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0
천하제일 시한부 (240)
무림맹과 흑련.
정파와 사파.
둘은 장강을 기준으로, 강북무림에는 무림맹이 강남무림에는 흑련이 암묵적으로 선을 긋고 세력을 확장시켰다.
구파일방으로 이루어진 무림맹과 달리 흑련은 흑련주의 강력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각 지역에 속한 문파들을 다스렸는데.
그런 흑련주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사패주라는 자들이었다.
사파에서도 날고 긴다는 고수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네 명에게 패주라는 직위를 주고 그 지역을 맡게끔 만들었다.
당연히 패주라는 위치는 항상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였고, 이번 패주는 역대 패주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세대들이었다.
“귀주가 무너져?”
복건패주, 일담이 수하의 보고를 받고 눈살을 찌푸렸다.
귀주가 무너졌다는 말은 곧 귀주패주가 당했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독곡, 그 시러배놈들이 사천으로 올라간 게 아니라 귀주성을 쳤다?”
“그, 그런 듯합니다.”
일담의 수하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읊조렸다.
“허, 간이 배밖으로 나온 놈들이군.”
일담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담은 한때 광서패주에도 앉아 봤던 자였다.
지금의 광서패주가 오히려 일담의 후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는 한때 강서성의 주씨세가 때문에 서진과 마찰을 일으켰던 적도 있었다.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뻔하기도 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그는 두 번 다시 강서성 쪽으로 소변도 누지 못했다.
“그…… 호남패주도 당한 듯 합니다. 귀주패주님과 함께 무사들을 이끌고 독곡을 막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수하가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일담이 싸늘한 분노를 가라앉혔다.
“호남과 귀주가 넘어갔다? 그것이 언제더냐?”
일담의 물음에 수하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벌써 사흘 전…….”
“그러니까 벌써 사흘전에 패주들이 당했다는 얘기를 나는 사흘 후에 듣고 있는 거구나?”
“그, 그것이…… 아무래도 독곡이 단단히 작정…… 커헉.”
촤악―!
핏물이 튀었다.
일담의 소매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그의 앞에서 보고를 하던 수하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순식간에 대전이 피로 물들었다.
“이거 련주님이 또 한발 늦었구나.”
일담이 피가 묻은 자신의 단검을 혀로 슥 핥았다.
그의 눈이 뱀처럼 요사스런 빛을 품었다.
“그림자, 보고드립니다.”
“말해.”
그의 뒤편으로 굉장한 존재감을 가진 존재들이 그림자처럼 내려섰다.
그들 중 하나가 일담을 향해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의문의 무리가 광서성의 경계를 넘고 있습니다.”
“의문의 무리…… 그놈들이 독곡이다.”
일담이 대전의 한 구석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정성스럽게 구비된 진열대가 놓여 있었고, 그가 수집한 애병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중에서 그는 마치 피를 머금은 듯한 진한 붉은색의 단검을 챙겨 들었다.
“흑련에 기별을 띄우고, 절강패주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라. 우리는…… 최대한 놈들의 진격을 막는다.”
짧게 지시를 내린 일담이 그대로 핏빛 안개에 휩싸인 채 자취를 감췄다.
* * *
복건성의 성도, 복주.
강남무림에서도 가장 동쪽에 위치했으며, 바다를 끼고 있는 천 년 전부터 천혜의 요새라 불렸던 복주성이 있는 곳이다.
난 일주일을 꼬박 쉬지 않고 달려 복주성에 도착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흑련주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흑련은 바로 이곳 복주성을 근거지로 삼고 발전해 왔다.
“처음이군.”
묵야가 복주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몇 번 와 봤지.”
예전 강북무림과, 강남무림이 크게 부딪칠 뻔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보증인으로 둘이 싸우지 않게 잘 부둥부둥 시켜 줬었는데…….
새삼 이런 일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림맹보다도 큰 것 같군.”
