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45
45.
“어제 가향루 불났다며? 좀 괜찮아?”
“아니 귀한 분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하오문 장사 분타주이자 가향루의 루주인 장소는 난데없이 자신을 찾아온 제갈윤위를 보고 웃는 얼굴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연가상단에 처박혀서 잘 나돌아다니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설마 순수하게 자신을 위로하러 왔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설마 어제 화재에 대해 뭔가 아는 바가 있는 건가?’
자리를 권하고 시비가 차를 내온 후 물러나자 평범한 인사치레를 하던 제갈윤위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실은 나도 어제 손님이 좀 많았거든.”
“저도 전해 들은 바가 있습니다. 연가상단에서 폭음이라니 오랜만에 있는 일이라 다들 떨었지요.”
마침 간밤에 있었던 소란에 대해 들은 자가 있는지라 장소 역시 귀를 쫑긋 세우고 혀를 굴렸다.
“그러게. 현역이던 시절이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내가 이제 좀 만만해 보이나 봐.”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검성 연화문의 애검(愛檢) 천영(天影)을 만드신 마련야장(魔鍊冶匠)을 누가 감히요!”
“호호호. 그거야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나 아는 얘기 아니겠어?”
연가상단을 습격한 게 젊은 세력이다? 애매한 자신의 말에 장소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본 제갈윤위는 차를 마시며 차분하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검성 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실은 어제 습격이 있기 전에 오래된 지인이 찾아왔거든. 마지막으로 본 게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여전히 성격도 괴팍한 게,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닌데 다짜고짜 찾아와선 검성을 찾지 뭐야.”
“예에…….”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라 어떻게 모른다고 잘 설명해서 보내긴 했는데 아무래도 날 찾아오기 전에 여기에서 난동을 피운 사람과 같은 인물이 아닌가 싶어서.”
제갈윤위의 말에 장소의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저 제갈윤위가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라니 강호에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게다가 그런 인물 중에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불이나 지르고 다닐 인물이라면 손에 꼽을 정도로,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게 10년도 넘었다고 하면…….
“그, 하지만 그분 용모가 듣기로는…….”
“세상에는 역용술(易容術)이라는 것도, 인피면구(人皮面具)라는 것도 존재하는 걸, 설마 하오문 분타주가 모른다고 하는 건 아니지?”
장소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며 제갈윤위가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손님 대접에는 아끼지 않고 비싼 차를 쓰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괜히 힘 빼지 말라고 말해 주러 온 거야. 건드려서 좋을 게 없거든.”
“감, 사합니다!”
“그리고 공연히, 일 크게 만들 필요 없잖아?”
싱긋 웃는 제갈윤위의 말에 또다시 장소의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괜히 정보 뿌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화재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차에 찾아왔다 했더니 입단속이 목적이었나.
“저어 그런데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검성께서 어디 계신지 혹 마련야장께선 알고 계십니까?”
“글쎄. 그 사람이 뭐 하고 다니는지야 누가 알겠어?”
제갈윤위는 유난히도 영물이 많이 잡혔다는 연씨 집안의 뒷산, 비천산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은 사실 오래전 그 알을 본 적이 있었다.
용건이 끝난 제갈윤위는 차 한 잔을 비우고 지체 없이 일어났다. 장소도 바쁜 몸이라 딱히 붙잡진 않았다. 제갈윤위는 떠나기 전 마지막 용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참, 자네 아직도 뱀 수집하나?”
“네?”
“도둑질까지 해서 모은다고 소문이 자자해?”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저 나이 먹으니 몸이 허해서 좋다는 보양식을 좀 찾아 챙길 뿐입죠. 게다가 이번 화재로 귀한 약재까지 몽땅 타 버려서 아주 10년은 늙은 기분입니다요.”
“그래? 어떤 귀한 집 자제분이 애지중지하던 뱀을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들려서 말이야. 자네가 아니라면 참 다행이지. 하지만 좀 자중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럼요. 충고 감사합니다.”
뜨끔하는 속내를 감추며 장소는 모르는 척 기계적으로 웃었다. 뭔가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이 틀림없었지만 증거도 이미 없어졌겠다, 저 여자한테 뭔가 트집 잡혀서 좋을 게 없었다.
“루주. 왜 그렇게 저 여자에게 벌벌 떱니까? 루주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빡!
제갈윤위가 떠난 후 제 굽실거리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부하의 질문에 안 그래도 속 시끄럽던 장소는 참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 미친놈이! 죽으려면 혼자 죽지 나를 끌어들이려고!!”
“으악!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백도 9존은 물론이고 마교 고수조차 무기 의뢰를 넣는다는 소문의 마련야장을 몰라?! 어?! 저 아줌마한테 의뢰 넣으려면 돈과 연줄이 얼마나 필요한지나 알아? 괜히 밉보였다가 의뢰 기다리던 고수들과도 틀어지면, 그 책임 네가 질래? 게다가 검성과 막역한 사이라는 거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이 미친놈이!!”
“악! 거, 검성은 혈교 교주와의 싸움이 끝나고 부상 때문에 잠적했잖습니까!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그러니까 그 소문이 헛소문이면 네놈이 책임질 거냐고! 이놈아!”
검성이 혈교 교주와의 마지막 사투 끝에 교주를 죽이고 본인은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소문은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거기에 전투 중 진기를 다해서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는 소문까지 있었지.’
