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38
238.
셋으로 갈라졌다 해도 혈교가 가장 집요하게 따라붙은 쪽은 당연히 연가상단으로 향하는 일행일 터였다.
“그런 중요한 책을 다른 세가나 문파에 넘길 리가 없을 거라 생각하겠죠.”
“그렇겠지.”
굳이 연화문이 연가상단으로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동행하신 아가씨와 상당히 친밀해 보이시더군요.”
“그런가?”
“그래 보이십니다.”
“그래. 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겠지.”
“저는 친밀해지는 데 무진 고생을 했는데 조금 억울하군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는구나.”
여전히 무심한 목소리에 청운진인 역시 기운이 빠졌다.
하긴 아무리 오랜만에 연화문을 만났다지만 기운이 날 만한 일이 뭐 있을까.
이린은 실종되었고 이현과 그 벗들 역시 행적이 묘연하니 온통 심란한 일뿐이었다.
‘다만….’
신수린이라는 이름을 댄 그 아가씨가 아무래도 신경 쓰였다.
“그러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뭐가 말씀이십니까?”
“신수린이란 아이와 친밀해 보인다는 거 말이다.”
“?”
“…….”
의아해하는 청운진인을 못 본 척하며 연화문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건만 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어린 소저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신수린이란 이름 때문이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청운진인이 전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뭐가 말이냐?
딴생각을 하고 있다 괜히 찔려서 되물었다. 하지만 청운진인은 뜻밖에 전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왜 혈교가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걸까요?
―그건… 확실히 그렇군. 이쪽에 가장 많이 따라붙을 거라 예상했는데 설마 예상이 빗나간 건가?
―그렇다 해도 이렇게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무런 습격도 없이 일행은 연가상단으로 가는 길목에 숨어 있던 제갈세가의 무인들과 조우했다.
동행한 제갈수원 역시 쫓아오는 기색조차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혹시 연가상단을 직접 습격할 생각인가?’
남궁세가나 무당파와 비교한다면 그쪽이 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연가상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혈교에 대비해 온 곳이니 그쪽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 황제가 등극하고 태후가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는 관의 태도도 바뀌어 예전 같지 않으니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
일단 혈교가 추격해 온다면 포위망을 좁히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조용히 함께 움직였으나 혈교는 오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지.
―그럼 제가 직접 가… 뭔가 오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보내 확인하려 할 때였다.
“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크…아아아….”
“제발… 차라리 어서 죽여라….”
차라리 죽여 달라 비명을 지르는 흑의인의 머리를 한 손에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마도 혈교의 늙은 마두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의 멱살을 잡고 다가오는 장신의 사내.
연화문은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았다.
연화문이 아니어도, 그곳에 있는 이들 역시 한눈에 알 수밖에 없었다.
보기 드문 장신의 몸에 반짝이는 금발과 푸른 벽안.
‘천마 곽선후!! 저자가 왜 이런 곳에!’
마교의 교주가 왜 이렇게 머나먼 호남까지 왔단 말인가!
그것도 뜬금없이 혈교의 고수들을 때려잡으며!
자신을 보고 덜덜 떨고 있는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발견한 곽천후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네놈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 쓸데없는 생각은 할 거 없다.”
“히이익.”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와 몇몇 심약한 자들이 풀썩 주저앉았다.
점혈 당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피가 줄줄 흘러 괴로워 보이는 노고수는 힘들게 눈을 떠 제갈수원을 보고는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혀로 긴 불만을 토해 냈다.
“크으… 설마 마교를 끌어들일 줄이야….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꾸민 일인가? 과연 제갈세가. 교활하구나.”
“……?”
아니, 저도 금시초문인데요.
제갈세가가 언제부터 마교까지 움직일 수 있는 배후 세력까지 되었담!
뜻밖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제갈수원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여기저기서 ‘과연 제갈세가…!’ 하면서 영문도 모르고 감탄하는 소리까지 들려오니 금방이라도 입에서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이 낫겠지.’
천마도 어이없어하는 얼굴이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니 제갈수원은 그저 담담히 웃는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정작 천마 곽선후는 일행 중에 몇 없는 여인들을 유심히 쏘아보고 있었다.
‘어디 있지.’
후보를 추려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을 보고 진심으로 겁을 먹지 않은 사람만 찾아내면 되니까.
물론 곽천영이 이런 대책 없는 생각을 들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양손에 피떡이 된 사람을 하나씩 들고 있으면 이린도 좀 놀라지 않을까요?’
그러나 연가장 사람들과 안면이 있어 신분이 탄로 날 염려가 있는 곽천영과 유영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기에 이런 적절한 충고를 해 줄 사람이 곽선후의 곁에는 없었다.
“연적훈은 어디 있지?”
“자, 장주님은 다른 곳에 계십니다.”
곽선후 일행은 연가장으로 찾아가던 도중 흉흉한 기세로 달려가는 혈교 놈들이 보여 그냥 보이는 대로 학살하며 왔을 뿐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중요한 것만 말해 보라며 사술까지 써가며 가차 없이 고문한 덕분에 일단 이들이 이린을 쫓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내고 달려온 후였다.
‘연적훈, 그자는 아비라는 자가 애가 위험한데 애만 혼자 가게 해?’