복주성은 천혜의 요새로 불리던 곳이다.
정확히는 관에서 쓰던 곳으로 이곳은 사실 매우 유명한 곳 중 하나였다.
“흑련놈들 이런 곳에 있으니 함부로 토벌하기도 어려웠던 거로군.”
묵야의 말에 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것만은 아닐걸? 흑련이 진짜 무서운 점은 따로 있지.”
난 가만히 복주성을 올려다보며 낯빛을 굳혔다.
“절강병이라고 들어 봤나?”
“절강병?”
“그래, 요동마병에 이어 절강에 배치됐던 황군이다.”
“들어본 적 없군.”
“그럴 테지.”
난 이내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흑련을 처음 봤을 때 상당히 놀래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었던지라 흑련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는 묵야로서는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흑련의 진짜 힘은 절강병에 있다. 탈영한 절강병이 흑련에 투신하면서 시작된 거지.”
“고작 그래 봐야 일반 잡졸들이 아닌가?”
“후후.”
난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절강병을 과연 일반 잡졸이라 할 수 있을까?
“왜구, 그중에서도 사무라이 불리던 독종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무공을 익혔던 병사들이다.”
“사무라이……?”
“그래. 그 절강병들이 수백여 년간 무공을 발전시키고 개량해서 현재의 흑련을 만들게 된 거지.”
“대단하다는 것쯤을 알겠군. 그래서 어쩔 셈이지.”
묵야의 물음에 난 가만히 걸음을 멈추었다.
얘기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샌가 복주성 코앞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불러야지.”
난 이내 가만히 손을 털었다.
거대한 복주성의 정문.
그 앞에는 그 흔한 호위들 하나 보이지 않았다.
“흑련은 원래 이렇게 호위를 따로 두지 않나? 문을…….”
“지킬 필요가 없을 거다. 본연의 자신감인 거지. 뭐 어차피 이곳이 다 흑도의 소굴이니 무슨 필요가 있을까.”
난 말과 함께, 가만히 기운을 끌어모았다.
단번에 반응한 진기들이 일제히 들끓는가 싶더니, 그대로 내 노궁혈을 향해 모여들었다.
“거 참, 제대로 된 인사법이군.”
내가 하려는 짓을 깨달은 묵야가 만족스럽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띄웠다.
콰앙―!
동시에 난 그대로 정문을 후려갈겨 버렸다.
단단한 마법진으로 보호되던 강철 문이 그대로 우그러들었다.
터덩―! 터어엉!
거대한 철문은 그대로 내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문이 떨어지고 나서도 흑련놈들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묵야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묵야는 모르고 있지만, 이미 내가 원하는 바는 충분히 이루었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입니다, 신기검단주님…… 아니지, 소가주님.”
반예진.
흑련주가 이미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기에.
* * *
그녀의 빈 소매가 펄럭일 적마다 괜히 마음이 아프다.
내 탓인것만 같아 신경이 무진장 쓰였기 때문이다.
“신경쓰지 마시죠. 별것도 아닌 일로.”
반예진은 담담히 중얼거렸다.
어쩐지 그녀의 심지는 전보다 더욱 단단해진 것도 같아 보였다.
“독곡이 움직인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반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나? 아니면…… 뒤늦게 알았나?”
“둘 다죠, 놈들이 뭔가 수작질을 부리고 있을 거란 건 대충 예상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도 사실이고.”
반예진의 말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다면 그에 따른 대비책도 준비되어 있을 터.
“독곡은 본래 통일되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는 놈들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거든.”
“잘 알고 있지요. 단주께서 독곡이 두 번 다시 깝치지 못하게 아주 그냥 헤집다 못해 부숴 놓지 않았습니까?”
반예진이 씩 웃으며 답했다.
“거기까지 예상했나?”
난 한 수 앞서 질문을 던졌고, 반예진은 무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륭회의 도움이 있었겠지요. 아니면 애초부터 그렇게 협조를 하고 있었거나.”
