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94
10시를 살짝 넘기고 들어온 탓에,
가 이미 시작한 후였다.
처음에는 이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당구만 치던 손님들.
그러다 하나둘씩 TV로 시선을 빼앗기며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당구를 치는 건지 드라마를 보는 건지, 모를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소이야, 남자들이 좋다는 여자가 어떤 여잔 줄 알아?”
“··· 이쁜 여자?”
“아니, 애태우는 여자. 남자가 좋다고 쫓아오면 싫다고 밀어내는 여자. 더 쫓고 싶어지는 여자.”
“··· 지나 언니, 언니는 다원 씨한테 그런 여자예요?”
“나도 노력 중.”
“······.”
“그러니까 너도 현수한테 너무 직진하지 마. 이제 밀어낼 타이밍이야. 현수가 널 쫓아올 기회를 줘.”
.
.
“캬! 명대사네! 솔직히 인정.”
“어쩔 수 없다니까, 남자들은.”
“이래서 이 드라마가 재밌어. 현실적이잖아.”
래원이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 남자 시청자들 반응은 충분히 본 것 같다.’
아무래도 래원이 주로 가는 장소는 남자들이 많은 .
그래서 그다음.
래원이 작정하고 여자들이 많은 곳을 가보고자 찾은 곳은,
[ 네, 일 합니다! ]네일샵이었다.
“어서오세..요?”
흔치 않은 남자 손님의 등장에 네일샵 직원이 태연한 척 물었다.
“뭐 하시겠어요?”
“그..그냥 손톱 좀 다듬으려고 왔습니다.”
“네일샵은 처음이세요?”
“아,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요새는 남자분들도 많이들 오세요. 여친이랑 같이 오시기도 하고요.”
래원은 양팔을 올려 직원에게 손을 맡겼다.
어색하기 그지없었으나, 오늘의 목표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네일샵의 TV를 언제 어떻게 SBC로 돌릴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래원이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마침 직원 하나가 시계를 보더니 리모콘을 들었다.
SBC로 돌아간 채널.
“언니도 이거 봐요?”
“요새 이게 1위잖아요.”
“진짜 재밌어요. 배우들도 좋고.”
네일샵 직원들과 손님들은 모두 여자였다.
가 시작하자 이곳 안은 금방 조용해졌다.
중간중간 방청객 모드의 소리만 날 뿐이었다.
특히 진한 애정 씬이나 웃긴 씬에서 말이다.
“이 드라마는 배우 연기도, 전개도, 연출도 다 좋은데 가끔 뭔가 몰입이 안 되고, 어색하고 그러더라.”
“우린 한겨울인데 화면에는 여름, 가을이 나오니까 그런 듯?”
“아?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여름 생각나서 좋기도 한데, 뭔가 예전 드라마 보는 것 같고 생동감도 아쉬워.”
“맞아. 몰입이 살짝 깨지긴 해.”
래원은 색다른 시각의 모니터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배우들 의상이나 CG로 가린다고 가렸는데 이런 세세한 것도 놓치지 않고 보는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사전제작의 유일한 단점이었으니까.
‘사전 제작을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어. 후회는 없다. 다음번에는 반 사전제작으로 찍어보지, 뭐.’
사전 제작도 해보고, 생방송 촬영도 해봤으니
다음 드라마는 이들의 장단점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래원이었다.
‘오늘은 수확이 꽤 크네. 칭찬은 배 터지게 들었으니까 이제 쓴소리도 들어야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지.’
이때,
지이잉—
옆에 둔 래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금 양손을 네일샵 직원에게 맡겨놓은 터라, 손이 자유롭지 못한 래원은 고개를 빼서 화면을 쳐다보았다.
액정에 뜬 문자의 발신인은 모르는 번호였다.
[010-1234-5678] 래원 피디님, 안녕하세요! 강채령이에요^_^ 만나서 드라마 이야기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강채령? 진짜 굉장한 드라마 광팬인가보네.’
래원은 그녀의 당돌한 연락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뜻밖이었지만 반가운 연락이었다.
* * *
“여기 로제 와인이 기가 막혀요.”
강채령이 바쁜 래원을 배려한답시고 예약한 이곳은 여의도 63빌딩의 한 레스토랑.
한강이 굽이 흐르는 서울 서부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다.
전망 좋은 창가 자리였다.
“제가 알아서 시켜도 되죠?”
