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
천하제일 시한부 (7)
밥을 다 먹고 나는 가볍게 집 안을 정리했다.
그리 크지 않은 장원이었고, 또 그동안 제법 치워 왔기에 막상 정리할 것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삐걱.
안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원래 이곳은 아버지가 머물던 방이었다.
아버지는 사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더군다나 원래는 문인 출신으로 젊었을 때는 고위 관직에도 계셨다고 들었었다.
정치 쪽에 환멸을 느껴 낙향 후 이곳 고향 땅에서 새롭게 제자들을 가르치는 낙으로 지내셨다고.
때문에, 무인을 동경하는 둘째 형과 아버지는 참으로 많이 싸웠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첫째 형은 곧이곧대로 아버지 말씀을 잘 듣는 착실한 아들이었고, 나와 둘째 형은 항상이 안채에 불려 와 혼나는 일이 잦았었다.
“음.”
안채는 휑했다.
내가 덮을 수 있는 낡은 이불 빼고는 그 흔한 탁자 하나 없었다.
“원래는 이곳에 병풍이며, 족자도 있었는데.”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진랑이 주었던 주머니를 꺼냈다.
이참에 돈 계산도 해 볼 생각이었다.
“오호…….”
주머니 안에는 전표 뭉치가 제법 들어 있었다.
“이십 년 동안 구른 보람이 있군.”
흐뭇했다.
돈에 대해 딱히 욕심은 없었기에 모아 둔 돈도 없었다.
워낙 정천맹의 월봉이 짜기도 했고 말이다.
“오십만 냥이 조금 넘는군. 흠…….”
오십만 냥이면 금전으로 대충 오천 냥이다.
만약 주씨세가의 장원이 없었다면 대부분 장원 하나를 사는 데 그만한 돈이 들게 된다.
한마디로 서희가 장원을 지켜 준 덕분에 그만한 돈이 굳었다는 뜻도 된다.
“그나저나…… 좀 알아봐야겠는데?”
아무래도 빚이 있다는 상황부터 해결해야 할 듯했다.
만약 정당하게 돈을 빌려서 갚지 못했다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까.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희 옷도 사 주고, 내 옷도 몇 벌 필요하겠는데.”
간단하게 마을을 좀 둘러볼 생각이었다.
* * *
악안은 그래도 꽤 큰 도시다.
남쪽에 백운산, 북쪽에 옥화산 사이에 있는 도시로서 복건성에서 호남성을 가로지르는 중앙에 위치한 도시기도 했다.
“이제 보니…… 마을도 바뀌긴 참 많이 바뀌었구나.”
나는 곧장 번화가로 향했다.
이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마을은 많이 변해 있었다.
못해도 이십 년 전보다 사람도 많이 는 듯했다.
이른 아침이라 다들 장사 준비에 바쁜 모양이었다.
“너무 빨리 왔나.”
대충 번화가를 둘러본 나는 곧바로 마을 동쪽 입구로 향했다.
정천맹에서 이 마을로 올 때 거쳤던 길목이었다.
마을 어귀 사당에 도착한 나는 사당에 세워진 무신상 아래 단상에 가볍게 석 삼 자를 그려 넣었다.
“이럴 때엔 또 개방만 한 곳이 없지.”
내가 개방도를 찾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일단 요즘 시장시세가 어떤지부터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처음 내가 이곳으로 왔을 때 마주쳤던 그 거지 여인.
그녀는 개방의 삼결제자로 이곳 분타를 맡고 있는 분타주였다.
물론 내가 분타를 찾아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위치가 노출되면 수시로 위치를 바꾸는 개방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난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가 날 찾아온 것은 정확히 반 시진이 지난 뒤였다.
“생각보다 금방 연락을 주셨네요, 신기검단주.”
“이제 신기검단주가 아니라니까.”
난 고르고 있던 옷을 계속 골랐다.
그녀는 내 뒤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딱히 부를 만한 호칭이 없기에 그냥 신기검단주로 부르겠습니다. 그럼 자리를 옮길까요?”
“그래.”
나는 골라 둔 옷을 몇 벌 집어 들고 값을 치른 뒤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내 시선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그녀가 날 안내한 곳은 웬 으슥한 무덤가였다.
“이곳이 분타인가?”
