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95
축하 공연 이후에 본격적인 시상식이 진행되며
‘베스트 커플상’에 함현우♡류소현, 원준혁♡엄하늘이 호명됐다.
다른 드라마까지 총 5커플, 10명의 배우가 무대 위로 올라가 시상식의 분위기를 띄웠다.
성격 시원시원한 원준혁 및 엄하늘과, 무대에서도 낯을 가리는 함현우 및 류소현이 대조적이라 래원의 입장에서는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음, ‘청소년 연기상’도 공동 수상이었다.
도래미의 이름도 이 3명의 수상 명단 중에 포함됐다.
원더빅의 데뷔 트레이닝 덕분인지 래미는 긴장하는 모습 없이 씩씩하게 수상 소감을 말했다.
“현세민은 저를 많이 닮은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 덕에 행복했고,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저를 믿어주시고 이 역할 맡겨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내년에 여러분께 인사드릴 신인 걸그룹 ‘브라이트 걸스’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아!”
래미가 특유의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며 밝게 인사했다.
이어서 각본상에 차여름과 차가을이 호명됐다.
래원이 고개를 슬쩍 돌리자 명희경 작가의 굳은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래원으로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바였다.
‘저 작품도 대본 자체로는 꽤 괜찮았는데···. 우리랑 붙어서 대진운이 안 좋았지.’
차여름과 차가을이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한 사람은 트로피, 한 사람은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마이크 앞에 섰다.
“대본을 쓴다는 건 원래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지만 이번에는 차여름 작가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도래원 감독님이 매번 아이디어와 힘을 보태주셔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을 비롯한 우리 팀 모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드라마를 함께 완성 시켜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조연상은 2명 공동 수상이었다.
엄하늘과 류소현.
두 배우는 수상 이 전에 조연상 노미네이트와,
그리고 애초에 남자 배역 위주의 작품에 출연을 결정 했다는 것 자체로 과거에도 이슈가 됐었다.
사실 엄하늘은 각종 시상식에서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을 골고루 받아본 이력이 있었으나 조연상은 오늘이 처음이었으니까.
“작은 배우는 있지만 작은 역할은 없다고 했습니다. 상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값진 조연상 받게 해주신 SBC 관계자분들과 도래원 감독님 이하 우리 모든 스텝, 배우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류소현도 몇 달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지만 오늘은 조연상을 거머쥐었다.
“하늘 언니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저라는 작은 배우에게, 큰 역할 맡겨주신 도래원 감독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감독님 덕분에 공황장애를 이겨내고 작품을 연이어 할 수 있게 됐거든요. 앞으로 더욱 다양한 모습 보여드리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겸손한 태도에 관계자와 시청자들은 응원의 눈길을 보냈다.
이제 가장 기다리던 부문.
남자 우수 연기상에 우종세 배우가,
남자 최우수 연기상에 원준혁 배우가 호명됐다.
‘에이, 함현우 형도 우수든 최우수든 하나는 받길 바랐는데···. 아쉽네···.’
오늘 시상식 과정과 결과에 별다른 미련을 갖지 않던 래원이, 유일하게 아쉬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우종세의 수상 소감은 평소의 그 답게 진중함과 농담 사이의 아슬아슬한 선을 타며 재밌게 진행됐고,
원준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몰아주기 논란이 생기거나 분위기가 싸해질 법도 한 데, 이견이 없었던 만큼, 그리고 두 배우가 유쾌하게 분위기를 띄워준 덕에
시상식은 물 흐르듯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작품상.
가 불리자 래원은 무대 위로 떠밀리듯 올라갔다.
“이번 드라마를 만들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시도로 원작을 뛰어넘으려는 욕심보다는 원작에 충실하되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 사람을 살리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는 제가 판단할 수 없고, 봐주시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기회가 있다면, 이번에 못 해본 새로운 시도의 드라마로 인사드릴 수 있게 안주하지 않는 감독이 되겠습니다. 저희 드라마 남은 4회 방영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래원이 수상 소감을 마무리하는 찰나,
엄장호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눈을 피하는 그.
