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75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시는데요.”
“육아원의 간호실에 누워 계세요. 선생님, 우리 마리아 수녀님 괜찮겠죠…”
헬레나 수녀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헬레나 수녀님에게 단호히 말했다.
“네. 괜찮을 겁니다.”
다급히 간호실로 향했다.
평소에는 아이들을 위해 이용되는 간호실이었는데, 마리아 수녀님께서 병원 가길 극히 거부하여 잠시나마 이곳에 누워 계신 것 같았다.
간호실의 문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틈으로 내부를 살펴보니 많은 분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문 밖으로 새어 나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마리아 수녀님, 이제 그만 병원을 가셔야죠.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감내하실 건가요.”
“수녀님. 이젠 더 이상 저희가 허락을 못해요. 수녀님이 거부하신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직접 모시겠어요.”
“병원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마리아 수녀님께서 사랑으로 키워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일도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마리아 수녀님, 이제 그만 저희와 함께 병원에 가시죠.”
목소리를 들어보니 마리아 수녀님이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인 것 같았다.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온 것 같은데, 그들의 목소리에서 좌절과 애절함이 녹아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간호실 내부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마리아 수녀님이 병상에서 허리를 펴고 일어나 나를 바라보셨다.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뚫고 마리아 수녀님 앞으로 다가갔다.
“왜 병원을 가시지 않으셨나요. 고통을 이겨내기가 힘드실 텐데요. 제가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거든요.”
“아프지 않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지요.”
아프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마리아 수녀님의 피부는 이미 누렇고 떴고, 입술은 또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터져 있었다.
나 또한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겨우 버텼거늘, 대체 이걸 어떻게 이겨내신 걸까.
“마리아 수녀님께서 주신 사진은 잘 받았어요. 아버지와 함께 쌓은 추억을 전부 기록해놓으셨던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저도 선생님의 아버님을 기억하고 싶어 기록해둔 거예요. 그리울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봤거든요. 이제는 선생님께서 필요할 것 같아 드린 거니 잘 보관하여 아버지를 추억할 때마다 꺼내 보세요.”
“네. 수녀님.”
마리아 수녀님께서 내 뒤로 서 있는 사내와 여자들에게 말했다.
“이 분이 김석훈 선생님의 아드님 되는 분이세요.”
아버지의 성함이 나오자 다들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제야 이 분들이 나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은 당시의 아이들이었음을 알게 됐다.
나는 굽혔던 허리를 펴서 그분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약초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분들도 오랜 시간동안 나의 아버지를 추억하며 그리워했다고 들었다.
부모 없이 살아온 인생을 아버지와 마리아 수녀님이 대신하여 채워줬으니까, 이분들에게도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마리아 수녀님의 자녀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올리는 건 나중에 할 일, 지금은 마리아 수녀님에게 어떻게든 마법의 힘이 깃든 천종을 드시도록 해야만 했다.
나와 마리아 수녀님이 단 둘이 있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양해를 부탁했다.
그들은 나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간호실을 하나둘 씩 빠져나갔다.
마리아 수녀님이 침상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췌장암의 고통을 이겨내는 건 웬만한 정신력으로도 힘들다.
그런데, 마리아 수녀님은 진통제를 드시지 않고도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참 불가사의한 일이야.’
마리아 수녀님께서 눈을 감으셨다.
잠에 빠져드신 동안에 나는 천종산삼을 먹기 좋게 즙으로 만든 뒤 수녀님의 입에 넣어드렸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오물오물 씹어 넘기던 수녀님은 산삼 하나를 다 드시는 동안 거부 반응이 없었다.
“천천히 삼켜보세요 수녀님.”
마리아 수녀님이 천종을 남김없이 다 드셨다.
나는 마리아 수녀님이 의식을 되찾는 동안 의자에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광장의 회화나무 아래에는 이제 막 학교에서 귀가한 아이들과 헬레나 수녀님의 모습이 보였다.
헬레나 수녀님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는 모습이었는데, 아이들은 수녀님의 진지한 말에 표정이 잔뜩 굳어 울상이 되었다.
짐작하자면, 아이들에게 마리아 수녀님의 현재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몇몇 울상이던 아이들이 이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마리아 수녀님은 살 수가 있을 거야.’
한데, 아이들처럼 나 또한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천종을 드시고도 아직까지 별 다른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른 일어나세요. 수녀님.’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종교가 없는 내게 기도를 한다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이거늘, 왜인지 모르게 마음 한 편이 편안해졌다.
