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76
이걸 다른 사람들도 함께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얘들아! 촬영하니까 더 열심히 뛰어봐!”
녀석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몰라도, 황복이는 극한의 흥분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며 공놀이에 환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도면 됐어.’
영상 촬영은 단 1분.
나는 촬영 분을 1분 보다 짧게 편집을 한 뒤 너튜브의 쇼츠 영상에 올렸다.
[황복이와 다람쥐의 공놀이!] [황궁이의 킥!] [공놀이에 관심 없는 황묘의 하악질!]15초 정도의 영상을 세 개 올렸다.
며칠간 영상 업로드를 소홀했더니 관심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불안했거늘, 영상을 올리자마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ㄴ그동안 어디서 뭐 하고 계셨나요ㅜㅜ 영상만 기다렸어요!
ㄴㅋㅋ동물들이 축구하는 모습은 살다살다 또 처음보네.
ㄴ저도 소가 공차는 모습은…….이런 영상을 볼 줄이야.
ㄴ그런데 황복이 위에 다람쥐 맞죠? 다람쥐 맞죠? 다람쥐가 황복이 조종하는 거죠?
ㄴ다람쥐 진짜 귀엽네 ㅋㅋㅋㅋ 황복이도 아랑곳않고 뛰는 것도 완전 최애 영상 ㅜㅜㅜㅜ
ㄴ저도 같이 놀고 싶어요. 진짜 부러운 삶이다…..
댓글이 달리는 속도가 심상치가 않았다.
영상을 업로드한지 10분 만에 댓글이 백 개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너튜브 구독자가 벌써 50만이네.’
50만 명.
압도적인 숫자가 실감이 되질 않았다.
50만 명이라면 웬만한 도시의 인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가 아닌가.
내가 살고 있는 시골에서 가까운 도시도 인구가 40만이다.
‘이게 맞는 건가. 너무 사랑해주시는 거 아닌가.’
이게 다 황묘와 다람쥐의 과거 영상 덕분이었다.
황묘가 황궁이의 등 위에 올라탔던 영상은 조회수 80만을 달성했고, 다람쥐가 황복이 머리 위에 올라타서 마당을 유람하는 영상은 조회수 100만 명을 넘긴 상태였다.
구독자 분들은 동물들의 교감을 신기하고 재밌게 봐주셨다.
‘50만 구독자분들에게 소홀할 수는 없지.’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구독자 분들이 동물 영상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우리 집의 약초원을 알고 구독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간혹 약초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헛걸음을 하는 경우가 있었거늘, 이참에 너튜브를 이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50만 명이 볼 수 있도록 너튜브 채널에 공지를 올렸다.
[약초원 개점 시간은 11:00~16:00입니다. 주말은 쉽니다. 많은 방문 부탁드립니다.]‘앞으로 헛걸음 하는 손님들은 없겠지.’
이참에 너튜브를 잘 이용해야겠다.
약초원의 홈페이지는 없더라도 너튜브를 통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싶다.
-월! 월!
황복이 녀석이 짖어댔다.
마침 축구공이 내 앞으로 굴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 좀 차달라고 황복이가 짖는 것 같은데, 이럴 경우에는 짓궂은 형들이나 아저씨가 있기 마련이었지.
나는 축구공을 한번 흘깃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 높이 뻥! 차버렸다.
공이 높게 솟구쳤고 녀석들과 나의 시선은 축구공을 향해 집중됐다.
하늘 높이 솟은 공은 땅으로 추락했고 통통 튀기며 들판의 내리막길로 데구루루 굴러 내려갔다.
역시, 황복이가 나를 흘깃 바라보곤 월!월! 짖었다. 원망의 눈빛이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아 우습만 나올 뿐이었다.
녀석이 내리막길을 향해 달려갔다.
‘황복이는 살 좀 빼야 돼.’
나는 다시금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만끽했다.
누구에게나 재충전의 시간은 필요한 법.
홀로 멍하니 앉아 그간의 피로도 풀 겸 삶을 사색하며 여유를 즐기는 게 나만의 재충전 방법이었다.
나의 구독자들도 나의 영상을 보며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감이 사라졌다.
보람차기만 했다.
때마침, 들판의 한편에서 국화꽃봉오리가 맺히고 있는 게 보였다.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심지어 여섯시가 되기 전이거늘,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소녀처럼 해가 저물고 있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무더위를 느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시간 참 빠르게 흐른다.
