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75
천하제일 시한부 (75)
“새까마네.”
난 가만히 전각 지붕 위로 올라서 주변을 살폈다.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었다.
섬서 연합이 쳐들어왔을 때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공격하진 않았었다.
“제가 왜 정보 통제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초영의 말에 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로 난리를 피워 대는데 소문이 퍼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어떻게 공격할 것 같아?”
“음, 제 생각에는 정면으로 들이 받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숫자가 저희의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다 보니, 단숨에 기선을 제압하는 편이 저쪽으로서도 편할 듯한데요.”
초영의 말이 어느 정도 맞긴 했다.
사실 무림에서의 싸움은 숫자가 별 의미가 없다.
절대고수 하나면 어지간한 이류, 일류급의 무사들은 우후죽순 썰려 나가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역시 소호문주가 대빵이네.”
난 가장 선두에 늠름하게 서 있는 사내를 보며 눈을 빛냈다.
무공도 문주들 중에서는 가장 고강했고, 또한 가장 젊었다.
“나 같았으면 좀 상황을 재 보고 시작했을 건데.”
다만, 그 판단력이 조금 아쉽다.
내가 그토록 대놓고 모습을 드러냈다면, 충분히 우리 쪽에 조사할 시간을 가지고 시간을 벌 궁리를 했어야 마땅한데.
이건 뭐, 시비를 걸었으니 응당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할 차례다! 하면서 덤비는 꼴밖에 더 되지 않은가.
“저 문파들을 본 주씨세가가 통합하게 되면 얻게 되는 수익은?”
“다섯 개 문파 중 두 개 문파는 매달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남은 세 개의 문파에서 나오는 흑자로 메꿀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약한 편입니다.”
“그럼 소호문은?”
“예전 흑호방만큼의 자금원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지금처럼 덩치를 줄인 흑호방이 아니라, 전성기 때의 흑호방…….”
“음.”
난 가만히 초영의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
‘저 무사들을 모조리 먹이고 입힐 수는 없어.’
소위 명문이라 일컫는 문파들은 정기적으로 기부도 받고, 오랜 시간 그 지역의 패자로 군림한 덕택에 자금원 자체가 튼튼하다.
하지만 악안은 그럴 만한 문파가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악안 자체는 문화의 도시인지라 다른 생산수단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저기 사천에서는 철광산이 터져 나오고, 호남 땅에는 기름진 곡창지대가 즐비한데 이곳은 그런 것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쟤네 뺏어 봐야 그렇게 큰 이득은 없다는 말이지?”
“그건 조금 다릅니다.”
초영이 고개를 저었다.
“현재 수준의 무사단을 유지할 거라면 오히려 돈이 남아돌 수도 있습니다. 차고 넘치지요. 하지만 만약 저기 있는 무사들까지 다 흡수한다고 생각하면…….”
“어휴, 그럴 생각 없어.”
난 단칼에 초영의 말을 잘랐다.
어차피 저들 무사들 따위 뭘 할지 내 알 바가 아니다.
생업으로 돌아가든 다른 문파를 찾던 지들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
“쓸 만한 놈들만 흡수하자고. 자, 그럼…….”
이내 저쪽 진영에서 불이 확 하고 밝혀졌다.
자신들이 왔음을 당당히 알린 것이다.
“주씨세가주는 우리 악안의 문파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마치 들으란 듯 큰소리로 사자후를 터트린 소호문주가 정면으로 나섰다.
그의 뒤편으로 다섯 개 문파의 문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옛정을 생각해 가만 놔두려 했으나, 계속해서 본 문파를 비롯해 악안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바! 우리 소호문과 다섯 문파는 주씨세가를…….”
“거 참, 말 많네.”
난 귀를 후비며 지붕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정문 앞에 내려선 나는 소호문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거 요즘 시대에는 너무 고리타분해.”
나는 손짓으로 귀찮다는 듯 휘휘 저었다.
“세상을 너무 흑과 백으로만 보지 마. 협과 의를 숭상한다 어쩐다…… 신물 나잖아?”
난 피식 웃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냥 돈. 돈 때문에 싸우는 거야, 우리는.”
“…….”
소호문주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없이 자신의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개전!”
