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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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인간이다 (2)
* * *
“나 진짜 너어어어무 억울해, 도 피디.”
옥영임 작가의 작업실.
오늘도 역시 그녀와 래원의 사이에는 눈물, 콧물 젖은 티슈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래원은 그녀와 임장호 선배를 어떻게든 화해시킬 요량으로 지금 이곳에 앉아 있다.
일단 처음 1시간은 옥 작가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거로 시작했다.
그녀의 훌쩍임과 언성이 점차 잦아들자, 래원은 비로소 준비해온 칼을 꺼내 들었다.
“작가님이 제일 아끼시는 강인 캐릭터를 예로 들어볼까요?”
“······?”
“초반의 망나니 캐릭터에서 시작해서, 지금 점차 로맨티스트로 성장하고 있잖아요. 맞죠?”
“맞아.”
“아시다시피 캐릭터가 바뀌면 작품 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전체 톤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옥영임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래원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는 우리 드라마가, 작가님의 자극적인 막장 톤과, 임 선배의 진지한 정극 톤이 잘 융합돼서 ‘이유 있는 막장 드라마’, ‘고품격 블랙 코미디’ 로 끝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정극 톤이 더 필요한 거 작가님도 인정하시잖아요.”
“응···. 강인의 로맨티스트가 짙어질수록 그렇지 아무래도.”
“이제 프러덕션의 모든 사람들이, 두 분 취향 완전히 다른 것도 알고, 그 간극을 좁힐 수도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래! 임 감독이랑 나랑은 너어어어무 달라.”
옥영임은 래원이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준다고 느꼈다.
그래서 래원의 말이라면 지금처럼 경청부터 했다.
“근데 서로 다르다고 함께 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르니까 오히려 상호보완해서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서로 다르지만 맞춰 가며 사는 거죠. 부부도 연인도 비지니스 파트너도, 우리처럼 협업하는 사람들도요.”
“그건 그렇지···.”
래원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명백히 맞는 말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두 분이서 지금보다 조금만 더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하고, 적당히 자기 주장하시면서 작업하는 게 우리 드라마에 적당한 균형과 활력을 줄 거라 생각해요. 분명히 한 분의 취향만 고집해서 찍는 거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구요.”
래원의 태도는 나이답게 않게 성숙했다.
옥영임은 임 감독 앞에서와는 달리 래원의 앞에서 만큼은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고개를 푹 떨궜다.
“이 나이먹고 자기처럼 젊은 친구들한테 안 좋은 모습 보여서 미안해, 도 피디.”
“아뇨. 같은 팀끼리 뭐가 미안해요. 저야 작가님 마음 충분히 이해하죠. 작가님도 오죽 답답하셨으면 현장까지 나오셨겠어요.”
“그렇지? 도 피디는 역시 내 마음 알아주는 거지? 임 감독 촬영분 보고는 너어어무 답답해서 대본이 안 써지더라니깐.”
“이젠 좀 괜찮으시구요? 다시 대본 작업 하실 만 하세요?”
“어. 도 피디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
자신을 헤아려주는 래원 앞에서 옥영임 작가는 마음이 더욱 열렸다.
“그래도 이제부턴 연락 없이 현장에 가는 일은 절대로 안 할게. 도 피디가 도와줘!”
“하하, 그럼요! 저랑 장호 선배랑 딱 반반씩 찍을 거예요. 지금 일정도 넉넉하지 않아서 스케줄 상으로도 어차피 그렇게 해야 해요.”
“어. 반반 찍되, 블랙 코미디 스탠스가 강한 씬들은 도 피디가 찍어줘. 꼭 좀 부탁할게. 촬영장 뒤집어 놓은 건 다시 한번.. 내가 정말.. 미안. 며칠 대본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시청률도 지지부진하고 그래서, 좀 심했던 거 같아.”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옥영임에게, 래원은 진지하게 마지막 말을 던졌다.
“작가님, 진심으로 사과하시고 싶으신 거면 저 말구 임장호 선배한테 하세요.”
이 말에 옥영임 작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선뜻 내키지 않는지 고민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 * *
며칠 전 임장호와 래원이 우동과 소주를 함께 했던 삼성동의 포장마차.