때마침, 마리아 수녀님께서 옅은 신음을 내뱉으셨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마리아 수녀님의 상태를 살폈다.
‘땀을 엄청 흘리시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천종을 먹은 뒤 반나절동안 의식을 잃고 쓰러졌었으니 말이다.
땀이 흐른다는 건 내부에서 생체 반응이 일어난다는 뜻.
게다가 마리아 수녀님의 황달 피부가 서서히 변화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이었다.
마리아 수녀님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뒷정리를 한 뒤 간호실을 빠져나갔다.
간호실 앞에는 수녀님의 자녀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아까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거늘, 그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내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마리아 수녀님은 어떻게 되시는 건가요.”
“경과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의식이 돌아오시거든 수녀님을 병원으로 꼭 데려가 주셨으면 해요.”
병원에 가는 목적은 천종의 효험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직접 데려갈 수는 없으니 수녀님들의 자녀들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 입원을 극도로 거부하셔서. 저희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어요.”
“아이들과 떨어지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아이들과 함께 가면 되지 않을까요?”
“네?”
“마리아 수녀님도 아이들의 요청이라면 못 이겨내실 겁니다. 꼭 그렇게 해보세요.”
“아….네 알겠습니다.”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마리아 수녀님의 상황을 들은 아이들은 울상인 얼굴로 방안에서 숨죽인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얘들아, 아저씨 왔다.”
“아저씨!”
나를 유난히 좋아했던 한 남자 아이가 내게 달려들어 와락 안겼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아 준 뒤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이렇게 다들 울상이야?”
“마리아 선생님이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하셨어요.”
“그래?”
“네. 헬레나 선생님이 얘기해주셨어요. 아저씨, 우리 마리아 선생님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는 시선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방 안의 수많은 아이들의 눈이 내게 집중되고 있었다.
토끼 같은 눈망울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마리아 선생님 괜찮으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얘들아.”
“정말요? 정말 괜찮은 거죠?”
“그럼.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어. 마리아 수녀님이 일어나시거든 너희들이 마리아 수녀님과 손잡고 같이 병원을 가줬으면 해. 마리아 수녀님은 너희들과 항상 함께 하고 싶어 하거든.”
“알겠어요! 아저씨!”
“꼭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네!”
“그럼 이제부터 선물 보따리를 풀어볼까?”
“선물이요?”
“저번에 약속했잖아. 다시 올 때는 너희들 선물 하나씩 사주겠다고.”
“와!”
울상이었던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미소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
선물의 양이 꽤 많아 혼자서 옮길 수가 없었다.
마리아 수녀님의 자녀분들이 도움을 주신 덕에 트럭에 실린 많은 선물을 쉽게 옮길 수가 있었다.
“이 많은 선물을…정말 대단하세요.”
“저희 아버지도 이곳에 올 때마다 선물을 사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 따라서 해보고 싶었어요.”
내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들도 나의 아버지 덕을 많이 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아버지 덕에 잔병치레를 겪었던 제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어요.”
“축구를 하다가 발목이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아버님이 주신 약초를 먹고 뼈가 하루 만에 붙었다니까요.”
“아버님이 주신 차를 먹으면 공부가 잘 되고 집중이 잘 됐어요. 제가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아버님 덕분이거든요.”
이걸 간증이라고 하는 건가.
여러 사람들이 나의 아버지 덕을 본 경험을 얘기했다.
나는 선물을 옮기며 걷는 와중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를 함께 추억했다.
하지만, 마리아 수녀님 얘기가 나올 때면 울컥하는지 말끝을 흐리곤 했다.
“마리아 수녀님과 아버님은 저희들의 부모님이었어요. 선생님, 마리아 수녀님 꼭 일어날 수 있겠죠?”
“아이들도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 꼭 일어나실 겁니다.”
“네.”
“그렇게 믿죠.”
때마침 아이들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건넸더니 다들 환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나를 좋아하는 성호가 내 곁에 찰싹 달라 붙어 말했다.
“아저씨! 제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 사줘서 감사합니다!”
내 앞에서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귀여운지 볼을 꼬집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서 이런 예절을 배웠는지 몰라도 나중에 사회생활 하나는 기막히게 잘할 것 같았다.
“나도 감사히 받아줘서 고마워. 성호 너는 앞으로 커서 뭐가 될 거야?”