가타부타 말은 필요 없었다.
개전 한마디에 무사들이 개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정말 정면 돌파를 시도할 생각인 듯했다.
“아, 담벼락 비싼 걸로 맞춘 건데.”
난 저들보다 저들과 싸우면서 다칠(?) 담벼락들이 걱정이었다.
그 낡은 것들을 헐고 새 걸로 다 맞춰 놨는데…… 제기랄.
“월하무.”
차갑게 솟아오른 전하결의 기운.
이내 전신을 감싸 도는 기운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단 한 번 주천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혈맥을 순환하는 내기가 이내 세맥까지 얕게 퍼져 전신을 단단하게 받쳐 주었다.
“후욱!”
짙은 내기를 실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진천괴뢰.’
꽈릉!
머리통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파르르 떨렸다.
‘이것도 빙정의 효과인가?’
처음 겪은 현상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단 한 번의 운기만으로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우와아!”
“본때를 보여 주자고!”
소호문을 비롯한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텁!
이내 내 뒤로 흑련주가 조용히 내려섰다.
“너무 많은데요? 어떡하죠?”
“뭘 어떡해?”
난 가볍게 호흡을 다스리며, 상황을 주시했다.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저 오합지졸들.
“쓸어 버려. 마음껏.”
“다 죽여도 되나요?”
흑련주가 흰 이를 드러내며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무 죽이진 말고.”
난 피식 웃으며 이내 내기를 줄기차게 뽑아냈다.
단전에서 일식호흡의 인도대로 뻗어 나온 내기가 두 다리에 단단히 고정됐다.
‘섬보.’
투쾅!
눈을 멀게 할 찬란한 섬광과 함께, 몸이 그대로 달려드는 무사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검진조차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오합지졸들.
그들의 진영 자체를 괴멸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쩌정! 쩡!
나와 몸을 부딪친 무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때를 같이해 흑련주 역시 내 뒤를 따라 적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으득!
저 멀리 이를 악문 소호문주와 문주들의 모습이 보였다.
‘답답할 테지.’
난 그들을 보며 조소를 베어 물었다.
천칠백이 넘는 무사들을 단둘이서 막는다.
저들은 나와 흑련주 근처에 다가서지도 못했다.
스릉!
이내 흑련주가 검을 뽑아 들었다.
스산한 살기를 머금은 검이 검붉은 기운을 흩뿌렸다.
“거, 검기!!”
“검기다!”
“고수다! 주씨세가에 고수가 있다!”
촤악!
피가 튀었다.
흑련주가 휘두른 단 한 번의 검격에 휘말린 무사들 스물이 순식간에 목이 잘려 나동그라졌다.
전장을 압도하는 절대의 무력.
흑련주는 마치 보란 듯 짙고 어두운 기운을 여실히 드러냈다.
찰나간에 무사들 오십이 더 죽어 나갔다.
“이놈!”
마침내 참지 못한 소호문주가 검을 뽑아 들고 흑련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위험하오!”
이내 다른 문주들도 소호문주의 뒤를 따라 함께 몸을 날렸다.
문주들의 협공을 받게 된 상황이었지만, 흑련주는 오히려 즐기는 듯이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역시!”
그녀는 생각했다.
역시 서진이랑 있으면 매사가 즐겁다고.
“미친년.”
난 싸우면서 처 웃고 있는 흑련주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쿵!
그러고는 다시금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멍청해.’
차라리 섬서 연합 쪽이 머리는 더 잘 굴렸다.
살수들로 여지없이 후방을 뒤흔들어 놨었으니까.
정보력의 부재가 가져온 최대의 오판이었다.
다시금 나는 싸우면서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투닥! 턱! 쩌엉!
선두에 달려드는 무사의 면상을 후려갈긴 나는 주먹을 털며 그대로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나와 흑련주가 저들의 진영을 헤집어 놓을수록 무사들 역시 우리 뒤를 쫓는 형국이 되었다.
“지금인가?”
씩.
그들을 보며 난 살기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때가 되었다.
번쩍!
난 높이 손을 치켜들고 내기를 가득 담아 일갈을 내질렀다.
“개전!”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내 신호를 받은 신검단의 무사들이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진! 발(發)!”
