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52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건 의사나 한의사가 할 일, 나는 찾는 약초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남성이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예전의 은혜를 좀 갚고 싶어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네? 은혜요?”
“작고하신 아버님께 제가 빚진 은혜가 참 많아서요. 소박하지만 받아주시죠.”
그러더니 집밖에 있는 몇몇 남성들에게 선물을 들고 오라고 지시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남성들이 건네는 선물을 받았고, 그 선물은 다름 아닌 굴비세트였다.
“굴비 같은 생선이 귀한 줄 압니다. 특산지에서 특별히 공수해온 것이니 맛있게 드시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중년 남성이 가려는 것을 붙잡았다.
“제가 차 한 잔 대접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바빠서. 다음에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중년 남성은 몇 마디 말을 남기곤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굴비세트를 양손에 들고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당최 무슨 일이람.’
네 가지의 특전이 동시에 발휘되더니 굴비세트가 내 손에 들어온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실실 웃음만 나왔다.
***
“굴비세트를 그냥 주고 갔다고?”
“네. 그렇다니까요. 이장님.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하하하하.”
이장님이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리곤 덥수룩하게 난 수염을 긁적이며 말씀하셨다.
“내 말하지 않았나. 전국 팔도에서 소문 듣고 찾아올 것이라고. 그래서 은혜를 갚으러 왔다는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물어볼 겨를도 없었어요. 어찌나 순식간이던지, 몇몇 남자들이 들어와서는 제 손에 굴비세트를 건네더니 순식간에 인사하고 가버리더라고요.”
“겉모습이라도 알지 않나?”
“나이는 저보다 한 10살 정도 많아보였고, 부하 직원을 대동하여 찾아온 것 보니까 중견기업 회장 정도로도 보였고요.”
“음. 나도 모르겠다. 내 얼굴을 아는 놈이면 인사라도 한번 하고 갔겠지. 아마, 자네 아버지가 살린 사람 중 한명일 수도 있고.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그럴 수가 있나요. 저도 빚지는 건 싫어하는 성격이거든요.”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해. 그러니까 도일이 너는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될 일이야.”
하긴, 감나무에서 인연의 특전이 발휘됐으니까, 나하고 언젠가 인연을 맺을 사람인 건 맞겠지.
그런데, 아버지의 유산이라.
시골집 하나가 전부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유산은 전국 가지에 흩어져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좀 부담스럽다.
아까처럼 부하 직원들을 대동해서 오는 건 또 뭐람.
“이장님. 가만히 숨만 쉬고 살아도 굶어죽진 않겠습니다.”
실없는 농담을 하니 이장님께서 ‘예끼’하며 털털히 웃으셨다.
“아주 좋은 삶이네 그려. 허허허.”
아버지가 뿌린 인망의 씨앗이 숲이 되었다.
어디선가 해일이 되어 다가올 그 숲은 내게 풍요로운 삶을 주겠지.
그런데 이젠 나도 뿌려야 할 때가 아닌가.
나도 인망의 씨앗을 두루두루 뿌려서 언젠가 숲이 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까 중년 남성이 굴비를 주고 간 이후부터 꽤 많은 손님들이 우리 약초원을 찾아왔다.
젊은 모녀가 찾아왔다. 딸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우울증에 걸렸다며 좋은 약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렵게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초는 우리 집에 있었다. 허브차와 같은 향이 짙은 꽃차가 우울증에 좋지만, 우리 집은 평범한 꽃차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약초를 배합한 특전이었다.
산수유나무의 뿌리와 화살나무의 가지를 배합하면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웃음의 특전이 발휘됐는데, 과거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처방해준 특전의 약초였다.
“이걸 드시면 꼭 기분이 나아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모녀를 보내고 또 한참 동안 잠잠하다가 이내 시끌벅적한 손님들이 대거 들어왔다.
학생들이었다.
집중력에 좋다고 소문난 꽃차를 사러 왔다고 한다.
아마도 철수의 아들 지훈이가 온 마을에 소문을 내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매출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장미꽃 차는 한 사람당 한 통씩!”
