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89
래원과 유찬은 시상식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자며 편집에만 매달렸더랬다.
“드디어 잘 수 있겠다!”
유찬은 자리를 정리하며 잘 준비를 하다가
래원의 자리까지 참견을 했다.
“형, 아까 승무원한테 그 가방 위로 올려달라고 하지 그랬어. 내가 올려줘?”
“아니. 그냥 갖고 갈 거야.”
“뭐가 들었길래? 안 불편해?”
“어. 안 불편해.”
래원은 가죽 백팩을 자기 분신처럼 소중히 두었다.
유찬이 그 모습을 보더니 더욱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무슨 가방이길래 그렇게 애지중지해?”
“선물 받았어.”
“누구한테?”
“··· 있어. 넌 몰라도 돼, 인마.”
“오올··· 여자구나? 누군데?”
“아, 신경 꺼.”
래원은 유찬에게서 휙 등을 돌리고는, 백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은 보욜라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LA가서 괜히 뭐라도 된 듯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자. 나다움을 잃지 말고, 보욜라의 유언을 잊지 말자.’
–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이륙합니다. 목적지인 LA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요 며칠 피로와 싸워온 터라, 래원의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눈이 슬슬 감겼다.
다시 눈을 뜨면 LA에 도착해 있을 거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각국의 취재진과 제작자들, 그리고 유명 감독들이랑 배우들도 만날 수 있겠지.’
이 같은 생각을 하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다가
래원은 어느새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87화 – 리디북스
* * *
11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로스앤젤레스 국제 공항.
“어우, 덥네.”
공항 밖으로 나서자마자 유찬은 겉옷을 벗었다.
10월의 LA 공기는 서울의 늦여름과 비슷했다.
래원과 유찬은 홍보팀 스텝들의 안내를 받으며 LA 다운타운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극장’ 쪽으로 향했다.
극장 근처의 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에미상 관련 홍보 일정이 래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는 전세계 언론들과의 라운드 인터뷰가 마련됐다.
“(에미상 TV드라마 감독상과 최우수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셨는데요, 수상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화면의 톤이나 앵글 구성, 로케이션 등등의 미장센이 돋보이는데요, 도래원 감독님께서 가장 신경 쓰셨던 연출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학 비리 스릴러와 판타지 로맨스의 조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드라마가 어떤 의미와 시의성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드라마만의 매력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래원은 처음에는, 지난 밴프 로키 페스티벌보다 훨씬 많은 취재진에 압도되어 긴장했지만
그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우호적인 대우에, 금방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전야제 겸 네트워크 파티에 참석했다.
각국 제작사나 감독 및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어느새 래원의 손에 여러 개의 명함이 들어왔다.
HBO, BBC, NBC, AMC, DISNEY+, 넷플릭스 등등 영미권 굴지의 방송사와 OTT 매체의 PD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영화의 국제적 선전이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듯했다.
그 명함의 주인 중에는 훗날 세계적인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게 될 사람도 있었고,
래원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아서 이전 생에서부터 래원이 관심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주위를 둘러보니 영미권 유명 배우들이 눈에 띄었다.
베네딕트 큐컴버, 테오 히들스턴, 그리고 래미가 좋아하는 에바 그린과 소피 안젤라, 엄하늘이 롤모델이라고 했던 메릴 스트립도 보였다.
‘이 중에서 나와 인연이 닿을 사람이 생길까?’
LA에 온 지 단 하루 만에 래원은 탁 트인 시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손에 들린 명함을 훑어보면서 먼 훗날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할 욕심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다음 날,
에미상 시상식 당일이 되었다.
늦잠을 잔 래원과 유찬은 홍보팀 스텝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그랜드 센트럴 마켓에 갔다.
유찬은 완전히 관광객 모드였다.
“형, 여기 에그 슬럿을 꼭 먹어봐야 한다는데? 그리고 요 앞에 라라랜드 촬영지가 있다니까 이따가 가보자.”
유찬을 따라 그랜드 센트럴 마켓을 거니는데, 낯익은 얼굴들을 만났다.
영어 속에서 들리는 명확한 한국어.
“이야! 이게 누구세요!”
“와아. 약속도 안 했는데 딱 만났네요.”
바로 배우 양수호와 류소현 그리고 차가을 작가였다.
한국에서의 일정 때문에 오늘 새벽에 도착한 세 사람은 래원과 유찬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감독님! LA에서 뵈니까 또 새롭게 반가운데요?”
“하하. 여기 날씨 너무 좋죠?”
다 같이 점심을 먹은 후,
영화 라라랜드 촬영지인 ‘엔젤스 플라이트’ 케이블카를 타며 잠깐의 여유를 만끽했다.
뜨겁게 빛나던 LA의 태양이 모습을 감추자,
드디어 에미상 시상식이 시작됐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 앞에는 수많은 취재진과 인파가 몰렸다.
