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53
헬 다이버즈 152화
152화
아마 창환을 비롯해 다른 이들의 시선에 ‘저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조명은 생각했다.
‘저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 버리고, 정신이 산산조각 나며, 온갖 구멍으로 피를 토할 만큼 끔찍하고 역겨운 존재다.
영화에서 잔인하거나 징그러운 것이 등장하면 이따금 사람들은 몸서리치거나 ‘으으’ 하고 신음 소리를 내곤 하는데, 그건 바로 스스로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보기 싫은 것을 봤기 때문에 몸이 반응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정신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
그것은 곧 ‘혐오’이자 ‘부정’이다.
하지만 단순히 혐오하고 부정하기만 하는 것으로 완전히 떨쳐 낼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 바로 지금 조명이 눈앞에 둔 존재가 그런 것에 해당한다.
“84만 년의 시간 동안 모든 시공간을 제집 안방인 양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생명체에게 비정상적인 멸망을 인도하고, 그들이 고통받고 좌절하는 모습을 즐기는 건 즐거웠냐?”
“리더,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조명이 당황하는 창환에게 설명해 주는 대신, 8282의 안배로 먼저 작동한 정신 보호 프로토콜이 창환의 시각과 청각을 일시적으로 봉인해 버렸다.
조명이 그것과 대화하면 할수록 시공간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일반인조차 저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즉, 8282를 비롯한 통제관들은 실패하기 직전, 정확히는 생명체로서의 종말을 맞이했을 때, 이러한 상황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명을 제외한 팀원들의 슈트에 정신 보호 기능이 탑재되어 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다들 숙련된 헬 다이버인 만큼 굳이 정신을 걱정해 줄 필요가 없으니까.
잠시 동안 생명체가 아닌 AI가 슈트 외부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주인을 대신해서 움직여 줄 것이다.
거기까지 감안한 조명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아주 미세한, 거미줄 같은 균열을 향해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뭘 원하는지 알아. 그날, 잠깐이지만 나는 너와 ‘동화’했거든.”
[마지막 생명의 촛불이 꺼지는 순간을 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낀 것일까?]“아니. 넌 그렇게 고귀하면서 깊이 있는 악당이 아니야. 빌어먹을 것도 없이 비루하고 텅 비었으며, 무엇도 가지지 못한 허무(虛無), 그 자체지. 네가 말한 그 열망이란 것조차 사실은 네가 집어삼킨 생명체들로부터 받아들인 지식에 불과하잖아? 넌 그걸 느낀 게 아니라 이해만 했을 뿐이야. 마치 AI처럼.”
[내게 열망이 없었다면 지난 84만 년간 모든 시공간에서, 모든 생명체를 멸하려는 의지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허무(虛無), 그 자체라면, 어째서 나는 지금 이토록 충만(充滿)한 것이지?]균열이 점점 더 커지고, 열심히 제 나라의 국민들을 제물로 바친 늙은이들의 몸이 하나둘씩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찌하여 우리가 죽음을……!’ 같은 상투적이면서도 빤한 대사를 내뱉으며 바스러졌다.
결국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득권, 그 자체였던 것이다.
기득권을 영원히 유지하고자 불멸을 얻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저 돼먹지도 못한 것에게 속아 자신의 국민, 국가, 행성, 전 우주, 전 시공간을 제물로 바치게 된 것이다.
불쌍하다는 표현도 미안할 만큼 안쓰럽고 멍청한 것들.
조명은 이내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바스러진 자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제물을 바친 일등공신들도 결국 이런 식으로 집어삼켰다는 것은 역시 허무,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자는 물리적으로 자신을 채웠다고 한들, 자신이 진정 충만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느끼질 못하니 만족할 수도 없고, 만족할 수 없으니 의미도 없는 행위를 끝없이 반복한다.
진정한 끝이 도래하기 전까지.
“다들 널 멸망을 이끄는 자라고 부르더라고. 언뜻 들어 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데.”
