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2
천하제일 시한부 (72)
“명령이라…….”
막금이 한껏 조소를 베어 물며 이죽거렸다.
“식구들을 지킬 수나 있느냐? 그깟 어쭙잖은 힘을 가졌다고 모두를 건사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럴 만한 힘…… 가지고 있습니다.”
내 말에 막금의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하냐? 정천맹의 신기검단주? 그깟 오성 흑련주를 이겼다는 그 힘? 남궁세가주와 남궁일검 남궁진천을 꺾은 그 보잘것없는 힘?”
“…….”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뭐지?’
먹쇠 아재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당신…… 뭐야?”
“끌끌, 천하제일검이니 뭐니 주변에서 떠들어대 주니까 정말 뭐라도 된 양 으스대는 꼴이라니.”
먹쇠 아재의 말에 얼굴 근육이 경직되는 듯했다.
“내가 움직이면 주씨세가는 또 멸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쯤에서 멈추거라. 아니면 그냥 지금까지 했던 대로만. 그렇게만 하거라.”
절대 나서지 말고라는 뒷말을 삼키며 먹쇠 아재가 돌아섰다.
점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대체 누구지?
이자는 내가 알던 그 먹쇠 아재가 맞는 건가?
아니, 그 전에 나에 대해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고?
“당신 누구냐고.”
“그만 가래도.”
먹쇠 아재의 반응은 차가웠다.
난 어쩔 수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말을 꺼내 봐야 머리만 터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먹쇠 아재는, 주씨세가가 멸문한 까닭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이건…… 상황 정리가 필요했다.
* * *
“끌끌끌.”
먹쇠 아재의 뒤편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노인이 술병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가차 없구만.”
“아직 애송이가 세상모르고 날뛰는 꼴을 보자니, 내 선배로서 훈계 한마디 해 준 셈이네.”
먹쇠 아재는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도 불쌍하지 않은가? 아등바등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하는 꼴이.”
“주군께서는 우리보고 숨죽여 살라 했네. 혹여라도 허튼 생각을 하고 있는가?”
“끌끌, 웬걸? 재미는 있어 보이네만, 나설 생각은 없으니.”
술병을 든 노인의 말에 먹쇠 아재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서지 말게. 자네가 이미 서진, 저 아이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을 알고 있네.”
“끌끌, 역시 무진자의 눈은 속이기가 힘들단 말이지.”
술병을 든 노인의 말에 먹쇠 아재가 무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 말……!”
“무진자.”
노인이 표정을 굳혔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낡은 검이 들썩였다.
“막내 공자가 아직 덜 큰 것은 인정하네만, 너무 애 취급은 하지 말게.”
“그건 무슨 소리인가.”
먹쇠 아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노인이 마저 입을 열었다.
“나조차도 막내…… 아니 서진 공자가 숨긴 것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질 않으니.”
“숨겼다고? 뭘?”
“무진자의 눈으로도 찾기 힘들 테지. 검은 꽃을 피웠으니.”
알 수 없는 말이 오고 갔다.
하지만 둘은 어렵지 않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분은 검은 꽃이 재능이 없는 자에게 피어나는 것이라 알고 계시네. 하지만……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화륵!
노인의 손끝에서 찬란한 불꽃이 일었다.
눈부신 광채를 머금은 불꽃은 이내 붉은 꽃으로 봉오리를 활짝 개화시켰다.
“검은 꽃은 반대로…… 늦게 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만약 ‘그분’의 말이 틀렸다면.
그래서 서진의 개화가 늦은 거라면.
그래서…… 개화가 되었다면.
“어쩌면…… 희망을 가져 볼 수도.”
이 뒤틀린 무림에 한 줄기 희망이 깃들었을 수도 있었다.
서진이란 이름의 희망이.
* * *
쾅!
주씨세가의 후원이 들썩였다.
“대체 무슨…….”
주변에서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난 다시금 주먹을 들어 앞에 보이는 석판을 힘껏 후려갈겼다.
쩌정!
단단한 석판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이 분노를 어디 풀 데가 없었다.
흑련주나 귀면탈혼, 형과 서희조차도 나를 말리지 못했다.
“대체 뭐지?”
먹쇠 아재.
그리고 사륭회.
거기에 세가의 멸문까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십 년간 전장을 구르면서 무림에 나름 이름난 명숙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래 내 무공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천마, 천무혁도 죽였고 새외 세력을 모조리 잠재웠다.
혈마가 일으킨 혈사도 종식시켰고, 미쳐 날뛰는 광마도 잡아 죽였다.
사도쟁패를 빌미로 무림을 뒤엎으려는 전 흑련주를 죽였으며 수도 없이 일어나는 혈사를 모조리 잠재웠다.
그럼에도.
“내 가문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했구나.”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저 세가만 우뚝 세워 놓으면 끝일 거라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서희만 행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세가를 세우면 뭐하겠는가.
사륭회가 뭐 하는 놈들인지, 그놈들은 왜 주씨가문을 노렸는지.
또한 먹쇠 아재는 왜 가문의 재건을 그리도 만류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그냥 훌쩍 떠날걸.
이리 연을 만들지 않고 그냥 가버릴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이 답답한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잠시 얘기 좀 하자꾸나.”
그런 내게 형이 조용히 다가왔다.
난 날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형의 말을 기다렸다.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는 몰라도 네가 흔들리면 가문이 흔들린다.”
“…….”
“나야 무늬만 가주가 아니겠느냐? 가장 중요한 네가 없으면…… 가문도 흔들리는 게야.”
형이 주변을 둘러보라며 손짓했다.