“마리아 수녀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수 있도록 의사가 될 거예요!”
“성호가 의사가 되면 아저씨 건강도 맡길 수가 있겠네?”
“그럼요!”
“꼭 의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미소만 잃지 않으면 돼. 알았지?”
“네! 아저씨!”
아이들이 선물 보따리를 풀며 행복에 겨워하는 동안, 나는 광장의 회화나무 아래에 앉아 잠시나마 숨을 돌렸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소리, 그런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마리아 수녀님의 자녀분들까지.
육아원에 서서히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쪽 건물의 창 한편을 살폈다.
마리아 수녀님이 계시는 간호실이었다.
조용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창문 너머로 마리아 수녀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마리아 수녀님이 깨어나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봐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거기에 더해 아버지도 함께 있었다면….
아쉬운 마음에 기분이 조금 울적해졌다. 그러던 중에 회화나무의 잎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 발밑으로 낙화했다.
회화나무를 올려다보니 이제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이제 곧 가을이 오는 건가.’
회화나무 열매가 열리는 때면 집안의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난다고 했거늘, 긍정적인 신호였으면 했다.
회화나무의 열매봉오리를 보며 잠시 동안 감상에 젖었다.
그때였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안에서 탄성소리가 뒤 섞여 들려왔다.
“수녀님! 마리아 수녀님!”
마리아 수녀님을 외치는 소리였다.
나는 다급히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
내부로 들어가니 마리아 수녀님이 아이들 앞에 서 계셨다.
혈색이 돌아온 것 같았다.
반쯤 휘청거리며 걷던 마리아 수녀님의 예전 상태가 아니었다.
마리아 수녀님의 등장에 방안은 일순 울음 바다가 되었다.
선물을 받은 기쁨으로 포장되었던 깊은 슬픔이 기어이 풀어헤쳐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수녀님에게 다가가 안겼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마리아 수녀님을 본 헬레나 수녀님과 마리아 수녀님의 다 큰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녀님..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괜찮으니 너무 걱정 말아라. 이 선물은 다 뭐지?”
“도일 선생님께서 전부 사왔어요.”
“참으로 감사한 분이네.”
마리아 수녀님께서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나는 마리아 수녀님에게 천천히 다가가 두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마리아 수녀님. 아이들이 수녀님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해요.”
“그게 뭐죠?”
아이들에게 눈치를 줬다. 아이들은 마리아 수녀님에게 달려들어 아까 계획한 대로 간청을 했다.
“마리아 선생님, 저희랑 같이 병원가요.”
“선생님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병원을 가서 치료받았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지금 저희랑 같이 가요!”
아이들의 간청에 마리아 수녀님께서 어찌할 바를 모르셨다.
거기에 더해 나이 지긋한 마리아 수녀님의 자녀들까지 합세하니 마리아 수녀님은 못이기는 듯 승낙했다.
“마리아 수녀님, 아이들과 함께 오래오래 사셔야죠. 아이들의 유일한 엄마인데요.”
“……”
마리아 수녀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병원을 가보죠.”
***
그로부터 다음 날.
마리아 수녀님은 자녀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가셨다고 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정녕 끝난 것이었다.
천종의 힘 덕에 암세포가 자연히 소멸해가는 과정일 테고, 별다른 치료 없이도 암을 이겨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너무 늦지 않았어.’
며칠만 더 늦었다면 마리아 수녀님은 버티질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또 엄마를 잃게 됐겠지.
만약 마리아 수녀님께서 돌아가셨다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모를 두 번 잃는 슬픔이었다.
한 번 잃은 슬픔도 이겨내기 힘들었거늘, 두 번의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
때마침, 나의 전화가 울렸다.
병원을 다녀온 헬레나 수녀님의 전화였다.
“네 헬레나 수녀님!”
-선생님, 혹시 시간 되시면 육아원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선생님에게 많은 빚을 진 것 같아서요. 선생님이 갑자기 떠나셔서 너무 죄송한 마음도 있고…..
“하하, 괜찮아요. 저는 아직까지 헬레나 수녀님이 주신 사과를 먹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니까요. 사과 한쪽으로도 충분해요.”
-선생님…너무 감사해요.
“마리아 수녀님의 상태는 어떤가요?”
-병원을 다녀왔더니, 의사 선생님은 기적이라고 하셨어요.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라며, 학계에 보고까지 한다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정말 잘 됐네요.”