한때 사수로 모셨던 선배이기에 래원은 그의 그런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보통 이렇게 한 팀에게 상이 많이 몰리면,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대상은 다른 팀에 주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래원을 비롯한 팀원들은 오늘 시상식의 볼 장은 다 봤다고 생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피날레를 관전하고 있었다.
“2022 SBC 연기 대상, 대상···.”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시상이 이어졌다.
“의 장모건 배우.”
2층 객석에서부터 박수와 환호가 울렸다.
장모건 배우의 팬클럽 소리인 듯했다.
“그리고, 의 함현우 배우. 두 분 공동 수상 축하드립니다!”
대상 공동 수상은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그리고 이는 오늘 시상식에서 래원이 유일하게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였기에,
래원을 비롯한 팀원들은 함현우의 이름을 들은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가 함현우를 감싸 안고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지금 이 순간 래원의 머릿속에는
함현우가 래원의 손을 잡으며 힘겹게 복귀를 택하고, 카메라에 적응하기 위해 뒤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준비를 해왔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함현우가 먼저 마이크 앞에 섰고,
몹시 긴장한 듯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수상 소감을 준비 못 했는데요, 가장 중요한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도래원 감독님의 손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산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제 연기를 다시 좋게 봐주신 시청자분들께도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더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함현우가 꾸벅 인사를 하며 도망치듯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래원과 원준혁에게 달려왔고, 세 사람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뒤이어 장모건 배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장내에 울려 퍼졌다.
담대한 태도가 인상적인 배우였다.
“연기에 갈증이 있던 시기에 이번 드라마를 만났습니다. 원 없이 로맨스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저를 닮은 배역을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가능한 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직 차기작은 없지만, 뭐가 됐든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역에 도전하는 배우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의미심장한 수상 소감.
적어도 래원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장모건 배우와 눈이 마주쳐서 그런 것일까?
앞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했던 래원의 수상 소감과 일부분 겹쳐서 그런 것일까?
‘저 배우 아직 20대잖아? 대상을 받으면서 하나도 안 떠네? 재밌는 친구다.’
누가 먼저 쳐다본 것인지 가르기 힘들 정도로,
무대 아래의 래원과 무대 위의 장모건은
서로를 지그시 보며 그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언의 교감을 했다.
덕분에 래원에게는 장모건을 향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이제 2022년을 30분 남짓 남겨두고 오늘의 SBC 연기 대상이 모두 끝났다.
집에서 이 시상식을 TV로 관전하며
이제 올해는 보내고, 내년의 태양을 기약하는 사람 중에는
하인혁도 있었다.
“도래원, 이번 드라마는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네···. 하지만 내년에는 절대 양보 못 하지. 다음 저 자리는 내가 오를 거니까.”
하인혁은 탁자 위에 올려둔 대본에 손을 뻗었다.
이라고 적힌 제목의 미니시리즈였다.
실제로 카이스트를 졸업하여 이공계 출신인 하인혁이 자신의 학부 전공을 살려서 야심 차게 준비 중인 드라마.
하인혁은 대본을 훑어보며 눈썹을 꿈틀거렸고,
이내 작정하고 칼을 가는 듯한 표정이 됐다.
한편, SBC 연기 대상을 지켜본 후,
새해의 태양이 얼른 밝아오길 기다리는 이가 또 있었으니···
바로 민세라였다.
과거 민세라는,
남자 주연 위주인 래원의 드라마와
여자 투탑 주연의 영화 시나리오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후자를 택했더랬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현재 영화 촬영을 마치고 달콤한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그녀.
“그때 기약했던 다음을 이제 준비할 때가 된 것 같네?”
민세라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다음 달부터 홍보 일정을 소화하게 될 것이다.
