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1
천하제일 시한부 (241)
주천(朱天).
구중천이라 불리는 아홉 개의 하늘 중, 서남방의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천의 지배자, 주천제는 자신의 세력들을 ‘주계’와 ‘암계’로 나누고 서남쪽 땅을 완전히 통제하에 두었다.
“점창파라…….”
주천의 줄기, 주천맥이 무너진 점창파를 둘러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주계를 움직여 점창파를 완벽히 무너뜨린 것이다.
점창이 자랑하는 사일검법도, 그들의 앞에서는 한낱 이쑤시개만도 못한 검법으로 치부됐다.
주천맥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한 노인이 백발을 흐트러트린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오, 장문인.”
백현노자.
점창파의 장문인이다.
그는 말없이 주천맥을 쏘아보았다.
“설마설마하니, 네놈이…….”
백현노자는 주천맥을 아무래도 아는 눈치였다.
“에이, 설마, 제가 그랬겠어 하는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다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주천맥이 빙그레 웃었다.
“제게 무공도 전수하지 않고, 아무런 가르침도 내려 주지 않은 것은 다 그렇게 홀로 뜻이 있으셨던 게 아니냔 말입니다.”
“그래, 네놈은 위험한 놈이니 그러했다.”
백현노자가 거칠게 울분을 터트렸다.
“야심 있고, 항상 노력하는 그 모습은 분명 제자들 중 으뜸이었고 그랬기에 가르치려 마음먹었다. 하나…….”
백현노자가 침음을 터트렸다.
“그 위험한 야심이 문제더구나. 결국 넌 네가 배운 무공이 스스로 자멸을 이끄는 것도 모른 채, 먹히고 말 것이다.”
“그렇군요.”
주천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스승님께서 왜 이러고 계십니까?”
“…….”
“미래를 보는 혜안이 아주 대단하신 분이신데……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도 모른 채…… 쯧쯧.”
주천맥은 백현노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춰 그와 시선의 높낮이를 맞췄다.
“너무 억울해 마십시오. 본래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것은 늘상 있어 왔던 일 아닙니까? 이 무림에서는…….”
“크크, 그 무림. 네가 생각하는 무림이 그런 모습이기에 더욱 위험한 것이었다. 정(正)과 사(邪). 우리가 그 둘을 저울질한 것은 그런 사상적인 이념에 앞서 우리 점창의 신념을 먼저 생각했기에 그랬던 것을…….”
“그러니까요. 정과 사가 무슨 소용입니까?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인데.”
주천맥이 씩 웃었다.
그가 한참을 백현노자와 눈을 마주치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허리춤에 감춰 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백현노자에게 그 단검을 툭 던졌다.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지요. 여기서 목숨을 끊는다면 도망친 제자들을 쫓지 않겠습니다.”
“…….”
백현노자는 자신의 앞에 떨어진 단검을 바라봤다.
죽음.
그런 것은 두렵지 않았다.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아니다.
덥썩.
그가 망설일 틈도 없이 단검을 잡아 갔다.
그러고는 그대로 진기를 끌어 올려, 주천맥의 목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쒜액―!
거친 파공성과 함께, 주천맥은 그럴 줄 알았다며 슬쩍 고개를 꺾어 단검의 궤적을 피해 냈다.
“쯧쯧.”
퍼걱―!
공격이 실패함을 깨달은 백현노자는 이내 가슴팍에 단검을 꽂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행동으로 보여 주었을 뿐이었다.
“다 쫓아, 죽인다.”
서늘한 표정으로 일갈한 주천맥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안쓰러운 얼굴로 쓰러진 백현노자를 일별한 뒤, 그대로 점창파를 나섰다.
* * *
광서패주, 일담.
그는 초절정의 말입, 화경의 초입을 목전에 둔 초고수 중의 초고수였다.