[멸망을 코앞에 둔 미물이 할 말은 아닐 텐데.]“반대로 모든 생명체의 멸망에 84만 년이나 걸린 네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긴, 처음부터 무엇 하나 가지질 못하고 저런 돼지들에게서 역겨운 제물을 받아먹은 후에야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으니,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했겠어? 저들이 네게 제물을 떠먹여 주고, 네가 친히 장난칠 대상을 선정해 주기까지 했으니, 결국 넌 저 돼지들에게 길러진 애새끼에 불과해.”
츠카카카카카!
시공간의 경계가 조금씩 깨진다 싶더니, 일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벽’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촉수 다발에 뒤덮인, 조금 익살스럽게 표현하자면 파래 무침을 덩어리로 뭉쳐 놓은 것 같은 존재였다.
[결국 자신도 앞서간 자들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걸 알고 미쳐 버린 것이겠지. 안 그래?]옥구슬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듯 청명하면서도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몸으로 저것을 보고 들었다면 필시 버티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렇기에 조명은 더욱 더 확신을 가졌다.
저것은 결국 ‘저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하네.”
[…….]“보고만 있어도 추하다는 게 느껴져.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멋대로 칭송받으며 추켜세워지고,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이루어 낸 것도 없으면서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추해.”
한 박자 쉬고.
“마지막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는 걸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 개소리도 그만하면 노벨상감인데. 넌 전 우주를 집어삼키고도 노벨이 누군지 모르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사실 정말로 중요한 건 네가 찬란한 생명의 불빛을 추한 질투심으로 꺼뜨리기 위해 반복해 온 지난날의 행동들이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선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헛수고였다는 거지.”
[종말이란 그런 것이니까. 종말당하는 입장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어.]“아니. 넌 종말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인간이란 동물은 정말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종말을 느끼고, 종말 속에서 살아가. 빌어먹을 친척이 불쌍하게 돌아가신 내 부모의 재산을 가로채고 나를 고아원에 처박았을 때, 어린 시절의 내가 뭘 느꼈을 것 같아? 세상의 종말이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서 가진 자들을 항상 부러워했지만,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을 수 없기에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던 내가 뭘 느꼈을 것 같아? 내 운명과 인생에 대한 종말이야. 끝없는 사회의 괴롭힘과 억압 속에서도 이 악물고 버텨 온 내가 뭘 느꼈을 것 같아?”
그건 바로 종말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망해 버리고, 실제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해 버린 것처럼 느껴진… 종말이라는 감정, 그 자체.
“그런데 종말이니 뭐니 해도 인생이란 건 결국 스스로 끝내지만 않으면 의외로 별 탈 없이 잘 굴러가더라고. 이딴 몸뚱아리로도 살아남겠답시고 열심히 일해서 생활비를 벌고, 하루에 소모하는 칼로리를 채우기 위해서 라면에 찬밥을 먹으면서도 아등바등 살았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난 정말 끝이었겠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끝! 허무나 다를 바 없는, 완전한 끝!!”
조명은 눈앞의 존재에게 너와 내가 다를 것이 뭐냐고 물었다.
“다만, 너와 내가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나는 ‘끝’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거야. 내가 그 병신 같은 인생을 악착같이 연명하면서, 이 뒤틀린 시공간까지 기어 들어와 너 같은 거랑 대치하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빌어먹을 미래 때문이야. 내가 원하는 미래.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지고, 내가 즐기고자 하는 건 모두 즐기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행복감에 젖어 살 수 있는 그 미래를 사기 위해, 내 목숨을 담보로 건 거야. 알아들어?!”
[더 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는 미물의 헛소리구나.]“듣기 싫은 거겠지.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자고. 넌 네 힘으로 이뤄 놓은 것도 없으면서 그저 편하게 차려진 밥상의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받아먹은 것뿐이야. 초고도 비만 환자들이 거울을 보면서 ‘나 정도면 아직 괜찮지’ 같은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널 이루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는 돼지 새끼에 불과하다고. 내 말 틀려? 아니, 틀린 거 없잖아.”
