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23
천하제일 시한부 (123)
의왕각.
정천맹의 약방, 의원 같은 곳이다.
백 의원이 수석 의원으로 있으며, 휘하에 삼십 명 정도의 의원들이 있다.
의왕각은 총 삼 층으로 만들어진 목조 전각인데, 층마다 출입할 수 있는 계급이 각기 달랐다.
보통 일반 무사나 조장, 단주급의 무사들은 일 층.
대주나, 궁주 이상의 신분은 이 층부터.
마지막으로 장로 이상의 신분은 삼 층을 이용한다.
뭐, 층마다 의술 실력이 확 달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 전장터에서 뒹굴던 정천맹 무인들은 항상 몸에 상처를 달고 다녔다.
그렇다 보니 우후죽순 몰려들면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어 이렇게 규칙으로 정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난 진랑과 간단히 얘기를 끝내고, 곧장 의왕각으로 향했다.
원래는 백 의원이 오기로 했지만, 조금 늦는 모양인지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의왕각에 들어서니, 꽤나 한가로운 모습의 내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후후.’
의왕각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익숙한 약향이 코를 찔러왔다.
“변한 게 없군.”
날 알아본 의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난 익숙하게 삼 층으로 올라갔다.
“오, 왔는가? 안 그래도 지금 막 내려가려던 참이었는데.”
백 의원은 반색하며, 날 향해 달려왔다.
그러고는 곧장 내 손을 잡아 갔다.
“뭐 하는 거요?”
내가 퉁명스레 물어 오자, 백 의원이 고개를 젓고는 이내 맥을 잡았다.
그가 집중했다.
잠시 뒤 백 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혈색이 좋아 보이길래…… 음, 하지만 아직 독기는 남았군. 역시…….”
“어떻소? 안 그래도 내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었는데.”
내 말에 백 의원이 잠시 기다리라며 서둘러 밖을 나갔다.
그러고는 곧 돌아와 내게 차 한잔을 건넸다.
“내가 자네 때문에 요즘 만들어 보고 있는 새로운 중화제라네.”
“오호.”
난 감탄하며 이내 차를 홀짝였다.
백 의원이 만들었다면 충분히 믿을 만했으니까.
과연.
차를 한 모금 마시기 무섭게,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뭔가…… 굉장히 뜨거운데?”
내 물음에 백 의원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남에서 내 특별히 공수해 온 거라네. 구하는 데 아주 힘들었어. 운자초라고 하는 운남지방에서만 나는 약초거든.”
“흐음, 근데…… 뭐 별다른 효과는 없는 듯하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백 의원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의 원기를 복 돋아 주는 걸세. 독기가 워낙 강성하니 몸의 면역력을 천천히 좀 먹고 있었을 거란 말이지.”
“흠, 그렇군.”
백 의원의 말마따나, 빙정을 흡수하기 전에는 진짜 하루하루 죽는 것 같았다.
기운이라도 끌어 쓸라 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금방이라도 피가 쏟아질 것처럼 호흡이 가빠 오곤 했으니까.
“아, 안 그래도 내가 그 빙정이란 것을 우연히 구해서 말이지.”
“호오, 빙정을?”
백 의원은 대단히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빙정은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적어도 그에 준하는 영단이나, 영물, 영초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거든.”
“아무튼 그걸 흡수했단 말이오. 그 이후로 내력을 사용하는 데에는 별 큰 문제는 없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말이지.”
백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게. 내 직접 확인해 줄 터이니.”
그리 말하며 백 의원은 나더러 웃통을 벗고 누우라며 침상을 툭툭 두드렸다.
난 익숙하게 무복을 벗고 침상에 드러누웠다.
잠시 뒤, 백 의원이 은침이 든 침통을 들고 다가왔다.
“조금 따끔할 걸세.”
백의원이 씩 웃으며 어떤 준비 과정도 없이 그대로 침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전신은 침으로 빽빽이 뒤덮였다.
“흐음.”