큰 이변이 없다면 민세라의 인지도와 인기는 전보다 오를 것이며,
이는 차기작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내 차기작이자, 어쩌면 래원 감독의 차기작 말이야.”
무슨 생각인지 민세라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 * *
제야의 종이 108번 울리자 새해가 밝았고,
한국 특유의 나이 셈법에 따라 이제 래원의 나이 앞자리는 3으로 바뀌었다.
허나 래원의 아침은 달라지는 것 없이 침대 속에서 휴대폰을 보며 꾸물거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디스타임은 이번 새해에도 벽두 새벽부터 특집 기사를 냈다.
[ 해맑은 음색의 소유자 ‘에이플’ 알고 보니 학폭 가해자? ] [ 에이플, 학창 시절 에이급 일진 출신? ] [ 에이플의 에이급 학폭 논란 – 화장실에 가두기, 속옷 벗기기, 억지로 물 먹이기 ··· 끝없이 쏟아지는 폭로! ] [ 천사같은 얼굴 뒤에 숨겨진 악마? 계속해서 쏟아지는 ‘에이플’ 학폭 증언 ] [ 에이플, 학폭 전면 부정에 일파만파 퍼지는 피해자 단톡방 대화 ]래원의 기억 그대로였다.
“기사 내용도 똑같네.”
에이플은 전에 하람 음악감독이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 OST 의뢰로 추천했던 여자 솔로 가수였다.
현재, 마지막 4화 분량 방영을 앞둔 시점에서 에이플과 엮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이미 종편 다 끝내고 넘겼는데 OST 때문에 다시 편집하라 그러면 환장하지. 뒷감당도 골치 아프고.”
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새삼,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인생과 그로 인해 지금처럼 누릴 수 있는 여유에 감사했다.
“올해도 열심히 치고 올라가 보자, 내 인생.”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차기작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래원은 그간 작품을 하면서 시청률이나 시청자 반응에 신경을 많이 써왔다.
드라마 PD로서 응당 그렇게 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그리고 매번 스스로의 기록을 경신하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쌓아왔다.
하지만 다음 작품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색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 소감으로 했던 말은 은연중에 튀어나온 진심이었다.
“혹여 다수 대중의 반응을 얻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로, 오래오래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남들이 들으면 건방지게 볼 수도 있으나 이전의 삶에서부터 한 번은 꼭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시청률이나 상업성 같은 숫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드라마 말이다.
“그래서 백상이나 권위있는 해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을 수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내가 스스로 만족한다면 그걸로도 충분하고.”
이러한 생각에 잠기며 손가락으로는 휴대폰 속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알람들을 처리하는데,
메일 한 통이 와있었다.
이탈리어 제목이 달린 메일.
“어? 보욜라 선생님 소식인가?”
놀란 래원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메일을 열어보았다.
알 수 없는 이탈리어 뒤로,
저번처럼 한국어 번역본이 붙어 있었다.
「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연락 드린 적 있는, 세르지오 보욜라 선생님의 변호인입니다. 보욜라 선생님의 유언에 의거한 변호인단의 판단으로, 도래원 감독님의 상속 집행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따라서 보욜라 선생님의 유산 중 당신의 몫이 곧 상속 절차를 밟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
래원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는 다시 메일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 유산? 보욜라 선생님이 나한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93화 – 리디북스
「 이하 내용은 세르지오 보욜라 선생님의 유언 상속문 중에 당신에 관한 부분을 발취한 것입니다. 」
래원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려 다음을 확인해보았다.
「 원하는 장면을 찍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던 도 감독의 모습, 그러면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지치지 않도록 챙기던 모습이 나의 마지막 삶에 많은 귀감이 됐습니다. 당신의 이번 드라마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성공한다면, 나의 유산 40만 유로를 당신에게 기꺼이 투자하겠습니다. 이걸로 다음에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주세요. 나의 유산이 그토록 값진 일에 쓰일 수 있다면 나는 죽어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부디, 행운을 빕니다. 」
40만 유로면 지금 2023년의 1월의 환율로 약 6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래원은 어안이벙벙했다.