결코 혼자는 아니었지만 곽선후의 기준에 본인이 직접 붙어 있지 않다면 마찬가지였다.
“크억…!”
자세한 일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곽선후는 일단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을 적당히 내팽개치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수하들이 후다닥 물수건을 대령하여 손을 닦았다.
“?”
“??”
대체 뭐 하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손을 깨끗하게 닦은 곽선후는 다짜고짜 일행에게 다가갔다. 자연스레 상어를 본 정어리 떼처럼 순식간에 길에 생겨났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동요하지 않고 일행의 한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무덤덤한 태도로 서 있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에게 손을 뻗었다.
“돌아가자.”
“……?”
뜬금없는 헛소리에 연화문은 미간을 구기며 그 손을 쳐 냈다.
‘이린이 틀림없군.’
기세를 감추지 않은 자신에게 이리 거침없이 대할 수 있는 여인은 세상에 단둘뿐이었다.
“이제 만족했을 테니 그만 돌아가자. 이 아비가 다 설명해 주마.”
“!”
분명 얼굴도 목소리도 자신이 아는 곽선후가 맞는데 전에 없이 다정한 말투에 연화문도 어쩐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지금 이놈이 뭘 착각하고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를 이린이라고 착각하고 있나?’
그리고 그 말은, 곽선후가 지금까지 이린을 데리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연화문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옆에 있던 청운진인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이놈은 또 뭐야? …혹시 저놈이 맘에 들었다면 본교로 데리고 가도 되고 네가 원하면 누구랑 혼인해도 아버지는 다 괜찮다. 응?”
곽천영이 들었다면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말이었다. 저 곽선후가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라니, 연화문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 아무래도 상관은 없는데.”
너무 웃겨서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 섞인 목소리에 곽선후의 얼굴이 굳었다.
“너, 넌 누구냐!”
“딸 사랑이 그렇게 지극한데 정작 딸은 못 알아보나 봐?”
“너… 설마….”
천마 곽선후에게 이렇게 겁 없는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달리 누가 있을까.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연화문이 앞으로 다가가고 곽선후가 기세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너, 연화문? 지금까지 대체 어디에 있었….
―역시. 이린을 데리고 간 건 너였구나.
―아니, 데리고 갔다기보다는, 내가 아버지고 한데.
어째선지 연화문이 물으니 변명하게 된다. 만약 연적훈이 이렇게 말했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이쪽에는 아무 말도 없이. 적어도 서신이라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왜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지?
스르릉―
그렇게 말하는 연화문의 손에는 익숙한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뭐? 너도 애 갖고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잖아!!
그렇게 말하며 곽선후 역시 자신의 도(刀)를 꺼내 들었다. 무방비하게 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카아앙!!!
검과 도가 맞부딪치며 파공음이 퍼져 나갔다.
―네가 애 키우기엔 못 미더우니 그럴 수밖에.
―…….
눈을 치켜뜬 연화문의 말은… 사실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뜻밖의 비무는 점점 화려해져만 갔다.
전음으로 조용히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은 감히 끼어들 엄두도 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방을 벌이고 있어서 다들 뒤로 물러선 채 멍하니 입만 벌리고 바라볼 뿐이었다.
―이린은 어디 있지?!
―내가 할 말이야! 너 만난다고 나갔는데 못 만났어?
―뭐?!
―엄마 만나러 가겠다고 나왔다고.
―왜 갑자기 나를…? 아니, 설마 내가 그 아이 어머니인 걸 밝힌 거야?
―말했지. 그…런데 그게 왜?
비교적 평범하게 겨루던 두 사람의 행동이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부릅뜬 연화문의 검에 투명한 검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살기에 당황한 곽선후가 한발 물러섰다. 연화문과 진심으로 싸우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린이었다. 지금 잘못 맞붙었다가는 일이 어찌 될지 모르니.
카가가가강!!
“누구 멋대로 그걸 말한 거냐!”
“그거야, 내 맘대로지!!”
가까이 있으면 새우등만 터지는 고래들의 싸움이었다. 연화문이 검을 뽑는 순간부터 일행을 뒤쪽으로 피신시킨 청운진인이 진땀을 뺐다.
“와아….”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무시무시한 비무였다.
일부러 조금 거리를 벌리고 따라오던 이들도 몸을 숨긴 채 뜻밖의 싸움 구경에 넋을 잃었다.
“이건 돈 주고도 못 볼 구경인걸.”
“…아가씨는 보이지 않는군요.”
인피면구로 변장은 했으나 목소리 때문에 연가장 사람들이 알아챌 가능성이 있어 일단 거리를 두고 있던 곽천영과 유영이 멍하니 두 사람을 보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는 길에 잡은 혈교 놈들을 족쳐 봤지만 이놈들도 뭐 아는 것은 없는 듯했고. 애초에 혈교 놈들은 사람을 소모품으로 보니 윗대가리가 아니면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윗대가리는 아까 교주에게 붙잡혀 끌려갔고.
연가상단을 향해 직선으로 움직이는 교주 때문에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으며 따라온 이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교주의 무위를 친견하는 영광에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교주님과 싸우고 계신 저분은….”
“스승님과 맞붙어서 안 밀리는 걸 보니 검성 연화문이겠지. 이야아, 스승님 엄청 좋아 보이시네. 아, 그럼 이린은 이미 모녀 상봉에 성공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