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19
천하제일 시한부 (219)
신기검단이 북해로 출발했다.
북해는 당연히 아무나 갈 수 없다.
무엇보다 빙궁의 위치는 무림에서도 아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신기검단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이미 발호하기 직전의 빙궁을 잠재우기 위해 몇 번이고 가 봤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시간을 주기로 했어.”
신기검단이 떠나고 쓸쓸히 홀로 남은 내게 흑화가 다가왔다.
그녀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뭘? 무슨 시간?”
“생각할 시간, 진짜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이들만 데려갈 거야. 그렇게 결론 났어.”
“잘됐네.”
오히려 잘됐다.
수만 늘려서 데려가는 것보다, 고작 하나를 데려가더라도 진심을 가지고 매사 상황에 임할 수 있는 진짜 무인이 필요했다.
“가족들도 만나고 오라고 조를 나눠서 보냈어. 넌 먼저 돌아가. 준비되는 대로 찾아 갈 테니까.”
“그래.”
난 대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신기검단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전에 세가 내부적으로도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다음에 보자고.”
난 거침없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원래부터 신기검단과 함께, 길을 나서기로 한 터라 망설임은 없었다.
흑화 역시 개운하게 날 보내 주었다.
난 곧장 사천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삼 일간 이곳에 머물면서 생각을 좀 해 보았다.
본래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곧장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곧 소천마가 나타나면서 무산됐고, 그렇다면 이참에 사천성에 들러 당가주를 좀 만나 볼 참이었다.
그에게 도움받은 것도 있는데 그냥 가기에는 뒤가 찜찜하기도 했고 말이다.
또한 그곳에는 무당의 제자들이 머물고 있다.
그 수가 적긴 하지만 그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다.
빙궁으로 떠난 무극을 중심으로 추후 곤륜파를 다시 재건할 귀중한 인력들이었으니까.
“할 일이 많네.”
난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어쩌다보니 남궁가의 마지막 후계자도, 곤륜의 마지막 후계도 내가 거두게 되었다.
그뿐인가.
빙궁의 후계도 있다.
“우연인가?”
더군다나 그런 문파나 세가는 꼼짝없이 멸문을 당했다는 것.
“그 이전에…….”
그 전에는 내 손으로 인해 마교도 풍비박산 났고 말이다.
무언가 많은 사건이 벌어진 것 같지만, 무림 전체로 보자면 또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파가 생겨나고 없어진다.
지금도 누군가는 뼈와 살을 가르는 전장을 뒹굴 것이고, 누군가는 태평한 나날 중 하루가 될 것임에.
“이왕이면 편한 것이 좋으니까.”
무림인들이 치고받고 싸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걸 조정하는 자가 있다.
사륭회.
“무림인뿐만이 아닐지도 몰라.”
그들을 찾아내기 위한 정보 세력 역시, 입을 닫았다.
개방과 하오문이 바로 그것이다.
대체 무엇을 겁내고 있길래, 그들은 나서지 않는가.
의와 협을 부르짖고, 선을 행하던 개방은 이제 없다.
중원의 눈과 귀가 되어 주던 개방이 움직이질 않으니, 당연히 들어오는 정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이젠 달라져야지.”
난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은 말이다.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고, 주씨세가를 지키기 위해서만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계속해서 더큰 위험을 불러들였다.
그래서 나서기로 작정했다.
사륭회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이 지긋지긋한 대치가 계속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후우웅―!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청해의 경계를 넘었다.
감정, 의지만으로도 기운을 부릴 수 있는 경지.
일보에 수십, 수백 장을 쭉쭉 뻗어 나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천당가의 영역에 도착했다.
* * *
사천성의 성도.
성도의 중심지에 위치한 사천당가.
사천당가는 곤륜산에서 대대적으로 철수했다.
그 시기는 서진이 낙화봉을 오른 그 시점에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사천당가가 철수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곤륜의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오오, 신기검단주!”
사천성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난 존재감을 내뿜었다.
