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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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인간이다 (1)
* * *
“여어, 도래원! 이쪽!”
오늘 A팀의 촬영장이었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근처 골목길의 어느 포장마차.
래원이 문을 젖히고 들어가자
구석에서 임장호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 우동 한 그릇 더 주세요.”
래원이 임장호의 앞에 앉았지만, 그는 어쩐 일인지 래원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술잔과 우동 그릇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래원이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장호 선배, 저는 선배의 연출부예요.”
“···?”
“옥영임 작가님을 서포트하는 게 아니라, 선배를 서포트하는 B팀 감독이라구요.”
래원의 말뜻을 알아차린 임장호는 피식 웃었다.
옥영임이 래원에게 아무리 사탕발림 소리를 한들, 래원은 담당 PD인 임장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임장호는 래원의 술잔을 가득 채워줬다.
이윽고 말 대신 술잔을 부딪치는 두 사람.
‘래원이 이 새끼···. 이 국장님 말처럼 영악하게 나쁜 놈은 아닌 거 같다.’
원래 같았으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고, 래원의 말을 꼬아 듣지도 않았을 거다.
그저 허허실실 웃었을 임장호다.
허나 지난번 이 국장의 말을 떠올리고는, 이제 래원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 수 없었다.
“고맙다.”
래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로 그저 짧은 인사를 건네는 임장호.
“아무리 우리가 시청률에 웃고 우는 직업이라지만, 숫자 놀음에 휘둘리는 게 자존심 상하긴 하다.”
“맞아요. 시청률이 우리 일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죠.”
‘시청률’ 이라는 세 글자가 그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사실 이 대화의 뒤에는 생략된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대본 넘길 때 중요한 씬들을 따로 표시해서 넘길 테니, 해당 장면의 촬영은 전부 B팀으로 몰아달라던 옥 작가.
그녀가 황태수 CP에게 이 같은 고집을 부린 것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분당 시청률을 근거 자료로 들이밀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던 것이다.
보조작가를 시켜서, A팀이 찍은 장면과 B팀의 장면의 실시간 시청률을 각각 모은 후, 평균을 계산한 자료였다.
임장호의 A팀의 분당 시청률은 평균 12.3%이었고, 래원의 B팀은 15.7%였다.
이것을 래원과 임장호는 둘 다 황태수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지금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동 나왔습니다.”
래원의 앞에도 우동이 놓였다.
후루루룩—
우동 면을 입안 가득 우물거리며 래원이 물었다.
“밤 야외 씬들은 계속 선배가 하실 거죠?”
“어. 내가 찍고 싶다.”
“옥 작가님이 목매는 강인 씬들은요?”
“그건, 밤 씬만 빼고 네가 다 찍어.”
“그럴게요. 근데···.”
래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임장호를 살폈다.
“근데 선배는 왜 이렇게 밤 씬에 집착해요? 물어봐도 돼요?”
“··· 밤에는, 나한테 집중할 수 있어서.”
래원은 그의 그 말뜻을 아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아···.”
“결국은 내가 믿을 수 있어야 하잖아, 내 결과물을. 현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 아니면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까···. 전부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렇죠.”
“그러려면 내가 이 작품에서 뭘 하고 싶은지, 내 안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를 스스로 명확히 파악해야 해. 밤은 조용해서 집중이 잘 돼. 그래서 현장에 다른 사람들한테 덜 휘둘리고, 내 안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
래원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도 현재도 그저 결벽증에 걸린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선배라고만 생각했다.
지난 삶에서 임장호의 선배의 조연출로 있을 때, 그 성미 때문에 귀찮고 피곤한 일을 여럿 겪었기 때문이다.
“너도 눈치챘겠지만, 내가 좀 예민해. 소리나 빛이나 냄새··· 그런 자극들에 말이지. 근데 밤은 밖에서 오는 모든 자극들 자체가 약해지니까 집중하기가 좋더라구.”