래원을 향해 싱긋 웃는 강채령에게서 도도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앙칼진 느낌의 이목구비로 보나 몸매로 보나 집안으로 보나, 분명 그녀 주위에는 구애하는 남자들이 한 트럭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남자한테나 함부로 눈길을 주지 않을 것만 같은, 시크한 강채령.
그런 그녀가 드라마 이야기만 하면 갑자기 상기된 얼굴로 말이 많아지며 무장해제가 되는 것이, 래원의 입장에서는 퍽 재밌었다.
웨이터가 와인을 따라주었다.
촤르르르-
투명한 와인잔에 연분홍빛 와인이 영롱하게 담겼다.
“새로운 두 친구의 20대와의 이별, 30대와의 만남을 축하하며.”
강채령이 웃으며 잔을 내밀었고,
래원도 가볍게 잔을 부딪치며 응했다.
“채령 씨도 스물아홉이세요?”
“그렇게 안 보이죠? 헤헤헤.”
“네, 실례지만 더 어리게 봤어요.”
“헤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그런데 그녀는 래원이 자신과 동갑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강채령은 래원이 생각하는 것보다 래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테이크를 썰며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됐다.
“친구로서 여쭤보는 건데요. 래원 피디님은, 좋은 드라마는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세요? 좋은 드라마의 필요충분조건이랄까요?”
강채령의 진지한 질문에 래원은 마시던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음, 좋은 드라마라···. 이 와인에 비유를 해볼게요. 최상급 와인이 되려면 아무래도 원재료인 포도가 최상급이어야 하죠. 그러려면 우선 양조장의 토양과 지형 조건, 기후 조건이 좋아야 하고요.”
“포도에 해당하는 게 대본이겠네요? 그럼 와이너리의 환경 조건은 뭐예요?”
“작가와 연출자라고 생각해요. 프리 프러덕션 때부터 같이 대본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수정하면서, 드라마의 시작을 함께하는 창작진들이죠.”
강채령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 실력 좋은 양조가를 만나 제대로 된 양조와 숙성을 거쳐야 해요. 아무리 좋은 조건의 좋은 포도라 하더라도, 양조 과정이 엉망이면 말짱 꽝이에요. 이게 드라마에서는, 배우와 2차 창작 스텝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2차 창작 스텝들이라면···?”
“촬영팀, 그립팀, 조명팀, 미술팀, 의상팀, 분장팀, 소품팀, 편집팀 등등이요.”
“와아, 엄청 많은 팀이 붙네요.”
“개개인도 중요하지만 사실 팀원들간의 호흡이 더 중요해요.”
“아···. 그런 면에서 는 대본도 최상급, 와이너리도 수준급, 양조가도 실력파들이었던 것 같아요.”
“하하하. 쑥스럽네요.”
“결과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팀의 호흡도 괜찮았나 봐요?”
“다 같이 열심히 만들긴 했지만 저희 드라마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채령 씨.”
“감사하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세요!”
“부탁이요?”
“래원 감독님 차기작이 궁금해요. 친구니까. 제일 먼저 알고 싶어요. 어떤 포도로 어떤 와이너리에서 만들어지게 될지···.”
“하하. 그건 아직 저도 몰라요. 끝나면 차차 생각해봐야죠.”
“구체적이지 않아도, 어렴풋한 거라도 있지 않으세요?”
“으음···. 글쎄요.”
“어떤 장르를 찍고 싶다거나, 다음에는 이런 시도를 해보고 싶다거나, 아니면 특정 작가, 특정 배우랑 작업해보고 싶다거나 그런 거라도요.”
“지금 물어보셔서 막 생각난 건데요,”
래원의 말에 강채령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눈을 빛냈다.
“시들어 말라버릴 위기에 처한 최상급 포도를, 잘 살려서 최고의 와인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강채령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연했다.
이는 래원만 이해할 수 있는 비유였으니까.
씨익 웃으며 지난 삶의 한 작품을 떠올리는 래원.
새해가 밝으면 이제 곧 SBC 드라마국에 기획안과 대본 하나가 돌게 될 것이다.
래원의 취향이면서도 작품성이 무척 뛰어났던 그 작품은 당시 옥영임 작가가 쓴 대본이었다.
그때 담당 PD였던 선배가 건강 문제로 버티다가 방영 도중, 중도 하차했더랬다.
그 선배의 건강도 악화되고 드라마도 망하고.
여러모로 안타까웠던 작품.
‘그 드라마를 이번 생에 내가 살려보면 어떨까? 시들지 않도록!’
래원의 입꼬리가 자신만만하게 올라갔고,
영문을 모르는 강채령은 쉽게 설명해달라며 래원을 재촉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최상급 포도가 시들어버릴 거라는 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92화 – 리디북스
몹시 궁금한지 안달 난 강채령.
