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82
천하제일 시한부 (282)
천하상단.
요즘 강서성에서는 천하상단과 철무방의 이야기로 아주 떠들썩했다.
천하상단은 천하표국을 창설했고, 주씨세가의 여섯 개 각 중, 소호각과 패천각이 그 표국을 지원했다.
철무방은 강서성에 분점을 열고 대대적으로 전문적인 야장과 대장장이들을 보내기 시작했으며, 천하상단은 막대한 자금으로 철광산을 소유한 상단과 거래를 맺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서성에서 대적할 다른 문파나 세가가 없는 이상 주씨세가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고, 그런 주씨세가가 천하상단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니 사람들은 돈 냄새를 맡고 강서성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철광석이 철무방으로 조달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평소 시중에 풀리는 가격보다 더 후하게 쳐준다는 천문길의 포고에 철광산을 소유한 상단들이 일제히 입찰에 달려들었고, 수많은 상단이 그렇게 몰려들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이 낮춰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좋은 품질의 철광석.”
철광석의 품질을 우선으로 생각하라는 서진의 말을 상기한 천문길은 무턱대고 싼 값에 입찰을 시도하는 상단을 가감 없이 쳐냈다.
그러고는 상품의 철광석을 소유한 상단을 기준으로 거래를 맺기 시작했고, 엄청난 양의 철광석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천하상단에서는 낭인시장에도 관여했다.
본래 강서성에는 낭인시장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 낭인들이라 함은 무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진 자라기보다는 돈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당연히 흑련과 무림맹 등, 쟁쟁한 문파가 득시글거리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낭인시장이 만들어질 리 없었다.
수많은 떠돌이 낭인들이 강서성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천문길은 이류에서 일류 이상의 무인들을 제한 없이 뽑기 시작했다.
“좋군.”
상황이 좋게 흘러가니 당연히 나로서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빠른 속도로 자금이 메말라가고는 있었지만, 어차피 금방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사륭회가 접근했다는 증거만 찾으면 된다.
“부르셨습니까?”
때마침 천문길이 방으로 들어섰다.
“요즘 바쁘시겠소?”
“아유, 좋은 일이지요. 사업 규모를 이리 키워 놨으니 하하! 다 소가주님 덕분입니다.”
그야말로 천하상단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계약이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분 좋게 말하는 천문길을 향해 난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가 준비해 온 것을 받을 시간이었다.
“아차! 그렇지요.”
천문길은 황급히 자신의 품을 뒤져 뭉툭하게 포갠 서찰 더미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꽤 많군?”
“예, 소가주님. 하나하나 제가 직접 손으로 적었습니다.”
천문길이 자랑스레 말했다.
그가 내게 준 것은 천하상단과 거래를 하기 위해 접근한 상단들의 명부와 낭인시장에서 뽑은 낭인들의 신상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아직 낭인 쪽은 제대로 정리가 끝나지 않아서, 추후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거기 적힌 건 일차적으로 정리된 내용이고 모든 낭인들이 기재된 것은 아니지요.”
“좋소. 이건 꼭 필요한 것들이라…… 여하간 시장판에서 소문은 좀 어떻소?”
중요한 질문이었다.
내 물음에 천문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벌써 분위기가 이상하지요. 누구보다 정보에 민감한 것이 바로 낭인시장입니다. 당연히 낭인들을 뽑아대고 대량으로 철광석까지 들여오니 난리가 났지 뭡니까?”
“그렇군, 대체로 어떤 소문인가?”
“싸움이 벌어질 것 같다고들은 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무림맹이라는 말도 돌고, 흑련일 것이라는 말도 돌고 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주체는 잡히지 않았다는 뜻이군.”
천문길의 말에 난 혼잣말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은 계속해서 부풀려질 것이다.
흑련이나 무림맹 역시도 경계태세를 갖출 것은 명백했다.
겉보기에는 주씨세가와 흑련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는데, 그 까닭 또한 명백했다.
애초에 장강 이남 지역은 암묵적으로 흑련의 소관이었다.
당연히 강서성 역시도 흑련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 기존 세력들을 모조리 몰아냈으니, 세인들의 눈에 그렇게 비추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떻게 나올까.”
사륭회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까?
세작을 침투시켜 이간질한다?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질이다.
만약 상대도 나를 알고 있다면 절대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수.”
난 천문길에게 받은 서찰 더미를 조심히 매만졌다.
“드러났으나 드러나지 않은 자.”
서찰의 서두에 적혀 있는 단 한 가지 문구.
무림맹과 제일상단의 이름이 가장 먼저 보였다.
* * *
늦은 밤.
난 한 장원의 담을 훌쩍 넘었다.
예전 어릴 때 딱 한 번 와 봤던 곳이었다.
이곳은 바로 중원에서 제일가는 거부가 살고 있는 집.
제일상단의 상단주의 집이었다.
늦은 밤인데도, 장원 내부는 대낮처럼 환했다.
경계를 서고 있는 무사들의 수준도 여느 무가와 같은 삼엄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들 따위가 감히 내 기척을 잡아낼 리는 만무했기에, 난 당당히 가장 안채로 향했다.
“왔는가?”
일부러 기척을 감추지 않았기에, 상대는 내가 왔음을 알고 있었다.
“상단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 또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상대의 말에 답해 주었다.
