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2
천하제일 시한부 (92)
“흠, 산에서 자게 생겼구나.”
우리는 옥화산을 올랐다.
남창까지 산길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요즘 날씨가 제법 추워졌기에 난 금방 터를 잡고 쉴 준비를 서둘렀다.
타닥! 타닥!
마른 장작이 타는 소리와 함께, 작게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우리는 그 주위에 앉아 한기를 조금 덜어 냈다.
“음식을 좀 가져왔는데, 같이 드실래요?”
서희가 자신의 짐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들었다.
얇은 면포에 덮인 것은 소금에 절여 둔 고기 몇 덩이였다.
“이걸 또 언제 챙겼대?”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기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주워, 흑련주에게 건네주었다.
“고기를 꽂을 수 있게 몇 개 좀 다듬어 봐.”
내 말에 흑련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금세 꼬치 몇 개를 뚝딱 만들어 냈다.
난 그걸 고기에 끼워 그대로 모닥불 위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금세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운치 있네요.”
북궁설이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별도 잔뜩 떠 있었다.
제법 감상적이긴 했다.
어느새 고기가 모두 익었다.
이내 모두 고기를 하나씩 잡고 뜯기 시작했다.
“맛있네.”
솔직하게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욱 맛있었다.
“노숙은 처음이지?”
난 슬쩍 곁에 앉은 서희를 향해 물었다.
“음, 처음은 아닌데. 이렇게 느긋하게 쉴 수 있는 건 처음이야.”
“그나저나 볼 일이 있다는 건, 뭐야? 물어보는 걸 까먹었었네.”
“아아, 별건 아닌데.”
서희가 입에 넣은 고기를 씹어 삼키며 마저 입을 열었다.
“후원 공사 자재 중에 금액이 조금 다른 게 있어서, 아무래도…….”
“아마 삥땅 좀 치겠지.”
난 피식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우리도 그걸 알면서도 수고비 명목으로 조금씩 삥땅 쳐도 모르는 척해 주는 거고.”
“그래? 음,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좀 커, 금액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난 동생을 믿는다.”
내 말에 서희가 피식 웃었다.
“아무튼 확인만 해 볼 거야. 또 겸사겸사 오라비랑 이렇게 얘기도 할 수 있고. 좋지?”
“그럼, 나도 좋아. 안 그래도 저번에 널 데려갈 걸 하고 후회 조금 했거든.”
나랑 서희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걸 북궁설이 부럽다는 듯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낀 서희가 북궁설에게 입을 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설이는 형제가 있어?”
음?
둘이 꽤 친해졌나 보네?
말을 놓는 걸 보니.
“네, 위로 오라버니들이 일곱 분 계셔요.”
“일곱? 와, 그럼 설이가 막내야?”
“네.”
북궁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겠네.”
서희의 말에 북궁설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죠. 서로 치고 박고 싸울지언정, 저한테만큼은 다들 잘해 줬거든요.”
“찾을 수 있을 거야.”
서희가 북궁설의 손을 꼬옥 잡으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제법 포근했는지 북궁설도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푹 쉬어. 내일 천천히 올라갈 거니까.”
남창과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이내 눈을 감았다.
* * *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난 후다닥 서희를 비롯한 일행들을 흔들어 깨웠다.
간밤에 계속해서 모닥불에 화력을 돋워 놨기에, 다들 꽤 따뜻하게 잤을 것이다.
“으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서희가 이내 채비를 마쳤다.
흑련주와 북궁설 또한 굳은 몸을 풀며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충 내가 가지고 있던 육포로 아침을 때우고 남창으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간 자주 다녔던 길이기도 했고, 이쪽 동네는 나름 조용한 편에 속했으니까.
해가 완전히 떴을 무렵 우리는 순조롭게 남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또 오네.”
예전 형을 데리러 왔을 때가 기억났다.
그때도 이 길을 이용해서 왔던 것 같은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제법 주변을 살필 여유란 것이 생겼다.
“남창이 크긴 확실히 크구나.”
난 악안과는 완벽히 다른 도시의 모습에 새삼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주씨세가에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그때였다.
번화가로 들어가는 길목의 초입에서 한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맞는데, 누구?”
내 물음에 사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천하상단에서 나왔습니다. 이쪽으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사내는 내가 메고 있던 짐을 대신 들며, 걸음을 재촉했다.
“안 그래도 상단주님께서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상단주가 거기 있나?”
“예, 아침부터 오셨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대체 무슨 물건이길래 상단주가 직접 나서서 재촉하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사내가 안내하는 데로 따라 길을 걸었다.
꽤 번화가를 지나 대로변에 우뚝 선 한 거대한 장원.
수송 마차를 비롯해서 앞에는 물건을 실은 수레와 마차가 가득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상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주 공자님.”
멀리서부터 날 알아본 상단주, 천문길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그가 공손히 인사를 건네며 나를 안채로 안내했다.
“다른 일행분들도 정중히 모시게. 다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천문길의 표정은 들뜬 듯 보였다.
그가 안채로 들어서기 무섭게 바로 보이는 집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뭔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하하, 역시 주 공자님의 눈은 못 속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천문길이 은근한 어조로 마저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거래만 잘 성사되면 저희 천하상단의 입지가 완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무슨 거래인데?”
이쯤 되면 상당히 궁금해진다.
“이번에 절강성 쪽에 수도 북경으로 통하는 해로가 열린 것은 알고 계십니까?”
