 감히 판단하건대, 작가님의 주무기는 로맨스가 아니거든요. 요즘 유행에 맞는 여자 투톱의 드라마라 주인공은 그렇다 치더라고도, 남녀 조연 사이에서도 로맨스 케미가 없어요.”
그녀가 침을 꼴깍삼키며 임현서의 다음 말을 재촉하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대신, 그 자리에 휴머니즘과 스포츠맨십이 있죠. 로맨스가 없는 대신 더 큰 강점이 돋보인다는 뜻이에요.”
임현서의 설명에,
이수지가 의자를 바짝 끌어 앉으며 몸을 그에게로 기울였다.
“감독님 저랑 취향 되게 잘 맞으실 것 같아요.”
임현서와 이수지가 비로소 작가와 감독으로 점지어진 순간이었다.
그때 래원의 머릿속에 이미지 하나가 스쳤다.
‘그래, 이수지! 생각났다!’
래원이 회귀하기 바로 전,
이제 막 신예로 떠오르던 작가였다.
래원이 SBC에 사표를 쓰던 날.
다른 PD들이 그녀의 대본을 두고 왈가왈부하던 대화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 이수지? 얘는 기본 필력은 되는데 자기한테 맞는 옷을 모르네. 로맨스는 영 아닌 거 같은데⋯.
– 그러니깐. 왜 계속 로맨스를 쓰나 몰라? 자기한테 맞는 장르를 아직 못 찾았고만.
그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이수지는 그때도 부단히 로맨스 이외의 장르를 써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때는 자기한테 맞는 감독을 못 찾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래원은 임현서와 이수지의 회의를 지켜보며 저절로 미소를 띠었다.
“도 감독님.”
불현듯 차여름이 래원에게 작게 입 모양으로 끔벅이더니,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이제 우리 할 일은 다 했으니 빠져주자는 뜻이었다.
그렇게 래원과 차여름은 소개팅 주선자가 된 것 마냥, 두 사람을 남겨두고 작업실을 나섰다.
“뭐 드실래요?”
“따뜻한 거 먹을까요? 여기 근처에 뭐가 맛있어요?”
“따뜻한 거⋯ 샤브샤브 어떠세요?”
“좋죠.”
작업실 오피스텔에 있는 샤브샤브 음식점.
둘은 가장자리 조용한 자리에 자리 잡았다.
“촬영 잘 끝나셨다고 들었어요. 편집 때문에 아직 바쁘시죠?”
“네, 그래도 B팀, C팀 연출들이랑 손발이 잘 맞아서 수월하게 되고 있어요. 좋은 놈들 만나서 다행이죠.”
“지혜영 감독님이랑 유찬 감독님! 맞죠?”
“네.”
“어쩜⋯. 세 분 SBC 드라마국 동기 아니세요?”
“맞아요, 하하하.”
“세 분 너무 보기 좋아요! 동기끼리 서로 경쟁하고 사이 틀어진 경우가 더 많은데⋯. 작가들 사이에서도 세 감독님 미담이 자자하다니까요.”
“제가 동기 복이 있죠. 찬이랑 혜영이가 워낙 성격이 괜찮고, 능력도 되는 애들이라 그래요. 특별히 쳐지는 사람이 없거든요.”
“에이, 래원 감독님이 맏형으로 중심을 잘 잡아주셔서 그렇겠죠. 자기 혼자 잘나가고 입 닦는 게 아니라, 동생들 잘 끌어준다고 소문 다 났거든요!”
차여름의 말에 래원은 멋쩍게 웃었고,
“이번에 임현서 피디님 소개해주신 것도 그렇고, 감독님은 참 좋은 분 같아요. 좋은 감독 이전에 좋은 사람이요.”
“어우, 비행기 그만 태우세요. 떨어지겠어요, 하하하.”
계속된 칭찬을 농담으로 받아넘기는 래원이었다.
그때,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래원과 차여름의 휴대폰이 짧게, 수차례 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휴대폰 단톡방에서 뭔가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감독님, 디소스 플레이 한국 서비스 발표 기사가 떴네요!”
그랬다.
디소스 플레이의 오피셜 기사와 함께,
독점 드라마 라인업 1번인 래원의 도 연관 기사 및 검색어로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었다.
“지금 완전 난리인데요? 각종 커뮤니티 반응도 장난 아니에요! 이것 좀 보세요!”
차여름은 래원보다 더 흥분해서,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래원에게 들이밀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242화 – 리디북스
– 나는 디소스 플레이도 기대되지만 도래원 신작 미친 듯이 궁금함!
ㄴ 야너두? 이 얼마만의 드라마 신작이냐ㄷㄷ
ㄴ ‘빙마에’ 민세라 피아노 대역 최소화로 직접 친다며. 완전 기대중!
ㄴㄴ 민세라 예중인가 예고 입시도 준비했었다며
ㄴ 클덕이라 솔직히 웬만한 클래식 드라마에는 만족 못 하는데 ‘빙마에’는 다를 듯ㅋ
ㄴㄴ ㅇㄱㄹㅇ 도래원 디테일 장난 아닌 거랑 고증 잘하는 거 생각하면 겁나 잘 뽑힐 거 같음ㅋㅋ
차여름이 내민 휴대폰 화면 속에는 드라마 커뮤니티의 생생한 반응이 드러나 있었다.
