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9
제129화. 또 다른 의도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레나벨과의 만남을 끝내고,
나와 이사벨은 곧장 집으로 복귀했다.
이사벨은 돌아오자마자 페로나가 있는 방에서 모두를 내보냈다.
자기가 다시 문을 열기 전까진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며, 엄포까지 놓으면서…….
곧 열린 문틈 사이로 정령 소환의 주문이 들려왔고,
세찬 바람 소리와 더불어 뚝뚝 물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렇게 한 시간쯤 흐르자,
-벌컥!
방문이 열리면서 일을 끝마친 이사벨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들어갔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무신경한 눈으로 우리의 얼굴을 쭉 훑었다.
당연하겠지만, 루비아는 무척이나 초조해했다.
“깨어났어요.”
그토록 간절히 듣고 싶었던 한마디.
그 말이 이사벨의 입에서 나오자, 루비아는 이사벨을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이사벨!”
감격에 겨운 나머지 저지른 돌발 행동이었다.
깜짝 놀란 이사벨은 뿌리치려 했지만, 그럴 새도 없이 루비아가 먼저 떨어졌다.
루비아와 미켄은 즉각 방으로 뛰쳐 들어가 페로나를 껴안았다.
깨어난 동생을 향해 후다닥 달려가는 언니, 오빠와 아직 뭐가 뭔지 어리둥절한 표정의 동생.
그 모습을 문 너머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이사벨에게 넌지시 물었다.
“잘된 겁니까?”
“잘됐겠죠. 다른 마족도 아닌 내가 한 건데.”
그녀 특유의 높은 자존감이 드러나는 대답이었다.
“이걸로 예전의 빚은 갚았어요…….”
들릴 듯 말 듯 애매하게 읊조려진 말.
그 빚이 무엇인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기에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이사벨은 가끔 보면 어울리지 않게 친절한 거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나?!”
허나 똑같이 들은 세나는 바로 속마음을 뱉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진 루비아는 진정시키기 위해 부채질을 해댔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예요. 설마 저리 깨워놓고 허무하게 보낼 건 아니죠?”
“물론입니다.”
상봉의 시간은 여기까지.
나는 이사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세 남매를 마주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페로나는 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당신이, 날 구해준 거야?”
“구해줬다기보단, 그냥 데려왔을 뿐이야.”
실질적으로 그녀를 살린 건 이사벨일 뿐, 난 어디까지나 호송밖에 하지 않았다.
“생명 유지조차 안 될 정도로 마력을 흡수당했던데, 누가 그런 거지?”
“왜? 왜 날 데려온 거야? 그냥 놔뒀으면 죽었을…….”
“질문은 내가 먼저 했어.”
“난 당신의 영역을 습격했어! 찢어 죽여도 모자랄 나를 이리 살려줄 이유가…….”
“페로나.”
보다 못한 루비아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넌 지금 엄연히 벨져 후보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거야. 그러니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해.”
“누님 말대로 하거라 페로나.”
언니, 오빠가 입을 모아 지시하면 동생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주변 눈치를 의식하던 페로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마, 당신도 아는 마족일 거야.”
“내가 아는 마족?”
“그래. 지금은 그냥 심복처럼 있지만, 사실은 뒤에서 제일 더러운 일을 꾸미고 있는…….”
“벨져 님!”
한창 중요한 얘기가 나오려는 와중, 헐레벌떡 달려온 브릴리스가 나를 불렀다.
무슨 급한 소식을 전하려는 건진, 얼굴이 무척 다급해 보였다.
“미안 브릴리스.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벨져 님의 영지가 마수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약 1초 정도 뇌 정지가 왔다.
뇌 정지 끝나고 다음 1초가 흐르기까지,
많은 생각이 오갔다.
페로나의 입에서 이제 막 범인의 정체가 나오려는 순간, 기가 막히게 터져버린 사건.
이 일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뭐 우연일 수 있겠지.
한 몇만분의 1 확률로 충분히 벌어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내 머리는 이미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이건 절대 우연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찰나의 순간, 방에 있는 이사벨, 세나, 메이, 루비아, 미켄, 그리고 페로나의 얼굴을 쭉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브릴리스에게 소식을 듣고 당황을 금치 못한 반응,
그건 페로나도 마찬가지였다.
방황하던 그녀의 눈동자는 이윽고 나와 마주쳤다.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며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눈빛.
상황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거 안다.
며칠간 의식도 없이 기절했었는데, 무슨 수로 깨어나자마자 내 영지를 공격할 계획을 꾸몄겠는가?
허나 그러면서도 습격한 범인이 누구인지, 대강 알고 있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즉 상황상 범인이 누구인지, 듣고 나서 몸이 움직여야겠지만,
“베, 벨져 님?”
“어디 가요 벨져?!”
2초의 시간이 지난 후,
본능에 이끌린 내 몸은 밖으로 통하는 테라스 창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을 열어젖힌 동시에 그 너머로 뛰어내렸다.
같이 가자는 일행들의 부름은 싸그리 무시했다.
“수호야!!”
내 부름에 반응한 수호가 나보다 아래에서 솟아올랐다.
5초.
브릴리스에게 소식을 듣고 수호의 몸에 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영지로 가줘! 네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네!]수호는 활기차게 날개를 펼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빨리 가자고 말은 했지만, 살짝 후회가 밀려온다.
와이번이랑은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의 속도.
불어오는 바람에 눈조차 제대로 못 뜰 지경이다.
뭐 이것도 적응되면 괜찮아지겠지.
“키에엑!”
마족의 입으론 절대 낼 수 없는 포효를 들은 순간, 영지가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대 트롤의 머리.
즉각 수호에게 저 머리 위로 갈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정확히 놈의 머리 위로 이른 순간,
-타앗!