래원과 양수호, 류소현, 그리고 차가을은 넷이 함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레드 카펫을 지나 포토존 앞에 섰다.
래원의 팀은 몇 안 되는 아시아계라서 취재진의 관심이 더 몰리는 듯했다.
래원은 화이트 슈트, 양수호는 블루 계열의 슈트, 류소현은 붉은 장밋빛 홀터넥 드레스, 그리고 차가을 작가는 블랙 롱드레스를 입었다.
간접적으로 태극기를 연상시키는 화이트, 블루, 레드 그리고 블랙의 조합이 멋스러웠다.
이번 시상식을 위해 ‘시간을 돌리는 사물함’ 홍보팀이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래원의 팀이 객석에 자리한 후
이윽고, 에미상 시상식이 시작됐다.
TV 다큐멘터리, 단편 논픽션, 버라이어티, 어린이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코미디에 이어서 드라마 부문 시상이 이어졌다.
“(제74회 에미상. TV 드라마 부문 감독상.)”
래원의 얼굴이 다른 후보자들과 함께 무대 위 스크린에 비쳤다.
애써 표정 관리 중이었지만 래원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쟁쟁한 세계적 감독들을 제치고 이제 고작 29살의 핏덩이인 자신이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노미네이트 됐다는 사실만으로 흥분감이 일었으니까.
“(HBO 미겔 트레호 감독. 축하합니다.)”
래원은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며 거세게 박수를 쳤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노미네이트 만으로 만족해야지. 수상만큼이나 값진 경험과 자극을 받았으니까.’
이후, TV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 역시
미국 HBO의 에 돌아갔다.
“성과는 충분한 것 같은데?”
시상식이 끝나고, 유찬이 보여준 외신의 실시간 기사와 한국 언론의 반응이 나름대로 쏠쏠했다.
[ 한국 아쉽게 미수상에 그쳐 ] [ 도래원 감독, “한국 드라마를 향한 관심의 포문을 연 것으로 만족. 노미네이트 만으로 감사드린다.” ] [ 미수상작 중 역대급 관심. K영화에 이은 K드라마의 세계화의 시작? ]* * *
래원은 LA의 시상식 일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귀국했다.
다음 일정이 줄줄이 래원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래원이 양수호, 류소현, 차가을과 함께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래원은 강렬한 플래시와 셔터음에 이제 적응이 된 듯 취재진을 향해 여유있게 인사를 건넸다.
“도래원 감독님! 아쉽게 수상은 못 하셨지만 에미상 노미네이트와 현지 관심에 대해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상식 때 네 분이 드레스 색을 맞추신 건 태극기를 의도하신 거 맞나요?”
“양수호 배우님, 류소현 배우님, 한국 배우에 대한 현지 관심은 어땠나요?”
네 사람은 흡사 다이너마이트처럼 생긴 마이크 뭉치를 서로 돌려가며,
취재진의 질의에 충실하게 답했다.
“이 영미권을 비롯한 국제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도 감독님, 류소현 배우님, 차가을 작가님은 이번에 에서도 또 한 번 호흡을 맞추고 계십니다. 작업 과정은 어땠는지 한 말씀해 주십시오.”
류소현이 래원에게 마이크 뭉치를 넘겼다.
“아직 마음은 소녀와 소년이지만,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드라마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생에서 ‘목표’가 중요한 인물, ‘낭만’이 중요한 인물, 다 필요없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중요한 인물들의 좌충우돌과 성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래원은 차가을 작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작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건네받은 그녀가 래원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작가는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래원이 ‘할 수 있다’는 신뢰의 눈빛을 보내자, 그녀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월미도88 작가님의 원작 웹툰 팬들께서 많은 기대와 우려를 하고 계신다는 것 잘 압니다. 저희는 원작을 충실히 따르는 범위 내에서 드라마적 재미를 보여드리고자 작업하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답을 마친 그녀가 래원을 보며 빙긋 웃었고, 래원도 미소로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류소현도 배우로서 한 마디 덧붙였다.
“촬영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받으며 작업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도 그 위로를 건네드리고 싶습니다. 꼭 본방사수 해주세요!”
* * *
탁—!
세트장. [강다원]의 집.
이곳에 슬레이트의 찰진 마찰음이 울려 퍼지며 녹화가 시작됐다.
카메라 10대가 넘게 돌아가고 있었다.
“네! 오늘은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죠, 드라마 의 도래원 감독님과 원준혁, 함현우 배우까지 세 분을 모셨습니다!”
MC 가온이 예의 배려 넘치는 진행으로 녹화를 이끌어갔고,
“캐스팅을 술자리에서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그렇죠. 현우가 술김에 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원준혁은 이에 능글맞게 맞춰주다가도 빠질 타이밍에는 한발 물러서며 예능에 맞는 밀당을 구사했다.
