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2
천하제일 시한부 (242)
강남무림이 떠들썩했다.
흑련의 무사들이 강남 전역에 깃발을 꽂고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흑련은 사파 무림의 연합체다.
무림맹이 정파 무림의 연합체인 것처럼, 흑련은 사파무림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흑련이 몸을 일으키자, 강남 전역이 들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무림맹과는 그 덩치 자체가 달랐다.
일반 삼류 왈패들부터, 이름난 사파 계열의 고수들까지 속속 흑련의 깃발 아래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대 고수들인 사천황들은 자신의 연줄을 동원해 그간 알고 지냈던 사도 계열의 고수들을 모조리 불러들였고, 그 고수들은 또 자신이 모을 수 있는 모든 고수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였다.
사천황 중, 북태천황 송염.
그는 광서패주 일담의 스승이자, 반예진의 대부였다.
사천황들 중 가장 배분이 높았으며, 나이 또한 가장 많은 자였다.
하지만 나이는 가장 많음에도 그는 가장 고강한 무공을 가졌는데, 그는 사천황의 직위를 받고 그림자 속에 숨어 수련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스승님.”
그런 송염에게 일담이 물었다.
“충분히 흑련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텐데, 어찌 가만히 계십니까?”
요사스러운 뱀의 눈빛을 띄운 제자의 물음에 송염이 빙그레 웃었다.
“흑련주라…… 물론 욕심이 나는 자리긴 하지.”
또한 도전해 볼 만한 위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그가 움직이지 않았기에, 다른 사천황들도 감히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다.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대 흑련주.”
“전대 흑련주요?”
일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대 흑련주는 일담이 어렸을 적,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무엇을 남겨 놓았던가? 하고 일담은 생각했다.
“전대 흑련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송염은 당시를 회상했다.
* * *
반예진의 아비이자, 전대 흑련의 총수였던 반하세.
그는 흑련의 련주만이 배울 수 있는 흑룡검법을 극성까지 수련한 고수 중의 고수였다.
이미 사파무림 내에서는 그를 능가할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작 약관이 된 나이에 흑룡검법을 모두 깨우친 그에게 이미 대적할 상대가 없던 것이다.
당시의 사천황들은 그런 그에게 매료되었다.
‘흑련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실 분.’
당시의 흑련은 더욱 단단했고 견고했으며 더욱 큰 덩치를 자랑했다.
무림맹조차 흑련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이대로 가다간 사파천하가 오지 않을까 할 정도였으니.
더군다나 반하세는 흑련을 조금 다른 길로 인도했다.
사술을 익힌 무인들이란 틀을 벗고, 인신매매와 납치 등 민간인들을 핍박하는 행위 자체를 도전이라 받아들이고 모조리 없애고자 했다.
사파의 근본인 삥뜯기 마저 사라지자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반하세는 역대 흑련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가하고 있었으니까.
이미 어릴때부터 자질을 보였던 그는, 총명한 두뇌를 바탕으로 흑련을 키우기에 몰두했다.
그 결과는 결국 성공적이었다.
민심을 적극적으로 얻어 낸 그는 성공적으로 강남무림에 정착했고, 풍부한 곡창지대를 바탕으로 엄청난 생산력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장강을 장악한 수로채를 집어삼켜, 그들을 부려 곡물을 팔아 치웠으며, 남은 것은 흑련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부와, 명예를 모두 얻어 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흑련은 강남무림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는데, 당시 반하세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문파들을 아예 근본까지 지워 버리는 잔인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사천황들은 그런 반하세에게 완벽히 충성을 맹세했으며, 배신 따위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반하세는 그런 사천황들에게 고강한 무공을 가르쳤으며, 이내 사천황들이 경지에 오르자 곧장 정사대전을 일으켰다.
그것도 소규모 국지전이 아닌 대대적인 전면전의 양상으로.
엄청난 숫자의 흑련은 파죽지세로 강북무림을 휩쓸었다.
사천, 호북, 안휘, 강소는 모두 다 밀렸으며 정파무림은 하남에 위치한 무림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차 정사대전을 완벽히 승리로 끝낸 흑련은 거칠 것이 없었다.
곧장, 무림맹을 향해 수십만의 무사들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내심 흑련이 이겼으면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당시 강북무림은 강남무림처럼 잘 사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의 깃발 아래 모여든 정파무림은 먼저 자기들부터 살기 바빴기에 사람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흑련이 무림맹을 향해 진격했을 때, 사람들은 흑련이 무림맹을 꺾고 사도천하가 펼쳐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느낌의 사파라면 그들이 지배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엄청난 피를 불러온 정사대전은 곧 흑련의 패배로 끝나 버렸다.
수십 년간 속세에 뜻을 두지 않겠다는 소림이 규율을 깨고 흑련을 막기 위해 무림맹에 합류했고, 소림과 뜻을 같이했던 무당 역시 참전을 선언했다.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두 쌍성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판세는 대부분 기울기 시작했다.
소림사의 압도적인 항마공 앞에 흑련의 사술은 맥을 추지 못했고, 그간 웅크렸던 무당의 기지개는 순식간에 흑련의 진격을 저지해 냈다.
하지만…….
그 둘이 참전했어도 흑련은 이미 엄청난 덩치를 보유하고 있던 중이었다.
충분히 싸운다면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미친놈.”
송염이 당시를 회상하며 빠득 이를 갈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한 여인.
어느 세도가의 여식처럼 고귀하고 얌전해 보이던 그녀는 어떤 세력도 이끌지 않고 홀로 등장했다.
온통 백의를 입고 있었던 탓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 눈에 띄었고 그렇게 그녀는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것이 누구입니까?”