이내 침의 반응을 살피던 백 의원이 뭔가를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몸 곳곳을 짚던 백 의원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내공의 사 할을 이용해서 독기를 막고 있었군.”
“맞소.”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는 삼 할로도 나름 잘 막고 있었지만, 흑호방과의 싸움에서 무심코 전하결을 오성 이상 끌어 올려 주천시켰다가 낭패를 당했다.
그래서 힘겹게 내상을 수복하면서 전신 내력의 사 할을 오로지 독기를 막는 데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흠, 확실히 빙정이 효과가 있긴 하네.”
백 의원은 내 몸을 몇 번 짚는가 싶더니, 이내 뭔가 알아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빙정의 기운이 단전에 잘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문제는 기운이 제대로 녹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만.”
“흠, 사실 빙정의 기운 자체는 꿈쩍도 하질 않소. 심법으로 풀어내려 해도 정말 겉만 긁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나름의 효과는 있긴 했다.
자체적으로 풍기는 한기는 독기를 움찔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수명이 크게 늘어나진 않은 것 같네. 혈맥이 보다 상했어. 다만 빙정의 기운이 어느 정도 보호해 주고 있을 뿐.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네. 어찌 보면 조금 더 나빠진 것도 같고.”
“…….”
음, 좀 충격이었다.
그래도 만년빙정이다.
그 정도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려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실망한 표정을 봤는지, 백 의원은 몸에 꽂아 둔 침을 빼면서 입을 열었다.
“본래 다치는 건 쉬워도 치료하는 건 그의 수십 배, 수백 배 느리고 더디다네. 나 또한 백방으로 해독법을 찾고 있으니 자네도 성질 좀 죽이고 조용히 살게.”
“후후, 그랬으면 좋겠지만 어째 더 바쁜 것 같소. 요즘.”
“끌끌, 그러고 보니 묻지 못했군. 그래 자네 가문은 어떻던가?”
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이제 좀 자리를 잡기 시작했소. 악안에서는 제법 평화롭게 연합을 주도하고 있고.”
“끌끌끌, 천하의 신기검성이신데 오죽하겠는가? 자네는 절대 누구 밑에 머리를 숙일 사람이 아니니까.”
난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 걸쳐 둔 옷을 꺼내 다시 입었다.
“암튼 말도 마시오. 안 그래도 세가 일 때문에 정신없소.”
“그럴 만하지. 흐흐흐, 그럼 맹에는 무슨 볼일로 왔는가?”
“아, 이곳에 검이 있다 들었는데. 내 검을 찾으러 왔소.”
“오호, 그렇군.”
백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한구석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내 검이 고급진 비단에 싸여 있었다.
“뭔, 신줏단지 모시듯이…… 검을 모셔 놨소?”
내 말에 백 의원이 비단째 검을 건네주며 말했다.
“혹시나 독이 있을까 싶어 내가 따로 조사해 볼려고 요청했었네. 검을 다루는 걸 모르니 뭐……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취급할 검도 아니니.”
그건 맞다.
난 이내 검자루를 잡고 검을 빼 들었다.
날밑을 제거하고 검신이 일체형으로 특수 제작된 검이었다.
사실 이런 검의 형태를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검의 재료가 재료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단단한 묵철.
그걸 수백 번씩 몇 날 며칠을 가공하고 제련에 제련을 거듭해서 탄생된 검이기 때문이다.
“후후.”
난 검을 들고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이 무게감이다.
날밑을 제거함으로써 검을 보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는 이점이 생겼다.
“과연 대단하더군. 그 검…… 무게도 무게거니와 무엇보다 예리함이 아주 천하제일일세.”
“만져 보셨소?”
난 이내 검을 검집에 꽂아 넣은 채, 그대로 허리에 채웠다.
“만져 봤지, 베였지만.”
그리 말하며 웃는 백 의원.
그는 이내 내 곁으로 다가와 뭔가를 건네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만든 중화제일세. 제조 과정이 까다로워서 대량으로 만들진 못했네. 추후에 부족하면 연락 주게.”
