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60
“당뇨를 고칠 약초 개발이 덜 됐다는 거지!”
“아···”
“천천히 하자. 명환아. 시골의 시간은 느리게 가는 법이야. 그리고 나도 엄청 느리고!”
“흐흐. 알았다. 그래서 당뇨를 고치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한데?”
“왜? 너도 도와주게?”
“팔 다리가 늘어나면 도움은 되지 않겠어?”
“재료를 구해야 돼. 너도 알다시피 당뇨에 좋은 나무를 구해야 하거든.”
명환이가 생각에 잠겼다.
녀석도 의사인지라 여러 가지 약초에 빠삭하다.
“당뇨에 좋은 나무라···그러면 솔잎이 최고지. 그런데, 솔잎은 널리고 널렸잖아. 지리산 자락에 널린 게 소나무인데. 뛰어가서 채집해서 올게.”
“맞아. 그런데 지리산의 소나무보다 다른 곳의 소나무를 이용하고 싶어서”
“……?”
“우리 초등학교 소나무, 기억 나냐?”
“우리 모교? 소나무?”
“같이 가볼래?”
명환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청승 실업 회장을 만날 생각에 들뜬 녀석인데, 갑작스러운 모교 방문에 복잡한 심정인 것 같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가서 소나무만 보고 오자는 거지.”
“그래. 가자.”
“가서 추억도 좀 곱씹어 보자고. 소나무와 추억이 많잖아?”
“정말 많지. 흐흐.”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소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줬으니까.
“얼른 출발해보자고!”
***
‘입추라 그런 가 아침 바람이 조금은 시원하네.’
아침 바람이 상쾌했다.
조수석의 창문을 열고 아침 바람을 맞던 명환이가 바깥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명환이가 나지막이 말문을 뗐다.
“우리, 몇 년 만에 가보는 거지?”
“졸업하고 처음이니까···40년 가까이 됐네.”
“참···시간 정말 빠르다. 40년 만에 초등학교를 방문하다니. 많이 변했겠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40년이면 건물을 헐고 다시 지어도 이상하질 않지.”
“학교로 향하는 이 도로도 전부 생경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어쩜 이렇게 많이 변했지?”
예전에는 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통학했었다.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던 곳은 이제 도로가 잘 깔려 예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때마침, 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차량을 학교 앞에 주차한 뒤 내렸다.
학교의 전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참동안 서 있었다.
무슨 감정이랄까.
유년 시절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이곳을 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치기어린 생각이 들었다.
“이야, 우리 학교 많이 변했네.”
명환이의 말처럼 학교는 정말 많이 변했다.
예전의 칙칙한 회색빛 학교가 아니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다채롭게 화사했다.
운동장도 예전의 흙바닥이 아니었다.
초록빛깔의 잔디가 깔려 있었다.
거기에 학교의 크기도 변했다.
예전에는 한 건물이 전부였거늘, 지금은 체육관과 급식소 건물이 보였다.
“명환아.”
“응?”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딱 하나가 있어.”
“뭐야?”
교문 너머에서 우뚝 솟아 바람에 살랑거리는 소나무를 손짓했다.
“소나무. 하나도 안 변했다. 그치?”
“그러네.”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변하지 않은 것은 교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소나무가 유일했다.
나와 명환이는 참 많이 변했는데.
소나무는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부으응!
때마침, 어디선가 거센 배기음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고급 외제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만 봐도 누구의 차인 지 예상할 수 있었다.
차량의 주인공은 봉선이었다.
봉선이가 우리 앞에서 멋지게 주차한 뒤 차에서 내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손가락에는 금반지, 손목에는 금팔찌와 목에는 금을 휘감고 온 봉선이의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다.
명환이를 만난다고 했으니 한껏 차려입고 왔나보다.
“봉선아 왔냐?”
차에서 내리는 봉선이를 보며 말했다. 봉선이가 씩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화창한 날씨에 사내 둘이서 뭐하는 거야. 데이트 중이야?”
“학교 데이트.”
“아침부터 무슨 학교 구경이야?”
“명환이가 산수 마을에 내려온 기념으로. 옛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고 싶어서.”
봉선이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명환이에게 다가갔다.
