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503
502화 (특별외전 4)
“오랜만이군, 이곳도.”
헬무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에단의 검술 수련실이었다. 그가 주로 검술을 수련했던 곳이다.
가장 먼저 가겠다는 장소가 여기라니. 그레타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여기서의 검술 수련이 그리웠던 게 아닐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었다.
[재미없는 녀석. 파헤에서도 늘 저 짓만 계속하더니 질리지도 않나?] [저 정도로 독해야 인간 중 가장 강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엘라가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그런 거 안 했어도난 강한데…….]아주 어린 시절부터 강했고 별다른 노력 없이 파헤의 숲에서 군림해 온 엘라가에게 썩 와닿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보다 난 아카데미를 돌아보고 싶다.] [내가 네 탈 것이냐?] [내게 협조한다지 않았나.] [지긋지긋한 녀석!]투덜거리면서도 엘라가는 뮤트와 함께 수련실을 벗어났다. 그도 그레타 아카데미에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에.
한창 수업 증인 아카데미 안은 한적했다. 검술 학부 근처에서는 기합 소리와 교관이 독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라가는 주변을 두리번거 렸다.
‘헬무트가 이곳에 있었다 이거지. 인간들의 학습 장소 겸 짝짓기 장소라고.’
하지만 강해 보이는 인간은 드물었다. 어린 인간들을 몇몇 보았지만, 그 당시 헬무트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장벽인가 그곳에 쓸 만한 녀석들이 더 많아 보였는데.] [거긴 나름대로 강한 인간들만 모아 놔서 그렇다. 마물과 싸워야 하니까.] [그래? 인간들도 수준이 좀 허접하군.]심드렁하게 품평하면서 엘라가는 사박사박 걸음을 옮겼다.
당연하게도 동물 반입이 제한되는 아카데미에서 새하얀 고양이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막 수업을 끝내고 빠져나오는 검술학부 학생들이 엘라가를 발견했다.
“여기에 웬 고양이가 있네.”
“교관님이 키우는 건가?”
털이 깔끔하게 손질된 게 누가 봐도 주인이 있는 고양이였다. 호기심을 보이다가도 엘라가가 캬악! 하고 성질을 부리자 그들은 머쓱하게 돌아섰다.
혹시 세라가 있을까 싶어 주변을 배회하던 엘라가를 발견한 건 하필 세라를 공격하던 그때 그 녀석들이었다.
“저거 세라가 키우는 고양이 아니야? 저번에 저거 안고 가던데.”
“그렇네. 저런 고양이는 흔하지 않으니까.”
그때 아카데미 직원을 따돌린 몇몇이 에단 쿠드로의 저택 근처에서 엘라가를 안고 가는 세라를 보았던 것이다.
[오호, 마침 잘 되었네.]엘라가도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보복해야 할 상대가 누군지는 기억해 둬야 하는 법이니까.
“주제도 모르는 평민이 아카데미에 고양이를 데려와?”
놈들이 엘라가를 포위하듯 둘러싸며 주변을 살폈다.
“야, 아무도 없지?”
“어쩌려고?”
“본보기를 보여 줘야지.”
“저걸 죽여서 던져 놓으면 그 뻣뻣한 게 우는꼴을 볼 수 있지 않겠어?”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딱인 듯 아무도 말리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곧장 한 녀석이 엘라가를 향해 힘껏 발길질했다.
[이 녀석이 감히?]탁! 폴짝 뛰어 당연한 듯이 피해 버린 엘라가가 꼬리를 꼿꼿이 세웠다.
안 그래도 세라를 괴롭힌 녀석들이다. 이렇게 손봐 줄 기회가 오다니! 뮤트가 흥분해서 외쳤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고양이를 공격하다니 죽여 마땅한 놈들이다!] [너와 내 의견이 일치할 때도 있군. 하지만 운 나쁘게도 나는 그냥 고양이가 아니지!]엘라가는 자신을 공격한 상대의 얼굴을 향해 뛰어올랐다.
[캬아앙!]날카로운 발톱이 안면을 난자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 상대는 피를 뿌리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으악!”