“아니, 그런 거 몰라. 그냥 간단하게만 말해.”
“크흠, 아무튼 이번에 제 전 재산을 털어서 그쪽에 발 좀 걸쳤습니다. 이번 상행은 어쩌면 저희를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한마디로 이번 상행만 잘하면 그쪽의 신뢰를 살수도 있다는 건가?
난 대충 알아들은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경덕진까지만 잘 호위하면 되는 거잖아, 맞나?”
“맞습니다. 하지만 그쪽이 좀 문제가 심각…….”
“왜?”
“그 왜 있잖습니까. 도적 떼들이 워낙 많이 드나들어서 사실 상행을 그쪽으로 다니진 않았었는데 이번 계약만 잘되면 그쪽 길을 뚫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난 말과 함께, 품을 뒤적였다.
천문길에게 주기 위해서 어젯밤 내가 준비한 것들이었다.
“이게 뭡니까?”
“주씨세가의 깃이다. 앞으로 상행을 할 때 이걸 쓰도록.”
천하상단은 앞으로 주씨세가를 운영함에 있어서 가장 큰 줄기의 자금원이 되어 줄 곳이다.
그런 상단이 털리게 되면 세가 운영에 있어 꽤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 깃발을 달았다 해서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한 주씨세가가 점점 번창해 갈수록 상단의 입지도 같이 커지게 될 것이다.
“좋군요.”
천문길 역시 내 속뜻을 알아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수락했다.
“그럼 출발하실까요?”
천문길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가니 일행들은 이미 채비를 마치고 나와 있었다.
“경덕진까지 신시 초까지는 도착하셔야 합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알아들었다.”
천문길의 배웅을 시작으로 이내 우리가 호위해야 할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레는 사실 빈 수레였다.
경덕진에서 물건을 싣기 위해 아예 수레를 먼저 동원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경덕진에 가서 건네주어야 할 물건은 생각보다 작았고, 그건 내 품에 들어 있었다.
더군다나 놀랍게도 수레꾼은 부자지간으로 보였는데, 아들의 나이가 상당히 어린 소년이었다.
“꽤 어린 나이 같은데 벌써 아버지 일을 돕는 건가?”
난 궁금함에 물었고, 수레꾼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하지요. 집에 있게 하고 싶긴 한데 집에 돌볼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군. 애가 몇 살이나 되었지?”
“이제 아홉이 되었습니다.”
아홉 살.
내가 집을 떠날 무렵이랑 비슷하다.
그때는 몰랐는데, 막상 커 보니 아홉, 열 살이란 나이가 얼마나 어린 것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난 날 올려다보며 생긋 미소 짓는 아이를 보며 마주 웃어 주었다.
덜그럭!
수레는 생각보다 작았다.
말 한 마리가 모는 수레였기에, 속도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일행은 유람하듯이 주변을 관람하며 그렇게 걸었다.
남창을 벗어나 우리는 계속해서 서쪽 소로를 통해 움직였다.
그렇게 서쪽으로 움직이다 보니, 이내 거대한 호수가 우릴 반겼다.
“우와!”
저 멀리 보이는 장엄한 풍경에 서희가 입을 벌리고 감탄을 내뱉었다.
거대한 파양호는 잔잔하고 맑은 물살을 자랑했다.
더군다나 주변에는 파양호를 보러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신시 초까지 경덕진이면 시간은 좀 남는데…… 구경이나 하고 갈까?”
내 말에 일행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데를 다 와 보겠는가.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점심 먼저 먹고 가시지요?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수레꾼에게 물었다.
수레꾼도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파양호 근처의 객잔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이른 시간인데…….
놀랍게도 객잔은 찾는 족족 다 만석이었다.
“와, 무슨 아침부터 사람이 이렇게 많아?”
풍류를 즐기는 한량들이나, 돈 많은 부호들이 찾는 휴양지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힘없이 마지막 객잔을 나섰다.
이대로 그냥 다시 출발해야 하는 생각에 서희를 비롯한 일행들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흠, 혹시 자리를 못 찾으셨소?”
그때였다.
막 만석이었던 객잔 문을 열고 나오기 무섭게 한 사내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다가온 사내는 정중하게 자신들도 일행이 있다며 합석하자고 제안을 건넸다.
“우리가 일행이 좀 많은데…….”
사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서희를 비롯한 일행들은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날 향해 시선을 보냈다.
“음, 우리 일행도 수가 좀 되오만…… 여기 이 층에 이미 자리를 잡아 놨소. 대여섯 명이 끼어도 충분한 자리가 될 거요.”
사내의 거듭된 제안에 어쩔 수 없었다.
또 파양호가 보이는 객잔에서의 식사라…….
서희에게 충분히 좋은 추억을 선사해 줄 것도 같았다.
“좋소.”
결국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사내의 안내대로 계단을 따라 객잔 이 층으로 올라섰다.
“우, 우와…….”
서희의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나와 흑련주를 제외한 모두의 눈이 죄다 휘둥그레졌다.
“으하하, 어서 오시오.”
이 층은 일 층과는 완벽히 다른 세상이었다.
거대하고 둥근 식탁 위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잔뜩 놓여 있었다.
“사해가 동도라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같이 드시지요.”
사내는 혼자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명문가의 자제로 보일 법한 복식의 선남선녀들이 기품 있는 자태로 가만히 이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