예전에 명환이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을 때도 서로 보질 못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몇 년 만이지?
손가락 10개도 모자란다.
“명환아, 오랜만이다.”
봉선이가 명환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명환이가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악수했다.
“봉선이 멋있어졌네.”
“너도 의사 선생님 아니랄까봐 되게 중후하고 멋있다? 흰머리도 어울리네.”
“신경 쓸 게 많다보니 흰머리가 늘어.”
“나는 학자들이 흰머리 있는 게 멋있더라. 되게 똑똑해 보여.”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 흰머리가 늘어났다는 거는 신체에 활성산소가 많아져서 산화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뜻하거든. 쉽게 말하면 스트레스가 많다는 뜻이야.”
“와. 되게 학자다웠어.”
봉선이는 똑똑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나보다. 하여튼.
“가자, 내가 오늘 학교 구경 제대로 시켜줄게. 학교가 내건 아니지만 내 아는 지인이 행정실에서 근무하거든. 마침 당직서는 날이라서 괜찮을 거야.”
“봉선이 덕분에 학교도 구경하고. 고마워.”
“도일아. 나는 네가 무슨 부탁을 하던 다 들어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런 말 마.”
“얼른 가보자!”
교문으로 향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한 명씩 학교로 입성했다.
운동장을 정면으로 바라보자마자 느낀 점이 하나가 있었다.
바깥에서는 느끼질 못했는데, 실제 앞에서 보니까. 이거 웬걸.
‘운동장이 이렇게 좁았나?’
어릴 때는 매우 넓었던 것 같은데, 이제와 다시 보니 앙증맞게 작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운동기구와 농구골대, 축구골대까지.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렀고, 마침내 우리 시선에는 소나무가 가깝게 보였다.
그런데 작은 건 운동장뿐만이 아니었다.
“소나무가 생각보다 작았네.”
소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커 보였는데 지금은 생각보다 그리 커보이진 않았다.
어릴 때야 키가 작아서 우러러 봤다면, 지금은 고개만 살짝 들어도 소나무의 수형을 한 눈에 담을 수가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봉선이가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날이면 소나무 아래에서 솔잎을 먹곤 했잖아. 기억나냐 봉선아?”
“맞아. 그때 너도 같이 먹었지 아마?”
“신기해서 그냥 막 씹어 먹었지. 그렇게 맛이 없던데. 질겅질겅 씹으니까 또 넘어가긴 하더라고. 너는 어떻게 솔잎을 씹어 먹을 생각을 했어?”
“아! 궁금해? 얘기해줘?”
봉선이가 기억을 더듬었다.
“옛날에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게 없었거든. 그때가 도일이 너희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거야. 솔잎을 망태기에 담아서 채집하고 가시던데 내게 한입 먹어보라고 주시더라고.”
“그래서?”
“너처럼 질겅질겅 씹어서 목에 넘겼지. 그리고 맛있다고 했어.”
“하하. 그게 솔잎을 먹어본 첫 경험이었구나.”
“너희 아버지 덕분에 알게 된 구황작물이었지.”
우리는 소나무 앞에서 옛 기억을 한참 더듬었다.
명환이와 철수, 경훈이, 봉선이와 나.
같은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명환이가 말했다.
“옛날에 송충이 잡자고 했던 기억이 나네. 그때 아마 우리 선생님이 송충이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상장 스티커를 줬었지?”
“기억하는구나!”
“그때 내가 1등을 했으니까. 도일이가 2등이었고.”
소나무의 해충인 솔나방 송충이를 많이 잡으면 나무 지킴이라는 상장을 줬었다.
매번 명환이가 1등을 했었는데, 이참에 물어보고 싶다.
“너는 어떻게 송충이를 잘 잡은 거야?”
“바보들.”
“응?”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 학교의 소나무만이 아니었던 거야.”
“….아!”
생각해보니 당시 송충이가 창궐하여 소나무가 말라 죽는다고 대대적인 송충이 방제 작업이 있었다.
그래서 명환이는 지리산 자락의 송충이를 잡아다가 1등을 했었다.
이 녀석은 옛날부터 머리가 비상했구나.