피슝! 퓽!
귀를 가득 메운 파공성.
동시에 하늘을 가린 백여 개의 화살들까지.
뒤를 고스란히 노출시킨 타문파의 무사들은 속절없이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이진!”
중앙에 서 있던 아지가 번쩍 검을 치켜들었다.
보통 한 번 더 화살을 쏠 법했지만, 여기서는 소용이 없었다.
이미 등장만으로 이젠 저들도 다음 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과 같은 효과를 보기 힘들었다.
“출!”
파밧! 파바밧!
신검단의 무사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마치 날랜 한 마리 맹수처럼 그들은 우왕좌왕하는 악안문파의 무사들을 가차 없이 덮쳐 버렸다.
서걱! 촤악!
“끄윽!”
“어, 언제…….”
저마다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무사들.
신검단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를 베면 그대로 전진만을 반복하며 마주치는 모든 적들의 목을 그대로 그어 버렸다.
‘네가 가르칠 것은 하나다.’
난 과거 귀면탈혼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일격일살. 전진보와 함께, 혼을 실은 일격. 그것만 가르친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사지에 접어든 무사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극한으로 뿜어낸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이 뜨거운 전장에서 무사들의 사기가 고양되었다.
감정이 가라앉고, 머리가 차분히 식어 갔다.
“삼진!”
아지의 목소리와 함께, 이진으로 나섰던 신검단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파바밧! 파밧!
담벼락을 차고 나온 제 삼진의 신검단이 허리를 숙인 이진의 무사들을 밟고 도약했다.
터덥! 턱!
순식간에 전장의 한복판에 떨어진 삼진의 신검단 무사들은 그대로 돌아서 무차별적으로 적들을 베어 버렸다.
“후후, 귀면탈혼. 제법 잘했는데?”
만족스러웠다.
비록 기존 무양문의 무사들은 아직 서투른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 틈에 섞인 기존 삼거리파와 악소패 무사들의 영향으로 천천히 감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이따위 전술이…….”
한창 싸우다 말고 문주들이 입을 떡 벌렸다.
전황의 양상이 완벽히 뒤바뀌었다.
사실 신검단이 보여 준 수는 어찌 보면 도박 수에 가까웠다.
저 정도로 무모하게 돌진했다가는 많은 적에게 포위되는 형국을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후.”
하지만.
그건 저들의 생각일 뿐.
으적! 콰아앙!
난 그대로 땅을 내리찍었다.
꽈릉!
벼락 한 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스산한 광풍이 몰아쳤다.
“헛.”
내 무공을 알아본 흑련주가 헛숨을 들이키며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월하무, 파천무극검광.’
내가 가진 무공 중 대인전 최강의 무공이다.
우우우웅!!!!!!
전신이 희뿌연 광채로 둘러 쌓였다.
“검이 없이 손으로 검광을 뿌린다고?”
흑련주는 더욱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내기를 퍼트렸다.
전신을 충만하게 싸고도는 내기의 짙은 냄새를 만끽하며.
‘삼재권. 제일 장.’
텅!
이내 손바닥 중앙에 위치한 노궁혈이 붉게 달아올랐다.
‘천인공노(天人共怒).’
투콰아아앙!!!
공허한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빛줄기가 쏘아져 나갔다.
그 기파에 휘말린 무사들은 어림잡아도 족히 수백은 될 법했다.
“마, 말도 안 돼…….”
“이따위 무공이 있을 리가…….”
“백보신……권?”
저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난 그대로 내뻗은 손을 회수하며 천천히 반원을 그려 혈맥을 좁혔다.
번쩍!
이것이 끝이 아니다.
‘삼재권, 두 번째 장.’
“앙천대소(仰天大笑).”
쩌정! 쩌어엉! 쩡!
마치 엿가락처럼 늘어난 기운이 그대로 적들을 휩쓸었다.
이내 기운은 채찍처럼 저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콰앙! 쾅! 쩌저저적!!
대지가 균열을 일으켰다.
거대한 나무그루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지반 자체가 뒤흔들린 듯 거대한 지진마저 일었다.
“끄아악!”
“흐악!”
이미 승부는 났다.
단 두 수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