“네!”
학생들이 빠진 뒤에야 약초원은 또 다시 잠잠해졌으나, 뒤이어 어르신들의 방문이 줄지어 이어졌다.
무릎이 좋지 않은 할머니와 기침을 동반한 가래가 끓는 어르신, 화병이 도져 불면증을 겪는다는 분까지.
저마다 찾는 약초가 다양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찾아오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하나 씩 있었다.
“한 여름에도 감나무에 감이 맺힌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우리 집의 감나무를 기억했다.
여름에도 실하게 맺힌 감을 보며 저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한 어르신은 하나만 따다 먹어보자고 했다.
게다가 감나무의 잎과 가지를 좀 사갈 수 있겠느냐며 내게 통사정을 하는 어른도 계셨다.
감나무는 판매 목적이 아니라고 정중히 말씀을 드리는 게 맞지만, 그럴 때마다 감나무에서 인연의 특전이 발휘되었다.
인연의 특전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
게다가 아버지가 뿌린 인망의 씨앗은 인심과 덕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후하게 열린 감나무의 감을 오는 손님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감잎을 원하는 분에게는 감잎을, 가지를 원하는 분에게는 가지를.
그랬더니 몇 시간 만에 감나무에 열린 감이 단 두 개를 남겨두었다.
나머지 두 개는 더 중요한 손님이 와서 찾아 먹겠지.
때마침, 까치가 감나무 가지에 올라가 감을 쪼아 먹었다.
마지막 손님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감나무의 감은 모두 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휑한 감나무를 바라보며 허망함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주지 말고 내가 먹거나 팔아 버릴 걸 하며 후회를 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무는 어딜 가지 않는다.
한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며 또다시 싱그러운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욕심이 사라졌다.
감나무의 꽃말이 소박함이듯 나 또한 소박하게 살고 싶다.
늦은 저녁이 돼서야 손님의 발이 끊겼다. 오늘은 꽤 많은 매출을 올렸지만, 사실 돈 보다 더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자라나는 약초였다.
하루 동안 판매했던 약초의 양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뿌려 성장의 물을 주면 금시에 싹이 올라왔다.
그렇게 약초원의 하루는 저물어갔다.
***
약초원을 폐점했으니 저녁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한 손에는 굴비를 챙겼다.
혼자 먹기에는 꽤 많은 양이라 어르신들과 나눠먹고 싶었다.
“황궁아! 황복아! 산책 가자!”
산책하자는 말 한마디면 황궁이와 황복이는 알아서 준비를 했다.
황궁이는 외양간에서 슬그머니 나와 내 뒤로 바짝 따라 붙었고, 황복이는 스스로 개 목줄을 내게 건넸다.
황복이에게 목줄을 채운 뒤 나는 집 밖으로 나섰다.
평일 초저녁의 마을은 매우 조용했다. 집집마다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굴뚝의 연기에는 하루의 고단함을 모두 날려 보낼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겠지.
마을의 초입으로 향했다. 그곳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는 피부를 진정하는 효능이 있다. 과거 유년시절 얼굴에 홍조를 겪었던 때 아버지께서 아카시아 꽃을 덖어 내게 달여 줬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카시아 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F급 아카시아 나무] [효능] – 없음‘어? 왜 효능이 없지?’
그런데, 아카시아 나무가 이상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마을 초입의 국도변에서 자생하는 아카시아 나무는 B급이었는데, F급으로 변해 있었다.
‘병에 걸린 건가.’
가까이 가서 다가가보니 잎의 표면에는 흰색의 작은 반점이 촘촘히 퍼져 있었다.
‘흰가루병이다.’
나무가 걸리는 병중에 가장 흔한 병이었다. 흰가루병은 잎줄기와 꽃을 공격하는 곰팡이에 의해 감염되는데 흰 반점이 잎에 퍼지게 되면 광합성에 방해가 되어 잎이 서서히 말라죽게 된다.
‘그래서 효능이 없었구나.’
