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44
44.
“살해당해야 할 만큼 죄를 지었어? 누군가에게 쫓겨야 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
“아니.”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윤휘를 보며 이린은 활짝 웃었다. 면사를 쓰고 있지 않은 이린의 파란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며 윤휘는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언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을 저지른 건 죄 없는 사람을 해치려는 놈들이야.”
“이린.”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윤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린은 윤휘를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지금은 약하기에 쫓기고 있지만 강해질 수 있어. 부당하게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어. 언젠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누군가에게 함께 싸워 주겠다고 말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돼.”
내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처럼.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숨을 삼킨 윤휘는 생각을 정리하듯 눈을 깜빡이며 이린을 꼭 끌어안았다.
콰아앙- 콰아앙-
멀리서 들려오던 폭음이 잠잠해지자 떨고 있던 윤휘를 토닥이던 이린은 타인의 온기 때문인지 긴장이 풀린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무너지는 이린을 받쳐 안고 주저앉은 윤휘는 잠든 이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강해질게요. 언젠가 당신과 함께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이 강하고 올곧은 아이는 분명 자신 같은 사람을 구하다 싸움에 휘말릴 것 같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나도 싸워야 해.’
어리다고 언제까지나 보호받을 수는 없고, 싸우기 싫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대로는 이 아이의 곁에 당당히 설 수 없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또 이렇게 함께할 수 있다면 즐거울 것 같았다.
벽에 기대어 앉은 두 사람은 제갈윤위가 가져다준 모포를 덮고 손을 잡은 채 다른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 * *
“어라?”
그리고 몇 시진 후 잠에서 깬 이린은 문득 뭔가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래요?”
나란히 잠들어 있던 탓에 덩달아 잠에서 깬 윤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묻자 품 안을 더듬던 이린이 외쳤다.
“청아가 없어!”
그 말에 아까 이린을 안아 들 때 품 안에서 빠져나온 청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이현이 물을 가져다주며 중얼거렸다.
“아까 대장간에서 네 품에 있는 걸 봤는데 그때 그대로 빠져나간 것 같구나.”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알도 그대로 두고 왔네. 벌써 시간이 꽤 지난 것 같다만 괜찮을까?”
난감한 얼굴의 이현과 떨떠름한 얼굴의 제갈윤위를 보며 이린은 애써 초조함을 진정시켰다.
“청아는 작으니까, 잘 숨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도망치다 길이라도 잃었으면 큰일인데.”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직까지 손을 꼭 붙잡고 애틋하게 마주 보며 앉아 있는 두 아이를 흘겨보던 이현이 제갈윤위에게 물었다.
“밖의 상황을 알 수 없을까요?”
“명현이 올 때까지 기다리렴. 소리를 들으니 대충 정리된 거 같으니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설치해 둔 벽력탄 개수와 위치, 그리고 들려온 폭음의 방향과 숫자. 방금 큰 거 하나 터졌으니 그걸로 상황이 정리됐으면 우릴 부르러 올 거야.”
느긋하게 뭔가 적고 있는 제갈윤위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이현은 뭐라 더 말 붙이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그때였다.
콩콩콩-
“?”
“명현이야. 이 문은 밖에서는 못 열게 되어 있거든.”
약간 독특한 박자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윤위가 문을 열자 그 말대로 명현이 나타났다.
“끝났으니 나오셔도 됩니다. 부인.”
“고생했어, 상단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대장간의 상태가 좀 이상해 보이는데…….”
명현이 말끝을 흐리자 이린이 안색을 바꾸며 벌떡 일어났다.
“저, 저 먼저 나가 볼게요!”
“저도요!”
“잠깐 얘들아, 위험하니까 내가 먼저 나갈게!”
아이들이 우르르 나가는 걸 본 제갈 부부가 피식 웃었다.
“걱정 안 되십니까?”
“네가 안 막는 걸 보면 나가도 되는 거겠지. 아이들이 있으니 확실히 활기가 넘치네.”
“확실히… 즐거워 보이십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애들이 아니라 그런가 귀엽네. 자, 우리도 나가자.”
“네.”
오늘의 습격 기록을 정리해 넣은 제갈윤위는 명현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밖으로 나와 대장간 앞으로 간 제갈윤위는 먼저 뛰쳐나간 아이들이 대장간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대장간을 한 번 본 후 똑같이 멈춰 섰다.
“뭐야, 이거.”
정말 불화살이라도 쐈는지 여기저기 화살의 흔적과 불탄 흔적이 있는데 대장간은 탄 흔적만 있고 비교적 멀쩡했다. 아니, 불이 아니라 지붕과 외곽에 오히려 하얀 서리와 얼음 조각이 남아 있었다.
“청아야!”
이미 겪은 것이 있는 이린이 먼저 대장간 안에 뛰어들었고 윤휘 역시 따라 들어갔다. 놀랍게도 안쪽 화구에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고, 그 위에는 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
그리고 마치 이린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뱀이 투명한 알껍데기를 찢고 머리를 내밀었다.
“나왔다!”
청아와 비슷하게 생긴 백사(白蛇)였지만 몸에 옅은 붉은 기가 돌았다. 막 태어난 아기 뱀은 스스로 화구에서 내려와 꾸물꾸물 움직여 아까 이린이 앉아 있던 자리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똬리를 튼 채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던 청아가 힘없이 고개를 들어 동생을 맞았다.