일담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무림맹조차 막지 못한 흑련을 홀로 막아 냈다?
당연히 믿기지 않는 말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정체는 불분명했다. 누구는 그녀를 마교인이라 했고, 누구는 그를 불세출의 영웅이라며 추켜세우기 시작했으니까.”
“…….”
“우리는 결국 패배했다. 그녀의 압도적인 무공 앞에 흑련은 오체분시당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그는 고작 혼자다.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일담은 그리 묻고 싶었다.
송염은 일담의 기분을 알았던지, 이내 피식 웃으며 마저 입을 열었다.
“홀로 흑련의 본거지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말하더구나. 자신은…… 헌원가의 후계라고.”
“헌원가……?”
“자신의 터전을 짓밟지 말라더구나. 그러면서…… 전대 흑련주를 말 그대로 짓이겨 놓았다.”
일담이 입이 떡 벌어졌다.
반하세는 이미 흑련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역대 련주들을 비교해 봐도 그만큼 강하고 훌륭했던 련주가 없었다고 할 만큼.
그런 반하세를 짓이겨 놓았다고?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헌원가가 무슨 가문입니까?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테지. 나 또한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여튼 그녀가 경고를 남긴 이후에 우리 흑련은 다시는 나서지 못할 정도로 치명상을 입었다.”
“치명상이라면…….”
“흑룡검법의 후반부 초식을 모조리 없애 버린 것이다. 즉, 그녀가 흑련의 심장을 도려낸 것이지.”
그렇다는 말은 현재 흑련주가 익힌 흑룡검법이 반쪽짜리라는 말인 걸까?
“근데 웃기지?”
“예? 이게 웃긴 일입니까?”
일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이 잘린 당금의 흑련주가…… 전대 흑련주가 익혔던 극성의 흑룡검법을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이.”
그것도 손이 바뀌어 좌수검을 새로이 익혔을 텐데 말이다.
“그녀가 돌아온 거다. 그리고 흑련주에게 접근한 거다. 그것이 아니라면 흑룡검법이 돌아올 리가 없어.”
그렇기에 송염은 도전하지 않고 반예진의 편에 섰다.
반예진은 더 신중했고, 보다 영민한 아이였으니까.
“내가 본 흑련주는 그 누구보다 똑똑하며 심지가 곧은 아이다. 여태 흑련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일담이 꿀꺽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무공으로 봐서는 자신이 충분히 흑련주의 자리에 도전해 볼 만도 했었기에.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송염의 말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완벽히 지워 버릴 수밖에 없었다.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흑련의 진짜 그림자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흑룡패. 그것이 있어야만 진짜 흑련주라 불릴 수 있는 거거든.”
“흑룡패…….”
얼핏 들어 본 기억이 있었다.
“전대 흑련주가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진 흑련의 신물이다. 하지만…… 그것이 등장했다.”
“예?”
“지금 강남무림 전역에 꽂아 둔 본 련의 깃발들이 바로…… 그 그림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거든.”
“그 그림자란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노마(老魔)들이지. 역사를 수놓았던 흑련의 진짜 힘이 돌아오고 있다는 말이다.”
영문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송염은 희열에 몸까지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만큼 뭔가 엄청난 것이 오고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일담은 그날 이후로 흑련주에 대한 뜻을 접고 그녀에게 충성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 *
“시작이군.”
강남무림이 떠들썩한 가운데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흑련주는 다 생각이 있었고,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녀를 보러 간 것은 한번 떠볼 생각도 있었다.
“흑련의 진짜 힘이 나설 것이다. 사륭회가 아주 제대로 건드려 줬어.”
“흑련의 진짜 힘? 뭔가 알고 있나?”
묵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내가 어떻게 알고 있지? 이걸…….”
가만 생각하니 뭔가 이상했다.
왜 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마치 경험해 본 것처럼 말이다.
“그냥 그러지 않았을까 해 본 말이야.”
난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피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준비해야겠군.”
흑련은 무림맹을 막아 달라 했다.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흑련의 덩치가 커지는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같은 무림에 속해 있는 무림맹일 수밖에 없다.
“방법이 있나?”
묵야가 물었다.
난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발품을 팔아야지. 이제 진짜 시작이니까.”
전서구 따위로 내 뜻이 전해질 리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화산으로 갈 것이다.”
현재 무림맹을 움직이는 실세 중의 실세는 바로 화산파다.
난 이내 묵야를 거느리고 화산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섬서성, 화음현.
화음현은 떠들썩한 강남 무림과 달리 매우 조용했다.
거리가 먼 것도 있었겠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은 모두가 화산파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음현의 풍경과는 달리 화산파는 매우 시끌시끌했다.
“하, 짜증 난다.”
화산파의 일대제자이자, 매화이십사수의 대사형인 진시현.
그는 매일같이 산에 갇혀 지내는 것이 너무도 짜증 났다.
이번에 무림맹으로 데려가 준다던 스승님 매화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건만, 그는 끝내 홀로 떠나 버렸다.
“제기랄.”
진시현의 기분이 나락임을 깨달은 다른 사제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허허, 시현아.”
그런 시현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입을 열었다.
화산파의 칠십이대 장문인, 매곡자였다.
“예, 예, 장문인.”
건성으로 답하는 시현을 보며 빙그레 웃는 매곡자는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곧 손님이 올 모양이다. 남쪽에서 비바람을 머금은 습한 바람이 부는구나.”
“손님이요?”
시현이 이내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매곡자의 말은 곧 화산에 소란이 일수도 있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단단히 준비하거라. 휩쓸리면…… 화산은 한순간에 잿가루가 될 터니.”
그리 말하는 매곡자의 말은 조금씩 떨려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