임장호에게 이런 내막을 들으니 연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 그의 조연출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래원 역시 그의 위치에 서 봤기 때문이다.
드라마 감독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촬영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서로 다른 의견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 와중에 수십 수백 가지를 결정해야 하고, 그 수십 수백 가지의 결과에 대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항상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항상 외로울 수밖에 없다.
예민하고 피곤하고 외로운 직업.
결국 이러한 고충을 알아주는 것은 같은 PD, 같은 감독들끼리 뿐이다.
임장호는 지금 이 순간, 앞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래원만큼은 자신의 고충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이 순간만큼은, 래원에 대한 경계를 풀고 온전히 믿고 싶었던 것 같다.
한편, 래원은 지금 임장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래원의 지난 삶에서는, 임장호의 이 같은 사연과 고민이 보이지 않았었다.
‘굳이 보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시 조연출이었던 래원의 눈에 그저 임장호 선배가 쥐고 있는 메가폰이 멋있어 보였고, 그 모습을 선망했다.
허나 그걸 쥐고 있는 임장호라는 인간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선배, 마지막 잔은 제가 따라드릴게요.”
래원은 남은 소주를 전부 탈탈 털어서 임장호의 잔을 채워주었다.
짠—!
두 개의 술잔이 경쾌하게 부딪쳤고,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잔을 비웠다.
“캬!”
래원의 오랜 신념,
‘드라마는 인간이다.’
드라마 연출자라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탐구를 항상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래원은 오늘 다시 한번 되새겼다.
* * *
해 질 녘의 한강 둔치.
노을이 붉게 물들인 하늘과 강물을 배경 삼아,
드라마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레디, 액션!”
임장호의 날카로운 외침에 카메라가 돌아가고 배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사랑? 야, 그런 건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이 같은 말을 내뱉은 린화의 머릿결이 강바람에 처연하게 흩날린다.
재성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대답한다.
“우리라고 못 할 게 뭐야. 비지니스 말고, 진짜 사랑. 까짓거 우리도 해보자고.”
린화가 자신의 머리에 댄 재성의 손을 탁! 쳐내며 비릿하게 웃는다.
“우린.. 사랑을 하기에 잃을 게 너무 많···.”
갑자기,
린화의 대사를 끊고 들어오는 우렁찬 목소리.
“그마아아아아안!!!!!!”
.
.
불현듯 어디선가 들려온 이 소리에 일순간 촬영이 중단됐다.
현장을 통째로 날려버릴 듯한 기세에 순간 모두가 놀라서 얼음이 된 것이다.
이 엄청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옥영임 작가였다.
그녀가 씩씩대며 촬영장 한가운데로 난입했다.
“그만 찍어! 찍지 마요! 이거 내 대본 아니야! 나 이렇게 안 썼다고요!!”
“자..작가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면 안 돼요!”
조연출 유찬이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말려보지만 역부족이었고,
옥영임은 유찬과 다른 스텝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러면 안 돼? 그럼 자기들은 지금 이래도 되니? 내가 한땀 한땀, 한 글자 한 글자 잠도 못 자고 쓴 대본으로 이렇게 니들 맘대로 찍어도 되는 거냐고!!!”
보다 못한 임장호 감독이 직접 나서며 옥 작가에게 다가왔다.
“옥 작가님!! 지금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임 감독이야말로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황 CP님 통해서 분명히 알아 듣게 전했는데?”
“이 드라마 담당 PD는 황태수 선배나 도래원이 아니라 접니다. 뭘 찍을지 말지는, 제가 결정해요! 그리고 여긴 촬영장입니다. 갑질 그만 하세요.”
“뭐어? 갑질? 갑질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잖아! 여기선 임 감독이 왕이고 신이니 작가는 올 곳이 아니다? 작업실에 처박혀서 대본이나 마저 쓰지, 촬영장엔 왜 왔냐? 작가는 꺼지라 그 말이에요 지금? 어?”