‘정말 가을이 오고 있구나.’
가을 소풍을 시작으로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을 맞이했다.
***
“어머, 이것 좀 봐요. 마리아 수녀님. 도일 선생님이 너튜브 영상을 올렸어요.”
헬레나 수녀님은 너튜브의 구독자였다. 마침 소와 강아지, 고양이와 다람쥐가 노는 영상이 올라왔으니, 헬레나 수녀님은 마리아 수녀님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동물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네요.”
“그죠? 하하. 김도일 선생님의 약초원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거든요. 저는 황복이의 팬이에요. 강아지가 얼마나 귀여운지..”
“호호호. 헬레나 수녀님, 이참에 강아지를 한 번 키워보실 생각 없으세요? 우리 육아원에도 황복이 같은 강아지가 있다면,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은데요.”
“아…그런데 제가요 수녀님. 강아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우질 못해요. 죄송해요.”
“어머, 그게 무슨 죄송할 일인가요.”
헬레나 수녀님은 김도일의 너튜브 영상을 마리아 수녀님에게 몇 가지 더 보여줬다.
황복이와 황궁이, 황묘와 다람쥐 영상을 보던 마리아 수녀님은 묘한 웃음을 짓더니 헬레나 수녀님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도 소풍을 가볼까요? 이제 곧 날이 선선해질 때라 아이들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연 속에서 뛰어놀았으면 해요.”
“소풍이요? 좋죠!”
헬레나 수녀님이 손뼉을 치며 긍정의 웃음을 지었다. 마리아 수녀님은 그런 헬레나 수녀님을 보며 엄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헬레나 수녀님은 이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풀이 죽었다.
“···마리아 수녀님.”
“네. 말씀하세요.”
“이번 달 운영비도 거의 다 써가고 있어서 소풍을 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수녀님.”
육아원의 운영비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과 민간 후원금으로 운영되곤 했는데, 이번 달 지정해놓은 운영금액이 서서히 바닥나고 있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하지만, 헬레나 수녀님은 본인의 탓이 아님에도 마리아 수녀님께 용서를 빌었다.
“헬레나 수녀님.”
“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마리아 수녀님은 헬레나 수녀님을 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육아원으로 꽤 많은 후원금이 들어왔어요.”
며칠 전, 육아원의 후원계좌로 상당 액수의 후원금이 들어왔었다.
헬레나 수녀님이 마리아 수녀님에게 물었다.
“정말요? 누구요? 누가 보내주신 건가요?”
“익명이라 알 수는 없어요.”
“아….”
“아이들에게 가을을 선물할 정도는 되니까. 우리 수녀님들께서 힘내셔서 소풍 준비를 잘 해보도록 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준비하도록 해볼게요!”
“네. 천천히. 그러다 넘어지겠어요.”
헬레나 수녀님이 아이 같이 총총 뛰며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기쁨에 겨운 탄성소리가 건물 내부를 울렸다.
“와아! 소풍이다아!”
“어디로 소풍을 가는 건가요? 꼭 가고 싶어요!”
“김밥도 싸고 가요! 제가 김밥 만들기 선수거든요!”
“축구도 해요! 보물찾기도 하고 싶어요!”
마리아 수녀님은 아이들의 행복에 겨운 목소리를 들으며 회화나무 아래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맞았다.
‘익명의 후원자가 누굴까.’
마리아 수녀님은 왜인지 한 사람이 생각났다.
김도일 선생님.
그분이 아니라면, 이렇게 갑자기 후원금이 들어올 리가 없으니 말이다.
마리아 수녀님이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기도를 올리다가 눈을 떠보니 한 아이가 마리아 수녀님 곁으로 다가왔다.
성호였다.
김도일 아저씨를 유난히 잘 따랐던 여섯 살의 아이다.
“성호야. 무슨 일이니?”
“마리아 수녀님. 혹시 아저씨는 언제 와요?”
“아저씨? 김도일 선생님 말하는 거니?”
“네.”
마리아 수녀님이 성호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주며 따스한 웃음을 지었다.
“성호야. 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성호가 착하고 성실하게 잘 지내면, 수녀님이 꼭 성호가 좋아하는 아저씨 데려올게. 알았지?”
“네! 수녀님!”
“성호는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
“네! 같이 살고 싶어요! 헤헤.”
“성호는 수녀님 아들하고 싶어? 아저씨 아들하고 싶어?”
“둘 다 하고 싶어요!”
