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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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평론가
“하하하. 떡볶이를 이기다니 기분 좋은데요?”
래원은 민세라의 말이 너무도 오글거렸으나 간신히 참고 웃어 보였다.
상대가 유찬이나 구민준 배우같은 남자였다면 당장 등짝을 후려쳤겠지만, 민세라에게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
“감독님, 우리 자리 옮길까요? 소주 한 잔 어때요?”
“좋죠.”
래원은 민세라와 함께 근처, 다른 포장마차 중에서 손님이 제일 없는 곳으로 골라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이모님, 여기 소주 한 병이랑! 안주는 뭐 드실래요, 세라 씨?”
“으음··· 닭발이요. 무뼈닭발!”
“네에, 소주 한 병! 무뼈닭발 하나! 곧 드릴게요.”
“닭발 같은 것도 드실 줄 아세요?”
“그럼요. 그 맛있는걸 왜 못 먹어요! 아이돌이나 여배우는 사람 아닌가?”
래원은 전에 촬영장에서 연어 스테이크와 갈비 도시락을 앞에 두고, 닭가슴살 샐러드만 먹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요.”
“아, 뭔데요! 같이 웃자구요!”
“세라 씨가 이런 사람인 거 알면, 다들 세라 씨를 지금보다 더 좋아할 거 같아서요.”
“······.”
“이런 게 진짜 세라 씨다운 모습 같아요.”
“저다운 거요···? 저다운 게 뭘까요? 잘 모르겠어요, 이젠.”
워낙 어릴 때부터 모친의 부재 속에서 연습생과 아이돌 생활을 겪어서 그런지, 민세라는 겉보기보다 굉장한 외강내유 타입이었다.
“그때 감독님이 그러셨죠? 안티들은 제가 뭘 해도 싫어할 사람들이라고. 그런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절 좋아해 주는 팬들만 신경 쓰라구요. 그러기에도 모자란 인생이라고···.”
“하하. 맞아요. 제가 그랬었네요. 세라 씨, 기억력 좋으신데요?”
민세라로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매니저나 박현만 대표가 민세라를 구슬리기 위해 하는 말 말고, 면전에서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해준 건 도래원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세라 본인도 못 믿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기대한다고 확언을 해 준 것도 도래원이 처음이었다.
“이제 그걸 머리로는 알겠어요. 하아, 알긴 알겠는데, 마음은 컨트롤이 안 되는 거 있죠? 오늘도 악플 볼 때마다, 이렇게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전부 내 잘못인가···? 싶고···. 자꾸 무너지고···.”
마침 소주와 닭발이 나왔다.
래원은 소주를 따서, 잔 두 개를 채웠다.
“다들 그래요. 세라 씨만 그런 거 아니고.”
“감독님은 안 그러시잖아요.”
“저야, 뭐···.”
래원은 ‘전 인생 2회차라 그래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잔을 내밀어 짠- 을 청했다.
두 사람 다 시원하게 원샷으로 잔을 비웠다.
“하아···. 저희 엄마한테도 그래요. 엄마라고 살갑게 부르고, 애교도 부리고, 잘 지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얼굴만 보면 괜히 뾰족하게 엇나가게 돼요. 제가 그러니까 엄마도 저를 차갑게 대하고, 그럼 저는 또 더 까탈 부리게 되고···. 이런 딸을 누가 이뻐하겠어요···. 저 같아도 학을 뗄 거 같은데···.”
래원은 속으로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민세라가 엄마 이야기를 이렇게 툭 꺼내는 것에 대해 말이다.
물론 그 엄마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누군지 알고 있는 래원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도 그러실 거예요.”
“네?”
“세라 씨 어머님도 마찬가지로, 세라 씨한테 차갑게 대하기 싫으실 거라구요. 마음은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걸 거예요. 세라 씨가 그런 것처럼.”
“··· 저같은 걸 안아주고 싶을까요?”
래원은 그녀가 과거에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민세라는 갑각류처럼 단단한 겉껍질로 무장했지만, 안에 그 누구보다 여린 속살을 갖고 있었던 거다.
한마디로 자존감은 무지 낮은데, 자존심은 굉장히 높은 타입이었다.
“그럼요. 세라 씨는 자신을 좀 더 사랑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요.”
“··· 그러면 사람들도, 엄마도 저를 더 싫어할걸요?”
“전혀요. 세라 씨 저랑 원더빅 미팅룸에서 만났을 때도 비슷한 대화했던 거 알아요?”
“그..그랬어요?”
“세라 씨는 스스로를 자꾸 의심하고, 저는 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고.”
“하하하. 그랬구나···. 맞아, 그랬어요.”
“세라 씨는 본인이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에요.”
“······.”
“본인, 연기에 재능 있는 거 이제는 아시겠죠? 첫 주연에 이렇게 해내는 거 아무나 못 해요.”
“무대보다 카메라 앞이 더 마음 편하긴 해요.”
“거 봐요. 적성 찾았다니깐.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 해주세요. 오래오래!”