오늘도 래원은 그를 만나러, A팀 촬영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이곳으로 왔다.
촬영 일정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 한 두 사람은 일절 말도 없이 우동을 먼저 들이켰다.
탁-!
빈 우동 그릇을 테이블에 놓은 후에야, 대화를 시작하는 임장호와 도래원.
“내가 옥 작가한테 사과 전화를 받아볼 줄은 꿈에도 몰랐잖냐. 도래원 너는 대체 어떻게 그 여자를 구워삶은 거냐?”
“우음, 제 영업 비밀을 이렇게 쉽게, 아무한테나 함부로 공유할 수는 없구요.”
“푸하하하. 뭐?”
래원의 농담.
우스갯소리가 통할 정도로, 상황은 많이 나아져 있었다.
“작가님한테 전화 받으신 대로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신대요.”
“그래. 뭐, 그 여자도 나 하나 엿먹이자고 멀리 촬영장까지 차 몰고 와서 그랬겠냐. 마음은 다 똑같이. 다같이 드라마 하나 잘 만들어보겠다고 이러는 거지···.”
“맞아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냥, 그 여자랑 나랑은 너무! 달라. 나도 너무! 지쳤다 증말.”
“선배가 벌써 지치시면 어떻게 해요! 우리 팀의 선장님이!”
“아, 몰라! 반반 찍어! 밤 씬 위주로 내가 찍고,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블랙 코미디 많이 들어가는 씬이랑 강인 씬은 너가 다 가져가고. 나머지 잘 배분해서 반반 찍자!”
도래원이 먼저 내민 손을,
옥영임 작가가 잡았고,
그녀의 손을 임장호가 잡았다.
극적인 화해의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이후 촬영은 A팀과 B팀 모두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물론 촬영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일정에는 쫓길 수밖에 없었으나, 전과 같은 갈등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프러덕션에 속한 모두가 ‘이유 있는 막장 드라마’이자 ‘고품격 블랙 코미디’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 *
단톡방에 올라온 이 메시지로 이모티콘 행렬이 이어졌다.
야광봉 흔드는 곰, 팡파레 부는 오리, 하트 그리는 토끼, 박수 치는 악어, 휘파람 부는 오리 등등···.
몇 주 동안 13%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청률이 올랐기 때문에 팀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드디어 마의 벽 같았던 14%대가 뚫렸네!”
자려고 누웠다가 받은 카톡에, 래원도 벌떡 일어나서 쾌재를 불렀다.
시청률에 이 같은 영향을 줄 정도로 달라진 것은, 그간 임장호 감독과 옥영임 작가의 관계뿐이었다.
“역시 드라마는 인간이고 사람이야.”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팀에서 좋은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래원의 생각은 회의적이었다.
만드는 사람들의 에너지와 시너지가 드라마 내에도 은연중에 묻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청자들도 드라마 보면서 알게 모르게 다 느끼나 보다. 시청률이 곧바로 증명해주네.”
래원은 카톡창을 닫고, 포털 사이트 창을 켰다.
하지만 일반 시청자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 시청률과 달리, 인터넷 속 마니아 시청자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드라마 방영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마니아들이 에 미묘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실시간 토크톡 채팅방과 드라마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관련 글이 올라왔다.
[ 재벌의 세계 감독은 한 명은 발로 찍냐? 장면별로 퀄 차이 뭥미? ]ㄴ 연출 크레딧 두 번째로 적힌 도래원이 더 잘 찍는 듯! 보라뱀 직원 피셜! 낮씬, 강인씬 주로 그 감독이 찍는다함!
ㄴㄴ 강인이 하드캐리하는 느낌이 감독 때문인가?
ㄴㄴ 도래원이면 그 SBC 전속 티저 장인?
ㄴㄴ 두 번째면 비팀 이잖아. 보통 비팀이 안티 아님?
ㄴㄴㄴ ㅇㅇ 근데 재벌의 세계는 메인 연출이 노답ㅋ 작가랑 대판 싸웠다는 카더라가 있다ㅋ
드라마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혹평도 이런 혹평이 없었다.
자신에 대한 칭찬이 있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던 래원.
폰을 닫고 애써 생각을 멈추고는 잠을 청했다.