“그래. 둘 다 하자. 성호는 좋겠다. 엄마도 아빠도 성호를 사랑하잖아.”
“저도 수녀님이 좋아요.”
성호가 수녀님의 품에 와락 안겼다. 한참 동안 안다가, 무심결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섰던 마리아 수녀님에게 아이들은 삶의 이유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착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마리아 수녀님은 더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성호야. 가을 소풍은 어디로 가고 싶어?”
“음…”
성호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동물원 가고 싶어요!”
“그래. 수녀님들에게 얘기해서 이번 소풍은 동물원에 가는 걸로 하자구나.”
성호는 기분 좋은 듯 배시시 웃었고, 마리아 수녀님은 성호를 데리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때마침, 회화나무가 바람에 살랑이며 보랏빛의 기운을 내뿜었다.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다는 오로라처럼, 육아원의 건물 외부를 휘감던 보랏빛 형체는 서서히 건물 내부로 스며들었다.
‘후원금은 잘 들어갔겠지.’
육아원의 운영비로 후원금액을 소액 보냈다. 많다면 많은 금액일 수도 있겠지만, 천종산삼을 판 가격으로 벌은 수익에 비하면 얼마 되진 않는다.
마당 한편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었다. 아버지가 생전 육아원에서 있었던 추억들을,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나도 걷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마리아 수녀님.
‘참 대단하신 분들이야.’
아버지의 일기장을 한참 동안 읽었더니 어느 덧 한권이 끝나갈 때였다.
나는 다음 권을 펼쳤다.
재밌는 소설책을 읽는 기분이 들어 감칠맛이 났다.
[마을의 들판에 가을의 국화가 만개했다. 국화 꽃 필 무렵이면, 마을 주민들과 꽃 잎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화를 따다가 처에게 꽃차를 만들어주었더니, 피부가 백옥같이 맑아졌다.]‘국화가 피부에 좋은 차였구나.’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피부는 옛날부터 티끌 하나 없이 매우 맑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표현대로 정말 백옥 같았다.
‘곧 있으면 국화가 제철이겠네.’
마을의 들판에 국화꽃이 만개하면 조만간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국화꽃을 채집한다.
야생 국화를 따다가 꽃잎을 덖어 차로 마시는 전통은 옛날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마을 전통이었다.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도 피부가 좋은 거겠지.’
꽃은 알면 알수록 사람에게 이로운 식물이었다.
공부를 해야 할 종류만 수천 가지였고, 그 수천 가지 중에서도 배합해야 할 식물들만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도 모든 걸 파악하질 못 했으니.’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애에서도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는 만큼은 해봐야겠지.
다음 장을 읽었더니, 아버지의 수려한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 뿐이다.]‘릴케의 시를 쓰셨구나.’
우리 집에 유난히 릴케의 시집이 많았거늘, 그래서 나 또한 릴케의 시를 자주 읽었더랬다.
‘아버지가 릴케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구절을 일기에 직접 옮겨 적으신 것 같았다.
기억을 되새겨보자면, 저 구절의 앞부분이 따로 있었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이기에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맞이하라는 것이었다.
인생이 찰나의 축제라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 뜻이겠지.
‘그래서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볼까.’
집안 대대로 내려져오는 과업을 위해 하루를 불살라 볼까, 그게 아니라면 물 흐르는 대로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겨볼까.
내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이, 일기의 다음 장을 넘겼을 때 해답이 있었다.
[가을은 먹고 기도하며 사랑하는 계절이다.]때마침, 나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헬레나 수녀님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밝은 미소가 담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선생님! 저희 소풍가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우리 성호가 선생님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데요!
“소풍이요?”
-네!
헬레나 수녀님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거절하기가 힘들다.
***
“아저씨!”
동물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노란 옷을 입은 육아원 아이들이 몰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수녀님들이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성호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들었다.
수녀님들이 말릴 세가 없었다.
여섯 살의 성호는 체구가 남들보다 매우 왜소했다. 그래서 그런지, 품에 안고 있으면 깃털처럼 가벼웠다.
“성호야, 아저씨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네! 마리아 수녀님께서 말 잘 들으면 아저씨 보게 해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매일매일 열심히 청소도 하고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반찬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어요!”
“아이고, 잘했네. 잘했어. 성호 반찬 투정 안 하고 밥 잘 먹으면 아저씨처럼 덩치도 커지고 키도 쑥쑥 자랄 거야!”
“네! 아저씨!”