“분타의 위치는 사정상 노출할 수 없습니다.”
이윽고 그녀가 뒤를 돌았다.
“제 이름은 초영입니다. 분타주 대신 그렇게 불러 주세요.”
“그러지.”
“자, 그럼 무슨 일로 연락하셨을까요?”
나는 가만히 여인을 바라보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요즘 거지들 생활이 좋아졌나 봐? 깨끗하네?”
개방의 상징은 냄새와 더러움이다.
십만이 넘는 거지들의 집합소로 그들은 기부금도 받지 않고 오로지 구걸과 정보력으로 살아간다.
결국 거지란 소린데, 이 거지 여인의 모습은 무척이나 말끔했다.
“변화했지요. 거지는 어디에나 있으나, 노출되기 너무 쉬웠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사실 전쟁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상대 정보 세력을 먼저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실 수십 년간 벌어진 혈사 때 개방도들이 많이 희생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개방 또한 내부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자, 그럼 절 부르신 연유가 무엇인지 들어 볼까요?”
초영의 말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건 아니고…… 요즘 오십만 냥 정도면 객잔을 열 수 있을까?”
“오십만 냥이 있으십니까?”
초영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객잔을 차리시려 하십니까?”
초영이 재차 물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볍게 동생이랑 정착해 보려고.”
“그렇군요. 뭐, 성도냐 외곽이냐, 유동 인구가 많은 길목이냐 관문이냐 등등 조건에 따라 시세는 천지 차이입니다.”
역시, 초영을 찾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녀는 대번에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상세히 답변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 근처에서 작게 시작해 보려고.”
“악안에서라면…… 번화가에서는 대충 객들 서른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객잔을 인수하는 데 적어도 삼십만 냥은 듭니다. 새로 짓는다면 더 많이 들 거라 생각하구요.”
“생각보다…… 비싸구나.”
보통 주씨세가만 한 장원 하나 정도가 오십만 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수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럼 주씨세가의 장원은 얼마 정도 하지?”
“장원은 왜……?”
초영이 눈을 빛냈다.
초영 입장에서는 이건 또 다른 정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정보 상인 특유의 호기심이 드러나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팔려는 건 아니고, 궁금해서.”
“주씨세가의 장원이라면…… 적어도 악안에서만큼은 족히 백만 냥은 넘게 쳐 줄 수 있습니다만…… 문제가 있지요.”
“문제?”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집문서가 있으십니까?”
“몰라. 동생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있겠지?”
“이상하네요.”
초영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뭔가 곰곰이 생각할 때 나오는 습관 같은 행동인 듯했다.
“주씨세가가 보유했던 전답은 다 싼값에 팔려 갔습니다. 적어도 그게 십 년은 더 되었지요.”
“전답이 없다는 건 알아. 생산 능력이 없으니 세가가 망한 것도 있겠지.”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당시 일결제자였을 때니까…… 그때 주씨세가의 장원도 경매로 나왔었습니다. 제가 아직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뭐?”
이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주씨세가가 경매에 나왔다는 것은 곧 형제들 중 누군가가 장원을 팔려 했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사실 그 말씀을 드리고자, 첫날 대협께 찾아갔던 것도 있었습니다.”
“알아봐 줄 수 있나?”
“누가 장원을 경매장에 내놨는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짜증 났다.
그냥 대충 집이나 한번 둘러보고 다들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훌쩍 떠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일이 계속 꼬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억지로 발목을 붙잡는 느낌?
“알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대협.”
“왜.”
속에서 올라오는 짜증이 나도 모르게 겉으로 표출됐다.
내 짜증스러운 말투에 초영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 봉칠이란 자가 내일 흑호방의 장로인 귀면탈혼과 접촉한다 합니다.”
초영은 이미 내가 무얼 했는지 알고 있었다.
애초에 나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으니, 개방이 아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말이다.
그래도 경고는 해야 했다.
“내 뒤를 캐지 말라 했을 텐데?”
“그것이 아닙니다. 흑호방의 동태는 개방의 눈으로 감시 중이었습니다.”
초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삼류 방파와 삼류 왈패가 만나서 하겠다는 것이 뭔데?”
“…….”
내 말에 초영이 살짝 입을 가리고 웃었다.
