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82
182.
“이모님!”
“고모님!”
“…너희들이 나란히 와서 부르면 호칭이 좀 헷갈리는구나.”
조카들 외에 다른 방문객들은 사양한 제갈윤위는 몇 개월 만에 보는 조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 좀 한 모양이지?”
“조금요.”
이린이 편지를 보낼 때 제갈수원과 번갈아 가며 제갈윤위에게 서신을 보낸 남궁청휘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런데 이모님. 혹시 연 소저가 저희와 조우하게 되리란 걸 예측하고 계셨습니까?”
“출발 시기와 목적지가 비슷하니 만날 가능성은 꽤 있겠거니 했지. 여기까지 같이 올 줄은 몰랐지만.”
“어? 그럼 말씀해 주시죠. 어차피 저랑은 구면인데요.”
“모르고 만나는 게 더 재밌잖니?”
“…….”
“…….”
어쩐지 이상하게 자꾸 같은 주루를 찾더라니.
“참, 그러고 보니 여행 도중에 검성과 고모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아. 연가 남매 둘 다 검성을 좋아한대서 옛날에 여행 갔던 길을 알려 줬거든.”
이현이 정한 여행 진로에는 제갈윤위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고모님도 검각에 가셨죠?”
“갔었지. 그 동네 요즘 왜구가 극성이라며? 그때도 잦았는데 더하다니, 징그러워.”
남궁청휘는 서호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검각이나 세가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규모 같지 않던걸요.”
“군이 나서야 하는데 글쎄, 워낙에 어수선해서 병력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
“연 소협이 소주에 남았는데 걱정입니다.”
“사람을 두고 도망칠 아이가 아니니 걱정이지. 가는 길마다 사람도 주워 오지? 아주 집안 내력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제갈윤위의 눈에는 묘한 즐거움과 그리움이 담겼다.
“그래도 그게 매력이지.”
“그래서 집 떠나서 여기서 지내시는 건가요?”
남궁청휘의 질문에 제갈윤위의 시선이 제갈수원을 향했다. 너는 답을 알 거라는 노골적인 눈빛에 청휘의 시선 역시 수원을 향했다.
“고모님은 할아버님과 사이가 안 좋으시니까요.”
“내가 그 집에 계속 있었으면 마련야장이 아니라 어느 댁 마님이 되어 있었을 걸.”
그렇게 말하는 제갈윤위의 시선은 청휘를 향하고 있었다.
“누구처럼.”
“…….”
그리고 그런 고모의 반응에 제갈수원은 시무룩해졌다. 고모가 제갈세가를,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수원은 이 거침없는 고모가 좋았다.
“이제는 들어가기도 나가기도 어려운 곳이 되었는걸요.”
“애들이 방구석에서 책만 읽으면 자기들 뜻대로 되는 줄 아니.”
“저야 괜찮지만 누이들이 전혀 안 괜찮죠.”
한숨과 함께 두 사람의 분위기가 암울해지자 청휘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세가가 유독 폐쇄적이라는 것은 청휘도 잘 알았다. 오죽하면 자신도 제갈세가에서 친척인 또래 소녀들을 만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흐음. 그러고 보니 이번 용봉지회는 제갈세가지?”
“네? 네.”
“이현이 이번에 분명 동생을 데리고 참석할 테니 네가 적당히 구실 붙여서 애 숨통 좀 트게 해 주렴.”
“네?”
“네가 이번에 이린과 안면을 텄으니 연이현의 여동생과 네 누이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고 하라고. 연이현이 함께라고 하면 분명 허락할 거다.”
“진짜요?”
“그래.”
고모의 말에 머리를 굴리는 제갈수원을 제치고 청휘가 물었다.
“이린… 연 소저가 이번 용봉지회에 참석할까요?”
“이현이가 어디 안 다치고 멀쩡히 돌아온다면. 걔도 명색이 오룡삼봉에 들어 있으니 예의상 이번에 참석해야지. 게다가 이런 일 아니면 외부인이 제갈세가에 가 볼 일이 없으니 어지간하면 이린을 데리고 갈 거다. 이린이 가기 싫다고 하면 몰라도.”
“제가 부탁할게요! 연 소저는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 힘써 보렴.”
“네!”
