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46
46.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가 직구로 맞은 윤휘의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것을 보며 이린이 번뇌했다.
‘귀여워! 귀여운데 끌어안으면 안 될까??’
자신보다 어리면 그냥 꼭 끌어안고 귀여워해 줬을 텐데 언니인 데다 조심스러운 성격인 것 같아 이린은 수줍어하는 윤휘를 앞에 두고 망설인 끝에 결국 저질러 버렸다.
“언니 귀여워!”
“아, 이, 이린.”
“크흠!”
키 차이가 있어서 실제로는 윤휘의 품에 안기다시피한 이린 때문에 당황하는 윤휘의 시야에, 두 사람을 어이없는 듯 바라보고 있는 이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빠의 헛기침 소리에 뒤돌아본 이린은 불퉁하게 물었다.
“오빤 왜 그래?”
동생이 친구 좀 사귀겠다는데 오빠가 도움은 못 줄망정.
“오빠는 할 말이 있어서 왔거든?”
“해.”
“우리 린아, 오빠에 대한 애정이 식었구나.”
“오빤 친구도 많으면서 동생이 친구 사귀는 걸 뭐라 그래.”
“오빠는 벗들과 그렇게 친밀한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단다.”
오빠의 건조한 목소리에 이린이 입술을 삐죽였다.
“오빠가 친구들하고 이런 거 해도 안 말릴게.”
“아니, 그런 거 보게 되면 빨리 말려 줘.”
친구들과 무슨 일이 있었니, 오라버니.
아직도 당황해하는 윤휘를 아쉬운 듯 놓아주고, 이린은 이현에게 다가갔다.
“근데 갑자기 왜? 무슨 일이 있어?”
“아버지한테서 서신이 왔단다. 빨리 돌아오라고.”
“이렇게 빨리?”
전서구가 아무리 빨라도 오늘 아침에 보낸 게 벌써 답장이 올 리가? 비둘기한테 뭘 먹인 거야?
이린의 얼굴에 쓰여 있는 의문에 이현이 웃으며 답했다.
“네가 어제 사고 친 소식을 듣고 놀라셨겠지.”
“아.”
연가장의 귀한 고명딸의 행적에 대해 연적훈은 언제나 걱정이 가득했다.
지금 전서구가 도착했다는 건 어젯밤 도착한 소식을 듣자마자 놀라서 새벽같이 돌아오란 전서구를 보냈다는 뜻이었다.
“아빠는 정말 걱정이 많구나.”
“어린 딸이 겁이 없으니 걱정이 많아지실 만도 해.”
이현은 이린을 덥석 안아 들고 어서 떠날 채비를 하라며 들볶았다.
“좀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안 돼. 돌아가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리잖아?”
“하지만, 윤휘 언니랑 좀 더 같이 있을래.”
“이린.”
오빠에게 투정 부리는 이린을, 아직까지 발그레한 얼굴을 식히며달려온 본 윤휘가 달랬다.
“저도 곧 어머니가 데리러 오실 예정이라 이곳에 오래 있지는 못할 거예요.”
“언니도 갈 거야?”
“응.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윤휘의 눈동자는 맑고 고요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눈동자였다.
아마도 어젯밤 습격과 관계가 있으리란 생각에 이린도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아마도요.”
지금도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이니 윤휘는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다. 단지 어제의 이린처럼 그 작은 손을 꼭 붙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린의 말대로, 부당하게 두려움에 떨지 않을 만큼 강해질 거예요.”
“꼭 다시 만나자.”
“네.”
윤휘가 기쁜 듯 웃자 이린은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다 웃었다.
‘역시 예쁘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윤휘가 조금 야속했지만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건 이린이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이린이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떠나게 돼서 아쉽구나. 하지만 여기가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연장주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기관에 대해서도 궁금했는데 못 보고 가게 돼서 유감이에요.”
이린의 말에 제갈윤위가 웃으며 이린의 말랑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깜찍한 소릴 하네. 너도 연가 핏줄이니 검을 배울 거 아냐?”
“이미 배우고 있는걸요.”
이린의 대답에 제갈윤위의 시선이 이현을 향했다. 이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큰일이지만, 그럴 만하거든요.”
이현의 뿌듯함과 자랑이 넘치는 대답에 제갈윤위의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그럼 이린의 검은 내가 만들어 주지.”
“검을요?”
“그래. 이 마련야장(魔鍊冶匠) 제갈윤위가 역작을 만들어 주지.”
제갈윤위의 말에 이린은 그제야 그 이름의 정체가 누군지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린이 자신의 별호를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한 제갈윤위는 그저 검을 만들어 준다는 말에 놀랐다 여기며 이린을 꼭 끌어안았다.
“잘 가렴. 건강 조심하고. 아빠랑 오빠 말도 잘 듣고, 사고 치지 말고.”
“네.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묘하게 애정 넘치는 인사에 이린도 제갈윤위를 꼭 끌어안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말로 다하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언젠가 두 분께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가시는 길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래. 고생이 많겠지만 힘내렴.”
“네. 감사합니다.”
옆에서 이현과 윤휘가 건조한 인사를 나누고, 이린이 윤휘를 꼭 끌어안았다.
“또 볼 수 있지?”
“노력할게요.”
“약속해. 꼭 무사히 다시 만나자고.”
“……네.”
이린의 막무가내 약속에 윤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린을 만나서 정말 즐거웠어요. 고마워요.”
“나도. 윤휘 언니랑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어.”