내가 도착했음을 사천당가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곳곳에 포진한 당가의 무사들은 즉각적으로 당가주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당가주는 버선발로 날 마중했다.
“오랜만이오.”
사실 그렇게 오랜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예의상 그렇게 말했다.
“어서 들어오시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참이오. 말도 없이 쑥 가 버린 줄 알았더니…… 음? 신기검단은 다들 어디간 거요? 같이 안 왔소?”
“…….”
말이 참 많다.
하지만 저 가벼운 겉모습과 달리 당가주의 실력은 절대 가볍지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
한 줌 독수로 흑도 무리 수백을 일거에 녹여 없앤 그의 화려한 전공은 이미 비밀도 아닌 유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어서오세요, 신기검단주님.”
당가주의 장녀, 당하린 역시 날 향해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내 뒤를 힐끔힐끔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꼭 누군가를 찾는 듯한 반응이다.
난 대번 그녀가 찾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종서는 내 명대로 북해로 향했다.”
“부, 북해요? 왜 그렇게 먼…… 아니,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라구요, 으흠.”
도도한 척하며 고개를 뾰족하게 쳐들지만 표정은 숨길 수 없다.
“크하하, 신기부단주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구나.”
당가주가 헤벌쭉 웃었다.
“곤륜의 제자들은 어디 있소?”
“아하, 참. 후원에서 치료 중이었소. 상태가 위중한 이들도 몇 있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금하고 치료에 몰두하고 있소이다.”
“고맙소.”
“고마울 게 무에 있는가? 곤륜의 일이라면 곧 정도의 일. 내 비록 정사중간의 길에 서 있지만, 마땅히 정도의 한 축이라 생각하고 있음이네.”
당가주의 말에 난 가만히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도고 사도고 내겐 중요치 않다.
거슬리면 벨 것이고, 막아선다면 뚫을 것이다.
설령 마교가 아니라 무림맹이 주씨세가를 위협했으면 난 무림맹도 모조리 분쇄해 버릴 자신이 있었다.
“안 그래도, 들려 드릴 얘기가 있었소.”
당가주는 내 손을 잡아 끌어 자리에 앉혔다.
난 못 이기는 척 그의 손길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무슨 얘기를 해 주시려고?”
내 물음에 당가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내게 소곤거렸다.
굳이 소근거릴 필요가 없는데…… 좀 유난스러운 부분이 있는 자다.
“팽가에게서 답신이 왔소. 제갈세가, 팽가 그리고 당가와 모용세가가 이십 년 만에 회합을 열기로 했소이다.”
“회합?”
“그렇소, 남궁세가도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 남궁세가의 후계 역시 주씨세가에 있지 않겠소이까?”
“그렇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진.
남궁세가 삼장로, 남궁무린의 아들이자 현재 남궁가의 직계 혈족 중 가장 후계에 가까운 녀석이다.
나이가 어리지만, 심려 깊고 매사 진지하며 생각이 어른 못지 않은 녀석이라 장래가 유망하다.
“그 회합에서 나와 팽가, 제갈세가는 당연히 주씨세가를 오대세가의 한 축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의견을 낼 것이오.”
“뭐요?”
난 느닷없는 소리에 인상을 구겼다.
오대세가.
아니 남궁세가가 부활하면 육대세가가 되는 것인가?
“물론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오. 하지만 오대세가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꽤 많은 도움을 받게 되오만.”
당가주가 계속해서 뭐라, 뭐라 입을 열었다.
주로 오대세가의 혜택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딴 것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절하오.”
난 단번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눈에 띄는 것은 싫소. 우리는 지금 오대세가니 뭐니 하는 것보다 더욱 중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내 물음에 당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오. 오대세가의 이름만으로도 더욱 쉽게 풀어 갈 수 있단 말이오.”
당가주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흑련이 움직인다는 첩보가 있소. 그쪽 또한 주씨세가를 향해 뭔가 손을 내밀거라는 정보요. 거기에 더불어 무림맹 또한 정천맹의 해산을 가지고 말이 나오고 있는 참이고.”
“…….”