“대협께선 그리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악안에서 흑호방의 위치는 상당한 편입니다. 흑호방의 개입으로 인해 주씨세가가 멸문지화를 당했으니까요.”
“그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주씨세가는 악안의 터줏대감이다. 아니, 그랬었다.
그리고 흑호방은 그런 주씨세가에 비하면 신흥 방파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무림에서 신흥 문파가 기존의 터줏대감 격인 문파를 치우고 새로 강자로 등극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복수는 자유기에, 나는 그런 흑호방을 탓할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흑호방은 아예 주씨세가를 노리고 자리를 잡았다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야? 좀 쉽게 말해 봐.”
“아시다시피 장강 이남은 흑련의 입김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곳입니다.”
초영의 말대로였다.
무림은 정확히 장강을 기준으로 강북 무림과 강남 무림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주로 무림맹이 있는 강북 무림은 정파의 영역이었고, 흑련이 있는 강남 무림은 사파의 영역이었다.
이곳 악안 역시 장강 이남에 위치하고 있어 사파의 입김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었다.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흑호방이 단순히 악안에서만 만족할 것 같진 않습니다. 그 일환으로 주씨세가를 몰락시켰다라고 저희 개방은 생각한다는 겁니다. 대협.”
그거야 당연한 말이다.
문파가 영역을 넓히고자 했을 때는 막힐 때까지 최대한 크게 넓혀 보는 것이 마땅한 이치 아니겠는가?
하지만 초영의 말에서는 중요한 것이 빠졌다.
아무래도 정보를 다루다 보니,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긴 할 터.
“하, 단순히 요즘 시장 시세나 알아보려 했더니 기어코 이렇게 되는구나.”
속이 거북했다.
그냥 이제는 무슨 소속이고를 떠나서 좀 편하게 살고 싶었다.
어차피 살날도 오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또다시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왜 자꾸 뒷말을 흐려.”
난 초영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는 내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섰다.
“흑련이냐?”
“…….”
역시나, 답은 없었다.
하지만 맞을 것이다.
분명 귀면탈혼의 말로도 흑호방의 방주가 흑련의 고위 간부를 접대한다고 얘기했었다.
“확실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함부로 떠들 수 없습니다.”
초영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다만 흑호방 얘기를 꺼낸 것은…… 주씨세가의 장원이 매물로 나왔을 때, 이상하게 흑호방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작 주씨세가를 멸문시킨 건 흑호방인데, 그런 흑호방이 가만히 있었지요.”
“음.”
보통 문파끼리 서로 영역을 두고 다투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돈이다.
상대방의 문파를 무너뜨리고 무사들을 흡수하며, 그 문파가 가지고 있던 생산 능력과 보급로를 통째로 흡수하는 것.
그렇다면 흑호방이 주씨세가를 멸문시켰으니, 장원 역시 그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맞았다.
그래야만 그간 서로 간의 전쟁에서 발생한 피해를 메꾸는 일이 될 테니까.
“분명 주씨세가의 장원이 헐값에 나왔었을 거고, 그걸 사서 되팔기만 해도 흑호방은 충분히 손해를 메꾸고도 남았을 텐데.”
내 말에 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초영이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집어삼켰다.
“개방에서는 주씨세가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겉으로 알려지면 안 되는 무언가, 시끄러워지면 안 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겉으로 알려지면 안 된다라…….”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나, 세상은 날 한시도 가만두질 않는다.
“큭큭, 웃기네. 주씨세가의 영역에서 무슨 몇백 년 전 검마의 장보도라도 발견되었다는 건…….”
“…….”
가볍게 농담조로 말하다 말고 우연히 초영의 얼굴을 봤다.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발……. 정말이냐?”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저희 태상방주님께선.”
초영이 말과 함께, 자신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허, 이것 봐라.”
그녀는 일개 분타주가 아니었다.
그녀의 양 팔목에 묶여 있는 매듭이 도합 여섯 개다.
초영의 속저고리에 매달린 매듭 세 개까지 합하면 도합 아홉 개.
“후개였냐?”
초영은 일개 분타주가 아니라, 차기 개방을 이끌 후개였다.
십만 개방도를 이끌 후개가 나설 만큼 중한 일.
그것이 지금 악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