조명은 자신의 기억 속에 담겨 있는 84만 년간의 모든 기억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단 한 번이라도 지난 84만 년간 수많은 시공간 속에서 네 힘으로 주도한 멸망이 존재하기는 해?”
“그놈의 병신 같은 바이러스, 기생충, 정신 장악을 통한 인류 간의 전쟁 유발. 그밖에도 유치한 애새끼나 저지를 법한 수단으로 생명체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지. 그리고 상대가 딱 알맞게 약해졌을 즈음,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서 지가 뭐라도 된 줄 아는 양 위대한 척, 범접할 수 없는 척을 하며 생명들을 집어삼켰잖아. 아, 잠깐. 설마 그 치졸한 수단들은 모두 자신이 생각하고 실행한 거니까 ‘자신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멍청한 새끼야. 그건 우리 동네 바둑이도 알겠다.”
인간이었다면 온갖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희대의 명장 취급을 받았겠지만, 저런 존재에게는 그런 멋들어진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자격도 없었다.
“넌 씨발, 그냥 좆도 아니야. 통제관들만 처리하면 84만 년간 그 지랄을 하지 않고서도 손쉽게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킬 수 있었을 텐데, 악에 받친 통제관들이 마지막으로 부여받은 운명으로 네게 저항할까 봐 두려웠잖아? 아니, 정확히는 네가 질까 봐 두려웠던 거겠지.”
그래. 통제관들이 지난 84만 년간 헬 게이트나 유지하며 쓸데없이 에너지와 생명을 낭비해야 한 것은 그들이 패배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멸망을 이끈다는 놈이 멸망을 이끌기는커녕 안전한 곳에서 멸망을 휙휙 던져 대고 있으니, 제아무리 대단한 통제관들이라도 지쳐 나가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지막의 마지막에 도달해서야 겨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최소한 마지막이라면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필시 그렇게 생각했겠지.
찌질한 것을 넘어서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키고 나면 더 이상 널 칭송해 주고, 네게 제물을 바칠 딸랑이들도 존재하지 않아.”
[그래도 상관없어.]“상관없는 척하는 거겠지. 정작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너는 너 스스로의 삶을 끝내지도 못 하는 겁쟁이로 남겨질 테니까. 영원히, 홀로.”
[…….]조명은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꽤 오래전부터 내뱉고 싶어 한 말을 꺼내 들었다.
“그러니 거기서 주제넘게 폼 잡고 있지 말고 이리로 내려와. 통제관 대리로 마지막에 도달한 헬 다이버즈,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기어 나온 겁쟁이. 서로 끝을 봐야 하지 않겠어?”
거절할 수 없을 거다.
조명이 그렇게 생각한 직후에, 그 기괴한 존재가 순식간에 자그마한 존재로 압축되었다.
그와 동시에 놈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경계선을 넘어, 조명이 서 있는 세계에 발을 디뎠다.
처음 술래잡기를 한 그 선박에서 들려온 여성 목소리의 주인공이 촉수 같은 드레스를 휘감은 채 사뿐히 내려왔다.
“사실 놈이 아니라 년인 건 알고 있었어. 그냥 빡치라고 ‘놈놈’거린 거야. 그 부분은 이해해 줄 거지?”
뚜두둑, 뚜두둑.
주먹을 가볍게 꺾으면서 농담을 던진 조명은 창환의 가슴팍을 뒤로 밀쳤다.
그의 슈트에 내장된 AI가 곧바로 제트 팩을 작동시켜 빌딩의 옥상 위로 날아올랐다.
조명은 사전에 준비해 둔 지휘관의 권한을 이용해 모든 팀원들의 AI에게 특수 명령을 하달했다.
“모두 지구로 복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