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9
29.
과보호 오라비와 반항기 여동생의 대화를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보던 서문제우와 표사들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숨을 삼켰다.
서문제우만이 두 사람이 영약을 먹었으리라 짐작하고 표사들에게 놀라지 말고 휴식하라 소리칠 뿐이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놀랄 것도 생각하지 않고 이린과 이현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 시원해’
가벼운 몸놀림으로 숲속을 달리는 이린은 바람을 맞으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현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이미 숲속에 있는 어떤 동물도 이린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린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은 이현뿐이었다.
이린이 나뭇가지 위를 뛰어다니고 있는 걸 본 이현은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숲을 달리는 이린의 신법이 너무나 능숙했다. 대체 평소에 산을 얼마나 돌아다닌 건지.
‘다른 건 몰라도 경신술은 뛰어나니 좀 안심되는 것도 같고.’
하지만 어린아이였다. 안심하고 풀어놓기에 세상은 아직 참 험했다.
“으아아악!!!”
쿵!
걱정하기가 무섭게 지금 바로 저렇게 비명이 들려오지 않은가.
“오빠.”
“잠깐만, 린아.”
커다란 나뭇가지 위에 멈춰 서 있는 이현과 이린은 숲길을 도망치고 있는 마차 한 대를 발견했다. 마차 뒤로, 검은 옷의 사내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니 방금 전 비명의 주인인 모양이었다.
“따라가자.”
“린아, 너 먼저 마차로 돌아가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오빠 혼자선 무리일 수도 있어. 일단 뒤쫓자.”
“아니…….”
이린의 의견에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이린은 이미 마차를 뒤쫓아 달리고 있었다. 말 안 듣고 겁 없는 동생 때문에 이현은 한숨을 쉬며 뒤를 따랐다.
쿵! 쿵! 히이잉!!!
마차를 몰고 있는 이의 솜씨가 형편없는지 말은 날뛰고 마차는 나무 여기저기에 부딪히고 있었다.
“저러다 큰일 나겠네.”
지켜보고 있던 이린이 혀를 찼다. 뭔가에 쫓기고 있는 건지 사고가 난 건진 몰라도 안에 사람이 있다면 무사할 거 같지가 않았다. 순간, 마차가 부딪치며 휘장이 흔들려 이린의 눈에 마차 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안에 누군가 있는 걸 확인한 이린이 짧게 혀를 찼다.
“오빠, 주변 좀 살펴 줘.”
“뭐?”
이현이 따라온 걸 확인한 이린은 엉망으로 여기저기 부딪히고 있는 마차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어 균형 잡기가 힘들었지만 이린은 다람쥐처럼 잽싸게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아, 도와주…….”
“도와줄게.”
마차 안에 있는 것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예쁜 여자아이였다. 나이는 이린과 비슷하거나 조금 위 정도일까? 어딜 다친 건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아이를 본 이린은 차라리 잘됐다 싶어 아이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아직도 위태위태하게 달리고 있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안 돼!!”
파르르 몸을 떨며 남궁청운은 눈을 떴다.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폈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몸도 무거워 움직이지 못하고 숨만 헐떡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일어나셨네요. 삼공자님.”
“너는……!”
비꼬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에 청운은 눈을 부릅떴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의 주인이기도 했던 자신의 큰형 청원(晴湲)의 심복 완영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혹 공자께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면 주군께서 슬퍼하셨겠지요.”
“그래서 너희들은 주군을 위해 어린아이를 해치려는 게냐?”
“주군의 명입니다.”
차가운 목소리에 청운이 비통하게 외쳤다. 자신은 이미 늦어 버린 걸지도 몰랐다.
“청휘 그 아이가 황룡 전장의 진 장주의 딸과 혼인하는 게 그렇게나 막아야 할 일이더냐?”
“황룡 전장이 가진 막대한 부를 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막내 공자님의 외가이신 제갈세가와도 돈독한 사이이니 주군께서 차후 가주 자리를 승계하시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그 막내 공자와 진 장주의 여식은 이제 겨우 10세 어린아이에 불과해! 형님께서 잠시 판단이 흐려지신 거다, 지금이라도 막아야 해!”
딱딱한 목소리에 가슴을 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무모한 짓 하지 마십시오. 공자님께선 무너진 토사에 깔려 전신 골절 상태십니다. 아무래도 무모하게 마차를 감싸다 도리어 마차에 부딪히신 모양입니다.”
여전히 비꼬는 듯한 목소리에 청운이 벌컥 화를 냈다.
“네가 감히 나를 조롱하는 게냐! 당장 가서 멈추게 해!”
“안타깝게도 그리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화가 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청운과 달리 완영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서늘했다.
“저 역시 골절상으로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요. 공자님도 저도 몸이 나을 때까진 여기서 얌전히 요양 생활입니다.”
“뭐???”
“다행히 치료비와 숙박비는 삼공자님과 안면이 있는 호남 연가장 소장주께서 치러 주셨다니 걱정하실 것 없겠더군요. 언제부터 호남제일미소년과 교분이 있으셨습니까?”
“뭐?????”
* * *
“읏차.”
마차를 뒤쫓던 이현은 이린이 누군가를 안고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안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이린의 뒤를 따르던 이현은 마차를 쫓고 있던 자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저기다! 쫓아라!!”
이현이 나무 위로 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사내들이 말을 타고 마차를 쫓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달리고 있는 말 덕분에 마차를 쫓는 사내들은 정신없이 달려갔다.
잠시 후 소란스럽던 숲속이 조용해지자 이현은 그제야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아이들을 안고 자신들의 마차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아무래도 좋은 목적으로 이 아이를 쫓는 건 아닌 것 같구나.”
식은땀을 흘리며 헐떡이는 아이를 품에서 빼낸 이현이 안정적으로 양팔에 하나씩 아이들을 붙잡았다.
