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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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세계 (2)
* * *
“대박!! 래원이 형, 이거 봐! 내가 이슈 될 거랬잖아. 완전 난리 났어. 내 말이 맞지?”
조연출 유찬이 호들갑 떨면서 보여준 휴대폰 화면 속.
드라마 8화가 방영되자마자, 포털 사이트가 들썩이는 모습이 보였다.
1위. 햇반 싸대기
2위. 재벌의 세계 8화
3위. JC푸드 햇반
4위. 강인
5위. 구민준
6위. 맷돌 손잡이
7위. 어이가 없네
8위. 영화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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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래원은 이 소식을 촬영장에서 접하고 있었다.
순간, 오늘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8화의 햇반 PPL은 래원과 옥영임 작가의 합작이었기 때문이다.
래원이 먼저 아이디어를 냈고, 옥영임 작가가 그것을 다듬어 대본화했으며, 래원이 다른 스텝 및 배우들과 함께 영상으로 찍어서 완성했다.
“벌써 짤까지 만들어졌어!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빠르다 빨라!”
유찬이 킥킥대면서 또다시 래원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가,
“아, 이건 우리만 볼 게 아니라 단톡방에 올려야겠다.”
그냥 바로 드라마 팀의 단톡방에 공유했다.
8화의 ‘햇반 싸대기’ 장면만 잘라놓은 클립 짤 링크였다.
과거에 옥영임 작가의 전작에서 이슈가 되었던 ‘김치 싸대기’ 자료도 함께 회자되는 중이었다.
[ 레전드 짤: 김치 싸대기 VS 햇반 싸대기 ]ㄴ 111 김치가 레전설이지ㅋ 냄새 어쩔?
ㄴ 22222 한국인이라면 밥심ㅇㅇ
ㄴ 1번은 개차갑고 2번은 개뜨겁지ㅋ
ㄴ 이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급인데?
ㄴ 한 뺨은 햇반 싸대기, 다른 뺨은 김치 싸대기 맞으면 한 끼 뚝딱 쌉가능ㅋㅋㅋ
ㄴ 저 배우 불쌍ㅋㅋ 볼 새빨간 거 봐ㅋㅋ 저온 화상 입은 거 아님?
유찬이 단톡방에 띄운 이 링크에서 실시간 반응을 확인한 스텝들과 배우들은, 촬영장에서의 비하인드를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품팀 막냉이] 저거저거ㅋㅋ 햇반 넘 뜨거워서 다 식혀서 촬영한 거자나욧ㅋㅋ 볼이 새빨간 건 분장팀의 매직ㅋㅋ [구민준] 그래도 햇반 싸대기가 배우들 입장에서는 더 수월했을 거 같아요ㅎㅎ 김치 싸대기 배우분들 존경합니다ㅎㅎ햇반 싸대기의 화제성은 며칠간 식을 줄 몰랐다.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유튜브, 틱톡, 인스타 등의 SNS에 이를 패러디한 콘텐츠를 연이어 올렸으며, 실제로 햇반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이 파급 효과로 JC푸드의 주가가 올랐고,
회사 측에서 답례로 햇반을 비롯한 자사의 각종 레토르트 식품을 박스째로 보내왔다.
촬영장과 SBC 드라마국 사무실은 물론, 옥영임 작가의 작업실과 래원의 집에도 박스가 쌓였다.
“어, 래미야.”
– 오빠, 이게 다 뭐야? 집에 햇반이랑 컵밥이랑 만두랑 이것저것 엄청 많이 왔어!
래원은 이 소식을 촬영장에서 래미의 전화로 전해 들었다.
“먹고 싶은 것만 꺼내 먹고. 그대로 냅둬. 박스도 오빠가 치울게.”
– 햇반 싸대기 그거 오빠가 찍어서 이거 받은 거야?
“어어.”
– 내일 이거 학교 가져가도 돼? 애들한테 자랑하게. 울반 애들 전부 ‘재벌의 세계’ 본방사수 하잖아. 내가 홍보 어어엄청 했어!
“하하하. 그럼 많이 챙겨가서 친구들 나눠줘.”
– 웅! 오빤 오늘도 늦나?
“어. 한 씬 남았어. 얼른 찍고 갈게. 기다리지 말고 빨리 자.”
– 웅! 알았어. 도 피디 파이팅!
난이도가 쉬운 게임보다 어려운 게임을 깼을 때 쾌감이 크다.
햇반 PPL 역시 좌초될 뻔하다가 어렵게 해냈던 것이라 래원은 무척이나 보람을 느꼈다.
* * *
“네에?!!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죠, 부장님!”
래원은 황태수의 연락을 받고 간만에 SBC 구내식당에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황태수의 말에 래원은 기함을 했다.
