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10
천하제일 시한부 (210)
“현천맥?”
“예, 천마시여.”
진마는 높다란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삐딱한 자세로, 자신을 현천맥이라 소개한 상대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마교가 여태껏 너희들 농단에 놀아났다는 뜻이구나?”
“도왔다고 생각하시는 게 편하지 않겠습니까?”
현천맥이 빙그레 웃었다.
진마의 전신에서 터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둘을 보며 멀찍이 거리를 벌리고 있던 염위가 불안한 눈빛으로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되는 거지?’
그는 불안했다.
진마가 파천마황공을 익힌 것은 이미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도운 것은 바로 저자, 현천맥이다.
진마는 이미 일 갑자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그런 그가 자신의 무공과 충돌할지도 모를 파천마황공을 익히러 간다 한들 누가 믿어 주겠는가?
그 결과를 현천맥은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환혼고?’
또한, 그는 보았다.
현천맥이 꺼낸 그 불쾌하고 소름 끼치는 덩어리를.
진마는 지금 그런 환혼고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어렵군.’
그도 엄연히 마교의 사람이었다.
마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던 아버지를 따라 마교천하를 꼭 자신의 대에 이룩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걸 진마가 이뤄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현천맥 저자의 의뭉스러운 의중이 너무도 궁금했다.
마치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저 멀리서 현천맥이 눈을 마주치며 빙그레 웃음을 띠었다.
‘가까이하면…… 안 될 자다.’
진마 앞에서도 저리 당당한 자세라니.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크하하!”
돌연 진마가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천맥을 향해 서슴없이 다가갔다.
“현천이라…… 나는 전대 천마와는 다르다.”
“…….”
“기꺼이 손을 잡지, 마도천하를 이룩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다 죽여 버릴 것이다.”
“적의 적은 결국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뜻 모를 말.
이내 진마와 현천맥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 * *
빠각―! 빡!
껍질이 깨졌다.
선천진기의 힘은 위대했다.
만약 정천맹의 백 의원이 지금 내 모습을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네를 잠식하던 독기는…… 모두 잡아먹혔네.’
막대한 영약의 기운으로만 독기를 짓누를 수 있다고 했던 백 의원의 말처럼.
그보다 양은 적지만 엄청난 힘을 지닌 선천진기는 손쉽게 독기를 녹여 버렸다.
그러고도 선천진기는 단 한 줌도 손해 없이 멀쩡했다.
“선천진기를 다스리는 무공이라…….”
일월신교의 호흡법.
월식호흡의 상승 호흡법이자, 월식호흡의 마지막 갈래.
“일식호흡.”
정리하자면 이랬다.
일월신교는 마교의 전신이다.
즉 일월신교가 뿌리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것이 지금의 천마신교라는 것이 된다.
뿔뿔이 흩어진 줄 알았던 일월신교에서도 진짜 천마로서의 가능성을 지닌 헌원세가는 마교의 큰 축을 담당하는 헌원마가가 되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마교 역사상 헌원마가의 핏줄들은 당당히 천마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영광도 잠시.
헌원마가는 이미 마교 내에서 시기의 대상이었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 천마삼검과 일월호흡은 너무도 난해하고 어려운 무공이었다.
그 결과 파천마가의 파천마황공에 천마의 자리를 넘겨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천마의 자리를 놓친 헌원마가는 마교 내에서도 배척당했고, 그들의 가능성을 두려워한 구천제도 헌원마가를 멸문시키려 했다.
하마터면, 일원신교의 맥이 끊길 뻔한 것이다.
“이 호흡…….”
초식마다 잘라 내서 사용할 수도, 또한 단 하나의 무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천마삼검과 일월호흡.
이 둘이 섞인다면 천하에 당해 낼 자가 없다는 것이 굉천대부의 무론이었다.
상상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힘.
그것을 의지라 부르고, 그 의지에 따라 선천진기는 반응한다.
죽이고자 하면 죽일 것이고, 살리고자 하면 살릴 것이다.
기운의 성질에 따라 상대에게 해를 입힐 수도, 또한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기운이란 말이다.
“엄청나.”
난 전신에 차오르는 힘에 희열을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야가 달라졌다.
상단전이 개통되면서 천장을 기어 다니는 개미 새끼들이 몇 마리인지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인가, 수백 장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잡담도 들려왔다.
휘익―!
더군다나, 갑자기 뻗은 요요의 손짓도 이제 내게 닿지 못한다.
“엄청나구나.”
본인이 깨워 줬으면서도 요요는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십성 공력이 담긴 천뢰장을 이리 쉽게 피하다니…….”
사실 피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투영되는 요요의 몸짓 너머, 그녀의 허점이 너무도 고스란히 내 두 눈에 사로잡혔다.
천하에 당해 낼 자가 없다는 삼신급의 고수마저도 무릎 꿇릴 수 있는 수준의 기운을 얻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투콱―!
난 그대로 정수리에 일격을 허용했다.
아직은 너무도 어설펐다.
“일월호흡을 펼치지 않고도 그 정도의 몸 재간이라니…… 무섭구나.”
요요는 이내 씩 웃으며 뒤돌아섰다.
껍질을 깨고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난 굉천대부와 요요랑 번갈아 가며 수련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선천진기를 일깨우고, 지금은 어느 정도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천마삼검이나 일월호흡은 너무도 난해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풀어야 할 일. 우리도 모르는 영역이라 도움을 줄 수 없겠구나.”
아쉽지만, 굉천대부와 요요 역시 선천진기의 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즉,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처적―!
그리고 고마운 분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스승님.”
“…….”