그런 그가 무사들을 거느린 채, 광서성 서쪽 경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림에서 전림으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은, 운남성과 귀주성의 경계를 맞대고 있어 독곡의 야인들을 감시하기에 딱 좋은 지형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쳤군.”
일담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울창한 숲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숲을 제외하면 평야 지대나 다름없었기에, 오히려 저쪽의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다.
독곡이 그 사실을 깨닫고 먼저 숲을 태워 버린 듯싶었다.
“이건 야인들의 그 멍청한 대가리에서 나올 법한 전술이 아니다.”
일담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일전 흑련주가 흑련에서 총회를 열었을 때,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사륭회라…….”
하필 그때 흑련의 대대적인 발표 이후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킨 흑련을 벌하겠다는 의미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네놈들 중에도 배신자가 분명 있겠지?”
일담이 뒤편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조용한 가운데, 그의 말을 못 들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수만 명이 넘는 무사들이었지만, 모두가 조용했기에.
“늘 배신이 판치는 곳이기에 배신한다 해도 뭐라 하진 못하겠다. 하나…… 걸리면 뒈진다.”
일담의 조용한 경고에 무사들이 일제히 몸을 떨었다.
“패주님.”
그런 일담에게 누군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일담의 곁을 보좌하는 흑사단의 단주였다.
“이대로 치는 것은 자살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저놈들이 독을 쓴다면 저희는…… 그냥 숫자만 많은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흑사단주의 걱정은 당연했다.
독곡의 무서움은 그들의 독에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해독법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그들의 독공은 더욱 무서웠다.
“하여간 독을 쓰는 새끼들은 씨를 말려 죽여 놔야 하는 건데.”
독을 쓰는 새끼들.
사천당가와, 독곡을 이르는 말이다.
“내 나중에 흑련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아 둔 녀석들인데, 그런 내 수하들을 함부로 소모시킬 수는 없지.”
일담이 돌아섰다.
흑련주의 명령은 분명 귀주를 장악하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흑련에서 본대가 움직일 겁니다.”
흑사단주의 말에 일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해 봐, 생각 중이니까.”
일담은 패주들 중 가장 똑똑했다.
그렇기에 가장 넓은 땅을 가졌고,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흑련의 지원도 엄청나게 받아 냈다.
말이 흑련의 패주지, 사실상 떼어 놓고 봐도 그는 대단한 세력을 가진 한 문파의 수장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차라리…… 저쪽에 붙는 것은 어떻습니까?”
일담이 고민하고 있음을 간파한 흑사단주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보아하니 사륭회의 세력이 장난 아닌 듯합니다. 두 패주님들이 당할 정도면…… 독곡만의 힘도 아닌 것 같고요.”
“…….”
일담은 가만히 흑사단주의 말을 경청했다.
그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흑사단주는 신나서 더욱 활발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맨날 흑련주께서 정천맹 눈치나 보고, 무림맹 눈치나 보고…… 지겹지 않으십니까? 더 강한 힘에 붙는 것이 우리가 살…….”
“그렇군.”
일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반응에 흑사단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담이 가만히 흑사단주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눈.
마치 뱀처럼 요사스러운 일담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흑사단주가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배신자가 여기 있었군.”
촤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담의 소매 끝에서 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흑사단주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이제부터 네가 흑사단의 단주다.”
“예, 옛!”
갑작스러운 상황에 흑사단의 부단주가 경직된 자세로 눈만 끔뻑였다.
단주 하나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여 버린 일담은 다시금 불타 버린 숲을 바라보았다.
“흑련주의 흑룡검을 아직 당해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몸을 바짝 낮춰 그분을 보필하는 수밖에.”
일담은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연소 흑련주.
반예진.
그녀는 절대 멍청하지가 않다.
그녀도 살기 위해 신기검단의 앞에 바짝 엎드린 것처럼.
자신도 그리한다.
그래야지만, 그녀의 신임을 얻어 낼 수가 있으니.