-전부 선생님 덕분이에요. 선생님이 마리아 수녀님께 드시게 한 약초는 어떤 건가요? 마리아 수녀님도 되게 궁금해 하세요. 잠결에 무언가를 씹은 기억이 있는데, 매우 썼다고 해요.
“그건 비밀이랍니다. 하하. 그리고 마리아 수녀님이 췌장암을 이겨낸 건 수녀님들과 아이들의 간절한 기도 덕이 크겠죠. 저는 딱히 한 게 없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마음 한편이 뭉클하네요. 정말 기적을 이뤄낸 것 같기도 해서요.
기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췌장암을 이겨냈던 순간이 생각났다. 모든 게 기적으로 점철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헬레나 수녀님, 저는 앞으로도 육아원 방문을 주기적으로 할 테니까. 저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저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수녀님도 저는 개의치 마시고 아이들에게 더 힘써 주세요. 저도 많은 도움 드릴게요.”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뭐라 말로 표현을 못할 정도로….정말 감사해요.
“저도 육아원의 수녀님과 마리아 수녀님 덕에 많은 걸 깨달았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그럼 다음에 꼭 뵐게요.
“네!”
헬레나 수녀님과 전화를 끊은 뒤, 나는 툇마루에 대짜로 뻗어 누웠다.
며칠간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참 잘 됐다.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고 있어.’
덕유산 산행으로 천종을 캤고, 삼정의 회장을 만나 산삼을 팔았다.
벌어들인 현금도 많았고, 마리아 수녀님을 낫게 해드렸다.
많은 일들이 한 번에 닥쳐왔지만 모자란 것 없이 다 잘 풀려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좀 쉬어볼까.’
약초원이 쉬는 주말이었기 때문에 그간의 피로를 풀 목적이었다.
약초원의 숲을 가꾸는 것도 잠시 미루고, 운동도 하루 쉴 참이다.
그리고 내겐 산삼을 팔아서 생긴 현금도 있지 않은가.
최고급 리조트에서 몸을 푸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릿속에서 샘솟았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회화나무를 심어볼까.’
육아원의 광장에 있는 회화나무는 우리 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했다.
50년 된 나무라고 했으니, 아버지가 30살이 되던 해에 심은 것 같았다.
회화나무는 매우 특별한 특전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회화나무는 선비나무라고도 불렸고, 회화나무를 심으면 집안의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난다고 했다.
특전 – [대성大成]
크게 이룬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자녀들과 관련된 특전인 것 같았다.
나도 우리 집의 숲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나의 딸 연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회화나무를 심고 밥을 먹은 뒤 휴식을 취했다.
‘이제 뭐하고 놀아볼까.’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아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어르신들하고 광장에 모여 화투를 칠지, 친구들을 집으로 소환해 술을 먹을지, 혼자 등산을 할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때였다.
내 시선에는 황궁이와 황복이, 황묘와 다람쥐가 보였다.
녀석들이 함께 어울려 마당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니 머릿속에서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늘은 요놈들하고 재밌는 하루를 보내야겠어.’
가을 냄새가 솔솔 풍기는 날이면 소풍 생각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김밥을 싸들고 아이들과 소풍을 가고자 했다.
특별한 곳은 아니고, 기분 내기 좋은 어릴 적 추억의 장소라고 할까.
‘김밥 재료를 만들어 볼까!’
김밥 재료는 간단했다.
편의점 김밥처럼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것 보다, 필요한 것만 들어간 단순한 김밥이 더 좋다.
소금 간을 살짝 한 밥과 단무지, 우엉, 계란, 햄, 시금치만으로도 옛 맛을 그대로 재현할 수가 있었다.
‘이게 최고지.’
엄마의 요리 책을 토대로 김밥을 만들었다. 재료를 썰고 볶고, 말기를 수어 번.
김밥 한 줄이 탄생하기 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한입 맛보는 순간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와…맛있다.’
엄마의 손맛이 깃든 옛 맛 그대로였다.
나는 김밥 한 줄을 투박하게 썬 뒤 황복이에게도 한입 주었다.
“어때? 맛있어?”
-월! 월!
황복이가 입에 침을 흘리며 더 달라고 눈치다. 황복이가 환장할 정도면 맛은 합격!
김밥을 세 줄 정도 더 만 뒤 도시락에 예쁘게 담았다.