고모의 말뜻을 알아들은 제갈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좀 쉬어야겠으니 둘 다 가 보렴.”
“네. 편히 쉬세요, 고모님.”
대답과 함께 아이들이 나가고 제갈윤위는 웃으며 허리를 두들겼다. 분명 방금 제갈수원과 함께 나갔던 남궁청휘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왜 돌아왔니?”
“죄송합니다. 신경이 쓰여서요.”
“괜찮다. 걱정할 거 없어. 그만 나오렴.”
제갈윤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청휘에게는 이제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 배려해 줬는데 역시 눈치가 없군.”
어둠 속에서 건들거리는 요사한 미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청휘는 그가 누군지 잘 알았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곽 공자?”
“그렇게 잡아먹을 듯 노려보지 마. 평범하게 마련야장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곽천영은 뜻밖에도 제갈윤위에게 예를 표한 후 자신의 도를 꺼내 내밀었다.
“한번 보여 드리고 오라고 하셔서.”
“흐음. 보기완 달리 관리를 잘하는 아이구나.”
제갈윤위는 몇 가지 질문과 함께 도의 상태를 살핀 후 만족스러운 얼굴로 도를 돌려주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곽천영은 지금껏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예의 바른 모습으로 제갈윤위에게 예를 갖추고 사라졌다.
“곽 공자의 도, 이모님께서 만드신 거였군요.”
“연줄이 있어서.”
“곽 공자의 스승은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사문은요?”
“글쎄,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둘 다 이린에게 관심이 있다고?”
이모의 가감 없는 말에 청휘가 뭐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참… 취향들 한번 대쪽 같네.”
“네?”
“아니다.”
“어차피 감숙으로 돌아가면 다시 여기까지 올 일은 별로 없겠지요.”
“과연 그럴까? 아까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이모님, 혹시 일부러…?”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뒷머리를 긁으며 모른 척하고 있지만 명백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제갈윤위를 본 청휘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부인의 곁을 지키던 진명현이 웃으며 제갈윤위를 말렸다.
“너무 놀리지 마십시오.”
“근데 너 좀 더 정진해야겠다? 저거 여러모로 참 보통 녀석이 아니거든.”
“…압니다.”
한숨을 쉬는 남궁청휘를 보며, 제갈윤위는 아끼는 조카의 등을 밀어주었다.
“쟁취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나 버리는 것도 있단다.”
“이모님은 누구 편이세요?”
“흐음. 살아 보니 역시 연하가 좋더라. 이린이 원한다면 수원도 괜찮지.”
“…….”
* * *
다음 날 아침 모두 함께 떠나는 것을 배웅하러 나온 이린은 몹시 아쉬워했다.
“좀 더 쉬다 가면 좋을 텐데.”
“오래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당자혜와 남궁수연은 이린의 손을 꼭 잡고 당부했다.
“무모한 일에 뛰어들지 말고요. 나중에 다시 보죠.”
“다음에 장원으로 찾아갈게.”
“연락은 해 보고 와.”
여인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제갈수원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연 소저! 부탁이 있어요!”
“?”
“이번 용봉지회에 꼭 와 주세요! 제갈세가에서 하거든요. 연 소저에게 저희 누이를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저야 좋지만… 그러고 보니 제갈 공자의 누님은 같이 안 나왔군요.”
“누님은 무공을 제대로 가르쳐 주질 않아서… 외출이 허락되지 않아요. 그래도 연 소저와 만난다고 하면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응?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린의 소매를 붙든 제갈수원이 눈을 번뜩였다.
“정말이죠? 약속한 거예요!! 연 소협이랑 같이 오세요!”
마지막까지 꼭꼭 다짐을 받아 낸 제갈수원은 결국 곽천영과 남궁청휘에게 한 팔씩 붙잡혀 끌려갔다.
“또 보자고.”
“다음에 꼭 다시 뵙겠습니다.”
“네에.”
요란스럽던 일행이 떠나자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진 기분에 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섭섭한 모양이구나.”
“으음. 역시 한참을 같이 다녔으니까요.”
정말, 겨우 몇 개월인데 별일이 다 있었지.
“그래. 얘기나 마저 해 주렴.”
“아빠 이제 안 바빠요?”
