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3
213
“저는 비밀 경매를 원합니다. 각 군주님들이 제게 주실 수 있는 것을 듣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분과 거래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을 말할 수는 없다.
그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공개 경매가 낫지 않겠나? 우리끼리 경쟁이 붙어야 더 높은 값을 받을 것인데.”
마몬의 충고.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값을 실시간으로 올리는 것은 경쟁이 붙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서로 어떤 것을 제시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도 값이 떨어질 만한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비공개를 원한 이유는 따로 있으니 마몬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일대일로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기면 이면 거래나 협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쪽이 나아.’
내가 상품으로 올라온 경매의 준비는 마몬에 의해 일사천리로 준비됐다.
그렇게 상황이 흘러가자 루시퍼도 서슬 시퍼런 눈빛을 거두고 있었다.
일단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자는 생각인 것 같았다.
군주들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입찰이라고 할 수 있는 독대 순서를 정했다.
우선권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순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다른 군주들은 순순히 루시퍼에게 가장 처음 독대할 권리를 양보했다.
독대는 루시퍼가 만든 공간에서 이뤄졌다.
오만한 군주가 만든 공간은 고급스럽지만 매우 삭막한 서재였다.
“자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태평한 얼굴이군.”
태평한 얼굴이라고?
거울을 보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표정일 거라는 데 머리카락마저 걸 수 있다.
“압니다. 상상도 못 할 스케일의 사고를 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아니, 이 촌극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짓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실수다. 지옥에서 영향력이 가장 강한 군주가 나다. 그 말은 곧 제일 튼튼한 울타리라는 말이지. 나를 제외한 다른 군주들에게 운명을 넘긴다고 더 나아질 것 같나? 그건 아주 큰 오산이야. 오히려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혹 모르지. 너를 차지한 군주가 어딘가에 너를 팔아넘길지도.”
“루시퍼 님은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내가 고르고, 만든 것을 다른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아. 나는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탐하지 않는다. 무엇도 필요치 않으니까. 그저 모을 뿐이지. 멍청하고 어리석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유쾌하기도 하군. 내가 고른 후보자다워. 필멸자의 몸으로 지옥의 꼭대기에 선 여섯 명의 얼간이들을 농락하는 걸 보면.”
“여섯… 이군요.”
루시퍼는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다소 긴 제안을 늘어놓았다.
“잘 들어라. 다른 군주들이 무엇을 준다고 하든지 나는 그 이상을 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내 그림자만큼 강력한 울타리는 없지. 구태여 위태로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마라. 그런 울타리쯤은 내게 걸림돌 수준도 되지 못해. 훨씬 많은 것을 안겨 주고 다시 사 오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게 됐을 때의 대우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이번 촌극까지는 다른 얼간이들의 우스운 꼴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넘어가 주겠다. 다른 군주들이 주겠다는 것을 듣고 와. 무조건 그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안겨 주마.”
루시퍼는 이 상황이 됐음에도 자신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고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다른 군주들이 주는 것의 가치는 자신이 주는 것에 미칠 수 없다고.
참으로 오만의 군주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루시퍼는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욕심을 부린 어리석은 필멸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시퍼는 절대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다른 군주가 만든 공간으로 이동됐다.
하지만 딱히 다른 군주들이라고 해서 내가 혹할 만한 무언가를 제시하는 자는 없었다.
아스모데우스는 현세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쾌락의 궁전을 약속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쾌락이라도 대령하는 노예로 가득한 궁전.
그런 제안을 한 아스모데우스의 공간은 온갖 미녀로 가득했고, 입에 넣으면 어떤 맛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지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코를 간질이는 미약은 음심을 자극하고, 배에 구멍이 뚫릴 것 같은 허기는 당장 눈앞의 음식들 게걸스럽게 탐하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유혹들을 전부 물리쳤다.
지금까지야 쾌락에 젖은 삶을 살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까 봐 수도승처럼 살았지만, 돌아만 가면 여자든 음식이든 다른 무엇이든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러니 아스모데우스가 약속한 것 중 절반은 날아간다.
그것 이상의 쾌락은 내가 엘프들에게 했던 것처럼 마약을 꽂고 사는 신세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애초에 뇌가 쾌락에 절은 아스모데우스의 밑으로 들어갈 생각 따위는 없었기에 나는 그녀의 마굴에서 빠져나올 생각만을 하며 들어갔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바알은 자신이 거느린 수많은 군세의 군단장 자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거느리고 있는 몬스터 군단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에는 남에게 빌린 백만 군세 따위는 내 말이면 껌뻑 죽는 도깨비 하나만도 못하다.
레비아탄도, 벨페고르도 전혀 내 진짜 저의를 읽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주겠다고 선심 쓰듯 이야기할 뿐이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누구나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모습.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금은보화와 권력, 쾌락. 어느 것 하나 인간이 싫어하는 게 없으니 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그런 것들에 목을 매는 인간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옥을 지배하며 살았을 자들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제시하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만남이 반복됐지만 여섯 번째 차례가 다가왔을 때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사탄의 차례였기 때문이다.
“머저리들이 자기 밑으로 오라면서 이것저것 퍼 주겠다고 했나? 흥! 머저리인 것도 모자라 자존심도 없는 쓰레기들. 루시퍼한테 보기 좋게 당해 놓고도 기회가 보인다 싶으니 승냥이들처럼 달려드는 꼴하고는.”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면서 다다다 내뱉은 사탄은 다짜고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설마 분노 조절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짜고짜 공격하는 건가 싶어 움찔거리는데, 피할 새도 없이 가슴팍 앞까지 날아온 것이 우뚝 멈추는 것이 아닌가.