나는 왜 우리 학교의 소나무만 바라봤을까.
그때, 봉선이가 우리를 보며 씩 웃었다.
“너희들 생활기록부 안 보고 싶어?”
생활기록부라고?
***
예상치 못한 생활기록부라니.
말썽을 많이 부리진 않았지만, 그리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산천을 뛰어노는데 바빴다.
한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설렜다.
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는 어떻게 작성돼있을까 궁금했다.
어릴 때 연이의 생활기록부를 본 적이 있었다.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봉선이의 도움으로 생활기록부가 보관된 곳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확인한 것은 봉선이의 생활기록부였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의 기록이 정자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1학년부터 빵 터지고야 말았다.
‘식탐이 많고 욕심이 많음.’
“야 봉선아, 네가 그렇게 식탐이 많았어?”
“장난해? 식탐을 내고 싶어도 먹을 게 있어야 말이지. 1학년 선생님이 누구였더라? 왜 이렇게 썼지?”
봉선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우리를 바라봤다.
짐작하건데, 친구들의 도시락을 탐냈으리라.
그리고 2학년의 생활기록부도 봉선이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했다.
‘옷은 낡고 헤졌지만 겉모습 꾸미기를 즐겨함.’
“푸하하.”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1학년 선생님의 통찰력이 돋보였다.
지금의 봉선이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온 몸을 휘감은 금붙이가 사실이라는 반증이었다.
그렇게,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까지의 기록을 살폈다.
6학년의 기록은 매우 좋았다.
선생님께서 봉선이를 많이 예뻐했는지 장문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항상 청결을 유지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장녀로서의 책임감이 상당하며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과 소망이 있다.
이해력이 좋으며 끈기가 있다. 급우 관계가 원만하며 리더십도 있다. 자존심이 강하며 무슨 일이든 앞으로 나서서 이기려고 애쓴다. 의지가 매우 강하여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
우리는 봉선이의 6학년 생기부를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1학년부터 5학년 때까지는 한 줄 정도로만 끝났는데, 선생님이 봉선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참…대단하시네. 이런 정성으로 글을 써주시다니.”
봉선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정도면 나름 훌륭한 학교생활을 한 거 아닌가?”
“맞아. 1학년은 비록 식탐이 많은 봉선이었지만, 6학년은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잖아?”
“이제, 도일이 네 차례지?”
“내거는 안 보면 안 될까?”
“그런 게 어디 있어. 얼른 까보자고!”
다음으로는 나의 생활기록부를 살폈다.
긴장 된다.
온 몸을 벌거벗은 기분이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까지, 내가 했던 장난과 말썽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말썽 천재였는데.’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봐주셨을까.
나는 불안과 기대를 잔뜩 안고 생활기록부를 펼쳤다.
그리고 1학년의 첫 문장을 보자마자 희망을 품게 됐다.
‘천진하고 명랑하며 급우들의 어려움을 나서서 해결하려 함.’
“1학년이 이정도면 6학년은 대통령이 됐겠는 걸?”
봉선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좋은 평가였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뭐라고 했냐? 나는 학교생활 하나만큼은 충실했다고.”
그렇게 나의 생기부 관찰이 시작됐다.
‘나는 참 순수했구나.’
선생님이 정성스럽게 써주신 생활기록부는 나의 순수함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식물에 관심이 많음. 식물과 자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는 식물에 관심이 많았나보다.
뚜렷하게 기억나질 않지만,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나는 여러 가지 식물의 이름을 맞추곤 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얕은 지식이지만, 선생님은 자연에 관심이 많은 아이로 봐주셨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음. 끈기가 있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색감을 잘 고름.’
‘말하기 능력이 뛰어남. 리더십이 있음.’
나의 생기부를 보자니 선생님들이 나를 아주 잘 봐주신 것 같다.
그리고 6학년의 기록을 살폈다.
봉선이처럼 장문의 글이 기록됐다.
‘아버지의 약초꾼 직업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언젠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훌륭한 약초박사가 되길 희망함. 약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식용 가능한 약초와 그렇지 못한 약초를 구분하는 능력이 뛰어남. 리더십이 강하며 급우들과 잘 어울림. 여러 활동에 솔선수범하며 맡은바 책임을 다함. 반 대항 달리기 대회에서 직접 팀을 꾸려 좋은 성과를 거둠.’