뒤늦게 뻗은 주먹도 어김없이 빗나갔다.
[느려!]“미친, 왜 이렇게 빨라!”
“저거 잡아 죽여!”
아무리 고양이 몸을 하고 있다지만 상대는 엘라가. 당연히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엘라가는 요리조리 날뛰면서 마구잡이로 손발을 휘젓는 적들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그들이 입은 천 조각은 아무런 방패막이 되지 못한 채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마치 맹수한테 당한 것처럼 온 사방에 선혈이 흩뿌려졌다.
뮤트가 어둠의 싹 출신답게 큰 소리로 부추겼다.
[통쾌하도다! 더! 더! 더! 죽여!] [여기가 아카데미만 아니었다면 숨통을 끊어줬을 텐데.]놈들도 엘라가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보통 고양이가 아니야!”
“마법 생물인가? 검으로 상대해!”
이내 검을 뽑아 든 놈들이 엘라가를 향해 휘둘렀다. 비스를 검에 실을 정도는 아니어도 몸을 강화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느리군.]그쪽에서 비스를 쓴다면 이쪽에선 마기로. 제 딴에는 느긋하게 놈들의 공격을 피한 엘라가가 공처럼 튕겨 올랐다.
콰득! 어깨를 후벼 파듯 딛고 손톱을 세워 얼굴을 긁어낸다. 비명이 터졌다.
“아아아악!”
살점이 떨어져 나간 얼굴이 피를 철철 쏟아 냈다.
“이, 이럴 수가!”
“이게 무슨…….”
호랑이도 아니고 고양이가 비스를 다루는 검사를 찢어발긴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저런 게 어떻게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거지?
모두가 의혹을 품은 순간, 엘라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느낀 한 명이 소리높여 외쳤다.
“마물, 마물이다!”
공교롭게도 마침 아카데미를 방문 중이던 신관들이 근처에서 엘라가의 마기를 감지했다.
“마기가 느껴집니다!”
“이런 곳에 마물이?”
우르르 달려온 신관들은 곧 피를 뿌리고 쓰러져 있는 학생들과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은 하얀 고양이를 발견했다.
[응? 재수 없는 신관 녀석들이잖아.]신관들을 마주하자 자동으로 몸에서 마기가 쁨어 져 나왔다. 물론, 그 모습은 신관들에게 더 위협적으로 비쳤다.
“저런 모습으로 저런 마기라니!”
마물은 대체로 크기와 강함이 비례한다. 그런 일반적인 규칙에 위배 된다는 건 평범한 마물이 아니라는 소리다.
“고위 마물이다! 아카데미 학생들을
보호해라!”
“본 신전에 지원을 요청해!”
순식간에 요란해진 상황이었다. 엘라가도 잠시 당황했다.
‘하필 이런 데 신관이 다 있어.’
조용히 처치하고 가려고 했는데 일이 커져 버렸다. 그냥 싹 다 해치워 버릴까?
참아 본 적이 드문 엘라가로서는 유혹적인 충동이었다.
그 들이 잠시 대치하던 사이, 익숙한 인물이 등장했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무슨 일이지?”
헬무트가 물었다. 고요한 검은 눈이 그들을 한데 담았다. 차분하지만 압박적인 시선이 좌중을 내리눌렀다.
* * *
학장실을 나온 아레아는 어렵지 않게 헬무트를 찾아냈다. 그가 있을 만한 곳이 검술 학부 수련실밖에 더 있겠는가.
헬무트를 간파하고 있는 그녀답게 바로 합류한 터였다.
그들이 함께 아카데미를 돌아보려던 그때, 검술 학부 인근에서 소란이 일었다. 언뜻 들리는 소리가…….
“마물이 나타났다는 것 같은데.”
“엘라가로군.”
원흉은 뻔했다. 그들은 그쪽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그리고 보게 된 광경이 이것이다.
“헬무트 님?”
당연하게도 신전에서 헬무트는 유명인사였다. 신관들은 신전의 공적으로 내걸렸다가 걸쩍지근한 협력자로 급전환한 그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
“저 마물은 무엇입니까.”