“··· 까짓거! 열심히 해볼게요! 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배우로서 더 자리 잡는 것도, 그리고··· 엄마랑 잘 지내는 것도.”
“좋아요, 그런 자세.”
래원은 또다시 술잔을 가득 채우고는,
“민세라의 길~고! 행복한! 배우 생활을 위하여!”
짠-
민세라와 잔을 경쾌하게 맞부딪혔다.
그녀는 시원하게 원샷을 때린 후, 닭발을 한 젓가락 가득 입에 넣었다.
래원은 입술에 빨갛게 양념을 묻히고 먹는 민세라의 모습을 보며, 촬영장에서 봤던 것과는 영 딴판이라는 생각을 했다.
* * *
“어, 왔어?”
SBC 편집실.
래원은 유찬에게서 받은 4화 예고편 편집본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그를 맞이했다.
“이거 구몬 선생님한테 숙제 검사받는 기분이네.”
유찬이 래원의 옆에 앉았다.
“전체적으로 잘했어, 정말로.”
래원의 칭찬에, 안 그래도 밝은 유찬의 표정이 더욱더 밝아졌다.
“예고편은 본편의 드라마 결과 텐션, 호흡, 리듬을 극대화해야 하는데, 너 그걸 꽤 잘 해냈더라구.”
“그렇지? 잘했지? 내가 형 옆에 붙어 있으면서 보고 들은 게 있는데!”
래원은 우쭐해 하는 유찬을 향해 빙긋 웃으면서,
편집실 모니터에 띄워놓은 커트를 재생시켰다.
“근데 이거 하나만. 이 부분 그냥 이렇게 스무스하게 다음 커트로 넘기지 말고···.”
그리고는 직접 설명하며 파이널 컷으로 시범을 보이는 래원.
“이렇게 클로즈업인 액션으로 포인트를 줘서, 텐션 감을 살리면 어때?”
“오오! 훨씬 그럴싸하다! 미스터리 스릴러 느낌이 더 잘 살아. 그 꼼수 괜찮네!”
“야, 꼼수 아니야! 엄연한 기술이야, 편집 기술!”
“그게 그거지 뭐.”
“다음번엔 더 잘 할 수 있겠지?”
“어, 이번에는 90점이었지만 다음에는 100점 받을게, 구몬 선생님.”
“그럼 이대로 방송 내보낸다. 콜?”
“콜!”
“그리구 찬아, 너 다음 작품도 나랑 하자.”
“··· 정말?”
“내가 이런 거로 농담하냐?”
“··· 나야 너무 좋지! 콜! 무조건 콜! 콜!”
유찬은 함께 일하면 연출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조연출이었다.
똑똑똑-
그때, 편집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혜영인가보다.”
“혜영 누나도 오늘 숙제 검사받아?”
“하하. 검사는 무슨···.”
“그럼 바톤 터치해 줘야겠네.”
유찬이 일어나서 문을 열고 지혜영을 맞이했다.
유찬이 손바닥을 내밀자,
지혜영이 하이파이브로 받아준다.
촤악-
“혜영 누나 파이팅! 참고로 난 칭찬만 받았다! 90점이래.”
“야, 헛소리 그만하고 빨랑 가라!”
래원이 소리쳤고, 유찬은 큭큭큭 웃으며 래원과 혜영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편집실에는 지혜영과 도래원이 남았다.
“혜영아, 네가 만든 3화 예고편. 지난주에 2화 본방 뒤에 붙은 거 직접 봤어?”
“응. 감회가 진짜 새롭더라. 예고편만으로도 이렇게 설레는데, 나중에 직접 찍고 연출한 게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잘했더라. 별로 손댈 것도 말할 것도 없어서 그냥 바로 방송 내보냈어. 오늘 부른 건 따로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래원은 모니터에 혜영이 만든 3화 예고편의 한 커트를 띄우고 물었다.
“여기, [노미령]의 머리를 [연홍]처럼 단발로 자르는 커트 말이야.”
“응. 그거 왜?”
“이거 일부러 본편에 안 썼던 테이크로 갖다 쓴 거야?”
“응. 예고편은 본편보다 빠른 호흡감, 리듬감 있는 편집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그래서 본편에서 앞뒤랑 떠서 못 쓴 거, 예고편에는 오히려 괜찮겠다 싶어서. 근데 왜? 이거 이상했어? 오빠도 저번에 청춘 런웨이 땐가 그렇게 하지 않았나? 그거 되게 인상 깊게 봤거든.”
“아니. 좋아서 물어보는 거야. 알고 쓴 건가 궁금해서.”
“그럼, 알고 쓰지! 나도 꽤 한다!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혜영아, 그래서 말인데···. 다음에도 나랑 한 작품 더 하자.”
“좋아! 오빠 조연출이라면 무조건 오케이야!”
“아니, 조연출 말고.”
“응? 그럼?”
“··· B팀 감독으로.”
래원의 말에 지혜영은 놀라서 잠시 그대로 멈춰있다가, 이내 만세를 불렀다.