달리기 대회라니.
어렴풋이 기억하자면, 당시 우리 반이 1등을 했었다.
내가 1번 주자였던 것 같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이때부터 나서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째서 나의 꿈을 약초꾼이라고 아셨을까.
마치 먼 미래를 미리 알고서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주신 것 같았다.
신기하다.
“도일이 너도 이정도면 완전 우등생 수준 아닌가?”
봉선이가 내게 말했다.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라 나는 히죽 웃었다.
나중에 손자가 초등학생이 됐을 때 부끄럼 없이 보여줄 수 있겠다.
할아버지의 유년시절은 이랬노라고.
“이제 남은 건 명환이 인가?”
긴장감을 머금고 있는 명환이에게 말했다.
명환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안 보면 안 될까?”
“안 보긴! 너는 우리 중에서 제일 모범생이었잖아. 공부도 잘했고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걸!”
봉선이가 다그쳤다.
하긴, 명환이의 생기부는 안 봐도 뻔하다.
좋은 글만 있겠지!
그래도 선생님의 눈에 비친 명환이의 생기부가 궁금하긴 하다.
우리는 명환이의 생기부를 살폈다.
1학년부터 부티가 풍기는 평가였다.
‘청결 상태가 매우 뛰어남. 용모가 단정함.’
“명환이는 옷은 항상 고급이었지.”
나도 봉선이의 말에 동의한다.
“맞아. 흰색 셔츠에 간혹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왔던 것 같아.”
자연스럽게 2학년의 기록으로 향했다.
‘학습 능력이 우수하며 책을 손에 놓지 않음.’
“역시, 우등생이라 다르네.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어? 이건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생기부잖아.”
심지어, 4학년, 5학년의 기록도 마찬가지였다.
‘급우 관계가 원만하며 잘 웃고 떠듬’
‘실패를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은 의지력이 돋보임’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의 명환이었구나!”
“부잣집 아들이 참 잘 자랐네.”
나와 봉선이의 칭찬에 명환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최근 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잃어 힘들겠지만, 이렇게나마 웃었으면 한다.
명환이의 입가에서 희미한 웃음이 피었다.
기분이 좋은가보다.
그리고 대망의 6학년 생기부를 살폈다.
역시, 명환이의 기록도 만만치 않은 장문이었다.
‘부유하게 자랐으나 겸손하게 자세를 낮추며 나이에 맞지 않은 성숙함이 있음.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은 욕심과 꼼꼼함이 남다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언제나 정진하는 자세를 가짐. 어머니의 희귀병을 고치고 싶어 의사의 꿈을 가짐. 언젠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의료 봉사를 하고 싶어 함.’
명환이는 선생님이 작성해 주신 자신의 동심어린 꿈을 보며 한참동안 감상에 젖었다.
잊었던 꿈이어서 그랬을까.
현재의 처지를 비관했던 명환이에게 선생님이 써주신 글은 큰 위로였다.
명환이가 나지막이 말문을 열었다.
“맞아. 나는 의료 봉사를 다니고 싶었어.”
명환이가 잊었던 꿈을 상기했다.
“선생님은 잘 계시는지 궁금하네.”
명환이의 궁금증처럼 나도 그랬다.
정성스럽게 써주신 생기부를 보고 있자니 선생님의 근황이 궁금했다.
“우리 선생님은 아직도 잘 계셔? 정년퇴직 하셨을까?”
봉선이에게 물었다.
“우리 6학년 때 선생님?”
“응.”
“지금도 계시는데?”
“···정말?”
“올해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직 하실 거야.”
“그럼 우리가 6학년일 때는 선생님은 몇 살이었던 거야?”
“25살. 생각해보면 그때 선생님도 참 어렸는데 우릴 엄마처럼 대해줬어. 그치?”
참 어린 나이였다.
올해가 마지막 근무라니.
나는 당장에라도 선생님을 뵙고 싶었다.
봉선이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이제 곧 선생님 오실 거야. 도일이하고 명환이가 학교에 온다니까, 집에서 바로 출발하신다고 했어.”
