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3
천하제일 시한부 (73)
챙! 챙!
문주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잠깐! 그만두세요.”
그런 문주들을 구승이 얼른 달려와 말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은 너무 무례합니다. 서진 공자.”
구승의 말투가 달라졌다.
그녀가 문주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원래 저렇게 공격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들 조금만 참으시고 앉아 보시지요.”
“크흠, 내 원…….”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무슨 세가를 운영한다고, 쯧.”
문주들은 저마다 콧방귀를 껴 댔다.
쩌엉!
난 방금 그런 반응을 비춘 문주의 면상에 일 권을 꽂아 넣었다.
“무림에는 원래 힘 있는 자의 말을 듣는 것이 법도가 아니던가?”
“…….”
분위기가 달라졌다.
구승은 다라진 내 분위기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서성였다.
“탁상공론만 하다가 시기를 놓친다. 주씨세가는 지금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다.”
“…….”
문주들이 침묵했다.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이제야 감지한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해 주셔야죠. 공자님.”
구승이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난 짜증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 필요 없고, 예전 주씨세가가 몰락한 데에 일조하거나 혹은 몰락한 이후 주씨세가의 재산의 터럭만큼이라도 손을 댄 문파가 있다면.”
“…….”
“오늘 여기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오로지 주씨세가 밑으로 기어들어 오는 것뿐.”
문주들은 별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들 모두가 주씨세가의 몰락을 방조한 공범들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뭐 문파의 몰락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다시 재건하는 문파가 예전 권리를 되찾겠다는데 그것 역시 잘못됐네, 어쨌네 따질 일도 아니었다.
“이보시오, 서진 공자.”
그동안 가만히 앉아 있던 소호문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내 표정을 빤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궁금한 것을 꺼내 물었다.
“본래 수직 구도의 상하 관계를 만들려면 그에 맞는 충분한 설명이 되어야 하오. 이를테면 우리를 이끌 주씨세가가 그만한 힘이 있다든가 하는 것 말이오.”
“마, 맞소. 듣자 하니 흑호방이 뒤를 봐 주는 것 말고는 뭐, 없는 것 같은데…….”
소호문주의 발언에 용기를 얻은 다른 문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보태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무례를 보인다면 좋게 생각하려 해도 안 좋게밖에 보이지 않겠소?”
“젊은 혈기는 인정하는 바이나, 때론…….”
난 귀찮다는 듯 그들을 향해 손짓하며 말을 끊었다.
“난 훈수 따위나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좋아, 소호문주의 말에는 답변해 주지.”
이내 난 그와 눈을 마주했다.
“상응하는 힘. 보여 주려면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 우리와 싸우고 싶다면 언제든 덤벼도 좋아. 하지만…… 그때에는 이미 너희 문파를 걸어 놓고 싸워야 할 거야.”
“우리 소호문도 그리 약한 문파가 아니오. 조금 과격한 발언 같소이다.”
“너희 악안의 문파들은 싸워 본 적 없지?”
난 문주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한껏 조소를 베어 물었다.
“문파전도 해 본 적 없을 거고, 맨날 이렇게 탁상에 앉아 술이나 퍼마시고 서로 대화나 나누면서 그런 좁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악안의 수호자라도 되는 마냥.”
신랄한 비꼼이었다.
문주들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러는 주씨세가는 뭐, 그런 전투를 경험한 적이 있소? 악안은 여태껏 싸움 한 번 난 적 없이 평화로웠거늘…….”
“그러니까.”
문주들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험도 없이 으스대고 있는 거잖아. 적어도 난…… 너희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 봤으니까.”
“…….”
“못 믿겠으면 덤비라고. 지금 여기서 당장.”
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렇게까지 도발하는데도 문주들은 감히 나서지도 못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실망적이었다.
‘이들과 함께할 수는 없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모름지기 한 문파를 이끄는 문주의 입장이라면, 이렇게까지 모욕을 받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 저녁까지 생각 정리해서 주씨세가로 직접 와라. 너희와 연이 닿는 문파의 문주들에게도 전해. 오늘 자정 이후로 주씨세가에 오지 않는 문파들은 싹 다 죽는다.”
차갑게 일갈한 뒤 돌아섰다.
내가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 그 어떤 제지도 없었다.
아마 악안의 문주들은 이런 상황 자체를 처음 겪어 봤을 것이다.
그렇게 난 빠르게 장원으로 돌아왔다.
* * *
본래는 이렇게까지 급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세가를 키울 생각이었다.
천천히, 또한 차근차근.
하지만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가 걸리고, 그 하나를 해결하면 또 뭔가가 생겨 버린다.
지금이 딱 그랬다.
‘특히 먹쇠 아재.’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사람이 바로 먹쇠 아재다.
전에 서희랑 만났을 때도 의뭉스럽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왜?’
대체 왜?
세가는 지금 기초를 다지고 있다.
생산 시설을 갖추기만 한다면 성장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물론 주변 문파들의 협조가 필요했겠지만, 이미 그들과 싸울 각오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먹쇠 아재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아예 바뀌어 버렸다.
언제 뒤질지도 모르는데 너무 느긋했다는 것을.
심지어 사륭회의 흔적조차 잡지 못했다.
그들이 다시 세가를 노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난 생각을 정리하며 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무사들을 모조리 소집했다.
“흠.”
무사들이 앞마당에 모조리 모였다.
무사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내 눈치를 살폈다.