“봉칠, 아지, 흑련주와 초영, 광흑과 서희…… 그리고 나와 네 형수, 조카들까지.”
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에 모였다. 그런 네가 이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다 같이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형.”
난 가만히 형을 불렀다.
나와 형은 말없이 서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복형제.
아버지는 같으나 서로 어머니가 다르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지?”
내 뜬금없는 물음에 형은 가만히 생각을 더듬다 이내 입을 열었다.
“자식은 안중에도 없는 분이셨지. 자식이 무엇인가. 어머님들께도 소홀하셨던 분이시지. 어쩌면…… 가주도 아버지로서도 다 실패하셨던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머니…….”
내 어머니.
이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죽어 간, 내 어머니.
마지막 목매달린 그 꼴을 보며 울었을 때, 나타났던 그 할아버지도.
어쩌면, 정말이지 어쩌면.
‘이 모든 걸 조장한 거라면.’
그 당시를 기점으로 난 전장에 투입됐고 정천맹이란 세상에 다시없을 걸출한 집단을 만들어 냈다.
가장 수가 적으나, 가장 단단하고 강력한 무력 단체.
이십 년간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무림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그 말은 곧.
무림에 그만큼 많은 싸움이 벌어졌단 뜻이기도 했다.
“형이 아버지라면 이 상황에 무얼 했을까?”
“내가 아버지라면?”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멀쩡한 상태였을 때의 아버지라면 아마 우리보다 더욱 나은 방향을 택하지 않았을까? 가령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싸우지 않고 승리한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형이나 나는 아버지의 두뇌를 따라갈 수가 없다.
황궁에서 고위 관료직까지 하셨던 아버지의 두뇌를 어찌 따라간단 말인가.
“아버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걸 하셨다는 뜻이지.”
“그렇지. 아버지께서 세가 운영도 엄청 잘하셨었다고 평판이 좋더라고.”
“그렇지.”
그건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기억하는 몇몇 장사치들에게선 아버지에 대한 좋은 평밖에 없었으니까.
“어쨌든…… 아버지께선 본인이 가장 잘 하는 것을 했을 거라는 거지.”
“그렇지.”
그렇다면 나 또한.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머리 쓰는 것?
못한다.
이미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자가 즐비하다.
“그럼 다 싸워 줘야지.”
그래, 난 싸우는 것이 좋다.
아니 좋은 것이 아니라 사건 해결에 있어서 가장 편한 수단 중 하나였다.
‘사륭회를 소탕한다.’
가문을 노리는, 또한 한 번 멸문시켰던 그놈들을 박멸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살아있을 때 해야 할 마지막 숙제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숨어 버린 그들을 다시금 세상으로 끄집어내야 했다.
“형.”
난 조용히 형을 불렀다.
형과 눈을 마주했다.
“서둘러야겠어.”
그들을 나오게 만들려면 먼저 악안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피를 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 * *
하루가 그냥 뚝딱 지나갔다.
어제 하루 종일 몸을 풀었더니, 오늘은 제법 머리가 돌아간다.
먹쇠 아재의 말을 떠올리며 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사륭회를 반드시 부셔 버린다.”
그들이 또 한 번 가문을 노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까.
그렇게 난 눈을 뜨기 무섭게 자리를 벗어났다.
소호문의 대답을 기다리다가는 내가 먼저 답답함에 죽을 것 같았다.
“주씨세가에서 왔다. 문 열어.”
내 말에 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이내 문을 열어 줬다.
아무래도 구승이 뭔가 언질을 해 둔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구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주, 여긴 무슨 일로…….”
구승의 뒤편, 전각은 시끄러웠다.
아무래도 꽤 많은 이들이 모인 것 같았다.
“아, 악안 문파들 회합이 있었어. 지금 안 그래도 얘기 중…….”
“열어.”
난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그대로 안채로 향했다.
구승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날 만류했다.
“지금 이런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만 나게 돼. 소호문주는 다 설득했는데 다른 문파들…….”
“다른 문파들 생각해 줄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 급해졌다고. 내가.”
벌컥!
난 말과 함께, 문을 열어젖혔다.
역시나 안에는 거한 술상과 함께, 악안에서 꽤 이름난 문파들의 문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쪽을 향했다.
“누구…….”
“이게 웬 무례냐!”
문주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난 그 말을 싹 무시하며, 그들의 술상 위에 있던 술을 한잔 따라 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는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나 주씨세가의 주서진이라 한다.”
“주씨세가…….”
“크흠, 주씨세가에서 여긴 무슨 일로…… 큼.”
모두가 불편한 신색을 드러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삼 일 준다.”
“…….”
그들은 무슨 영문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가 결정할 수 있는, 또한 내가 참을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다. 삼일.”
“삼 일…… 혹 주씨세가가 제시했던…….”
“맞다. 근데 내용은 좀 달라.”
난 망설임 없이 다음 말을 꺼냈다.
“너희와 공평하게, 수평 구조로 갈 생각이 없어졌다. 오로지 내 밑으로 들어와. 수호 가문으로 남거나 아니면 멸문하거나.”
“…….”
내 말에 내부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문주들은 자신들이 잘못 들었나 싶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글렀소! 당장 나갑시다!”
“너희 주씨세가는 절대 악안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에라이, 카악!!”
당연한 반응이다.
예상한 반응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소호문주만이 인상만 찌푸릴 뿐 별다른 반응이 나오질 않았다.
문주들은 저마다 나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쾅!
하지만 난 그들보다 앞서 문을 막아섰다.
“못 나간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오직 무릎을 꿇은 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