가로수 관리는 군청에서 했기 때문에 나는 군청에 연락을 취하여 아카시아 나무에 흰가루병이 퍼졌으니 방제 작업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알렸다.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그랬던 걸까.’
최근 비가 많이 오고 습도가 높아 흰가루병이 퍼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흰가루병을 초기에 발견한 것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아카시아 나무의 군락지가 모조리 흰가루병에 걸릴 뻔했다.
-월! 월! 음메!
황궁이와 황복이가 내게 잘했다며 칭찬이다.
나도 내심 뿌듯했다.
오늘은 여러 사람들에게 약초를 판매했거니와 아카시아 나무도 살리지 않았는가.
‘또 움직여볼까!’
***
나는 녀석들을 데리고 마을 어귀를 돌았다.
마을을 산보하던 때에 어디선가 아이들이 웃음 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을 따라 걸어보니 곤충채집망을 들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최 영감님이 계셨다.
“영감님.”
“도일이냐?”
아이들은 황궁이와 황복이를 보자마자 신나서 난리다.
월! 음메!
아이들과 녀석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영감님과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은 시골에서 흔치 않은 생경한 광경이었다.
동화 속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영감님께서 말씀하신 손주인가 봐요.”
“맞아. 쪼끄만 손주들이지. 허허. 요놈들이 곤충 잡기를 좋아해서 오늘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곤충을 잡았다.”
“체력은 괜찮으세요?”
“저번에 자네가 준 우슬 덕분에 무릎은 충분히 버틸만해.”
“다행이네요.”
날이 서서히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이제 서서히 이동을 해야 할 때.
우리는 논둑을 걸었다.
이대로 쭉 걸으면 마을을 횡단하는데, 집으로 향하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집 공사는 잘 되세요?”
“그럼. 인부들이 열심히 해주는 덕에 이번 달 안으로 완성이 될 것 같아. 구경 한 번 가볼래?”
“네!”
최 영감님은 폐가를 허물어 새 집을 짓는다고 하였는데, 공사가 꽤 진행됐다고 한다.
우리는 논둑을 걸어 최 영감님이 예전에 살았던 폐가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 폐가는 모두 헐었고 집을 새로 짓기 위한 기초공사를 진행 중인 것 같았다.
“휑하지?”
영감님이 허심탄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집이 사라졌으니 씁쓸해 할만 했다.
하지만 영감님은 단순히 집이 사라짐을 추억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나의 시선에는 마당 한편에 우뚝 솟은 소사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과거 서울에 살던 최 영감님의 다가구를 방문했을 때도 소사나무 분재가 있었다.
생긴 것이 비슷했으니, 영감님은 시골집을 추억하기 위해 소사나무 분재를 키웠다.
그런데, 시골집의 소사나무가 이상했다.
[F급 80년 소사나무]효능 – 나무의 뿌리는 신장과 비장의 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평가 – 상태가 좋지 않은 소사나무
“소사나무 상태가 좋질 않네요.”
최 영감님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최 영감님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제 죽어가는 것 같아.”
나는 소사나무 앞으로 향했다. 80년의 소사나무였다.
그 풍채와 위엄은 압도적이었으나 잎이 삐쩍 말랐고 가지에는 수분기가 없었다.
가지를 만져보면 느껴진다.
가지를 조금만 휘어보면 살아 있는 가지는 탄력이 있는 반면, 죽은 가지는 수분기가 말라 뚝하며 부러진다.
지금의 소사나무가 그랬다.
하지만 나무의 뿌리는 아직 살아 있는 듯 보였다.
“그래도 80년을 키우셨는데 보내기에 아쉽지가 않으세요?”
“아쉽지. 내가 태어난 해에 아버지가 직접 심으신 나무거든.”
“아···”
“그래도 어쩌겠나. 나무도 저마다 수명이 있다고 하는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가 없는 것이지.”
최 영감님이 아쉬운 감정을 표하며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는 천년만년 살아갈 수가 있다.