헤어지기 싫어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두 아이를 보며 어른들은 그저 마냥 귀여운지 웃을 뿐이었다. 사실 워낙 귀한 집 아이들이라 속 편하게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던 탓도 있는 것 같아 이현은 어쩐지 이린에게 미안해졌다.
“그만하고. 자, 이거 하나씩 받으렴.”
좀처럼 헤어지질 못하는 아이들에게 제갈윤위가 작고 반투명한 구슬 같은 것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게 뭐예요? 구슬?”
“그 껍데기를 가공해서 만든 거란다. 투명하니 예쁘지?”
“이게요? 예쁘다.”
“여길 이렇게 돌리면 안이 열리니까. 이 안에 향이나 약 같은 것을 넣어서 들고 다녀도 되고. 그 껍질은 내열, 단열은 물론 내구도가 좋아서…….”
“부인, 얘기가 길어질 겁니다.”
“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연구자들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제갈윤위의 얘기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빠르게 자른 명현이 이현과 이린에게 어서 마차에 타라고 재촉했다.
“또 놀러 오렴. 아가들아.”
“하하.”
마지막으로 이린에게 했듯 이현을 꼭 끌어안고 토닥인 제갈윤위는 새빨개진 이현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싱긋 웃으며 아이들을 전송했다.
오는 길에는 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린이 타고 있는 마차 한 대뿐이었다. 서문제우를 비롯해 올 때 함께했던 이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표행을 떠나 표사들의 숫자도 적어져 일행은 훨씬 단출했다. 그 덕분인지 인사가 끝나자 마차와 일행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가 버렸군요.”
“활기차서 좋았는데 말이지.”
“궁금해하시던 친구 딸을 봐서 좋으신가 했는데.”
“그것도 그렇고, 애들이 참 귀엽네.”
“그래서 검을 만들어 주기로 하셨습니까?”
“그래. 검을 잡았다면 마땅히 걸맞은 검을 가져야지. 보아하니 얌전하게 집에 처박혀 있진 않겠네.”
기대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요 며칠 바쁘고 일이 많아 제대로 쉬지 못한 제갈윤위가 어깨를 두들겼다.
“누구 딸인지 한눈에 알았어. 저렇게 닮을 줄이야.”
“?”
한숨을 내쉬는 제갈윤위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명현이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윤위가 입을 다물었기에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자, 우리도 들어가자꾸나. 휘아야.”
“……이제 저 옷 좀 주세요. 이모님.”
바로 바뀐 윤휘의 호칭에 제갈윤위가 히죽히죽 웃었다.
“네 엄마 올 때까지 좀 기다리렴. 이제 이린이 없다고 아예 밖에 안 나올 생각이니?”
“제가 이러고 있어도 여길 공격해 오는 건 똑같잖아요.”
“그럼 진작 갈아입지 그랬어?”
“그건,”
아이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자 그 마음을 알 것 같은 명현이 아이를 감싸며 부인에게 한 마디 했다.
“귀엽다고 너무 괴롭히시면 사랑하는 조카에게 미움받으실 겁니다.”
“어머, 내가 뭘.”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갈윤위는 미리 준비해 둔 옷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청휘 네 엄마한테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쉽네. 이렇게 예쁜데.”
“전 싫어요.”
그 자리에서 아기자기하게 묶어 놓은 머리도 풀어 버리고, 여아용의 화려한 옷을 벗어 이모가 건네준 옷을 바로 걸쳤다.
찡그린 얼굴로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서 그 와중에도 벗어 놓은 옷은 차곡차곡 개어 놓는 걸 보며 제갈윤위가 뿌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이린이 언니라고 너무 좋아하니까…….’
답삭답삭 안기고 손을 꼭 붙잡고 언니, 언니하며 따르던 이린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궁청휘는 어쩐지 가슴이 묵직해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은 남자애라고 하면 이린이 실망할 것 같았다.
“어차피 나중에 만날 거면 밝혀야 하잖아.”
“다음에 만날 때는 제대로 남자로 만날 거예요!”
“헤에~ 휘아, 이린이 좋아하는구나?”
“그……!”
생각지도 못한 이모의 발언에 청휘가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본 제갈윤위는 히죽히죽 웃으며 귀여워 죽겠다는 듯 청휘를 꼭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아이참, 언제 이렇게 컸니. 남자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네.”
“……이린은 제가 남자인 거 눈치도 못 챘다고요.”
“그야 원래 첫인상이 강렬하기도 하고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인상을 많이 좌우하니까. 네가 지금 이대로 다시 만나도 바로 못 알아보고 어라? 싶을걸.”
네 얼굴이 너무 미소녀라 그렇다는 말 대신 조금 돌려 말해 준 제갈윤위는 살짝 눈빛을 바꿔 진지하게 물었다.
“하지만 너 진가 아가씨랑 약혼할 거 아냐?”
“진사린은 좋은 애라고 생각하지만 약혼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게다가 지금 제가 노려지는 것도 그 약혼 때문이잖아요. 제 보신(保身)을 위해 또 여러 사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잠시 생각에 잠긴 청휘는 제갈윤위에게 물었다.
“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진 누구와도 혼인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건 철없는 생각일까요?”
어머니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황룡 전장의 진 장주와 사돈을 맺으려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혼인 때문에 오히려 형들이 자신을 더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지금 혼약을 그만둔다 해도 이미 돌이키기는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무모한 생각이지만…… 올곧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단다.”
제갈윤위는 10세에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생각을 하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