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41
“연기가 아니니까요.”
“⋯ 네?”
“연기 아니었다고요. 세라 씨도 연기 아니었잖아요.”
민세라는 잠시 입술을 꾹 깨물며 눈을 깜박이더니,
“네, 맞아요. 연기 아니었어요. 저는⋯ 저는 감독님이랑⋯ 래원 감독님이랑⋯ 그냥 배우, 감독 사이로 남는 건⋯.”
“그만.”
래원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짧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 다음 말은 내가 하게 해줘요, 세라 씨. 오늘 말고 다음에. 우리 이번 비엔나 촬영 잘 마무리하고요.”
마침표와 쉼표 사이를 고민하던 래원은 쉼표를 택했다.
* * *
비엔나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오늘이 드디어 마지막 촬영이네요. 파이팅해서 찍어봅시다!”
유독 들뜬 촬영장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 비엔나로 오는 길에 임현서가 안정원 앞에서 예상했던 것과 달리, 래원은 선택과 집중을 확실히 하여 촬영 일정을 앞당겼다.
“도 감독, 어쩌면 이렇게 일찍 끝냈어요? 껄껄껄. 믿기지가 않네⋯. 난 당연히 미뤄질 줄 알았는데⋯.”
로렌 멘데스 촬영감독도 임현서와 같은 생각을 했었나보다.
한층 익숙해진 한국어로 묻자,
래원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는 성장형 감독이거든요. 이 연말에, 이 인원 전부 데리고 촬영 딜레이했다가는 큰일 나죠. 블록버스터 대작도 아니면서, 뒤에서 무슨 욕을 먹으려고⋯.”
“우리가 블록버스터 대작에 뒤질 건 없죠, 선배.”
농담을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고 발끈하는 임현서였다.
“인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제 오늘의 마지막 장면이자, 비엔나 에피소드의 마지막 씬이자, 드라마 전체의 마지막 촬영을 앞두었다.
이를 위해 비엔나로 온 조니 덴을 비롯하여, 주요 조연들, 그리고 K필하모닉의 연주를 보러온 유럽인들이라는 설정의 단역들이 객석을 채웠고,
함현우와 민세라 그리고 보조 출연 연주자들이 빈 국립가극장 무대를 메우고 있었다.
“리허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대로만 해주시면 됩니다.”
래원의 말에 객석과 무대 그리고 스텝들 사이에 짐짓 비장함이 감돌았다.
“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
.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첫 부분은 다소 음울한 분위기의 모데라토였다.
피아노의 선율이 점차 격정적으로 펼쳐지더니 서정적인 무드로 접어든다.
여러 대의 모니터를 동시에 예의주시하던 래원은 촬영장이 아니라 실제 클래식 공연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이 장면도 수월하게 끝나겠네.’
전 출연진이 엄청난 몰입력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무대는 실제 무대를 방불케 하고, 객석도 집중력이 굉장한데?’
이내,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점차 고조되다가 마침내 끝맺음으로 다가갔고,
.
.
“컷! 1악장 무대 풀샷은 이걸로 오케이 하겠습니다. 객석 클로즈업 샷도 오케이 입니다!”
촬영은 잠깐의 휴식 후 다시 이어졌다.
2악장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오케스트라의 서정적인 반주 속에서 피아노의 선율이 빛나고, 이어서 플룻 그리고 클라리넷이 치고 나온다.
중간중간 오케스트라 격정적으로 휘몰아치지만, 피아노가 치유하듯 아름답게 정리해준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그의 정신과 주치의였던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한 곡이었다.
그는 구원자였다.
극심한 슬럼프의 구덩이에서 라흐마니노프를 꺼내주고 구해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후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율아에게도 나에게도 이 작품이 구원이길⋯. 도래원 감독님이 나의 구원자인 것처럼⋯.’
[율아]가 되어 열 손가락으로 피아노 위를 날아다니는 와중에, 민세라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어느덧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 스케르찬도로 빠르고 화려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모니터 속 보조 출연 연주자들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촬영 초반부에 이기적으로 굴며 삐걱대던 그들이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팀원이 되어 있었다.
이 드라마가 자기 필모그래피의 역작이라도 되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하며 연주하고 있었으니까.
한편,
촬영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것을 지켜보던 안정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내가 기억하는 보다 앞서가고 있어. 이 기세라면 훨씬 더 대작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이 같은 속내를 누구에게라도 들킬세라 표정을 감추었다.
