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9
천하제일 시한부 (149)
우웅!
난 남궁세가에 있다.
텅 빈 안채에 앉아 내부를 다스리는 중이었다.
남궁진성과 싸우면서 급하게 기운을 끌어다 쓴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심장이 계속해서 아픈 걸 보니.
“자네 수명에는 영향이 없네. 그래도 중화제 없이 빙정의 기운만으로 독기가 어느 정도 눌러지는 것 같군.”
“무리하지 말란 뜻이오?”
난 백 의원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빙정을 흡수했어도, 그것이 독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네. 마취, 그래. 마취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하겠군.”
그래도 만년빙정인데, 조금 아쉽다.
평생 살면서 한 번 보기도 힘든 빙정이다.
그것이 무려 일만 년의 세월 가까이 농축되고 농축된 한기의 결정체다.
헌데, 고작 독기의 기운을 눌러 주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자네가 중독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내공이 적어도 삼 갑자 이상은 늘어났을 거네. 물론 모조리 흡수한다는 가정하에…….”
내공만 무식하게 많다고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학의 깨달음도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했다.
만약 그럴 것 같았으면, 내공량이 중원 으뜸인 소림사가 이미 천하를 지배했겠지.
우우웅―!
이내, 내 몸이 잠시 붕 뜨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무아의 경지에 슬쩍 발을 들이민 것이다.
사람의 몸은 전신 삼백예순다섯 개의 혈도로 이루어져 있다.
몸과 머리를 잇는 독맥과, 혈도의 주요 대맥역할을 해 주는 임맥.
또한 기운을 저장하는 혈점과 기타 세맥까지.
이 모든 것은 심법의 구결대로, 내공을 움직이고 혈점을 거치며 벼리고 가다듬고의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난 총 서른 개가 넘는 혈점과, 주요 혈도의 곳곳을 운용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건 독기 때문이었다.
심장 근처로 퍼진 독기를 묶어 두는 데 사용하는 내공이 무려 사 할이 넘는다.
단 한 줌의 호흡만으로도 일류 수십을 쓸어 버릴 수 있는 내가, 사 할이 넘는 내공이 묶인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부작용도 동반됐다.
내 경지의 반의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
“안타까워, 너만 보면.”
문득, 수십 년 전 전장에서 날 보며 말하던 진랑의 모습이 생각났다.
“계기만 제대로 잘 다져졌어도, 기본기만 제대로 받쳐 줬어도.”
그건 내 싸움 방식에 대한 문제점이었다.
난 모든 무공을 오로지 어릴 적 만난 그 ‘노인’에게서 본 따왔다.
‘노인’의 검식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해 보려 했고, 그걸 실전에서 써먹었고.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지나면서 저절로 몸에 익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난 내가 드디어 스승이라고 제대로 부를 수 있게 되는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검천신장.’
압도적인 무위.
기광이 번뜩이는 눈빛을 속으로 갈무리한 채, 담담히 내려다보는 저 오만한 자태.
껄렁이는 겉모습과 달리 천지를 쪼갤 무위를 지닌 검천신장은 흘려 말하는 듯한 식으로 날 다그치고 가르쳤다.
‘삼재검법.’
사실 삼재검법이란 말도 웃기다.
초식도 정확히 세 개로 쪼개져 있고, 그 초식명이 모두 시장판에서 굴러다니는 그 삼재검법과 똑같았지만.
위력은 절대 아니었다.
태산압정, 일 초식에는 도합 예순다섯 가지의 복잡한 변환식과 연환식이 숨겨져 있었다.
이 모든 고절한 수를 한데 버무려 내려칠 때엔 단 한 동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게 됐다.
즉, 극도로 압축된 검술이란 뜻이었다.
“끌끌, 네가 이 검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면…….”
검천신장이 의미심장하게 말했었다.
“내 네게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려 주마.”
삼재검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라.
뜬구름 잡는 얘기다.
사실 지금의 내가 이 삼재검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어설프게나마 검천신장을 따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그를 볼 때마다 아니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으니까.