질서정연하게 도열하는 무사들을 보며 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병장기를 점검해라. 무구가 없는 이들은 따로 추려 급한 대로 사 오는 걸로 하고.”
뜬금없는 말에 순식간에 무사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디 치러 갑니까?”
아지는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몸을 풀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우리가 막는 거다.”
사실상 주씨세가의 무사들은 그 수가 현저하게 적다.
아마도 악안에서 주씨세가보다 무사들을 적게 보유한 곳은 없을 것이다.
“흑호방에서도 차출하겠습니다.”
뒤에 서 있던 청운이 입을 열었다.
수가 가장 적지만 흑호방이 개입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얼마나 차출할 수 있지?”
“경계를 나간 인원과 경비를 위한 인원을 제한다면 백오십 정도는 차출할 수 있습니다.”
청운의 말에 난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도합 이백이 조금 넘는 숫자를 보유하게 된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소호문을 비롯해, 악안의 문파들과 문파전을 치룰 생각이다.”
“문파전?”
무사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문파전의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악안 전체라면, 악안에 있는 문파들과 모두 싸우는 겁니까?”
무사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맞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이 될까요?”
무사의 질문에 이번에는 아지가 눈을 부라렸다.
“이 새끼가! 당연히 되고 말고!”
아지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뭐 단순하기로 치면, 흑련주와 비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싸움이 되고 말고는 상관없다. 그냥 너희는 최선을 다해 싸워 주면 된다.”
내 말에 무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거쳐 가야 할 관문이었다. 우리가 본래 가졌어야 할 모든 권리를 이번 싸움에서 되찾아 올 생각이다.”
객잔과 주루, 상점들과 각종 판매권, 그리고 전답들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이권이 걸려 있다.
“재밌겠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앞으로 쓱 나섰다.
흑색 장포와 함께, 얇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인물.
흑련주였다.
“너도 싸우게?”
내 물음에 흑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련주의 등장에 귀면탈혼이 주춤거렸다.
무언가 불길한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동종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보다 기운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누구……?”
귀면탈혼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귀면탈혼은 훈련을 나가 있어 흑련주를 보지 못했다.
여기 있는 무사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너희 훈련을 도와줄 훈련대장이다. 또한 북궁설의 호위기도 하고.”
내 말에 흑련주가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그러고는 날 향해 입을 옴짝거렸다.
―북궁설? 호위?
―아, 내가 말 안 했구나. 미안.
어후, 요 며칠 너무 많은 생각에 바빴다.
―나중에 차근히 알려 줄 테니. 일단 집중하라고.
내 말에 흑련주는 입을 툭 내밀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든 흑련주가 나서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다.
싸움이 매우 싱거워질 것도 같았다.
오성급 고수의 참전은 전투의 판도 자체를 바꿔 버리게 되니까.
하지만 여기 모두가 검을 차고 전투에 참전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이 있었다.
“봉칠.”
“예, 단주님.”
내 부름에 봉칠이 고개를 조아렸다.
요즘 귀면탈혼과 초영에게 교육을 좀 받더니, 나름 예절이 몸에 밴 듯했다.
‘이제야 무사다운 티가 좀 나네.’
삼류 왈패에서 정식 무사로.
나름 흡족한 결과다.
난 이내 표정을 굳히고 봉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넌 신기단 애들 데리고 가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난 봉칠을 손짓으로 가까이 불렀다.
그러고는 그에게 귓속말로 따로 지시를 내렸다.
봉칠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내가 봉칠에게 내린 지시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각 문파들이 가지고 있는 거래 장부와 주요 문서들을 훔쳐 오는 것.
사실 보통 문파전이라면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안의 문파들은 이런 싸움이 아예 처음일 것이다.
적어도 초영에게 듣기로는 수십 년간 악안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조차 없었다고 들었다.
이런 식의 싸움 자체가,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쉽게 뚫릴 것이라 난 자신했다.
난 무사들을 각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아직 검진을 배우지 않은 무사들이다 보니, 최대한 효율적인 장소에서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게끔 배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도 어차피 주 전력은 흑련주와 내가 될 테지만.
“대충 정비는 끝났습니다.”
대략 한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출 수 있었다.
“흠.”
난 그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식이면 발전도 너무 더디다.
빠르게 무사들을 성장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검진만 한 것이 없긴 했다.
“진법이라면…….”
진법을 떠올리기 무섭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인물 하나가 있다.
아무래도 조만간 그녀를 찾아가야 할 듯했다.
“단주님, 잠시 얘기 좀 하시지요.”
그때 초영이 무거운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난 가만히 초영의 뒤를 따랐다.
후원 한적한 구석에 도착해서야 초영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지금 제정신이신지요? 이 정도면 소문을 내 달라는 것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숨겨도 모자랄 판에 악안에 있는 문파들에게 모두 선전포고를 하셨다고요?”
“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날 윽박지르는 초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왜, 왜 그러시죠?”
초영이 당황한 채 앞을 가리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나 지금 머릿속이 진짜 복잡하거든? ×발, 어떻게 된 게 세가를 재건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야.”
“…….”
“내 주변에 있던…… 평소 알고 있던 사람들이 내가 알고 있던 그런 사람들이 아닌 것 같거든? 그러니까…… 너도 뭔가 비밀을 갖고 있거든. 내게 말해 줄 생각이 없으면 그냥 떠나도 좋아.”
내 말에 초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내게 털어놓던지, 아니면 그냥 떠나. 그게 아니라면 나도 네게 내 생각을 전해 줄 수가 없을 테니.”
이내 초영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뭔가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