이게 꿈인가 싶다가도,
다시 눈을 떠서 메일을 읽어보면 현실이었다.
“아직 종방도 안 한 내 드라마가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라? 변호인단이 그렇게 판단한 건, 어제 연기 대상 때문인 건가?”
물론 시청률이나 화제성도 이를 입증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먼 이탈리아까지 이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 래원의 입장에서는 신기했다.
“K팝, K무비에 이은 한류 열풍의 다음 주자는 K드라마가 될 거긴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래원이었으나,
그것이 지난 삶에서와는 달리, 남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쁨과 놀라움이 솟구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 * *
며칠 뒤.
SBC 드라마국.
“페르소나?”
황태수 부장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금 막 입수된 옥영임 작가의 신작 기획안과 대본 1, 2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가슴 시린 서스펜스 드라마라···. 막장 드라마의 대모 옥영임 작가가 드디어 자기 복제에서 탈피하는 건가?”
▶ 로그라인 :
이란성 쌍둥이 형제가 불의의 사고로 서로 뒤바뀌며 서로의 페르소나(가면)이 되어버린 후, 각자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여정.
황태수는 기획안 첫 페이지부터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어 읽기 시작했다.
▶ 시놉시스 :
배우의 꿈이 좌절되고 연기 강사로 생활을 이어가는 요한(형)과 유명 배우 유진(동생).
서로 쌍둥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외모도, 상황도, 성향도 정반대라 서로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대립하던 이란성 쌍둥이 형제는,
불의의 사고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서 영혼이 뒤바뀌는 믿지 못할 사건을 당면한다.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며 서로가 되어버린 그들.
그제야 비로소 그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서로를 진정 이해하게 되지만,
그러자 두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마는데···.
“윤 피디, 이거 재밌겠는데? 느낌 완전 굿이야, 굿! 간만의 복귀작, 잘 해봐!”
“그래야죠. 잘 부탁드려요, 형.”
황태수가 윤 PD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상기된 목소리로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넸다.
윤 PD는 몇달 전 복막염 수술을 받고 휴직했다가 어제 막 복직한 중견 PD였다.
원래도 마른 체형이었으나 그간 몸이 많이 아팠는지 살이 10kg 이상 빠졌더랬다.
거뭇거뭇한 안색에 광대뼈가 드러난 얼굴로 환하게 웃어 보이는 그였다.
“······.”
래원은 자기자리에서 둘의 대화를 들으며, 윤 PD를 살폈다.
올해 9월 편성을 받은 16부작 드라마 .
옥영임 작가가 처음으로 도전한 서스펜스 극이었다.
그녀로서는 특유의 막장 농도를 많이 낮췄으나,
시청자들 사이에서 ‘옥영임표 막장 서스펜스’ 평을 들으며 상당한 기대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드라마다.
덕분에 그녀의 드라마 중 유일하게 작품성에서 높은 평을 받았었다.
래원의 취향에도 부합해서 래원 역시 좋게 봤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문제는 윤 PD였다.
몇 달 후, 그의 복막염이 만성으로 재발했지만 그는 이를 숨기면서까지 촬영을 포기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거의 생방송으로 찍다가 결국 현장에서 쓰러졌더랬다.
결국 드라마도 용두사미로 망해버리고,
윤 PD의 건강도 암으로 번지면서 크게 악화된다.
이 모든 것을 아는 래원은 모른 척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 채령 씨가 내 차기작을 물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났던 작품인 만큼, 욕심나기도 하고···.’
윤 PD의 건강도 걱정이 됐고,
무엇보다 그때와 똑같은 전철을 밟기에는 대본 자체가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윤 선배의 저 의욕적인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떻게 빼앗아···. 못 해···.’
지난 삶. 과거의 래원 역시 몸이 축나는 줄도 모르고 드라마에만 매달리다가 백내장을 얻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