우리는 옛날처럼 소나무 아래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이 누구였냐 묻거든, 나의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 몇 학생 되지 않은 아이들을 나의 선생님은 자신의 자식처럼 대했다.
봉선이가 도시락을 싸오질 못하는 날이면, 소나무 아래에서 솔잎을 껌처럼 씹었다.
나는 배가고파서가 아니었다.
봉선이가 배를 곯는 게 마음이 아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봉선이가 소나무 아래에서 배고픔을 달랠 때면, 선생님께서 4단 도시락을 들고선 우리에게 다가왔었다.
성인이 먹어도 많은 양이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봉선이의 도시락도 함께 싸온 것 같았다.
봉선이의 흰 쌀밥에 반찬을 올려주시던 선생님의 웃음과 눈빛이 나는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는다.
소나무 아래에서 선생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교문에서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한 분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선생님이라고 느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우리를 엄마처럼 대해주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은사님.
선생님께서도 우리를 보며 걸음이 빨라 지셨다.
우리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선생님 앞에서 큰 절을 올렸다.
선생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함께 고개를 숙이며 절을 했다.
“아이들, 잘 있었어? 우리 봉선이, 도일이, 명환이. 다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다가와 한 명씩 안아주셨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가슴 한편이 뭉클했다.
진즉에 찾아뵐 걸.
***
우리는 선생님이 근무하는 교장실로 향했다.
“도일이는 얼굴에 주름 하나가 없구나. 어쩜 그렇게 잘생겼니?”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부끄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향에 내려와서 사니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서 젊어졌나 봐요.”
“건강한 모습 보니까 선생님이 더 뿌듯해.”
“선생님도 건강하시죠?”
“그럼. 선생님은 건강해. 언젠가 제자들이 찾아올 때 건강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니까.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지.”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나도 너희들을 찾지 못해 미안해. 너희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했는데, 선생님이 바쁘다는 핑계로 찾질 못했어. 다들 잘 지내지?”
선생님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봉선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삼키는 것 같았다.
하긴, 봉선이는 선생님과 많은 추억이 있었다.
“선생님, 앞으로 정년 이후의 삶은 걱정하지 마세요.”
봉선이가 선생님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봉선아.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겠다고 하더니, 정말 부자가 됐나 보구나.”
“네. 선생님.”
“잘했어. 나는 봉선이가 꼭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선생님이 과자를 챙겨주면, 봉선이는 꼭 동생을 주려고 가방 안에 넣어놓곤 했잖아.”
“그걸 기억하세요?”
“왜 모르겠어. 봉선이는 책임감이 남달랐는데.”
“그래서 제게만 두 봉지를 주셨네요.”
“맞아. 너 혼자서 과자 한 봉지 먹고, 동생들 주라고. 지금도 잘 챙겨 먹고 있지?”
“네. 그럼요 선생님. 이제 누굴 위해 희생하지 않고 제 삶을 살거든요.”
“어머, 정말 잘 됐다.”
선생님의 곱디고운 목소리에서 봉선이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봉선이가 뿌엥하며 울었다.
나는 봉선이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엄마 같은 선생님이었으니.
바라만 봐도 옛 기억의 그리움에 사무치겠지.
그리고 6학년 당시 선생님은 정말 예뻤다.
지금도 고운 얼굴이 남아 계시지만, 세월이 참 야속하기만 하다.
“우리 도일이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는 다고 했지?”
“네. 맞아요. 산수마을의 옛집에서 약초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럴 줄 알았어. 도일이 너는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았거든. 너는 모르겠지만 나무만 보면 지나치지 않고 이게 무슨 나무냐며 선생님에게 물어보곤 했어. 그래서 나도 나무 공부를 열심히 했잖니.”
“아….”
“산수 마을의 아이들이 이렇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됐다는 게 너무 기쁘다.”
선생님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 시선에는 교장실 한편에 있는 교훈이 보였다.
‘더불어 함께 사는 밝은 어린이.’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 있었다.
“명환이는 훌륭한 의사가 됐구나.”
“네. 선생님.”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 선생님도 학생들이 전부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건강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거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