나는 성호를 내려놓은 뒤 마리아 수녀님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수녀님들의 통제를 따라 동물원 내부로 들어갔고, 나는 마리아 수녀님 곁으로 향했다.
“성호가 선생님을 워낙에 좋아해서요. 보고 싶다고 떼를 쓸 때마다 성호에게 과업을 주었지요.”
“하하. 성호가 저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생활한다면, 언제든지 제 이름을 말씀하셔도 좋아요.”
마리아 수녀님께서 흐뭇하게 웃으셨다. 우리는 동물원에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때마침 나의 시선에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파는 곳이 보였다.
나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들고 하나는 마리아 수녀님께 드렸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얼마만인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마리아 수녀님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따스한 햇볕을 즐겼다.
“성호는 어떻게 하다가 육아원에 들어오게 된 건가요?”
마리아 수녀님이 생각에 잠기셨다.
“그때가 가을이었어요. 새벽기도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던 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내려가 보니, 그곳에 성호가 있었어요.”
“아……”
“그때 과일바구니 안에 있던 성호의 품안에 국화꽃 한 송이가 있었어요.”
“국화꽃이요?”
“네. 그래서 그때가 가을임을 잊지 못하는 것이죠.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국화가 피었을 때 성호가 왔거든요.”
“……”
“부모님을 찾고자 여러 곳에 문의를 해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국화꽃의 의미가 뭘까요. 왜 하필 많고 많은 꽃 중에…..”
“저도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자식을 두고 가는 부모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어쩌면, 스스로에게 선고한 애도의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
때마침, 나의 시선에는 아이들과 성호의 모습이 보였다.
코끼리 앞에서 탄성을 지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이 차갑게 아렸다.
나도 자식이 있어서 알지만, 스스로 뼈마디를 떼어내는 심정이었으리라.
“우리도 동물 구경을 해볼까요?”
“네! 그러죠. 수녀님.”
마리아 수녀님과 함께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가는 길에 원숭이가 보였고, 기린도 보였고, 코끼리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똥강아지들이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사자야! 일어나라! 일어나!”
“왜 잠만 자니 사자야!”
“아저씨! 사자가 잠만 자요!”
아이들은 사자가 잠만 자고 코를 골고만 있는 게 영 섭섭한 가보다.
그래도 어쩌겠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들이면 안 되는 법.
“똥강아지들아. 너희들도 자다가 누가 깨우면 싫듯이 동물들도 마찬가지야. 좀 자게 내버려두자.”
때마침, 사자가 하품을 길게 찢으며 우리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 압도적인 풍채에 아이들이 와아! 소릴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사자가 울부짖자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 성호만이 사자를 빤히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성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성호야. 너는 사자가 무섭지 않니?”
“네. 사자가 불쌍해요.”
“불쌍하다고?”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서 여기 갇혀 있잖아요. 꼭 저를 보는 거 같아요. 아저씨.”
여섯 살 아이가 사자를 보며 슬픔을 느끼는 건 너무나 빠른 성장이었다.
나는 성호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성호야, 아저씨가 자주 찾아오면 외롭지 않을까?”
“네!”
“그럼 성호도 약속해.”
“네! 약속할게요. 뭐든 약속할래요.”
“성호는 이 세상에서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성호를 좋아하는 수녀님들도 많고, 성호를 아끼는 아저씨도 있잖아. 알았지 성호야?”
성호가 활짝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몸을 배배 꼬기도 하며 행복에 겨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
“네!”
“아이스크림 사줄까?”
“좋아요!”
나는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으로 향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씩 전부 사줬더니 맛있게들 잘 먹는다.
‘뭐지 이 뿌듯함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어미 새가 된 기분이 들었다.
고작 아이스크림일 뿐인데, 녀석들이 무럭무럭 잘 자랐으면 하는 순수한 책임이 생긴다고 할까.
막연하게 후원금을 보낸 것보다, 훨씬 더 보람찬 감정이었다.
나는 헬레나 수녀님 곁으로 향했다.
헬레나 수녀님은 아이들을 통제 하느라 전신에 땀범벅이었다.
아이스크림을 건네자 감사하다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이 잔디밭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헬레나 수녀님과 함께 벤치에 앉았다.
“정말….휴우….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봐서 좋긴 한데, 통제하는 게 만만치가 않네요.”
“항상 고생이 많으세요. 어휴, 땀 좀 봐.”