헬무트는 멈칫 엘라가 쪽을 쳐다보았다. 뮤트를 감시한다더니 상황을 보니 엘라가가 사고를 치고 있었던 것 같다.
역시 마물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하면서 헬무트는 미리 준비해 놓은 핑계를 댔다.
“내가 길들인 마물이다. 위험한 존재가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다.”
피를 철철 흘리는 한 녀석이 억울한 듯 외쳤다.
“마물이 우리를 공격했어요!”
[아니야, 저 녀석들이 먼저 날 공격했다!] [그래, 세라의 고양이를 죽여서 그 앞에 던져 주겠다고 했다!]“세라의?”
엘라가와 뮤트의 격렬한 이중창을 들으니 무슨 상황인지 바로 짐작이 갔다.
“이들이 먼저 공격을 해서 반격한 모양이군. 증거가 필요하다면 대지의 기억을 읽어보길.”
신관이라면 대지의 기억을 읽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다. 반론의 여지가 없게 자른 헬무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소한 충돌이니 물러가도 좋다. 이 녀석의 안전성은 내가 책임지고 보증하지.”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요.”
자기들끼리 웅성웅성 대던 신관들은 피 흘리는 학생들의 치료도 도외시하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헬무트란 그만큼 거북한 존재였기 때문에.
남은 건 엘라가의 피해자들과 헬무트 일행뿐. 헬무트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들, 검술 학부 1학년인가.”
“예, 예에.”
찔끔한 표정. 세라의 이름이 언급된 순간부터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챈 그들이었다.
“아,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니 저희는 이만 가 봐도…….”
그러나 헬무트가 떠나려던 그들을 저지했다.
“잠깐 기다려.”
“어라? 헬무트.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마침 세라가 친근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등장했다.
“세라, 네 학우들을 소개해 주지 않겠나?”
세라 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는 사이냐는 둘째치고 일단 알아볼 수 있는 몰골이 아니었다.
“저도 이름은 잘 모르는데…… 상태가 왜 저러죠?”
곧 세라의 시선이 엘라가를 향했다.
누가 저랬는지는 뻔했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결국 손봐 준 모양이다.
“수업이 있으면 이만 가 봐.”
“네.”
세라가 사라지고 나자 헬무트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 기억해 두지. 세라와 잘 지낼 거라고 믿는다.”
말에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상대가 인간 중 가장 강한 검사라면. 차가운 눈빛에 꿰뚫린 듯이 몸이 바르르 떨렸다.
상대는 신전을 박살 내고 마왕을 때려잡은 리노사 대공의 후계자다. 그들 가문을 박살 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예…… 예! 물론입니다!”
“자, 잘 지내겠습니다!”
헬무트는 아카데미 의 생리를 잘 알았다. 상대가 평민이라서 핍박하는 거라면, 보통 평민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면 되는 거였다. 예를 들어, 아주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든지.
헬무트가 나서서 저들을 두들겨 팰 필요는 없었다. 세라의 실력은 독보적이니, 본인이 대련에서 알아서 두들겨 패줄 것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럼 가보도록.”
그들은 걸레짝이 된 몸으로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치료비 청구? 헬무트의 애완동물을 자기들이 먼저 공격하다가 당하게 된 모양새니 도리어 책잡히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들로서는 엘라가에게서 당한 건 물론이거니와 세라에게 시비를 건 것도 없었던 일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헬무트의 시선이 아래로 내리꽂혔다.
“엘라가.”
[아니, 난 그냥 좀 혼내 주려고 했는데…….]변명하던 엘라가는 퍼뜩 책임을 돌릴 상대를 떠을렸다.
[그래, 뮤트, 이 자식 위험해! 이 녀석이 막 부추기면서 유혹했어!] [억울하다! 신나있길래 응원한 것뿐이다!] [저 말하는 것 봐봐, 말려야지 응원했다잖아!]“……돌아가지.”
둘 모두에게서 눈을 떼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헬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