“딸하고 놀려고 미리미리 끝내 놨지.”
자신만만하게 웃는 연적훈의 뒤로 연사훈이 스르륵 나타났다.
“그럼 일을 좀 더 하십시다.”
“잠깐, 너무해!!”
“식사 시간에는 풀어 드릴게요.”
“…….”
아빠를 향해 말없이 손을 흔들어 준 이린은 어제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아이들을 챙기러 움직였다.
일단 아는 사람이 있나 확인하러 간 이린은 뜻밖에 연무장에 여자아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민아.”
“언니!”
특히 연무장 맨 앞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서문민영이었다.
“와아 언니, 오랜만이야!”
“민아, 어떻게 된 거야?”
“나 여기서 애들 가르치기로 했거든.”
“아가씨.”
이린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다가온 이는 이린이 항주에서 거둔 아이였다
“아,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 여기서 지내기는 괜찮고?”
“네.”
아이의 손을 붙들고 예전에 다친 곳이 나았는지 확인하고,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당부한 이린은 연무장에 보이지 않는 아이를 찾았다.
“민아, 헌오는?”
“헌오는 격한 운동은 무리인 아이들 데리고 아침 산책 중이요.”
“이런. 내가 너무 어린애들을 데려와서 너희들이 고생이구나.”
“헤헤.”
“참, 그러고 보니 서문 아저씨랑 헌오 아버지는? 상단에 계시니?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음… 그런 게 있어.”
“뭐야 그게.”
헌오가 혈교에게 습격당했을 당시의 일들을 직접 듣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어려울 듯했다. 서문민영은 쫓겨 다닐 당시 너무 어렸으니 아는 것도 없을 테고.
“아빠는 표행 떠났고, 헌오네 아저씨는 친척이 찾아와서 헌오만 맡겨 두고 떠났어.”
“너도 헌오도 어린애인데 두고 떠났다고?”
두 보호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애들을 놔두고 갔다는 말에 놀라 그만 원래 물어보려 했던 것들도 잊어버린 이린이 아이들의 생활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애들이랑 같은 숙소 쓰잖아. 너무하지?”
“그래서 여기도 참가 중이구나.”
연무장에 있는 것은 대부분 장원의 무사들인데 아이들이 섞여 있으니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이 매달리자 거부하지 못한 이린은 차례차례 자세를 봐줘야 했다.
“난 언니가 가르쳐 주는 게 더 좋더라.”
“그래그래.”
헤헤 웃는 민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이린은 어쩐지 피곤해서 방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데 땀이 나서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한숨을 쉬며 방으로 향하자, 커다란 꽃다발을 하나씩 든 마선과 다순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무장에서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참가하도록 되어 있을 텐데.
“뭐…야?”
마선은 쿡쿡 웃으며, 다순은 떫은 표정으로 이린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남궁 공자님이 아가씨께 드리라고 부탁하신 꽃다발입니다.”
“폭행범… 아니, 곽 공자님에게 부탁받은 물건입니다.”
“어??”
꽃다발만 전달한 두 사람은 이만 일 하러 가 보겠다며 서둘러 사라졌다.
청휘는 그렇다 치고, 곽천영까지 꽃다발이라니. 받아 놓고도 얼떨떨했다.
‘그것도 다순이 곽천영 부탁으로? 어젯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다행히 어디 맞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만.
그리고 당혹스러워하는 이린을 보며 모처럼 딸과의 조식을 위해 일에서 탈출한 연적훈 역시 묘한 얼굴을 했다.
“딸, 정말 아직 시집 안 가는 거지?”
“안 간다니까요!”
입술을 비죽이던 이린은 식사를 마친 후, 꽃다발로 얼굴을 가리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꽃 사이로 보이는 귓가가 묘하게 붉었다.
“어라, 벌써 시집보내게?”
“안 보내요!”
저도 모르게 울컥하며 대답한 연적훈이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몸을 굳혔다.
“반항기?”
“아닙니다.”
“딸 뺏기고 싶지 않으면 데릴사위로 들이기 괜찮아 보이는 아이로 빨리 고르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자신이 아는 곽천영의 스승을 떠올리며 제갈윤위는 히죽 웃었다.
곽천영의 스승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연적훈만 그저 의아해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