“네. 알아들으셨으면 이만 꺼져주시죠.”
“뭐어?!! 애초에 작가가 여기까지 안 오게 자기가 잘 찍든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작가가 촬영장에를 다 올까!! 나도 대본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그래서 임 감독이랑 안 맞는 장면들, 도 피디네 B팀으로 보낸 거잖아요! 근데 이렇게 버젓이 임 감독이 계속 찍는 건 대체 무슨 경우죠?”
“옥 작가님이야말로 이게 대체 무슨 경우시죠? 하아, 씨, 보자 보자 하니까.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잖아요! 작가님이 현장을 아세요? 방구석 모니터 앞에서 대본만 쓰셨지 촬영 현장에 대해 뭐 하나 제대로 아시는 게 있냐구요!”
“그래! 나도 내 대본으로 대체 어떻게 찍으면 그딴 결과가 나오는지 궁금해서 와본 거예요!! 내가 자기한테 분명 여러 번 말했는데? 내 대본의 톤 앤 매너에 대해서!”
“네에, 아주 잘 알죠! 막장 블랙 코미디!”
“잘 안 다면서 이 따위로 찍는다구요? 블랙 코미디 자신 없으면 내가 시킨 대로 그냥 도 피디한테 넘기지! 자기가 알량한 자존심 지킨다고 이렇게 고집만 안 피웠어도, 나도 여기까지 나와서 시간 낭비 안 하죠!!”
“네에?? 알량한 자존심이요? 지금.. 지금 말 다 하셨어요?!!!”
임장호 감독과 옥영임 작가.
두 사람의 격양된 목소리와 감정이 더는 걷잡을 수 없게 번져갔다.
촬영장 전체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다.
노을 진 한강 변을 배경으로 감독과 작가가 싸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십 명의 배우와 스텝들은 그저 입을 벌린 채 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중 가까이 서 있던 스텝들은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더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막아섰다.
유찬은 눈치를 보다가 곧장 래원에게 카톡을 보냈다.
[찬] 형, A팀 현장 지금 난리 났음. 옥 작가님 등판! 싹 다 엎어놓으심.* * *
경기도 평택의 세트장
지이이이이잉—
촬영 중에 잠깐 쉬고 있던 래원의 휴대폰이 불 난 듯 계속 울려댔다.
이번에는 꼭 받아야만 하는 전화였다.
[황태수 선배]유찬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래원은 마음의 준비를 하며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부장님.”
– 하아···. 래원아, 너도 다 들었지?
“네···.”
– 어쩌냐? 죽겠다 정말. 어휴!
“······.”
– 장호는 작가를 교체해 달라고 난리고, 옥 작가도 임 피디랑 도저히 못 하겠으니 너랑 하겠다고 고집이고···.
“··· 부장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 대요?”
– 뭘 어떻게 해. 어떻게든 둘이 무사히 이 드라마 끝내게 하는 게 최선이지.
“그럼 제가 임장호 선배랑 옥 작가님, 어떻게든 화해시켜볼게요.”
– 정말? 래원이 네가 두 사람을? 할 수 있겠냐···?
드라마는 인간이다.
인간들의 인생을 다루며, 인간들끼리 만들어서, 그 결과물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총체가 바로 ‘드라마’ 다.
따라서,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인간적이어야 한다.
나아가, 드라마 감독은 인간을 잘 알아야 연출자로서의 몫을 해낼 수 있다.
때문에 지금 래원을 향한 황태수의 반문은,
래원에게 연출자로서의 역량을 테스트하는 미션처럼 느껴졌다.
승부욕이 발동했다.
이것이 마치 이번 드라마를 성공시키기 위한 끝판왕 미션인 것 같았다.
“네. 너무 걱정 마세요. 바로 해결하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래원의 두 눈은 자신감으로 차 있었고, 얼굴에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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