그리고,
객석 꼭대기에서 조용히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이가 또 있었으니,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의 부흥에 일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이 작품 지원을 마음먹은 거지만⋯.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바로 나나 크루거였다.
‘이런 드라마라면 정말로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도래원 감독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공연이자 촬영을 감상하고 있는 그녀의 눈이 오묘하고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공중을 휘젓던 [선오]의 지휘봉이 멈춰서며 K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종지부를 찍었다.
잠깐의 침묵 후,
뜨거운 박수소리가 음향을 메워주었고,
“브라보!!!”
객석에서 터져 나온 함성.
이는 제일 먼저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한 조니 덴의 것이었다.
결말에 와서야 [선오]의 능력을 완전히 인정하며, K필하모닉을 넘어서 그의 최대 후원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조니 덴의 액션.
“컷! 오케이! (조니 덴, 기립 박수만 클로즈업으로 한 번 더 갈게요.)”
이제 조니 덴과 래원의 호흡은 척척이었다.
“(감독님, 2번 더 가시죠. 2가지 버전으로 해볼 테니까 편집하시면서 더 재밌는 걸로 써 주세요.)”
“(좋습니다! 바로 갈게요. 액션!)”
한국을 너머 세계에서 인정받는 마에스트로로 발돋움한 [선오]의 피날레 공연.
이것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촬영도 정말 끝을 찍고 있었다.
“컷! 오케이! 이제 정말 끝입니다. 다 찍었어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래원의 마지막 오케이 사인에,
“수고하셨습니다!”
“와!! 진짜 끝이네요!”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텝들과 배우들이 탄성을 지르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때,
객석에서 메가폰을 통해 나온 목소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은 당기지 않고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강채령이었다.
“우와아. 대표님!”
“오오오!!!”
“와아아악! 빙의 마에스트로 대박 나자!”
“정말 최고예요, 대표님!”
스텝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로,
이제는 ‘대표님’ 호칭이 꼭 맞는 옷이 되어버린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일정 없으신 분들은 비엔나에서 연말을 더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는 래원에게도 선물 같은 소식이었다.
‘잘 됐네! 갈 데가 있었는데.’
래원은 바로 노트북을 열고 ‘프라터 공원의 대관람차’를 검색했다.
그리고는 예약 할 수 있는 번호를 찾아내어 휴대폰에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프라터 공원이죠? 대관람차 프라이빗 코스로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이는 햇수로 4년 전이자 3년 전 생일을 이곳 비엔나에서 보내게 되었을 때, 래미가 래원에게 해주었던 이벤트였다.
그때 생각했더랬다.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시 오고 싶다고, 그 사람과 단둘이 다시 대관람차의 야경을 보며 와인 한잔하고 싶다고.
그리고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았다.
이제 래원이 마침표를 찍을 차례였으니까.
그간의 애매한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그다음 문장을 향해 나아갈 그런 마침표 말이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241화 – 리디북스
* * *
그리고 며칠 후 저녁,
래원은 민세라를 데리고 프라터 공원에 왔다.
“와아아⋯.”
대관람차 안에 들어선 민세라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직원이 래원과 민세라를 안내한 곳은 여느 평범한 대관람차가 아니었다.
한 칸 전체를 프라이빗 레스토랑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다.
대관람차 한가운데에 원형 테이블과 의자 2개가 세팅되어 있었으며, 한쪽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있었다.
또한 포인세티아 꽃이 군데군데 꾸며져 있었고, 창문에는 리스와 전구가 장식되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래원과 민세라가 자리하자 직원 하나가 따라 들어와 에피타이저와 와인을 세팅해주었고,
곧 두 사람의 와인 잔이 맞부딪혔다.
쨍——
“수고하셨어요, 감독님.”
“세라 씨도요.”
아직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감독과 배우였다.
이윽고, 직원이 코스 요리를 담은 카트를 안에 들여오더니 관람차의 문을 닫았다.
콰앙, 탁——
이제 래원과 민세라를 실은 커다란 관람차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슈우우우웅——
관람차가 위로 올라갈수록, 프라터 공원의 모습과 나아가 비엔나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굽이 흐르는 푸른 도나우강과 그 건너편 시청의 뾰족한 첨탑이 눈에 띄었고,
“어, 저기 빈 국립가극장도 보여요!”