“들어오게.”
상단주의 허락에 난 그대로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오랜만에 보는군, 신기검단주.”
“예. 한…… 상단주님.”
난 가만히 그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그는 밤늦게까지 서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힐긋 날 한번 올려다보고는 그대로 서책을 덮었다.
“제가 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이쯤 올 것 같긴 했네만, 생각보다 더욱 빨랐네.”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렇다면 거리낄 것이 없다.
바로 본론부터 들어간다.
“사륭회…… 아니. 천지회 소속이십니까?”
“…….”
상단주의 입이 닫혔다.
그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는 감출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화를 도와주신 겁니까? 사륭회를 도우신 겁니까? 아니, 흑화……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글쎄? 눈치는 채지 않았겠나? 그래도 내 딸인데.”
정천맹 흑화궁의 궁주, 한소담.
현재는 구중황이 있는 방산보에 잠시 몸을 의탁한 그녀의 아비, 한천호.
그가 사륭회에 몸담고 있다면 아마도 꽤나 중요한 위치에 올라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사륭회의 자금줄이라 생각했던 변천이 무너졌음에도 그들이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증명이 되니까.
“제일상단의 돈이 사륭회를 유지하기 위해…….”
“후후, 미안하지만 제일상단은 원래부터 사륭회의 것이었네.”
한천호는 내 말을 끊고 마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날 찾아와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네. 어차피 자네도 의심은 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한천호의 물음에 나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을 하고 있었기에, 흑화에게 그리 모진 말을 뱉었었다.
어쩌면 한천호를 직접 베어야 할지도 몰랐기에.
“날 벨 셈인가?”
“고민 중입니다.”
난 가만히 검 자루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한천호의 눈치를 살폈다.
사륭회란 걸 밝히고 의외로 당당하다?
“자네 사람이 죽었잖은가? 날 죽여도 마땅한 명분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한천호는 한술 더 떠서 날 도발하기까지 했다.
“흑화를 정천맹에 보낸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습니까? 어차피 쓰다 버릴 패였으면서?”
“후후, 그렇게 보였다면 아직 자네는 멀었네.”
한천호는 이내 자세를 고치며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뜻이었다.
난 상체를 숙여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 하나를 알려주지. 자네가 아무리 발악해 봐야 이 모든 판을 읽고 있는 자가 우리 사륭회 내부에 있네.”
“…….”
“조금 더 시야를 멀리 가져 보게. 자네가 하는 일을 과연 우리가 모르고 있을까?”
난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한천호가 말하는 대로 내가 만든 판 자체를 읽혔다.
뭐 이것까지는 나도 예상한 바다.
하지만 한천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도 있다.
난 이미 놈들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
“꽤나 재밌는 대화였습니다.”
어쩌면 한천호는 그 거만함 때문에 내게 꽤나 큰 단서 하나를 남겨 준 꼴이 된 셈이었다.
난 그렇게 인사와 함께, 장원을 나섰다.
‘제일상단.’
가장 거대한 상단이었기에,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한천호, 그가 쌓아 놓은 부 자체가 신분패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재밌는 사실도 알아냈다.
‘타고난 장사꾼.’
한천호는 나와 사륭회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제일상단도 무림 쪽과 깊게 연관된 곳은 맞으니까.”
눈치 빠른 한천호가 사륭회의 내부적인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이번 한천호와의 대화에서 그래도 꽤나 많은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사륭회는 내 예상대로 황실과 깊게 연관된 세력이라는 점.
그리고 내부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과 내가 이만큼 눈치챈 것을 사륭회는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 * *
무림맹 역시 난리가 났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강서성에서 꽤나 굵직한 소문들이 퍼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오대세가의 대부분은 주씨세가와 함께하기로 한 것 같소이다.”
무림맹의 장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무당파 해진선인의 말에 화산파의 매화자가 입을 열었다.
“주씨세가가 무턱대고 일을 벌일 리가 없소. 주서진이 그럴 위인도 아니고.”
매화자는 서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화산파의 내부도 서진 때문에 정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경하게 돌변한 제자의 태도는 화산파의 많은 변화의 바람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매화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장로들도 있었다.
“정파가 두 토막이 났소이다. 매화자께서는 개인적인 친분을 이유로 그런 대의는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청성파의 망학진인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발끈해 뭐라 하려던 매화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닫아 버렸다.
굳이 더 입을 열어봐야 싸우는 일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조사단을 파견해 보겠소. 아직 다른 세가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니, 주씨세가로 조사단을 보내 진상을 밝혀 보는 편이 나을 듯하오.”
해진선사의 말이었다.
장로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맹주의 자리가 공석인 지금, 가장 배분이 높은 해진선사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그가 직접 움직이겠다고 했으니, 이견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영웅단에서 스무 명을 차출해 조사단으로 배정하고, 이번에 태극검수 다섯을 따로 뽑아 강서성에 배치할 생각이오.”
“오호, 태극검수를 말씀이십니까?”
무당의 태극검수.
그들은 화산의 매화이십사수처럼 무당이 키워 낸 최고의 기재들이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고작 스무 명으로도 어지간한 문파 하나쯤은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전력이기도 했다.
“주서진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이참에 버릇을 좀 고쳐 놔야 하지 않겠소?”
해진선사의 말에 매화자를 제외한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