나무가 죽는 것은 관리를 하지 못한 탓이다.
적절한 방제를 해줘야만 충영을 방지할 수가 있다. 겨울에도 냉해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리를 해줘야만 한다.
그런데 최 영감님 집의 소사나무는 꽤 오랜 시간 홀로 방치된 상태로 버텨 나가고 있었다.
이제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지.
“치료를 하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소사나무를 살려보겠다고?”
“일단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최 영감님에게 굴비를 나누어 준 뒤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나무를 살리는 건 내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
‘죽어가는 소사나무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방법이 있다. 영양제를 투여하는 것과 뿌리를 발근하여 직접 살펴보는 것, 동해를 입거나 탄저병에 걸렸다면 약품 처리를 하면 낫기도 한다.
그런데 상기의 과정은 전문적으로 배워야만 시도할 수 있는 치료법이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전혀 다른 방법을 써볼 생각이었다. 우리 집만의 특별한 물과 흙을 이용해볼 참이었다.
‘강화한 물과 흙을 이용해볼까.’
성장의 물을 담고 흙을 퍼서 폐가의 소사나무에 뿌려보았다.
반응이 나타나길 몇 분이나 기다렸을까.
소사나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성장의 물과 흙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약초를 달여 만든 물을 뿌려줬음에도 소사나무는 생기를 잃은 듯 F급을 계속 유지했다.
‘흠···’
답답할 노릇이다.
사람처럼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해준다면 좋을텐데, 나무는 말이 없지 않은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특전의 힘을 조사해보았다.
어쩌면 나무를 살리는 나무도 있지 않을까 싶어 우리 집에 심어놓은 약성 좋은 나무를 이용하여 배합해 보았다.
하지만, 딱히···성과가 없었다.
‘아버지의 서책을 살펴볼까.’
늦은 밤, 아버지의 서책을 뒤져보아도 나무를 살리는 방법에 대해선 따로 기술하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도 나무를 살린 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집중력을 향상합니다!]장미꽃 차 한 잔을 마신 뒤 깊은 사색에 빠졌다.
간혹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을 때 깊은 생각을 하면 답을 얻곤 했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 바라보았다.
황궁이가 내게 다가왔는데, 황궁이의 입에는 감나무의 잎이 물려져 있었다.
“황궁아, 감잎으로 뭘 하라는 거야?”
황궁이는 이내 용안육과 설강화 꽃잎을 입으로 물어와 툇마루에 올려놓았다.
황궁이가 올려놓은 약재는 총 세 가지였다.
감잎과 용안육, 설강화 꽃잎이었다.
용안육과 설강화 꽃잎을 배합 강화하면 기억의 특전을 발휘하는 능력이 생긴다.
그런데 거기에 감잎을 더해보라는 걸까?
“세 가지를 배합해보라는 거야?”
-음메!
황궁이의 뜻대로 세 가지의 약초를 작업대에 올려보았다.
[대장인 작업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강화 대상을 작업대 위에 올려 주십시오.] [S급 용안육] [A급 설강화 꽃잎] [B급 감나무 잎]세 가지의 배합은 처음이지만 왜인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배합 강화시 소모되는 금액은 십만 원입니다.] [금액은 자동차감 됨을 알려드립니다.] [두 가지의 약초 배합에 성공할 확률은 10%입니다.]그렇게 수어 번의 시도 끝에 강화에 성공했다.
특전 – 『감나무의 기억』
‘감나무의 기억이라니?’
기억의 특전을 발휘하는 약초 두 가지와 감잎을 배합했더니 감나무의 기억이라는 특전이 발생했다.
호기심이 일었다.
당장 세 가지의 약초를 끓는 물에 달여 차로 만들었다.
물보다는 탁한 색의 차가 완성됐다.
찻잔에 따른 뒤 툇마루에 앉아 한 입 마셔보았다.
‘대체 무슨 특전일까.’