“우리는 남단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열어 둔 계림에서 놈들을 맞이할 거다.”
“계림이라면…… 일전에 비워 두라 하신…….”
“그래.”
도박 수다.
본진을 내어 주고, 본진을 털러 온 놈들의 후미를 잡는다.
실패하면 전멸이고, 성공해도 전력의 소모는 피하지 못한다.
보급선을 털릴 위기에 처한 독곡 놈들이 거세게 저항할 테니까.
“허면 이곳에 오신 이유가…….”
새로이 임명된 흑사단주가 잘게 몸을 떨었다.
“일부러 왔다. 불만 있냐?”
“아, 아닙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이곳까지 온 것은.
놈들이 이미 계림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말도 되니까.
‘배신자를 잡기 위해서?’
어쩌면 일담은 예전부터 흑사단주를 의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새롭게 임명된 흑사단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움직여.”
요사스러운 눈을 빛내며 일담이 명령을 내렸다.
그의 한마디에 수만의 무사들이 일제히 한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청해성, 과거 정천맹이 있었던 곳.
마교와의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정천맹은 모든 뒷정리를 마무리했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흑화는 뭔가 아쉬웠는지, 연신 뒤를 돌아봤다.
이십 년이 넘게 지냈던 곳이라 이제는 집과도 다름없는 곳이다.
“아쉽습니까? 부맹주님?”
그녀의 곁을 보필하는 정천맹의 총군사이자, 동화궁의 궁주 황인엽이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 좋든 싫든 내 삶의 대부분이 기억된 곳이니까.”
“그렇…….”
“그렇다면 이곳에 뼈를 묻으면 되겠군.”
그때였다.
황인엽의 대답을 가로채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누구냐.”
당황한 황인엽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사내의 옆에는 꽤나 고풍스럽게 보이는 거대한 곤봉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아무나…….”
“네년이 흑화라지?”
또 한 번 황인엽의 말을 자른 사내는 흑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흑화는 그의 시선에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고수다.’
언제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다.
더군다나 이렇게 지근거리에 있었는데도 기척을 알아챌 수 없었다.
그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구?”
“나? 줄기를 잃어버린 뿌리랄까……?”
사내가 이내 팔짱을 풀고 곤봉을 잡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큰 키에, 탄탄한 몸매.
나이도 꽤나 젊어 보이는 사내였지만, 풍기는 기세는 확실히 범상찮았다.
“난 양천제다. 마교에게 된통 깨졌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
그는 말과 함께, 여유 있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까지 보였다.
“사륭회…….”
흑화의 나직한 목소리에, 양천제가 빙그레 웃었다.
“날 따라오겠느냐? 아니면 내가 잡아갈까?”
마치 언제라도 제압할 수 있다는 듯, 양천제의 태도는 느긋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곤봉은 바로 무림 십대 기보로 여겨지는 ‘건곤여의’였다.
“널 왜 따라가야 하는지 이유라도 알자.”
흑화는 체념했다.
여기서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는 아무도 없다.
주서진이 온다면 모를까.
“따라오면 이유를 알려 주지. 따라오겠다면 손끝 하나도 건들지 않겠다. 그 미색이 내심 동하기는 하지만…….”
양천제의 음흉한 웃음을 애써 무시하며 흑화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따라가지.”
그러고는 이내 황인엽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서진에게 이 사실을 알려 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정천맹의 총군사답게 황인엽은 그 신호를 알아챘고, 이내 양천제는 피식 웃더니 그대로 앞서 걸어 나가 버렸다.
마치 말할 테면 해 보라는 듯한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무사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 내가 누구 딸인지 잊었어?”
흑화의 말에 황인엽 역시 애써 웃었다.
천하상단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니만큼, 그녀가 다친다면 천문길의 진노를 그대로 중원 전체가 받아 내야 할 것이다.
그것에 위안을 삼으며, 황인엽은 그녀를 남겨 두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