래원은 그 모습이 재밌어서 쉽게 알려주고 싶지 않아졌다.
“그런 게 있어요.”
“아아 뭐예요! 알려줘요!”
“미안하지만 아직은 알려줄 수가 없네요.”
“왜요? 우리 친구라면서요! 나 비밀 완전 잘 지키는데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본이거든요.”
“··· 네에? 존재하지 않는다니요?”
“저만 아는 그런 대본입니다.”
“··· 그런 게 어딨어요?”
“여기요.”
래원이 짓궂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강채령이 입을 삐쭉이더니 래원을 향해 눈을 흘겼다.
“칫, 저 진짜 입 엄청나게 무거운데···.”
“하하. 정말로 아직은 공개되지 않은 거라 알려줄 수가 없어요.”
“······.”
“대신, 공개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채령 씨한테 제일 먼저 알려줄게요.”
“··· 정말이죠? 약속하시는 거죠?”
“그럼요.”
이내 강채령의 표정이 환해졌다.
세상 도도한 얼굴을 하는 그녀가 드라마에 관해서는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모습.
그래서 래원은 자꾸만 그녀를 놀리고 싶어졌다.
그녀와의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집에 돌아오는 길.
의 ‘SBC 연기 대상’ 전 부문 노미네이트 소식에 팀원들의 단톡방이 들썩였다.
래원은 팀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뿌듯해졌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래원은 20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편집실에서 유찬과 함께 보냈다.
이에 유찬은 서글퍼했지만
래원은 행복했다, 진심으로.
‘지난 삶에서는 하고 싶어도 못 했던 드라마를 이렇게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지 감사한 일이지.’
어느덧 드라마 전체 16부 중, 단 4부.
즉, 2주 분량 방영분만을 앞두고서 래원에게도 여유가 찾아왔다.
그리고 12월의 마지막 날이자 SBC 연기 대상 날이 다가왔다.
* * *
SBC 신관 앞에 커다란 현수막이 붙었다.
[ 2022 SBC 연기 대상 ]그리고 그 앞에 길게 놓인 레드 카펫과 포토존.
찰칵찰칵칵-
찰칵카칵-
래원은, 6명의 배우 함현우, 원준혁, 우종세, 엄하늘, 류소현, 그리고 도래미와 함께 그 위를 걷고 있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와 폭죽 같은 연사 셔터음을 들으면서 말이다.
매일 출퇴근하며 지나는 길이지만 오늘은 카펫 하나로 굉장히 특별한 길이 되어버렸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래원은 오늘 시상식에 큰 기대나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사내 시상식에는 미련도 욕심도 없어. 매년 돌아가며 나눠 먹기 급급한 시상식인 거 다 아는데, 뭐···. 우물 안 개구리로 만족할 생각도 없고···.’
그저 같이 고생하며 드라마를 만든 팀원들이 빛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 래원에게 오늘 시상식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였다.
때문에 환히 웃으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줄 수 있었다.
시상식의 포문을 여는 축하 무대.
원더빅 엔터테인먼트의 메인 보이 그룹 ‘샤이닝 보이즈’가 등장했다.
‘래미도 내년에는 저렇게 무대에 서는 건가?’
래원은 이 같은 생각을 하며 옆에 앉은 래미를 힐끔 쳐다보았다.
무대를 향한 래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래미의 데뷔가 코앞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
가장 가운데 앞쪽 테이블을 배정받은 팀은 오늘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에 빛나고 있었다.
‘작품상’은 물론이고,
‘각본상’에 차여름, 차가을
‘연기상(대상·최우수·우수)’에 함현우, 원준혁, 우종세
‘조연상’에 엄하늘, 류소현
‘청소년 연기상’에 도래미
그리고 ‘베스트 커플상’에 함현우♡류소현, 원준혁♡엄하늘까지
거의 전부문에 후보로 오른 상태였다.
래원은 옆 테이블을 슬쩍 보았다.
팀은 일부 배우와 명희경 작가, 임장호 선배만 썰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래원의 판단으로 저 작품은 이번 생에서의 방영 시기가 지난 삶보다 많이 당겨진 것이, 작품 흥행에 악재로 작용했다.
최근 트렌드이자 당분간 대세는 사극보다 시청자들의 감정이입과 몰입이 쉬운 현실적인 작품들이었으니까.
혹은 아예 현실을 잊게 해줄 판타지 장르가 앞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