처음에는 이렇다 할 반응이 나타나질 않았다. 그저 『감나무의 기억』특전이 발생했다는 정보창만 발현될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나도록 무반응인지라, 나는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감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감나무를 손으로 짚자마자 머릿속에서 번개가 내려치는 기운을 받았다.
‘이건······’
이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250년간 한곳에서 뿌리내린 감나무의 기억을 온전히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감나무를 처음으로 심은 사람은 누구이며, 250년의 세월동안 누가 이 집을 오갔으며, 내가 췌장암에 걸려 이 집에 들어왔을 때까지.
감나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무의 기억을 볼 수 있다니···’
내 머릿속 기억을 들추어서 꺼내보는 것보다 더 재밌었다.
나는 한참동안 감나무의 기억을 여행했다.
이 능력은 내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감나무는 우리 집의 역사와 나고 자란 모든 것을 기억했다.
‘대박인데?’
그 기억의 방대함을 어찌 한 순간에 파악할 수가 있겠느냐 많은, 언젠가 가장 궁금했던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250년 전 우리 집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선조들이 궁금한 건 누구나 가지는 호기심이 아닐까.
우리 집의 감나무의 역사만 250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이면··· 1773년이다.
당시면 영조 때였다.
‘감나무야. 250년 전을 보여줘.’
눈을 감고 감나무의 기억을 공유 받았다.
감나무의 시선에서만 보이는 기억이라 시야가 다소 좁았다.
CCTV로 우리 집을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시야는 감나무가 묘목이었을 때 인 것 같았다.
내 눈앞에는 초가집이 보였다.
‘양반집은 아니었네.’
사대부 집안은 아니다.
어차피 큰 기대도 안했다.
그렇다고 쌍놈 집안은 또 아닌 것 같았다.
마당의 평상에 여러 사람들이 앉아 차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당시에 차를 즐기면 고급 취미가 아닌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를 봐서 파악하자면, 마을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차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러 사람들이 약을 타가는 것을 보아 한약방인 것 같기도 하다.
‘저건 하수오잖아?’
저마다 하수오를 한 뿌리씩 쥐고 있었다.
하수오라면 하얀 머리도 검게 만드는 약재인데···
‘250년 전에도 검은 머리에 대한 욕망이 있었구나.’
하긴, 회춘에 대한 욕망은 시대를 불문하겠지
그로부터 나는 우리 집의 역사를 면밀히 관찰했고, 1시간이 지나서야 특전의 힘이 끝났다.
‘재밌는 시간 여행이었어.’
사용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 우리 집의 역사가 궁금할 때면 수시로 살펴볼 수가 있었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영감님의 옛집에서 죽어가고 있는 소사나무가 떠올랐다.
소사나무를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특전의 힘을 알게 됐다.
심지어 영물인 황궁이가 내게 조합법을 알려주었다.
어쩌면···
소사나무의 기억을 확인하면 살려볼 수가 있지 않을까.
그러던 때였다.
황복이가 짖기 시작했다.
-월! 월!
녀석의 목에 걸린 망태기에는 소사나무 잎이 잔뜩 쌓여 있었다.
“소사나무를 배합해보라는 거지?”
-월!
말라 죽어가는 잎과 용안육, 설강화 꽃잎을 배합하였다.
그리고 나타난 특전은 [소사나무의 기억]이었다.
***
‘이게 가능할까?’
소사나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겉모습은 멀쩡한데, 속병을 앓고 있다고 봐야할까.
그래서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사람도 우울증에 걸리면 속을 관찰하듯이.
늦은 밤.
인적이 드나들지 않은 폐가에 소사나무 한 그루가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었다.
나는 소사나무에게 다가갔다.
“황궁아 내가 기억 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를 잘 지켜줘.”
황궁이와 황복이가 내 옆에 달라붙었다.
나는 소사나무의 거친 표면에 손을 대었다.
소사나무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나타나더니 내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소사나무의 기억을 공유 받았다.
마치, ‘내 얘기를 좀 들어주오.’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소사나무의 기억은 8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영감님이 막 태어난 해에 소사나무를 심었다고 했으니, 정확히 1943년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