“뭘, 이런 걸. 아무튼 고맙소.”
내가 없는데도 계속해서 내 생각을 했다니, 참 고마운 분이다.
이내 백 의원이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집에 가더니 확실히 얼굴이 좋아졌구만. 전에 없던 여유가 보여.”
“그렇소? 요즘 바빠서 통 죽을 맛이던데.”
내 너스레에 백 의원도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맹 사정은 요즘 어떻소? 듣자 하니 문도 걸어 잠그고 외부활동도 하지 않고…… 진랑한테 묻자니 그놈 성격상 확실해질 때까지 말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어허, 외부인이 어찌 맹 내부의 일을 묻는가.”
“흠, 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소.”
내 말에 백 의원은 장난이라며 씩 웃었다.
그러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농담일세. 뭐, 아마 맹주님도 나름대로 힘들 걸세. 듣자 하니 장로들 쪽도 아주 개판인 것 같고 삼 장로 그 작자가 아주 작정하고 일을 치뤘더구먼. 쯧쯧.”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백 의원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참, 개방과는 어찌 연락이 닿았나? 자네 이름으로 연락선을 공개적으로 뚫어 달라 하기에 내 그리했네만.”
“고맙소. 아무리 정천맹을 나왔다고는 하나 영 신경이 쓰여야 말이지.”
“흐흐. 당장은 한숨 돌렸네. 뭐, 맹주님이 워낙 말씀이 없으니 내 혼자 조마조마했지 뭔가. 무엇보다 자네는 쉬어야 될 몸이니까. 쉬는 것도 일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 자네도 잘 알 테고.”
그 말에 난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걱정 고맙소. 내 검은 얻었으니, 마지막으로 흑화나 보고 가겠소.”
“그러고 보니 흑화궁주님은 어디 안 다치셨나? 요즘 통…….”
또 말이 시작된다.
백 의원은 참 말이 많다.
물론 진심으로 걱정되서 하는 말이겠지만, 길어도 좀…… 많이 길었다.
“살펴보고 보낼 수 있으면 보내 보겠소. 그럼 이만.”
얼른 인사를 마치고 난 의왕각을 나왔다.
모처럼 찾은 검을 보자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 * *
그날 밤.
흑화궁에서 조촐한 연회가 열렸다.
신기검단도 함께 자리했고, 진랑도 함께 자리했다.
이렇게 놀아도 되냐고 물었지만, 오늘 할 일은 다했단다.
신기검단은 연회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들은 항상 긴장 상태였다.
“단주님.”
그러던 중, 부단주 종서가 날 향해 조심히 물었다.
“외람되지만 단주님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난 자리에서 일어나 종서의 뒤를 따랐다.
이내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종서는 그대로 내게 물었다.
“가실 겁니까?”
“가야지.”
“저희도 데려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신기검단.
얘네만 와 준다면 따로 무사단을 꾸릴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난 전력이다.
사실상 정천맹 전력의 오 할 이상이 오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너희를 데려가고 싶어도…… 못해.”
정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기검단은 단원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다 노출된 상태였으니까.
더군다나 신기검단이 빠지면 맹주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질 것이다.
“하지만 단주님…….”
종서가 안타깝다는 듯 말을 흐렸다.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정천맹의 무사다. 신기검단은 정천맹을 위해서 검을 든 거야.”
“단주님.”
종서가 진지하게 물었다.
“맹주님께서는 외부 활동을 접으셨습니다. 정확하게 저희 신기검단이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지요.”
“그래도 안 돼.”
이들을 움직이면, 전 무림이 주목하게 된다.
그럼 필연적으로 주씨세가는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말은 주씨세가는 신기검단이 존재하는 한 전 세력이 눈에 불을 켜고 들쑤실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건 절대 바라지 않았다.
이들이 천년만년 살아서 세가를 지켜 줄 수 있다면야 내가 진랑을 두들겨 패서라도 데리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한정되었기에.
“미안하다.”
내 결심은 확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