“가자.”
“오빠, 나 내려 줘.”
“너 뭔 짓을 할지 몰라서 안 되겠어.”
혼자 달리는 마차 위로 뛰어드는 이린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던 이현은 동생을 붙잡고 있는 팔에 힘을 준 채 달리기 시작했다.
저항하려고 한다면야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단호한 오빠의 말에 아직 완력으로 상대가 안 되는 이린은 힘없이 이현의 옆구리에 끼어 연행당해야 했다.
‘저 애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이현의 반대편 팔에 붙잡혀 힘없이 늘어져 있는 아이의 파리한 안색을 살피며 이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위험해 보여 다짜고짜 구해 놓긴 했는데 저런 흉흉한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다니 이러다 뭔가 위험한 일에 엮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민아 때처럼 잘 풀리리란 법도 없고.’
하지만 이번 역시 민아 때와 마찬가지였다. 어린아이가 위험한데 차마 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목숨을 위협받을 만한 잘못을 저지르긴 힘들겠지.’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린은 몸에 힘을 풀었다. 어차피 이현이 본 이상 저 아이를 그냥 두고 갈 리도 없었다.
이린의 뒤를 쫓느라 절치부심한 결과 일취월장한 이현의 경공 덕분일까, 세 사람은 어느새 마차가 쉬고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느긋하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서문제우는 이현이 갑자기 데리고 나타난 여자아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였다.
“소장주님?”
“설명은 나중에 하죠.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어서 의원에게 보여야 합니다. 서둘러 출발하죠.”
“알겠습니다.”
이현의 표정에 긴박함을 읽은 서문제우 역시 군말 없이 일행을 출발시켰다.
일행이 출발하는 걸 확인하고 마차에서 숨을 돌린 이현과 이린은 그제야 제대로 아이의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어때, 의식은 있어? 말할 수 있겠니?”
“아…… 아아…… 감, 사…….”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이린은 어쩐지 자꾸 민영이 떠올랐다.
‘아니, 하지만 그렇게 특이한 병증이 또 있을 리가 없지.’
이린에게 안겨 있다시피 한 아이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경련했다.
“캑, 쿨럭……!”
괴로워하며 감사의 말을 하려던 아이는 컥컥거리다 이내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민영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오빠, 이거 설마.”
“중독된 것 같구나.”
이현이 혀를 찼다. 상대가 어린아이라면 같은 양의 독을 써도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 누군지 몰라도 이런 작은 아이에게 독을 쓰다니 어지간히 악독한 자가 아니었다.
“독을 쓰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살수까지 쓴 건가.”
이현은 처음엔 아이를 구하러 온 자들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의 뒤를 쫓는 이들은 하나같이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이가 그들 손에 들어갔다면 어찌되었을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현은 예전에 지네에게 당한 이후로 어느 정도 독에 내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현 본인에 국한된 것이지 다른 사람의 독을 바로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두 사람의 경공이 빨라 지금 아이를 안고 서둘러 달려간다 해도 해독해 줄 수 있는 의원을 늦지 않게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잠깐만, 오빠.”
이린은 입술을 깨물고 청아가 들어 있는 가방을 열었다. 영문을 모르고 나온 청아가 놀아 달라고 이린의 팔을 타고 올라갔지만 이린은 청아의 둥지 겸 만들어 준 폭신한 방석을 걷어 내고 그 밑에 있던 상자들 중 하나를 꺼냈다. 하지만 넣을 때는 분명 깔끔하던 상자의 안쪽 모서리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응? 이게 왜 부서져 있지? 어디 부딪쳤나?”
하지만 부딪쳐서 부서진 거라면 가방 역시 상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험하게 뛰어다닌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라 놀라서 다급하게 열어 보니 분명 안에 넣어 둔 3개의 영약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구멍의 크기와 눈앞에 있는 청아의 몸 굵기가 비슷하다는 사실과, 요새 청아가 먹을 걸 제대로 먹지 않는데도 묘하게 기운이 넘치던 걸 떠올린 이린은 합리적 의심을 품게 됐다.
“청아야?!”
키이…….
탁-!
이린이 상자를 꺼내 든 순간부터 슬금슬금 몸을 피하던 청아가 이린의 목소리에 후다닥 가방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뚜껑까지 닫았다.
잠시 상황도 잊고 어이없어하는 이린을 본 이현이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약을 가져왔었구나.”
“아, 응.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비상약으로. 토사 붕괴했을 때 부상자들은 내상도 없고 위험하진 않은 것 같아서 말 안 했어…….”
슬쩍 이현의 눈치를 봤지만 딱히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탄하는 듯한 얼굴에 안도한 이린이 고민하며 영약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걸 먹이면,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의원을 찾을 시간도 없고 해독을 할 수 있는 이도 없으니 그게 제일 좋을 것 같다. 해독이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의원을 찾아갈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주겠지.”
이현은 아이가 입안에 고여 있는 검은 피를 가능한 뱉어 내도록 한 후 영약을 먹여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등에 손을 대고 천천히 기를 불어넣어 영약의 기운이 몸에 퍼져 독을 제압하도록 도왔다.
이린은 점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자신보다는 이현이 돕는 게 나을 것 같아 두 사람을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아까 벗겨 놓은 피가 묻은 아이의 겉옷을 닦고 짐 속에서 자신의 외투 한 벌을 꺼냈다.
아까 안고 내릴 때 보니 이린보다 약간 큰 아이 같아 적당히 맞을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옷이랑 어딘지 안 어울리네.’
아까보다 나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초췌한 안색인 아이는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용모에 어딘지 귀티가 흘렀다. 그리고 어쩐지 얼굴이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쫓기고 있어서 나름 변장을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