“그때 우리 감독님이 현우한테 뭐라 하신 줄 아세요? ‘제 손 잡으세요. 지금 이거··· 현우 씨 인생에 다신 없을 기회니까.’”
“크하하하핳. 대사 죽인다! 역시 드라마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배우 하셔도 되겠는데요, 도 감독님?”
MC 가온이 호들갑 떨며 분위기를 띄웠다.
래원과 함현우는 이 분위기에 크게 동하기보다 차분한 포지션으로 드라마 홍보에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잠깐 메모리 카드 갈고 갈게요!”
김우태 PD의 외침에 잠깐 숨돌릴 시간이 생겼다.
곧 다시 슬레이트의 마찰음과 함께 녹화가 재개됐다.
이곳 [강다원]의 집 세트장에서 4시간가량 진행된 녹화는,
중간에 식사 시간을 가진 후,
뒤이어 [현수]의 집 세트장으로 옮겨 이어졌다.
장소를 옮기며 종전의 갖춰진 의상에서 자유로운 의상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인 집들이 컨셉으로 토크가 이어졌다.
카메라 뒤에서 박은정 작가가 스케치북에 크게 [도래원 3종 세트] 라고 적어서 흔들자,
MC 가온이 화제를 전환했다.
“그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도래원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보여주시는 도래원 3종 세트가 있다고 하던데요.”
“하하. 네.”
“그거 한 번 보여주시죠?”
“자아, 먼저 깨발랄 버전입니다.”
원준혁이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래원은 눈을 질끈 감고 ‘에라 모르겠다. 드라마 홍보를 위해서라면!’이라는 생각으로,
만족스러운 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컷! 오케이! 좋습니다!”
“그다음, 츤데레 버전은 함현우 씨가 보여주실 거고요.”
원준혁의 말에 함현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원준혁이 장난스레 웃으며 ‘할 수 있잖아. 해 봐.’ 라고 입을 벙긋거렸다.
함현우가 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물더니 결심이 선 듯,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미간을 찌푸리며
“컷! 오케이!”
외치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만족스러운 듯이 씨익 웃는 표정을 지었다.
“크하하하핳. 도 감독님이 보기보다 츤데레시구나. 그렇죠. 너무 좋아하면 배우들이 자만할 수 있으니까.”
MC 가온의 반응에 함현우가 안도하는 표정이 되었다.
원준혁이 함현우에게 엄지 손가락을 척! 올렸다.
“주인공은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죠. 마지막 개복치 버전은 제가 보여드릴게요.”
원준혁이 갑자기 우수에 찬 눈빛이 되어 카메라를 응시하기 시작하더니,
“컷. 오케이···.”
하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슬쩍 눈을 훔쳤다.
“크하하하핳. 우리 도 감독님이 실제로 이러시는 거 보고 싶네요. 인간적인 분이신가 봐요.”
“이상! 도래원 감독님 3종 세트였습니다!”
MC 가온이 박수를 치며 리액션을 보였고,
원준혁이 마무리 멘트까지 날렸다.
“마지막 개복치 버전은 저희 촬영장에서는 많이 못 봤는데, 소현이 말로는 지난번 때는 감정 씬이 많다 보니까 자주 볼 수 있었다더라고요.”
이에 자연스럽게 에미상 시상식 이야기로 토크가 흘러갔다.
래원은 현지의 반응과 그곳에서 얻은 값진 경험, 그리고 새로운 자극들에 대해 공유했다.
그렇게 장장 8시간 정도의 녹화 끝에,
“이것으로 오늘 녹화 마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1월 1, 2주에 방영될 녹화가 모두 끝이 났다.
래원의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처음 해본 작업이라 재밌고 뿌듯했다.
* * *
드라마 방영이 몇 주 안 남은 시점.
래원은 첫 방 전에 중요한 행사 두 가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내부 시사회와 제작 발표회가 그것이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내부 시사회가 있는 날.
SBC 관계자들과, 투자사인 JC그룹 엔터테인먼트부 임원진을 모시고 1화 및 2화를 미리 보며 모니터하는 시간이다.
장내에는 이 국장, 김 부국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드라마국 식구들과
예능국 김우태PD와 박은정 작가 등 팀,
그리고 배미란 사장까지 자리했다.
JC그룹 엔터부 홍 실장도 껄껄껄 웃으며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먼 길을 발걸음한 월미도88까지 착석하자 이제 내부 시사회가 시작됐다.
래원은 에미상 시상식장에 앉아있는 것만큼이나 지금 이 순간이 떨렸다.
장내가 어두워지고,
스크린에 드라마 타이틀이 떴다.
파리의 개선문.
푸르른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낼 만한 색감이었다.
이윽고 [현수]의 등장으로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인물의 시점으로 연출이 전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