진정하고 살펴보니 투명한 수정 안에 일렁이는 검은 불꽃이었다.
“받아라. 최종 승리 이전에 내가 고른 특채자를 이겼을 때 받아야 할 보상이다.”
…….
나는 사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약속한 것은 줘야 한다는 건가.
거기다가 다른 군주들과 달리 자존심 때문에라도 나를 탐내지 않는 모습.
사탄이 인간에게 연전연패를 당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뭐냐? 그 얼빠진 얼굴은. 내가 정말 잘못 고르긴 잘못 골랐군. 저런 정박아 같은 놈에게 당하는 놈을 뽑아 놨으니. 썩 꺼져. 조금만 더 마주하고 있다가는 그 면상을 지옥 밑바닥에 갈아 버리고 말 것 같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탄의 기세는 무시무시했고, 뿜어내는 기운은 날카롭게 갈아 놓은 칼을 불에 달군 것 같았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헛소리를 하는 순간 바로 분쇄될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어차피 사탄이 팔을 휘두르자마자 그의 공간에서 쫓겨나다시피 방출되었으니 입을 열 기회도 없었지만 말이다.
“호오, 그러고 보니 사탄이 내놓았던 것이 그을음의 정수였던가. 아무리 후발 주자를 자처함으로써 불리함을 감수했다고는 해도 워낙 예외적인 특채자였으니 그만한 것을 걸어야 했었지.”
어느새 나는 또 다른 공간에 있었다.
눈앞에서 혼잣말을 하는 자는 당연하게도 마지막 남은 군주, 마몬이었다.
그는 내 손 위에 올려져 있는 검은 불꽃을 보며 감탄하는 중이다.
마몬은 내가 가장 애타게 기다린 거래 상대다.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분위기를 조금 유하게 만들어 놓는 것도 좋겠지.
그래서 나는 그의 감탄에 맞장구를 쳐 주기로 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요?”
마몬은 내 질문이 퍽 기꺼워 보였다.
노인의 모습을 한 것처럼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것을 즐기는 자일 수도, 나와 비슷하게 거래 전에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어 보인다.
“사탄의 영원한 불의 영역에서 타오르는 불의 기운이 응집되어 만들어지는 물건이니 대단한 것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지. 자네가 가지고 있던 돌거인의 재료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일세. 다만 지금 그 수정의 봉인을 풀면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 그건 우리 거래가 끝난 시점의 자네 정도여야 다룰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럼 거래를 빠르게 마무리해야겠군요. 기다렸습니다, 마몬 님.”
마몬은 내가 자신이 고른 특채자를 죽였을 때도 분노보다는 그 상황에서 좇을 수 있는 이득을 생각했었다.
내가 루시퍼에게 반항했을 때도 마찬가지.
“말해 보게. 이런 거추장스러운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
봐라. 마몬은 다른 군주들과 다르다.
무엇을 줄 테니 너는 닥치고 내 밑으로 오라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정말 거래를 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역시 마몬 님은 다른 군주들과는 조금 다르시군요.”
“다른 자들을 굳이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들은 너무 위에서만 바라보며 살아왔지. 거래에 어울리는 자들이 아니야.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 협상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지.”
“제가 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는 것. 지옥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선까지는 운명을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서 휘둘리는 것은 사양입니다.”
“내가 이해를 잘못한 게 아니라면… 그건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인 듯싶네만.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군주가 있을 것 같나.”
“적어도 공들여 만든 특별한 악마를 폐기 처분하는 일은 없게 되겠죠. 저는 이걸 국적과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소속된 국가가 없는 자는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없지만 동시에 혜택 또한 없죠. 반대로 소속된 국가가 있는 자는 져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생기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 또한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 혜택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국가에 의해 희생될 가능성이 있는 자리 따위 사양입니다. 그걸 방지하는 안전장치를 완벽하게 마련해 주신다면 지옥의 주민이 된 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마몬 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마몬이 매우 가소롭다는 듯이 묘한 웃음을 내비쳤다.
“솔직히 나는 자네가 여덟 번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그건 정말 실낱같은 가능성이야. 지금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지금 자네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는 이야기일세. 나에게 지불할 것이 겨우 우호적인 관계라는 추상적인 것이라면 나는 얻는 게 없는 셈이 아닌가.”
“저를 완전히 가져가진 못하더라도 절반 정도는 가져가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자유를 보장받는다고 모든 의무나 책임을 완전히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딱 받는 만큼, 가능하면 받은 것보다는 적게 일하고 싶을 뿐이죠.”
“나는 상인일세. 딱 받는 만큼만 주겠다는 이와 거래를 할 것 같은가.”
“그렇다면 마몬 님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다른 군주들 중 누군가는 저를 완전히 얻게 되겠죠. 저와 거래하시면 절반 정도를 얻고 남이 하나를 못 갖도록 하는 것이니 하나하고도 절반을 얻는 게 아닐까요?”
하고픈 말들은 모두 했다.
긴장한 것에 비하면 스스로도 놀랄 만큼 침착하게.
마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불쾌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럼에도 묘하게 불안하지가 않다.
마몬이 자신이 얻지 못하는 것보다 다른 군주가 나를 가져가는 것을 더 싫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