“얘들아! 소풍가자!”
소풍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긴, 소풍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 보겠지.
“산책 중에서도 제일 재밌는 산책이야!”
-월!월! -음메에! -찍찍! -냐아앙!
산책이라는 얘기를 한 순간 녀석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울부짖었다.
하여튼, 동물이 네 마리나 늘었더니 한꺼번에 짖으면 중창단의 조화를 이룬다.
‘어딜 가볼까.’
이번만큼은 산이 아니었다.
산은 내게 직장과도 같은 곳, 오늘만큼은 직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
‘축구를 하러 가자!’
축구공을 구해다가 녀석들과 마을 들판으로 향했다.
들판으로 가는 길도 재밌기만 했다.
녀석들에게 설레고 행복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총총 걷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즐거운지 알 수가 있었다.
황궁이의 등에는 황묘가 탔고, 황복이의 머리에는 다람쥐가 있었다.
황복이 녀석은 논두렁에 개구리가 있으면 호기심을 참지 못해 달려가곤 했고, 황궁이도 가는 길에 자귀나무가 보이면 멈추어 서서 잎사귀를 뜯어먹곤 했다.
황묘는 길고양이의 성질이 남아 있는지 들쥐만 보면 황궁이의 등에서 내려와 달려들었고, 다람쥐는 그런 황묘가 겁이 나는지 앙증맞은 양 손으로 황복이의 머리털을 세게 부여잡을 뿐이었다.
한편의 동화 같은 모습을 홀로 눈에 담고 있으니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귀여운 녀석들’
마침내 들판에 도착했다.
평지가 넓고 바닥이 평평하여 공놀이를 하는 데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어릴 적 이곳에서 나무로 골대를 만들어 친구들과 축구를 하곤 했었다.
‘이제 시작해볼까.’
나는 녀석들을 내 앞으로 불러 세웠다.
녀석들이 나의 손에 들린 축구공을 빤히 바라본다. 얼른 하고 싶은지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
그전에 할 얘기가 있었다.
“첫째로. 상대방을 거칠게 밀쳐서는 안 돼!”
-월!월! -음메에! -찍찍! -냐아앙!
“당연히 태클을 걸거나 이빨로 무는 반칙도 하면 안 되겠지?”
-월!
“골대는 느티나무야. 느티나무를 맞추면 이기는 거야. 다들 알았지?”
녀석들은 얼른 시작이나 하라며 채근하듯 짖어댔다.
나는 축구공을 하늘 위로 높게 던진 뒤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제 시작!”
편이랄 것도 없었다.
녀석들은 공을 쫓기에 바빴다.
지정해 놓은 느티나무가 골대였고 녀석들이 공을 쫓으며 드리블하는 동안 나는 나무 아래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공놀이를 진즉에 할 걸 그랬어.’
오랜만에 활기차게 뛰는 모습을 보니 소풍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황복이는 공을 쫓으며 이성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극한의 흥분상태였다.
황복이의 머리위에 올라탄 다람쥐가 녀석의 머리털을 부여잡으며 조종을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황복이의 드리블 실력이 나름 일품이었다.
황궁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황복이처럼 코와 입으로 드리블을 하지 않고 양 발로 뻥뻥 차기만을 반복했다.
“황궁아! 힘 조절을 해야지!”
황궁이가 공을 앞발로 툭 차면 공은 멀리 가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황복이가 황궁이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월! 월! 짖으며 공을 쫓아가기 바빴다.
그 모습이 어릴 적 나와 철수의 모습과 비슷했다.
철수 녀석은 축구를 잘 못해 뻥뻥 차대기만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성을 내곤 했으니까.
‘황복이 살 좀 빠지겠는 걸.’
오직 한 녀석만이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 있었는데, 황묘였다.
공놀이에 큰 관심이 없는지 하품을 길게 찢으며 노곤한 듯 낮잠을 즐길 생각으로 잔디밭에 누워있었다.
황묘에게 축구를 권유한다면 냥냥 펀치를 맞을 것 같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간혹 축구공이 황묘 곁으로 다가올라 치면 냐앙! 거리며 하악질을 몇 번 하더니 양 손으로 축구공을 향해 냥냥 펀치를 날리는 게 건들리 말라는 눈치였다.
‘눈으로만 보기가 아깝네.’
내 주위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함께 웃고 즐거워했을 텐데, 나 혼자 웃으려니 무언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