“후후, 현명하군. 그래서 대책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반예진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녀가 앞에 있던 찻잔을 들며 조용히 읊조렸다.
“호남과 귀주를 넘겨주었습니다. 더 깊이 들어오라고.”
“허, 이미 그들이 경계를 넘었나 보군.”
묵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만히 그를 보던 반예진의 눈이 이채를 띄웠다.
“이분이군요, 살황의 후계라는 분이.”
“용케 알아보는군.”
“이런 기운은 절대 잊을 수가 없지요. 흑련에도 도움을 주셨던 분이 살황이셨는데.”
반예진이 묵야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말로만 듣던 살문의 후예를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나도.”
묵야가 짧게 답했다.
아무튼 지금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인사는 다음에 하고. 그럼 이제 광서나 광동을 넘을 텐데…… 광서패주가 움직였겠군?”
내 물음에 반예진이 놀랄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곧 나설 예정입니다. 생각해 놓은 것이 있거든요.”
반예진의 반응은 담담했지만, 그녀의 고요한 말투 속에는 차분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사륭회 때문에 팔을 잃었다.
당연히 그 분노야 걷잡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반예진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조금 깨달음이 있었다.”
“부럽군요, 그 경지에도 또 깨달을 게 있다는 것이.”
“너도 다 겪겠지.”
난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반예진이 대비를 해 놨다면, 내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전서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달려온 것이지만, 이미 준비를 해 놨을 줄이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문득 반예진이 이런 말을 꺼냈다.
“도와달라? 뭘? 어떻게?”
“놈들에게 일부러 호남을 열었으나, 놈들은 호남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광서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요.”
“…….”
그럴 테지.
독곡도 날 알고 있을 것이다.
호남에서 동진하려면 바로 강서의 주씨세가가 존재한다.
어떤 준비를 했던 간에 날 마주한다면 이긴다는 자신이 있어도 큰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광서패주는 광서를 열어 줬고, 대신 우회해 운남 독곡의 본거지를 급습하게 할 예정입니다.”
“……위험하군.”
낯빛이 절로 딱딱하게 굳었다.
반예진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본대를 이끌고 독곡을 막아서고, 광서패주는 통로를 열어 주고 그대로 독곡의 본거지를 점거한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전술이기도 했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전술이라는 말은 상대도 이미 그걸 의식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도 된다.
“사륭회가 있겠지요.”
반예진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우직―!
동시에 그녀가 강하게 힘을 줬는지, 찻잔이 그대로 균열을 일으키며 쪼개졌다.
“우리가 손해를 보면 무림맹이 저희를 칠 겁니다. 그렇다고 무림맹을 의식해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에는 사안이 좀 크기도 하구요.”
“무림맹을 막아 달라는 거군.”
“네.”
반예진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내가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반예진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어쩐지 그녀의 반응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럴려고 북해에 신기검단을 보낸 것이 아닙니까?”
“…….”
와, 거기까지 생각했다?
어쩌면 반예진 이거…… 무식한 척하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후후, 좋다. 내가 무림맹을 막아 준다면 대가는?”
“강서성에서 저희 흑련은 아예 손을 떼겠습니다.”
“원래 그래야 했을 텐데?”
나 역시 반예진처럼 삐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감히 그런 걸로 날 구슬리려 했다면 큰 오산이라는 듯이.
“절강도 드리겠습니다.”
“…….”
절강.
내가 이곳에 온 이유다.
“좋군.”
반예진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강과 강서성에서 앞으로 흑련의 깃발은 모두 내려갈 것입니다. 주산군도를 포함해 그 두 지역은 이제 온전히 단주님의 것입니다.”
“고맙게 받지.”
반예진이 손을 내밀었고, 나 역시 협상을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정파와는 동맹을 맺고, 흑련에게는 받을 것을 받아 낸다.
내 계획은 그렇게 천천히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