그러니 검성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모두들 못 알아보는 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검성을 보았다는 소문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갔을 거란 소문은 있었지만 그것도 사실 무근이고.’
다들 검성의 가족들은 몰라도 검성과 막역했던 마련야장이나 함께 싸웠던 9존의 인물들 중에는 아는 이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전서구를 준비해라.”
“예? 하지만 마련야장이 말하지 말라고…….”
“불 지른 거 퍼트려서 분란 만들지 말란 거지 그자가 온 것까지 숨기란 뜻은 아닐 거다.”
알려진 것과 외양이 전혀 달랐던 게 문제라지만 애초에 그자를 못 알아보고 헛짓하다 불벼락 맞은 거니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했다. 그나마 사람 안 죽은 것만 해도 천운 아닐까. 하지만 다른 곳에서 또다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그자가 호남성에 나타나 검성을 찾고 있다. 검성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그 역시 검성의 소재를 모른다는 거지. 그리고 호남, 호북에 있는 분타에 연락해서 우리가 본 인상착의와 유사한 사내가 보이면 조심하라고도 전해.”
“넵!”
전소된 건물들을 보는 루주의 입맛이 썼다. 그 사내와 마련야장을 비교하긴 어렵지만 하여간 강호인들이랑은 엮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래도 연가장주는 그중에서도 꽤 괜찮은 편이지.’
제갈윤위를 떠올리자 자연히 현재 괴기기광이란 이름으로 몸담고 있는 연가상단의 주인이 떠올렸다. 별호까지 있는 강호인임에도 폭력적이지 않고, 강압적으로 굴지도 않고, 법도 도의도 잘 지키는 편이고 인정도 많다. 호남에 가뭄이나 수해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재물을 푸는 곳이었다. 역시 교활하기로 유명한 제갈세가 사람답게 좋은 데 잘 찾아들어가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제갈윤위를 떠올리며 루주는 이번 기회에 어떻게 연가상단과 안면이나 터 볼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 *
“아 먹는다.”
“와아. 뱀은 먹이를 씹는 게 아니라 삼키는구나.”
홍아와 뒤엉켜 좀 놀아 주는 것 같더니 먹을 기운도 없는지 잠만 자고 있는 청아를 돌돌 말아 차가운 우물물을 담은 그릇에 넣어 준 이린은 윤휘와 함께 오늘 갓 태어난 뱀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어젯밤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서 그런가 아침에 밥을 먹고 다시 잠든 아이들은 일어나서 또다시 한 끼 잘 챙겨먹은 후 우물가 근처에서 머리를 맞대고 새로 태어난 새끼 뱀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의 이름은요?”
“으음. 청아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지었는데. 역시 짝을 맞춰서 홍아일까.”
“청아와는 반대로 약간 붉은빛이 도니까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윤휘가 홍아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배가 고픈 듯 생고기를 꿀꺽꿀꺽 삼키는 걸 보면 빨리 자라지 않을까.
“청아가 그런 것처럼 이 아이도 나중에 불을 뿜는 걸까요?”
“으음. 사실 청아가 그렇게 된 건 영약 때문인 것 같거든.”
“영약이요? 혹시 그때 저에게 주셨다던 것과 같은?”
“응. 혹시 그때의 기억이 있어?”
이린은 약을 꺼내다 하나가 비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던 때를 떠올리며 물었다,
“아니요. 제가 제대로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은 이린이 마차에 뛰어들 때였으니까요. 사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죽기 전에 보는 마지막 환각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환각?”
“그러니까, 선녀님인가…… 하고.”
스스로 말해 놓고도 민망한 듯 대답을 하던 윤휘가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더니 수줍게 시선을 피했다.
‘귀여워!’
이대로 확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이린은 애써 말을 돌렸다.
“영약을 꺼낼 때 보니 하나가 비길래 보니까 청아가 삼킨 모양이더라고. 구멍도 나 있었고.”
“청아가 몰래 먹은 거예요?”
“응. 그래서 그런 것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 영물이라곤 해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뱀인걸.”
실제로 영약 같은 것을 안 먹은 20년 후의 청아는 덩치가 크고 서늘하긴 했어도 그런 특이한 능력 같은 건 없었으니까. 아마도 다른 원인은 찾기 힘들 듯했다.
“이번에는 덕분에 살았지만 앞으로 둘이 함께 있으려면 청아랑 홍아가 균형을 맞춰야 하니까. 아깝긴 하지만 남은 영약은 나중에 홍아한테 먹이려고.”
“괜찮으시다면 제가 받은 영약 대신 나중에 다른 영약을 구해서 보내 드릴게요.”
영약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고 있기에 보답하겠다는 윤휘의 말에 이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언니가 먹도록 해. 언니 몫으로 집에서 준비해 준 거지?”
“하지만.”
“이 애들은 내가 데려왔어. 놔두면 위험할 거 같아 데려온 거긴 하지만 어쨌든 주워 왔으니 그 책임은 내가 져야지.”
영약이 귀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집에 두고 온 본인 몫의 영약도 있는 데다, 아직 동굴 안에서 팔팔하게 살아 있을 거대 붕어를 생각하면 당장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린의 그런 속을 모르는 윤휘는 그저 이린의 배포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나도 이린이 주운 거 아닌가요?”
“아, 그렇네. 휘 언니도 내가 주웠으니 책임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