‘예순다섯 가지의 검로.’
먼저 첫 번째, 태산압정의 검로를 떠올렸다.
찌르기 초식이 도합 열여섯 개, 베기가 스물두 개, 올려 긋기가 여덟 개, 사선 긋기가 열 개…… 마지막 사선 올려 긋기가 아홉 개다.
‘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나는 이 검식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태산압정, 이 검로에 담긴 힘을 한점에 모아 그대로 내려친다.’
예순다섯 개의 검로를 일직선상으로 압축한다.
즉, 종결부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검식이란 말이었다.
헌데, 그런 검식의 세분화된 검로에서는 올려 긋기의 동작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힘을 모으기 위한 준비 동작쯤으로 생각했다.
내려치기 위한, 전조.
정해 놓은 목표점을 빠르고 강력하게 타격하기 위한 준비운동.
‘아.’
순간, 위화감이 엄습했다.
“전하결.”
우웅―!
난 천천히 주천시키던 기운의 성질을 변화시켰다.
뜨끈한 기운이 단전에서부터 뭉클 터져 나왔다.
일식호흡의 첫 장.
단순히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해에게서 내뻗어지는 빛살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심법이다.
하지만.
“월하무, 진천괴뢰.”
꽈릉!
마른벼락이 내려치듯, 전신이 움찔거렸다.
막대한 충격이 전신을 짜릿하게 채웠다.
그 반발력으로 충만한 기운이 전신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웃긴 일이지.”
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일식호흡.”
뜻을 풀이하자면, 이름 그대로 해의 숨결이다.
해의 모습을 본따 만든 호흡법이란 뜻이다.
헌데…….
첫 번째 구결이 월하무다.
달빛 아래 추는 춤이란 뜻이다.
“×발.”
이 모순된 이름의 내공심법.
“단 한 줌의 호흡만으로도 능히 수백, 수천의 적을 격살할 수 있는 전설상의 무공이다. 나 역시 그 성취가 더뎌 후반부 구결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 노인…….”
노인이 내게 남긴 심득이었다.
집을 나오고, 어머니가 목 멘 그 자리에서 만난 노인은 그날 내게 살 수 있는 ‘호흡’법을 알려주었다.
일식호흡과, 월식호흡.
둘은 상반된 기운을 가진 내공심법으로 내가 여직껏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준 고마운 무공임에는 틀림없다.
이름은 비슷하나, 둘은 엄연히 분리된 심법이었다.
월식호흡은 차가운 음기를 동반한 필사의 호흡법으로 나 역시 제대로 펼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고절한 무학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네게 넘겼으니, 네 뜻대로 펼쳐 보거라. 너의 호흡은 ……과연 무엇을 보여 줄지.’
노인은 기대한다는 듯, 날 향해 그리 말했다.
우우웅―!
난 노인의 말을 상기하며 전하결의 운기 속도를 천천히 높였다.
확실히 일식호흡은 구결대로 착실하게 움직여주었다.
월하무, 달빛 아래 추는 춤.
부드럽게 단전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기운은 곧 내 전신을 따스하게 감싸 주었다.
진천괴뢰.
동시에 주요 혈점 세 곳을 자극해 만들어 내는 파괴력.
꽈릉―!
즉, 부드러움 속에 담긴 강함이다.
난 전하결이 인도하는 내기의 움직임을 상기하며 머릿속으로 천천히 삼재검을 펼쳐 보았다.
초반식 검로인 서른 개의 검로를 떠올렸을 때는 문제없이 전하결의 움직임도 쭉쭉 뻗어 나갔다.
하지만 올려 긋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전하결과 미약한 충돌을 일으켰다.
‘아……!’
깊은 깨달음이 섞인 한탄이 자연스레 터져 나왔다.
전하결은 기본적으로 부드럽지만 순간적인 파괴력을 품고 있다.
이건 곧…….
삼재검법의 극한으로 압축된 타격점에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잘못 사용하고 있었던 거다.’