“헤헤. 괜찮아요. 저도 오랜만에 콧바람을 쐬니까 좋은데요. 아, 선생님, 혹시 그 소식 들으셨어요?”
“네?”
헬레나 수녀님이 조곤조곤 말했다.
“저희 육아원에 익명의 기부자가 막대한 후원금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아, 정말요? 참 잘 됐네요! 누군지 몰라도 정말 감사하네요.”
“그죠? 수녀님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과연 누가 보냈을까 생각해봤거든요?”
“……?”
“선생님이 보내셨죠?”
“아니요.”
“정말 아니에요?”
헬레나 수녀님의 눈동자가 토끼처럼 동그랗게 커졌다.
“그럼 누구지…대체 누구지….”
헬레나 수녀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굳이 내가 후원금을 보냈다고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부담만 될 뿐이다.
“육아원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간 자녀들 중 한 명이겠죠.”
“정말 그럴까요? 그러면 보통 익명이 아니고…직접 이름을 밝힐 텐데요.”
“그러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겠죠. 앞으로 꾸준히 기부하고 싶은 마음에요.”
“아…”
“수녀님들이 아이들에게 헌신적이고 대가없는 사랑으로 베풀 듯, 아마 기부자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네요.”
“정말 따뜻한 마음이에요. 매일 그분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어요.”
때마침,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듯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헬레나 수녀님은 아이스크림을 다급히 욱여넣은 뒤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삐약!”
헬레나 수녀님이 능숙하게 아이들을 통제한 뒤, 한 명의 열외도 없이 두 줄로 가지런히 서며 동물원을 빠져나왔다.
나는 마리아 수녀님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며 걸었다.
마리아 수녀님이 헬레나 수녀님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흐뭇하게 웃으며 마리아 수녀님에게 말했다.
“수녀님들이 마리아 수녀님을 닮아서 그런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인 것 같아요.”
“호호호. 엄마 교육을 잘 받았죠?”
마리아 수녀님의 걸음걸이가 한결 가벼워 짐을 느꼈다.
마리아 수녀님도 이젠 연약해진 어깨였다.
어깨에 짊어진 아이들에 대한 책임도 수녀님들에게 나누어줄 때겠지.
가볍게 미소 짓는 마리아 수녀님의 미소에서 국화꽃의 향기가 느껴졌다.
국화꽃의 꽃말이 성실과 감사였던가.
“같이 가요. 수녀님!”
잠시나마 멍해진 나는 수녀님의 뒤를 바짝 따라 걸었다.
오늘 하루도 재밌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가을은 먹고 기도하며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했지.
***
“도일아!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거냐!”
“무슨 일 있어요?”
동물원 소풍을 끝내고 집으로 귀가했더니, 집 앞에서는 완길 어르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조만간 약초 축제가 열린다고 하던데, 들었는가?”
“약초 축제요?”
“그걸 모르고 있었구먼.”
가을이면 산청군의 약초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때만 되면 온 마을이 시끌벅적했다.
각자의 마을을 대표하는 약초를 축제 마당에 내놓아 관광객들을 상대로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전국 단위의 축제라 관광객들이 꽤 많이 오곤 했으니,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산수마을을 대표하는 약초를 선별해야 하는데, 무엇이 좋을까 회의를 할까 참이거든. 도일이 시간 되는가?”
“그럼요. 지금도 괜찮아요.”
“마을 회관으로 가자.”
“네.”
이장님과 함께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산수 마을을 대표하는 약초를 선별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저마다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약초는 단연코 국화꽃이여! 국화꽃 덕에 우리 할망구들 피부가 백옥 같은 것 아니냐고!”
“국화꽃은 너무 단순하다 이 말이지! 전국서 찾아오는 축제인데, 산수 마을을 대표하는 약초가 고작 국화꽃이라니! 그러지 말고! 산삼으로 하세!”
“산삼은 무슨! 산삼이 무슨 뉘 집 개 이름이여? 그리고! 산삼은 저쪽 대강 마을서 내놓을 게 뻔한데!”
“아, 그럼 그러지들 말고 인삼으로 하던가.”
“여기서 인삼 재배하는 놈이 있어? 산수 마을을 대표하는 약초인데 약초가게에서 사다가 내놓을 것이여?”
의견이 분분하여 제 해답을 찾지 못하자, 이장님께서 불호령을 내리며 외쳤다.
“전부 스토옵!”
모든 시선이 이장님에게 쏠렸다. 이장님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어르신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약초꾼이 누군가.”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