입에서 사방으로 밥풀 튀길 뻔한 것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다 래원이 네 잘못이야. 네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걸 어쩌냐. 옥 작가 고집 알지?”
“그래도 부장님이 CP 권한으로 막으셨어야죠. 전 못 해요. 제가 그러면 임장호 선배를 어떻게 봐요.”
“옥영임이가 5화 강인 씬부터 햇반 싸대기까지 너랑 호흡이 더 잘 맞는다고 중요한 장면들 B팀에 몰아달라고 밤마다 전화해서 어찌나 성화던지···.”
정말 그랬는지 황태수의 눈 밑에는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옥 작가님이 시킨다고 그걸 전부 제가 찍을 순 없어요. 메인 연출이 따로 있는데, 월권할 순 없잖아요. 일단 제가 임 선배랑 다시 이야기해 볼게요.”
“그래. 잘 말해봐. 장호랑 옥 작가 취향이 어차피 극과 극이니까, 옥 작가가 너한테 넘겨달라고 사정한 중요 장면들, 어쩌면 장호도 이미 찍기 싫을 수도 있어.”
지이이이잉—
래원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래원은 먹던 밥을 한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엇, 부장님 저 먼저 일어날게요. “
“그래라.”
지혜영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래원은 오늘 그녀와의 선약이 있었다.
어젯밤, 지혜영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만나서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고 상담 요청을 해온 것이다.
래원은 지혜영의 이 같은 연락이 업무와 관련된 일 때문일 거란 직감이 들었다.
더 정확히는 하인혁네 송년 특집 4부작 팀에서 벌어진 일과 관련됐을 거라 짐작했다.
“어, 나 지금 부장님이랑 미팅 끝났어. 카페로 올라갈게.”
래원은 지혜영에게서 온 전화를 끊고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 * *
SBC 1층 로비의 카페.
래원이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지혜영이 손을 흔들었다.
“오빠 ‘아아’ 마시지?”
“어. 고맙다. 잘 마실게.”
“내가 보자고 했으니까 내가 사야지.”
목이 말랐던 래원은 앉자마자, 그녀가 미리 시켜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후루룩 빨았다.
래원이 잠시 숨을 돌릴 동안 지혜영은 말없이 래원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 보였다.
“바쁜 사람 불렀으니까 바로 본론부터 말할게.”
지혜영이 먼저 입을 열었고
래원은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녀가 짧게 숨을 고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우리 팀에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혜영이 털어놓은 전후 사정의 요지는 이러했다.
지혜영은 현재, 하인혁이 메인 연출을 맡은 송년 특집 4부작의 조연출이었다.
프리 프러덕션때 까지만 해도 하인혁은 젠틀한 선배였다.
밥이나 차를 사준다며 몇 번 사적인 연락이 올 정도로 잘 챙겨줬다.
하지만 지혜영은 자느라 연락을 못 받거나 피곤해서 약속을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일과 관련된 연락은 대부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어느날 하인혁이 갑자기 지혜영에게 버럭 화를 냈고, 그녀를 향한 그의 태도가 확 돌변했다.
촬영이 본격적으로 들어가자 더욱 심해졌다.
촬영장에서 감독님들과 배우들 앞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한다거나, 은근히 따돌리며 은따를 시키기도 했다.
“나한테 벽치지 말라고 소리치더니, 그 후부터 이런다? 처음에는 내 착각인가 싶었는데, 아냐. 인혁 선배 태도가 확 변한 건 확실히 그때부터야.”
지혜영의 말 중간중간 울컥거림이 섞이기 시작했다.
“오빠도 알지만 내가 친해지기 전까지는 나도 모르게 벽치는 게 있잖아.”
“벽치는 거까진 아니야. 혜영이 너 자신을 탓하거나 고쳐야 할 만큼의 단점은 아니라구.”
“아냐. 그렇게 말 안 해줘도 돼. 나도 날 알아. 어릴 때부터 새침하다거다 도도하단 말 많이 들어서 나도 알긴 아는데···.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나도 잘 모르겠어.”
여기까지 말을 한 지혜영의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래원은 상황 파악이 됐다.
‘하인혁 그 자식, 혜영이를 좋아하는구나. 근데 자기 맘대로 안 되니까 괴롭히는 거고. 쯧쯧, 못난 새끼. 어쩜 레퍼토리가 매번 이렇게 똑같은지···.’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일은 망쳐버리고,
남자든 여자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람한테는 해코지 하는 것.
하인혁의 오랜 버릇이었다.
래원 역시 여러 번 당했더랬다.
“혜영아, 네 잘못은 없어. 하인혁 선배 성질머리가 원래 그렇대. 정말이야. 유찬이한테도 물어봐.”
“······.”