“진짜? 진짜지 오빠? 와아아!!! 무르기 없기다?”
래원도 덩달아 흡족하게 웃었다.
래원은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선택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지난 삶을 비추어 봤을 때,
래원의 B팀 감독으로 선배들 중 쭉정이가 오는 것보다는 지혜영이 여러모로 훨씬 더 나은 대안이었으니까.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 첫 방송 된 지 어언 보름이 지났다.
어제 3화가 나간 이후로, 이제 다음 주 4화 방영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래원은 간만에 주말을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냈다.
레장여에 대한 기사와 SNS반응을 모니터하며 말이다.
“와···. 이거 뭐지?”
래원이 발견한 것은 ‘비투페라토르’ 라는 필명을 쓰는 유명 TV 평론가의 글이었다.
비투페라토르.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매주 1개 이상의 평론을 올리는 일종의 인플루언서 평론가였다.
별명이 ‘얼굴 없는 평론가’ 일만큼 얼굴은 드러내지 않고 블로그와 SNS로만 활동하지만,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가 평론으로 발굴한 드라마가 유명세를 타면서, 시청률이 첫 화 1%에서 마지막 화 27%까지 뛴 적도 있었으니까.
물론 별로인 TV 드라마를 향해서는 촌철살인도 아끼지 않았기에, 업계 관계자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
래원도 지난 생과 이번 생에서 모두 그의 이름을 들어봤다.
래원의 드라마가 그의 평론에 등장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말이다.
– 사람은 그 누구도 날 때부터 독립운동가나 친일파로 태어나지 않았다.
비투페라토르가 쓴 이 같은 제목의 링크는 각종 SNS를 타고 엄청난 조회 수와 공감, ‘좋아요’를 자랑하고 있었다.
「 나라를 빼앗긴 1930년대에도 인간적인 낭만과 사랑이 꽃피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이다.
또한 친일이나 개화기를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시대상의 반영과 인류애의 구현이라는 양쪽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경성 변두리의 외딴 고택,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싼 음모와 협잡,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모던 걸과 모던 보이, 그리고 여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덧붙여진 흥미로운 플롯이 중심축이 된다.
여기에 불가사의한 사건이 전개되며 매주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환상을 동시에 충족시키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잘 잡았다는 데에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휘어잡은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드라마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스릴러 장르의 긴박감을 골고루 녹여냈다.
··· (중략) ···
다음 주 금요일 마지막 화를 앞두고 있는 드라마 . 연출을 맡은 도래원 감독과, 극본을 쓴 김윤하 작가는 놀랍게도 이 작품이 입봉작이다.
이 두 신진 창작자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바다. 」
“와아···.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비투페라토르의 평론을 다 읽은 래원은 흥분에 사로잡혔다.
말 그대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드라마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읽어준 시청자를 만났을 때 무한한 고마움과 흥분을 느낀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
“누군지 직접 만나보고 싶다. 술이라도 사고 싶네!”
래원은 곧바로 황태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혹시 비투페라토르 글 보셨어요? 우리 드라마에 대해 쓴 거?”
– 그 사람이 우리 걸? 봐야겠네. 뭐래? 욕이라도 했냐?
“아뇨. 호평 일색이에요.”
– 그래서 전화했구나. 빨리 보라고?
“그렇다기보단, 혹시 선배, 비투페라토르 그 사람 누군지 아세요?”
– 얼굴 없는 평론가잖아. 얼굴은 본 적 없지. 아주 예전에 급한 사건 하나 터져서 전화로 잠깐 목소리는 들은 적이 있어. 여자야. 30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
“그럼···. 연락처는요?”
– 연락처는 있는데, 전화는 걸어도 안 받을 거다. 문자 보내면 가끔 답할까 말까 한 정도니까.
“아··· 그래요?”
래원은 실망했다.
“그래도 번호 알려주세요. 문자 인사라도 남겨놓죠, 뭐.”
– 그래라. 연락처 보낼게.
황태수 선배는 곧장 연락처를 찍어줬다.
래원은 이 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 안녕하세요, 비투페라토르 선생님.
드라마 의 연출가 도래원입니다. 선생님의 평론을 읽고 감사하다는 연락을 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문자 남겨둡니다. 회신 주시면 제가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
할 말이 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지만, 회신이 왔을 때 이어 보내고자 다음을 기약하며 이 정도로만 아꼈다.
지이이이잉—
이윽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010-7942-1**4]전화의 발신자는 다름 아닌 ‘비투페라토르’ 였다.
“뭐지? 전화를 하셨다고? 황태수 선배 말로는 문자 답장도 할까 말까 한 사람이랬는데···?”
래원은 의아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왠지 모르게 떨렸다.
“여보세요?”
– 도래원 감독님, 안녕하세요.
“비투페라토르 선생님···?”
– 네, 제가 비투페라토르에요. 하하. 저 모르시겠어요, 감독님? 제 목소리?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였다.
‘어? 이 목소리는···? 설마···?’
비투페라토르가 누군지 깨달은 순간, 래원은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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