검천신장.
천하를 호령한 거인.
또한 내가 어릴 적 몰래 뒤를 지켜 주며 키워 주셨던 은인.
난 그런 그를 향해 공손히 구배를 올렸다.
“처음이구나.”
검천이 흐뭇하게 웃었다.
“네놈과 사승의 연을 맺게 될 줄이야.”
“이미 제게는 스승님이셨습니다.”
“말투도 공손해졌고, 제법.”
검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작은 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두 자루의 검.
“받거라.”
검천은 이내 내게 검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아가씨…… 네 어머니께서 사용하신 검이시다. 그걸 우리는 천마신검이라 부른다.”
“천마신검…….”
하지만 난 받을 수 없었다.
이미 검이 두 자루나 있거니와, 무엇보다 내겐 너무도 무거운 검이었다.
“받아야 한다. 헌원가의 무공은 검 한 자루에 국한되지 않는다.”
“…….”
“과거 한 무장이 있었지. 패퇴한 마교의 뒤를 금군 수만이 뒤쫓았다.”
검천이 검을 내려다보며 아스라이 입을 열었다.
“그 무장은 홀로 남아 수만의 군세를 모조리 죽이고 사라졌다.”
“…….”
“그 후, 일월신교는 사라지고 천마신교가 세워진 게다.”
어쩔 수 없이 검천이 건네는 검을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찌르고, 베고, 물고, 찢고 또한 할퀴고 삼키고.”
“이리 알려 주신 거군요, 스승님께서.”
난 뭔가를 떠올리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검천 역시 나와 비슷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래, 네겐 이미 알려 줬다. 헌원가 대인전 최강의 무공인…… 무쌍류를.”
무쌍류.
내가 사군자들에게 병장기들을 두 자루씩 더 챙기라 했던 이유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병기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를 죽여야 했다.
“오로지 내공도 없이 수만의 금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그 무장은…… 훗날 그 무공을 무쌍류라 이름 붙였다.”
“무쌍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멋있습니다.”
내 말에 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검천은 내게 작별을 고하고 있다는 것을.
“못난 제자 놈 뒤는 지켜 줘야 멋있는 스승이지 않겠느냐?”
검천이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아직 채 낫지도 않았을 텐데, 걱정이 먼저 앞섰다.
“녀석, 아직 어린놈에게 그런 표정을 보이게 할 만큼 내 약하지 않느니라.”
“압니다.”
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
평생 홀로 검에 미쳐서 살아왔던 사람이다.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능히 천하를 호령하고도 남을 세력을 구가했을 사람.
하지만 그런 야망도 꿈도 모조리 포기했다.
“헌원마가의 호법, 검천계주 휘을.”
검천신장이 내게 포권을 취했다.
“도련님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스승님…….”
“받아,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헌원가의 가솔로서 보이는 진짜 인사니까.”
요요의 조용한 말에 어쩔 수 없이 난 검천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하하하! 시원하구나.”
검천이 이내 허리를 폈다.
그가 내게 손을 흩뿌렸다.
“가거라.”
“…….”
“넌 지키거라, 너의 세가, 너의 가족.”
검천이 등을 돌렸다.
동시에,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굉천대부도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너의 사람들을 지켜 주거라.”
“그리…… 그리 하겠습니다, 스승님.”
내 스승님.
제자가 서툴러 고마운 마음 한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팟―!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난 돌아섰다.
“가자.”
짧은 외마디 말과 함께, 구석진 수풀 어둠 한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명을 받듭니다, 단주.”
“명을 받듭니다.”
신기검단의 부단주, 백종서.
그리고 곤륜의 차기 장문인이자, 신기검단의 일원이었던 무적.
“저희 대령했습니다, 단주님.”
그리고 반대편에서도 나타난 무리.
신기검단의 척살조 조장, 유천.
그리고 나머지 사군자들.
그들이 내 뒤를 따랐다.
삐이이익―!
유천이 호각을 불었다.
동시에 숲이 통째로 움직였다.
“내 집으로…… 간다.”
“존명!”
거친 외침과 함께, 검붉은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정천맹, 최정예 무력부대.
신기검단이 움직였다.
* * *
“신기검단이 옵니다.”
악안이 술렁였다.
봉칠과 아지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겨?”
“새 된 거지 뭐.”
아지는 코를 후비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소가주께서 그럴 분이 아니시란 걸 잘 아시겠지요? 두 분?”
초영이 웃는 낯으로 그들에게 타박했다.
“그, 그렇지?”
“그리고 두 분께서도 충분히 강하십니다.”
“그럼, 누가 가르쳤는데.”
초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귀면탈혼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등장하기 무섭게 봉칠과 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이제는 기척도 못 잡겠다.’
귀면탈혼.
그는 서진에게서 살황의 무공을 전수받았다.
압도적인 은잠술은 이제 촌척간의 거리에서도 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
“으흐흐.”
그가 귀신처럼 웃었다.
“안 그래도 요즘 심심했는데.”
그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었다.
“신기검단이랑 붙어볼 수 있겠구만.”
그 유명한 신기검단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그들과 대련하고자 하는 호승심이 같이 솟아오른 것이다.
후웅―!
동시에 바람이 일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군께서 오십니까?
양노진이었다.
그 역시 엄청나게 발전한 듯, 그의 움직임은 바람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또한 민첩했다.
“청해를 출발하셨다 하니, 못해도 열흘 내로는 오시지 않을까 합니다.”
초영의 말에 양노진의 얼굴에도 화색이 돋았다.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섰다.
“오라비가 온다구요?”
잔뜩 화난 표정의 서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