“무슨 말인지 아오? 지금 주씨세가는…… 용담호혈이 되었단 말이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하, 이제 알겠다.
이것들이 정천맹 해산을 빌미로 날 거두려 하는 것이다.
신기검단주라는 직책은 공중분해 될 것이고,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갈 테니.
주씨세가가 응한다면 그건 곧 신기검단주인 나를 품을 수 있단 말과도 같을 테니.
“현존 삼신급, 천외천의 고수들께서는 소재지가 불분명하지 않소? 삼강급의 고수들은 저마다 흑련, 무림맹에 계시고…… 반면 우리 오대세가는 그만한 고수가 없소이다.”
당가주가 인상을 구겼다.
자존심이 상하는 발언이긴 했다.
‘삼신…….’
굉천대부와 요요 그리고 검천신장으로 불리는 내 스승님.
날 보내 놓고, 그들은 어찌됐을까.
뭔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마지막은 참으로 쓸쓸해 보였다.
‘불쌍하신 분들.’
일평생을 아버지 때문에, 주씨세가 때문에 끌려다니신 분들이다.
자신의 인생은 없고, 오로지 무림의 미래를 위해 뛰어다니신 분들.
고맙지 아니할 수 없다.
“그건 생각을 해 보겠소만, 난 별로. 그건 나와 스승님도 바라던 일이 아닐 테니.”
아버지 역시도.
주씨세가가 눈에 띄는 일을 하는 순간, 모두의 표적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륭회만도 골치 아픈데, 사서 일을 벌이기는 싫었다.
“어차피 회합은 사흘 뒤, 제갈세가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으니. 그때가서 결정합시다.”
당가주의 말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만장일치의 의견이 나올 리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그런 세력 놀음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상황은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 * *
악안 주씨세가.
총관, 초영이 인상이 대낮부터 왈그락 일그러졌다.
“무림맹…….”
무림맹 맹주의 직인이 찍힌 서한이 도착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내용이었다.
“무림맹으로 초대한다라고……? 가주님을?”
초영은 단번에 무림맹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것들…….”
주서진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씨세가주를 초대했다.
무림에 이미 이름이 널리 퍼져 있는 서진 대신 가주를 초빙했다는 것은 다분히 무슨 목적이 숨어 있다라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릴 우습게 본 것인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걸까?”
“무슨 생각?”
그때 문 열리는 소리도 없이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여화였다.
그녀는 현재 주씨세가를 진법으로 도배해 놓다시피 하고 있었다.
화탄에 취약한 곳은 바위를 옮겨 진축을 세웠고, 진법의 범위도 대폭 늘려 버렸다.
이제는 그 무엇도 감히 침범하지 못할 정도로 절대의 영역을 구축해 버린 것이다.
“아, 여화.”
초영은 이미 그 여화와 많이 친해진 터였다.
여화는 그 총명한 머리로 뜻밖의 해답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무림맹?”
여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절해.”
여화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주님께는 물어봐야 해, 그것이 절차니까.”
“서진이 알면. 무림맹. 죽어.”
다소 위험한 발언이지만, 왠지 서진이라면 그럴 것 같다는 것이 초영의 생각이었다.
“서진은. 무시하는 것 못 참아.”
“그럼 어떡해야 할까? 무시해?”
“응.”
여화의 간단명료한 해답에 초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까짓거.
무림맹이 뭐가 무서운가.
초영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상황은 이미 그리 간단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 * *
“저곳인가.”
한 사내가 저 멀리 보이는 주씨세가의 장원을 보며 눈을 빛냈다.
방갓을 쓰고 있어 그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흰색 무복에 덧대어진 견갑에는 무림맹을 뜻하는 맹(盟)자가 크게 음각되어 있었다.
그의 눈이 기이한 빛무리를 뿜으며 장원을 천천히 훑었다.
“진법이군, 여화가 움직인건가?”
이중, 삼중으로 덧대어진 여화의 진법을 순식간에 꿰뚫어 보며 그가 재밌다는 듯이 씩 웃었다.
“철저히 규칙을 위반했군, 신기검단주.”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