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79
천하제일 시한부 (279)
권황, 태무황.
선천제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는 전전대의 고수로서, 당시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던 무당의 벽봉선인을 단 백여 합 만에 때려눕히고, 당당히 천하제일권으로 등극했다.
이름 없는 낭인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이자 비극이 되던 날이기도 했다.
천하제일권의 칭호를 받고, 세인들의 공경을 우러러본다……는 것은 사실 태무황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본성이 너무도 사악했다.
그는 벽봉선인을 그저 이긴 것이 아니라, 다시는 검을 들지 못하게 폐인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비무라는 핑계로 벽봉선인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무당의 눈이 돌아가 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그렇게 기쁨에 취하기도 전, 무당의 포고 아래 평생을 쫓겨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는 감쪽같이 무림에서 모습을 감췄다.
바로 그때 구천제를 만나, 구천의 하나인 선천의 제후로 등극한 것이었다.
변천이 자금줄이라면, 현천은 마도를 뜻한다.
양천이 무기고라면, 주천은 포교를 뜻한다.
선천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선봉을 뜻했다.
즉, 그의 등장은 구천이 중원에 대한 개전을 선포했다는 뜻으로 여겨도 무방하다는 말이 된다.
그런 구천의 첫 번째 목표는 흑련이었다.
흑련은 무림에서 가장 많은 무사를 보유한 거대 세력이다.
흔히들 강남무림의 지배자라고도 불린다.
선천제는 그렇게 흑련을 쳐들어왔고, 당연히 흑련은 그를 막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 *
텅―! 터엉―!
내부가 진탕됐다.
그림자는 권황의 주먹이 스칠 때마다 기혈이 뒤틀리는 듯한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압도적인 경지.’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낭패감, 좌절감이 엄습했다.
그는 일평생을 흑련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말미에 결국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죄로, 사지가 찢겨 나가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이렇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헌원가와의 전쟁에서 찾아낸 하나의 비급 때문이었다.
“귀령신공이라…… 혼백만 담아 놓은 그 신체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단번에 그림자의 상태를 알아본 선천제, 태무황은 비릿한 웃음과 함께 다시금 쇄도했다.
그는 마치 봐주는 듯이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그림자를 상대했는데, 그럼에도 그의 가벼운 일격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쩌엉―!
“커헉!”
결국 그림자의 복부에 제대로 일권이 먹혀들어 갔다.
“시시하군.”
태무황이 한쪽 귀를 후비며,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우드득!
그의 비늘이 솟아난 팔은 다른 팔보다 훨씬 거대하고 단단했다.
검으로 베어도 절대 베어지지 않는 그런 단단함을 지녔기에, 그는 거리낌 없이 그림자의 검을 그 손으로 막아 내곤 했다.
‘대체…….’
그림자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태무황의 살기를 느끼고 마지못해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금 시간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귀령신공의 제약.’
하필이면 이 무공의 제약이 너무도 명백했다.
바로 음기가 충만해지는 밤에만 제대로 기운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쯧쯧, 밤까지 기다려 줄까?”
태무황은 그런 그림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귀령신공까지 알고 있는 듯했다.
“옛, 헌원가의 무공이라면 대충 어느 정도 알고 있지. 귀령신공이라면…… 밤에는 당해낼 자가 없다던 절세신공이 아니던가?”
태무황은 흥미롭다는 듯 제가 말해 놓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번 견식해 보고 싶군, 어떤가? 밤까지 기다려 줄까?”
마치 놀리는 듯한 발언.
그림자는 얼굴을 굳히며,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지금은 태무황의 근처까지 다가가지도 못한다.
차라리 밤을 기다려 보는 것이 승산이 높았다.
“클클, 그렇군. 그럼 잠시 기다리게. 내 그대의 딸년을 잡아다 모가지를 비틀어 데리고 올 테니.”
“웃기는 소리.”
쾅―!
그림자는 발끈하며, 그대로 태무황을 향해 달려 나갔다.
빛에 드러난 그의 전신 상태는 너무도 괴이했다.
두 팔과 다리는 완벽히 어두운 기운들이 형체를 갖춘 채 대신하고 있었다.
“꼴이 우습구만, 천하의 흑천대제께서.”
쩌정―! 쩡!
태무황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그림자의 모든 투로를 막아 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옆구리에 한두 방씩 주먹을 먹여 주었다.
“커헉!”
그림자, 흑천대제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새어 나왔다.
피가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 태무황의 신형은 이미 흑천대제의 면전 한 치 앞에 당도해 있었다.
“죽음.”
쩌정―!
막강한 경력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대전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흑천대제의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치켜떠졌다.
쩌정! 쩡―!
태무황의 두꺼운 주먹이 수없이 흑천대제의 몸을 두드렸다.
그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흑천대제의 두 눈에 깃든 생의 광망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추욱.
쉴 새 없이 흑천대제를 두드려 대던 태무황은 그의 몸이 축 늘어지는 듯싶자, 이내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흑천대제의 몸이 걸레짝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싱겁군.”
간에 기별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태무황은 휘적 대전을 벗어나 버렸다.
* * *
화륵―!
기운의 파동.
자연지기의 흐름 자체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퍼석―!
바람 빠지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환상이 모조리 걷혔다.
작은 공동의 형태를 유지하던 내부도 곧 흔들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욱했던 독무 역시 자취를 감춘 뒤였다.
“나왔군.”