“그래서 저번에 네가, 하인혁 선배가 임장호 선배랑 천지 차이로 젠틀하다 그랬을 때, 내가 더 지내보고 판단해보라고 했었잖아. 기억해?”
“응. 기억나.”
“그 선배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땐 귀여운 여자 후배랑 친해지고 싶어서 잘 해줬던 거고, 이제야 본색이 드러난 거라구. 네 잘못 절대 아니야.”
“그럼···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나 이 팀에서 너무 힘들어 오빠.”
지혜영이 울먹였다.
그녀답지 않은 약한 모습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힘든 내색은 안 하는 아이였는데···. 아, 설마! 과거에 혜영이가 돌연 사표를 낸 게 하인혁 때문이었나? 괴롭힘을 못 견뎌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래원의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지난 삶에서 하인혁 때문에 인생 망친 게 자신 한 명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더 화가 났다.
‘하인혁 이 개새끼···.’
지혜영의 양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녀가 우는 모습은 지난 생과 이번까지 통틀어 처음이다.
“혜영아, 일단 힘들겠지만 이번 프러덕션만 잘 버텨보자. 일주일 남았잖아?”
“응···.”
“네 잘못 아니니까, 절대 네 탓 하지 말고.”
지혜영의 훌쩍거림이 더 심해졌다.
래원은 카페 카운터로 가서 티슈를 챙겨와 그녀의 손에 쥐여줬다.
“딱 일주일만! 드라마 끝날 때까지만 하인혁이 해달라는 거, 시키는 거 그냥 고분고분하게 들어줘. 잘 웃어주고. 그러면 좀 누그러들 거야. 아, 물론 너한테 해가 되는 거면 절대 참지 말고 나한테 말하고!”
지혜영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혁의 더러운 성질머리, 그리고 지혜영이 이대로 퇴사하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걸 생각하면, 이것이 지금의 최선이었다.
더 큰 도약을 위해 지금 잠깐 무릎을 굽히고 몸을 웅크리는 것.
‘지혜영이 딱 일주일만 잘 버텨주면, 그다음은 내가 나서서 더 큰 도약을 만들어줄 수 있을 테니까.’
“다음부터는 네가 하인혁이랑 얼굴 볼 일 없게 나도 손을 써 볼게.”
“··· 오빠가? 오빠가 무슨 수로?”
“방법이 있어. 내 동기들이 눈물 콧물 빼는 건 내가 절대 못 참지.”
오기나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진심이었고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드라마국의 일반 PD급 평사원 중에, SBC 사장으로 이어지는 금 동아줄 라인을 타고 있는 건 도래원 뿐이었으니까.
래원은 눈썹까지 찡그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 얼굴을 빤히 보고 있던 지혜영이 순간 빵 터졌다.
“푸하하하. 오빠 지금 표정 완전 웃겨.”
이에 래원도 인상을 풀고 덩달아 미소지었다.
역시 지혜영은 우는 것보다 웃는 게 잘 어울렸다.
“그래두 오빠한테 털어놨더니 속이 한결 후련해졌어. 오빠 말대로 잘 버텨볼게.”
“그래. 멘탈 관리, 몸 관리 잘 하구.”
“오빤 촬영 잘 돼? ‘재벌의 세계’ 시청률 초반에만 별로고 요샌 잘 나오더라?”
“어. 드라마 내용은 살벌한데, 촬영장 분위기는 엄청 좋아.”
“좋겠다. 유찬이도 즐거워 보이던데···. 나두 다음에는 오빠랑 같은 현장에서 해보고 싶어.”
“언젠간 우리도 붙을 날이 오겠지. 그니깐 그때까지 잘 버텨!”
“응! 그렇게 말해주니깐 버틸 힘이 생기네!
배시시 웃는 지혜영.
“이제 드라마국 올라가 봐야겠다. 오빤 촬영장?”
“아니, 작가님 작업실. 시간이 약간 떠서 여기 있다가 갈게.”
“그럼 나 먼저 가 볼게.”
래원은 지혜영이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방금 대화는 래원에게도 깨달음을 주었다.
드라마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끼리 하는 일이다.
‘지난 삶처럼 내 밥그릇만 안 뺏기면 되지. 내가 굳이 하인혁처럼 남한테 상처 주거나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을 필요는 없잖아?’
래원은 과거대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잘해준 사람들에게 배신당하지 않고 뿌린 대로 거둘 자신이 있었고,
이번에는 시청률과 작품성 둘 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과거의 하인혁보다, 과거의 그 누구보다 더 잘 해낼 확신 말이다.
래원은 이 같은 확신으로 전화를 걸었다.
“임장호 선배, 오늘 저녁에 촬영 끝나고 시간 되시죠? 제가 촬영장 근처로 갈게요. 술 한잔.. 어떠세요? 선배랑 저랑 단둘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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