* * *
“역시 윤 기자는 눈썰미가 너어어어무 좋아.”
옥영임 작가의 작업실.
드라마 11화가 방송된 후, 옥 작가는 친한 기자들로부터 전화 세례를 받았다.
“내가 이래서 자기를 좋아한다니깐. 윤 기자가 보기에도 확실히 다르지?”
마니아 시청자들만큼이나 예리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연예부 기자들.
그들의 눈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 메인 연출보다 B팀 감독이 내 대본을 더 잘 살린다니까? 자기가 아주 정확하게 봤어! ··· 그래서 말인데, 있잖아, 이건 내가 특별히 윤 기자한테만 말해주는 거야···.”
옥영임이 휴대폰을 붙잡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저번에 난리 났던 햇반 PPL도 B팀 작품이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
그곳이 방송가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옥 작가가 딱 한 사람에게만 귀띔해준 정보가, 그 한 사람을 매개로 업계 전체에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 * *
며칠 후, 어느 저녁 시간.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의 하이엔드 스시야.
가장 안쪽 프라이빗 룸에서 SBC 배미란 사장과, 드라마국 황태수 부장 그리고 도래원이 회동을 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요 며칠 저한테 오는 연락이 전부 래원이 이 녀석에 대해 묻는 것뿐이라니까요.”
황태수가 배 사장 앞에서 껄껄껄 웃고는 래원을 자랑스레 바라보았다.
“그래?”
배미란은 앞에 놓인 차완무시를 호로록 입에 넣으며 흥미롭다는 듯 래원에게 눈길을 주었다.
황태수는 더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네, 아주 귀찮아 죽겠습니다. 인터뷰 요청도 장난 아니게 들어오구요. 그래서 말인데 래원아, 너 단독보다는 매체 몇개랑 라운드 인터뷰 잡아보는 거 어떠냐?”
“관심은 감사합니다만, 오바하기 보다는 그냥 제 본분을 지키고 싶습니다. ‘재벌의 세계’가 다 끝난 것도 아니고, 팀에서 저는 그저 메인 연출인 임장호 선배를 서포트 하는 B팀 감독일 뿐이에요.”
래원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칼에 거절하며 차분하게 응수했고,
황태수는 이 같은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지 미련 섞인 투로 되물었다.
“에이, 그래도 이슈 만들면 드라마 홍보에도 도움 될 거 같은데?”
“단기적으로 잠깐 관심은 받겠죠. 하지만 B팀 감독이 A팀 감독보다 튀어봤자, 결과적으로 우리 드라마에 방해만 될 겁니다. 그런 건 원치 않습니다.”
래원은 확고했다.
황태수는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현재 는 시청률이 적당히 나와주고 있다.
때문에 책임 프로듀서인 황태수 입장에서는, 자신과 다른 라인 임장호가 담당PD인 이 드라마가 여기서 더 잘 되는 것보다는, 자기 라인인 도래원이 이 기회를 잘 잡아서 대외적인 입지를 굳혔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가만히 경청하던 배미란 사장이 미소를 머금더니 입을 열었다.
그녀는 래원의 함부로 나서지 않는 모습, 섣불리 동요하지 않는 차분한 태도와 사리 판단을 지켜보며 더욱더 마음이 기울었다.
“그럼 도래원 피디가 원하는 건 뭐지?”
원하는 것.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었다.
래원은 구체적인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배 사장을 지그시 보았고,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하는 ‘재벌의 세계’ 끝나면, 뭘 하고 싶나 묻는 거야.”
래원은 섣불리 바로 답하기보다는,
지금 이 잠깐의 정적을 활용하며 머릿속으로 적당한 말을 고르고 고르는 편을 택했다.
래원의 진심을 담은 솔직한 대답이면서도, 지금 배미란 사장이 듣고 싶어 할 대답을 말이다.
“나는 도 피디의 목표가 궁금해. 자네 그 능력으로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쫓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배 사장은 진지한 눈빛으로 래원을 재촉하듯 말을 보탰다.
“내가 끌어주고 싶어서 그래.
도래원 자네의 목표, 자네의 꿈···. 이룰 수 있게 내가 돕고 싶다고.”
옆에서 지켜보던 황태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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