민세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래원도 그녀를 따라 가까이에 섰다.
“저 안에 있을 때는 촬영하느라 바빠서 몰랐는데⋯ 되게 낭만적인 도시네요, 비엔나.”
감탄하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관람차가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메인 요리인 슈니첼 스테이크가 서빙됐다.
래원과 민세라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눈으로는 서로의 얼굴과 그 너머의 비엔나 풍경을 바라보며, 손과 입으로는 슈니첼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다.
두 번째 돌 때는 석양이 물든 비엔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랑 함께여서 즐거웠어요, 이번 작품도.”
민세라가 두 번째 와인 잔을 내밀었고, 두 사람은 다시 허공에 잔을 맞부딪혔다.
금방 와인 잔을 거의 다 비운 래원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도 세라 씨랑 함께여서 더 좋았어요. 근데⋯.”
“네?”
“나는 세라 씨한테 언제까지 감독님이에요?”
“아⋯.”
“나야말로 우리가 그냥 배우, 감독 사이로 남는 건 싫은데⋯. 언제까지 감독님이라고만 부를 거예요?”
“그..그럼 뭐라고 불러요⋯?”
“편하고 좋은 호칭 많잖아요. ‘래원 씨’, 아니면 ‘오빠’, 그것도 아니면⋯. ‘자기’ 같은 것도 있고요.”
“네에? 푸하하.”
민세라는 래원이 보여주고 있는 의외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싫지 않았으니까. 아니, 더 솔직히는 남자답게 느껴져서 굉장히 좋았다.
래원은 개의치 않고 저돌적인 스탠스를 이어갔다. 지금은 그래야 할 타이밍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나 골라봐요. 세라 씨 마음에 드는 거로.”
“으음⋯.”
검지와 엄지로 잡은 와인 잔을 굴리며 고민하는 그녀였다.
반은 장난스러움, 반은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미소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지금 대관람차가 3바퀴째 돌고 있거든요? 이거 다 돌고, 4바퀴 돌기 시작할 때부터는 ‘감독님’ 금지예요.”
“아아, 뭐예요! 너무 촉박하잖아요!”
“얼마 안 남았어요. 단둘이 있을 때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거 금지령 발효 시각.”
그렇게 대관람차가 4번째로 다시 시작점에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민세라가 소리쳤다.
“아악! 정했어요. 오빠! 오빠가 좋겠네요, 래원 오빠!”
“탁월한 선택이에요. 듣기 좋네요.”
래원과 민세라가 서로의 눈을 지그시 보며 웃었다.
“말도 얼른 놓고 싶지만⋯. 천천히 하죠. 오늘 너무 진도를 빼버리면, 서울 가서 할 게 없잖아요.”
“네! 진도 느긋하게 빼주세요. 저도 천천히 확실하게 나아가는 게 좋아요, 래원 오빠.”
민세라를 만난 이래로 가장 귀여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몇 바퀴쯤 돌았을까.
어느덧 대관람차 차창 밖으로 땅거미가 내려앉은 야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최고네요⋯.”
“너무 예뻐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차창으로 이끌리듯 다가갔다.
래원은 민세라의 곁으로 꼭 붙어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제부터 내 인생의 1순위는 세라 씨예요.”
“거짓말. 드라마보다 제가 우위라고요?”
민세라가 시선을 래원에게로 휙 돌리더니, 동그란 눈으로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솔직하게 실토할 수밖에 없는 래원이었다.
“⋯ 아, 드라마는⋯. 드라마는 0순위요.”
솔직하게 내뱉어버리고는 이내 그녀가 토라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풋. 맞죠. 이래야 래원 오빠죠. 제가 드라마를 어떻게 이기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오히려 신빙성 있고, 내가 1순위라는 게 진심인 거 같고 좋네요.”
민세라는 더욱더 활짝 웃었다.
그 모습에 래원도 마음이 편해졌다.
“어쨌든 드라마 빼면 내가 최고라는 거니까.”
쪽—
민세라가 기습적으로 래원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어느새 웃음기를 지운 래원과 민세라는 서로의 입술로 시선을 주었다.
비엔나의 고풍스러운 야경을 배경 삼아, 서로의 얼굴과 입술을 포갠 두 사람.
둘의 머릿속에서 팡팡- 황홀한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