왜 검법을 한 번 펼치고 나면 그토록 몸이 피로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호흡법과 검법이 너무도 달랐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분명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보다 쉽게 이끌어 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했는데, 그걸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진천괴뢰.’
단전 중심에 위치한 대혈점 세 군데를 쥐어짜듯이 자극하면 터져 나오는 막강한 파괴력.
이것을 태산압정 마지막 검로에 쏟아 넣어야 했다.
‘후우.’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이건 좀 고마운데.’
아직 실전에서는 써먹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언젠가는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으니까.
새삼 독기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독기가 아니었다면 난 죽을 때까지 내 내부를 관조해 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고오오―!
난 개운한 기분으로 운기를 끝마쳤다.
* * *
“너흰 누구냐.”
때아닌 불청객이었다.
아니, 우리가 불청객인가?
“남궁가의 방계들인가?”
남궁가의 정문으로 수많은 무인들이 들어섰다.
강직한 인상을 품은 한 사내가 날 향해 살기 어린 시선을 쏘아 보내며 가까이 다가왔다.
“누구냐 물었다. 왜 본가에 들어왔…….”
“나 신기검단주, 주서진이다.”
난 상대의 말을 끊고 내 소개를 했다.
자연스레 상대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남궁세가의 고유 문양이 박힌 복식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주서진!”
그들이 이내 자신의 검자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음, 그러지마.”
난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싸움은 피하고 싶었다.
“너희 남궁가를 멸한 흉수를 잡아 죽였다.”
난 말과 함께, 장원 한구석에 던져둔 남궁진성의 시체를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지, 진성아!”
그를 알아본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 시체 곁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당연한 반응이었다.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시체만 덩그러니 보여줬으니 말이다.
“잘 살펴봐라.”
난 남궁진성의 시체 옆에 잘린 목도 같이 두었다.
남궁가의 무인들은 날 경계하면서도 시체를 유심히 살폈다.
“이, 이건……!”
그들은 이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놈의 머리통을 특별히 신경써서 날려 주었기 때문이다.
“부, 붉은 안광……!”
사람 눈에 피눈물이 맺힐 수는 있다.
혈관이 터져 피가 고일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마공을 익힌 진짜 ‘혈안’과는 그 상태가 확연하게 다르다.
남궁진성의 두 눈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그건 피가 고인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깃든 마기의 영향 때문이었으니까.
“보, 본가에서 마공을 익혔다!”
그들은 좌절했다.
난 종서를 향해 고갯짓을 까딱해 보였다.
종서가 내 대신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본가의 삼 장로 남궁무린, 그자의 아들인 남궁진을 우리가 보호하고 있다.”
“우리라면…… 정천맹이?”
“어찌 그러시오. 우리에게 주시오. 진이라면 저도 아는 얼굴이니 우리가 보호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터.”
남궁가의 방계들은 발끈해 소리쳤다.
“너희는 지키지 못한다.”
종서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직계이니만큼, 단주님께서 특별히 보호하고 계신 거다. 이런 뜻을 함부로 속단하고 곡해하지 말라.”
오호, 종서 짜식.
나름 위엄있다.
“이 모든 일은 비밀에 부친다. 입을 다물고 남궁세가는 봉문하라. 추후 남궁진이 돌아올 때. 그때를 대비해 세력을 규합하고 합심하여 본가를 다시 세운다.”
종서의 말이 끝나고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중 강직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사내의 눈을 마주하며 난 더욱 가까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름.”
“남궁무성이오.”
“무성이라…… 남궁무린과의 관계는?”
“사촌 형제요.”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남궁은…… 악안 주씨세가의 소가주인 나 주서진이 살렸다. 이건 정천맹으로서도 아니고 신기검단주로서도 아닌 주씨세가와의 문제다.”
“주씨세가?”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일 것이다.
역시나, 방계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이내 내가 노렸던 바를 꺼내 들었다.
“안휘 남궁세가는 본 악안 주씨세가가 접수한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힌다.
지금 강한 자는…… 바로 주씨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