“아……. 혹시 건물이 불에 타서 무너질 뻔한 걸 막은 건가?”
이린이 뱀 두 마리를 끌어안고 있는 것을 확인한 윤휘가 안쪽의 상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린도 윤휘도 청아의 능력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은 없었기에, 이현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말없이 윤휘를 향해 자신의 입술 위에 검지를 가져다대며 함구를 부탁했다.
저도 모르게 말을 흘린 윤휘도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린에게 다가갔다.
“청아는 괜찮나요?”
“응. 괜찮은 거 같아. 그치만 지친 거 같아서 차가운 물에 좀 넣어 주려고.”
끼이-
괜찮다는 듯 머리를 슬쩍 들었다 제 손 위로 힘없이 쓰러지는 청아를 보며 이린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어제 납치당해서 많이 놀랐을 텐데 너무 혹사당해서 그런가, 안 그래도 작다 못해 가느다란 배가 어쩐지 홀쭉해진 느낌까지 들었다.
‘고기 좀 먹이자.’
역시 몸보신에는 고기만 한 게 없지.
이린이 청아를 보살피고 있을 때 제갈윤위가 대장간 안으로 들어왔다.
“부화했니?”
“네!”
“흐음. 아무래도 영물답게 능력이 있는 거 같은데…. 둘이 비슷하게 키워서 서로 보조해 주지 않으면 사고 나기 쉬울 거 같으니까 조심하렴. 특히 빨간 애. 파란 애도 성가시지만 그래도 그건 어떻게 수습이라도 해 보지, 불은 한번 다루면 걷잡을 수 없으니까 조심해. 혹시 모르니까 산에 풀어놓지 말고.”
제갈윤위는 밖에서 대장간 상태를 살피고 대충 눈치챈 게 있는 듯 이린의 품에 안겨 있는 뱀들을 흥미로운 듯 내려다보며 조언을 해 줬다.
“나중에 성장해서 허물 벗을 때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서로 떼어 놓지 말렴. 이 알껍데기는 내가 좀 연구해 보고 싶은데 가져가도 될까? 아, 그리고 나중에 허물 벗으면 나한테도 좀 보내 주겠니?”
“가져온 것도 있으니까 그것도 드릴게요. 그런데 허물도 뭔가 쓸모가 있나요?”
알껍데기야 어제 그런 고온에서 버티는 걸 봤으니 이해가 갔지만.
“뱀 허물은 재물운을 부르는 부적으로 유명하거든. 몰랐니? 그냥 뱀도 아닌 영물의 허물이면 더 효험이 있겠지.”
“와. 아빠 드려야겠어요.”
“너네 아빠 이미 부자야.”
아이들에게 농을 건네며 제갈윤위는 오늘밤이 무사히 지나갔음에 안도했다.
어제 저녁에는 가향루에 화재, 밤에는 연가상단에 침입자라. 아마 연관해서 보는 사람이 생기면 성가셔지겠지.
‘하지만 남궁세가 도련님들이 부린 하수인들이라기엔 여러모로 찜찜하단 말이지.’
어느 쪽이든 증거는 없다. 그 인간이 좀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면 뭔가 알아냈을지도 모르는데, 원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불이나 지르고 다니지.’
가향루 루주가 누군지, 그리고 어제 찾아와 자신에게 검성에 대해 새삼 물어본 걸 생각하면 가향루 방화의 용의자는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애들 좀 쉬게 해 주렴. 어제 그렇게 일이 많았는데 제대로 자지도 못해서 피곤할 거야.”
“위험할 텐데 지금 나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호위는 제대로 붙일 거야.”
-그리고 나를 노린 공격이 끊긴 지는 사실 꽤 됐거든.
이현에게 작게 속삭이는 제갈윤위의 시선은 이린과 함께 뱀들을 돌보고 있는 윤휘를 향했다.
-이번 일은 연 장주에게 바로 보고가 갈 테니 아마 너희도 곧 돌아가야겠구나.
제갈윤위의 말에 이현은 힘없이 웃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족들 안전에는 다소 신경질적인 부분이 있는 아버지이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평생 끼고 살 수도 없는 것을……. 어쨌든 오자마자 떠날 준비라니 아쉬워라.
“그럼 다녀오마.”
“다녀오세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오냐. 쉬고 있으렴.”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제갈윤위는 남편과 함께 외출 채비를 하러 돌아갔다.
‘아버지는 평생 안전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현은 실은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우리 린아는 아무래도 조금만 크면 나가서 사고 치고 다닐 거 같아.”
“나? 내가 왜??”
살면서 산을 싸돌아다닌 적은 있어도 밖에서 사고 치고 다닌 기억은 없는 이린은 어리둥절해했지만 최근 이린의 행적을 떠올린 이현은 그런 동생의 반응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 배고프지 않아? 뭐라도 좀 먹을까?”
“먹을래!”
일찍 철이 들어 언젠가부터 비교적 얌전해졌던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신에게 울면서 매달린 그날을 기점으로 이린은 어딘가 달라졌다.
‘다행이긴 한데.’
안도와 함께 걱정이 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이현은 한숨과 함께 아이들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