“도 감독님 기분 좋으시겠어요?”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다는 것.
내심 부담도 되었지만 이 일을 하는 이상 숙명 같은 것이니 이쯤 되면 즐기는 게 맞았다.
래원은 뉴스탭 상위에 랭크된 뉴스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같은 시각,
이러한 세간의 반응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가 있었으니
“하, 씨⋯. 내 드라마랑 왜 하필 시기가 겹쳐가지고는⋯. 끝까지 악연이네, 악연이야!”
바로 하인혁이었다.
래원을 엿먹이려다가 SBC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하고는, 울며 겨자 먹기로 프리랜서 전향을 한 이래로 계속 소소하게 드라마를 연출해온 그였다.
TBN 금토 16부작
이번 드라마는 그중에서도 하인혁 나름대로 사활을 걸고 만들고 있는 드라마였다.
카이스트 공돌이 출신인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 할 수 있는 소재인 데다가, 임상순 작가의 대본이었으니까.
임상순은 하인혁이 SBC를 나온 후 만났던 작가 중에서 가장 이름값이 있는 작가였다.
때문에 하인혁답지 않게 그에게 쩔쩔매고 비위를 맞춰가며 드라마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만큼 성공에 대한 열망도 절실해졌더랬다.
“이번 드라마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잘 돼야 하는데, 하필 도래원이랑⋯.”
하인혁의 신작은 공중파, 도래원의 신작은 OTT라서 얼핏 보기에는 경쟁작은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나 그랬다.
직접적인 시청자 파이를 공유하지는 않으나,
공중파 드라마 vs. OTT 드라마
같은 식의 매체 경쟁이나 플랫폼 경쟁과 두 드라마의 경쟁이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요새는 시청률 경쟁만큼 중요한 게, 작품성이랑 화제성 경쟁인데⋯.”
솔직히 하인혁은 자신이 없었다.
이미 래원에게 패배한 전례가 많았기에.
그렇다고 예전처럼 자신이 손을 써서 훼방을 놓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과거 SBC 드라마국 선후배 사이였을 때보다, 지금의 하인혁은 추락했으며 반대로 도래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상승하는 중이었으니까.
“하아⋯. 씨발.”
하인혁은 무력감을 느꼈다.
불보듯 뻔하게 출혈이 예상되는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없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이나 욕지거리를 보태는 것밖에는.
* * *
는 세간의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으며 후반 작업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드라마 홍보의 신호탄과도 같은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래원을 비롯해서 두 주연 배우 함현우와 민세라 그리고 잭슨 브라더스의 한국 지사 본부장이 취재진을 맞이했다.
티저 영상 공개와 포토 타임을 끝낸 후 마련된 질의응답 시간.
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띤 취재 열기를 보여주었다.
– 민세라 배우님이 대역을 최소화한 채로 피아노 연주 씬 대다수를 직접 소화하셨다고요. 연습량이 궁금하고, 어려운 점이 많으셨을 텐데 촬영 비하인드도 공유 부탁드립니다.
– 도래원 감독님, 헐리우드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관심이 뜨겁습니다. 공개된 ‘조니 덴’ 말고도 또 다른 카메오를 오늘 공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 함현우 배우님은 도래원 감독님과 여러 작품을 하셨는데, 두 분의 호흡이나 이번 작품에 대한 배우님의 소회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 잭슨 브라더스 본부장님께 질의 드립니다. 영화 사업만 하시던 곳에서 드라마 사업부를 창설하시고, 첫 타자를 한국 드라마로 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질문은 래원과, 두 배우, 잭슨 브로 본부장 모두에게 골고루 이어졌다.
네 사람은 마이크를 쥐고 진지하게 임했다.
제작 발표회 후반으로 갈수록 래원을 향한 질의가 쏟아졌다.
– 도래원 감독님은 영화가 잘 되셔서 영화 제의도 많이 받으신 거로 아는데, 왜 다시 드라마로 돌아오셨는지⋯ 그중에서도 왜 ‘빙의 마에스트로’ 같은 클래식 음악물을 택하셨는지요?
– 티저 영상이 먼저 공개됐을 때 일본의 언론들이 자기네 드라마 ‘칸타빌레’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내놓았는데 이에 대한 도래원 감독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예상대로 민감한 질문도 있었다.
잘 될 것 같은 드라마일수록 일부러 태클을 거는 쭉정이들이 몰려들기 마련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래원이었다.
“주인공이 지휘자라는 설정. 협소한 오케스트라를 키워나가고, 나아가 더 큰 무대에서 지휘하게 된다는 성장 스토리라는 설정. 이 2가지 외에 비슷한 점은 없습니다. 흔치 않은 클래식 음악물이라서 기시감을 느끼실 수는 있지만,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더는 질문이 없는 분위기에, 제작 발표회를 마무리하려 하자,
– 도래원 감독님에게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손을 번쩍 들어 마이크를 쥔 이는,
천하 일보 ‘조민’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