뒤에서 무면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슬쩍 주변을 살피고는 무면괴를 향해 돌아섰다.
무면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순간, 그의 움직임 속에서 밀려나는 자연지기의 기운들이 느껴졌다.
즉, 그의 움직임을 완벽히 읽어 냈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읽고자 해서 읽은 것이 아니었다.
붉은 정수.
그것을 흡수한 뒤로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허.”
독곡의 운무 속에 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괴현상이었다.
하지만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내 몸은 자연스레 반응하고 있었다.
덥석.
난 곧장 무면괴의 손을 잡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면괴의 자세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저절로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고 파훼할 수 있는 다양한 투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미친…….’
좋다면 좋겠지만, 사실 이건 제약이나 다름없었다.
무면괴에게서는 그 어떤 적의도 없었다.
그런데도 머리가 이렇게 반응한다는 것은 아직 적응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왜 그러지?”
무면괴는 내가 손을 잡은 채로 연신 움찔거리자 의아해하며 물어 왔다.
난 아니라며 대충 고개를 젓고는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대충 혈교의 잔당은 모조리 토벌된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무면괴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아져 있었다.
평생 자신을 괴롭히던 혈공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도 그렇고 마침내는 혈교의 끝을 봤다는 것이 그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혈교는커녕, 난 죽을 때까지 해남도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거요.”
“이제는 나올 생각인가?”
내 물음에 무면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이제는 더 이상 제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까닭도 없으니.”
무면괴는 그 말과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틈에 그의 뒤편에는 비야와 막후가 시립해 있었다.
둘은 쳐다보기 무섭게 장문인에게 안겨들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마치 아빠와 자식 같군.”
“내 자식들이나 마찬가지지.”
무면괴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곧장 답했다.
“그럼 그쪽은 이제 어쩔 셈이오?”
무면괴는 날 향해 물었다.
내가 결정할 길.
그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금 알아볼 것이 생겼거든. 끝을 볼 때까지 해 봐야지.”
“조금 쉬어도 되지 않겠나?”
무면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군. 잠이라도 잤는가?”
“…….”
그러고 보니 언제 잠을 잤는지조차 모르겠다.
사실은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도 않았다.
걱정이 가득하니, 매사 무슨 일을 해도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사륭회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또 주씨세가기도 했다.
몇 차례 그들의 침입을 막아 내기도 했고 말이다.
“집으로 가야겠군.”
난 귀환을 결정했다.
* * *
촤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허공에 핏물이 수놓아졌다.
검에 깊게 베인 한 사내가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검을 든 사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활짝 웃고 있는 한 사내.
그런 사내를 보며 쓰러진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맹주…….”
“…….”
맹주.
그랬다.
검을 들고 있는 사내는 익히 모두가 알고 있던 사내였다.
“배신이오?”
그리고 쓰러져 있던 사내, 묵야는 허탈한 심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맹주에게서는 그 어떤 답도 들려오질 않았다.
“단주께서…… 이를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으실…….”
“시끄럽군.”
푹―!
맹주는 귀찮다는 듯, 검을 들어 그대로 묵야의 왼쪽 다리를 푹 찍어 버렸다.
엄청난 고통임에도 묵야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맹주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요?”
“내게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묻는 건가? 암살조 조장.”
마침내 맹주가 입을 열었다.
“난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해 왔는데? 너희가 몰랐던 거지.”
젊은 맹주.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기 힘들었기에 많은 장로들이 반대했던 사람이다.
마진혁.
출신 성분조차 불분명하며, 그저 고아라는 것 외에는 밝혀진 사실조차 없다.
그저 신기검단주 주서진의 죽마고우였기에, 그가 맹주직으로 추대했기에 장로들 역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맹주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발단이었다.
맹주가 된 마진혁은 수도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새외를 감시하고 그들의 세력을 줄여야 한다는 핑계로.
그것에는 또 적당한 명분마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기검단은 정천맹에 있을 때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외부에서 보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정천맹은 죽어 갔다.
가장 유일한 견제 수단이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한, 아무도 마진혁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네가 내게 왔다는 것은…… 주서진이 날 찾는다는 뜻이겠구나.”
“……으득.”
묵야가 이를 짓깨물었다.
주서진의 명으로 맹주를 찾긴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맹주가 아니었다.
“넌…… 누구냐.”
묵야의 물음에 맹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검을 치켜들었다.
“난 너희의 주인이다. 필요가 없어진 사냥개를…… 이제는 삶아 버릴 시간이 온 거지.”
써걱―!
맹주의 검이 그대로 묵야의 목을 갈라 버렸다.
예전 자신의 수하를 죽이고도 맹주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그저 귀찮은 벌레 하나 잡은 듯한 그런 표정.
맹주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런 그의 뒤편으로 한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은 맹주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자 저하.”
노인을 내려다보던 맹주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주서진이 혈교주를 잡고 정수를 취했나이다.”
“그렇군.”
모든 것은 그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
맹주는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문득 표정을 굳히고 노인을 돌아보았다.
“한데, 재상. 내가 그대의 외손주를 죽인대도 그대는 끝까지 내게 충성을 고하겠는가?”
“……소인은 언제까지나 황자 저하의 신하일 뿐.”
위험한 말이었다.
황제의 신하가 아닌 황자의 신하란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 뜻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사옵니다.”
노인의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게 숙여졌다.
노인의 눈빛은 이미 죽어 있었다.
이미 그 어떤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