지체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린 동시에 검을 뽑았고,
-서거걱!
거대한 참격을 휘두르며 트롤의 머리를 갈랐다.
내 몸은 트롤의 머리와 동시에 땅에 닿았다.
트롤은 늪지대 같은 축축한 습지에 사는 마수로 웬만해선 인간이나 마족들 주거지에 다가오지 않는다.
즉 본인 스스로가 오고 싶어서 왔을 리는 없다.
“벨져 님! 벨져 님이다!!”
마수들을 피해 달아나던 영지민들이 나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멀리 달아나라는 의미로 손을 휘적거렸다.
영지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건물이 조금 파괴되고, 불이 조금 피어오른 정도.
인명 피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영지를 침범한 마수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피, 트롤, 오우거, 샐러맨더까지…….
정작 이 근방에 원래부터 살던 포르기네이 같은 마수는 없고, 좀 생뚱맞은 마수들만 보였다.
상대하는 데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든다.
일단은 아크베리아를 고쳐 잡고선 마수들에게 질주했다.
다크 로드 슬래쉬 같은 범위가 큰 비기를 쓰면 단번에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영지에도 피해가 미칠 수 있다.
해서, 비기가 아닌, 하나하나 육체를 직접 가르는 방식으로 마수들을 처리했다.
-쿵!
이윽고 마지막 남은 오우거의 시체가 쓰러지면서, 마수 토벌을 끝냈다.
인간형으로 변한 수호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그래. 다행이긴 한데…….”
이 마수 놈들.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모든 인간끼리 친하지 않고, 모든 마족끼리 친하지 않듯,
종족이 다른 마수끼리는 적대하면 적대했지 결코 친하진 않다.
그런 놈들이 서로 사이좋게 손잡게 내 영지를 쳐들어왔다?
뭐 때문에?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냈다는 결론밖엔 도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범인은 분명,
마수를 다루고 조종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겠지.
머릿속으로 점점 비만 마족의 얼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벨져 오빠!”
심각하게 일그러지던 얼굴이 오빠라는 부름에 바로 펴졌다.
오래간만에 듣는 활기찬 목소리.
몸을 돌린 순간 목소리의 주인인 꼬마 아가씨가 내 품에 안겼다.
내게 체르타 열매라는 신세계의 맛을 알려준 소녀.
클로이였다.
“다친 덴 없어 클로이?”
“응! 벨져 오빠 덕분에 완전 무사해!”
눈도 못 뜰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보람이 있네.
“다른 마족들은? 전부 괜찮아?”
“어! 지금 의사 아저씨가 다친 마족들을 전부 치료해주고 있어!”
“의사 아저씨?”
“응! 진짜 신기해! 마법도 안 쓰는데, 상처나 아물게 해주고, 병도 고쳐준다니까!”
이 의학 불모지에서 의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얼마 없을 텐데?
설마?
“그 의사 아저씨란 마족 지금 어딨어?”
“저쪽에 있어!”
고민할 것 없이 바로 클로이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클로이는 활기찬 얼굴로 앞장서며 나를 주점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주점 문을 연 순간,
“아악! 당신 뭘 뿌린 거야?”
“상처가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소독약을 뿌렸습니다! 조금 따끔해도 참으십시오!”
익숙한 소독약 냄새가 풍겨왔다.
잠깐만, 쟤 이름이 뭐였지?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분명 자신을 부르는 칭호가 하나 있었을 텐데?
그게 아마…….
“떠돌이 의사?”
내 부름을 듣고, 그도 고개를 돌렸다.
“베, 벨져 님?!”
분노의 종주 베누스의 영역인 적림에서 만났던 떠돌이 의사가 어째서인지, 지금 내 영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 * *
한편,
집주인은 떠나고, 저택에 남은 나머지 일행들.
벨져를 따라 영지로 갈지, 아님 잠자코 기다릴지를 고민하는 사이, 영지 쪽에서 연락이 왔다.
브릴리스는 즉각 일행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벨져 님께서 영지를 습격한 마수들을 전부 토벌하셨답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는군요!”
조마조마했던 일행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빠르네. 벨져.”
“진짜 어떻게 구슬린 건진 몰라도, 드래곤 하나는 잘 구했네요. 와이번을 타고 가도 30분은 걸릴 거리를 무슨 10분도 안 돼서…….”
“정말 벨져 님 다우시네요.”
평소 벨져를 잘 알던 메이, 이사벨, 세나는 웃으며 각자의 감흥을 표했다.
반면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페로나는 당황한 듯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혹시, 내가 온건파 지부를 습격했을 때도, 이렇게 다급히 움직였던 거야?”
“저를 진정시키고자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셨습니다…….”
브릴리스의 대답에 페로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듯한 반응이었다.
이에 이사벨이 재촉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아까 하던 말이나 이어서 해보죠?”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에 대해서 말인가요?”
“그거 아니면 뭐겠어요? 그거 듣자고 여태 당신을 살린 건데?”
페로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다가도 루비아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언니는 내가 언니와 악몽 겨룰 정도로 성장한 바탕이 뭐라고 생각해?”
“그야 네가 노력해서…….”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단호한 되물음에 루비아는 말문이 막혔다.
“재능 없는 노력은 한계가 있어. 언니를 동경하고 힘을 키웠던 건 맞지만, 난 그동안 자력으로 강해진 게 아니야.”
“그, 그럼 남의 힘이라도 빌렸다는 거니?”
페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메이도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벨져 님도 말씀하셨어요! 수호가 말하길, 페로나 님의 몸엔 다른 이의 마력이 오간 흔적이 있었다고!”
“맞아. 난 다른 마족의 마력을 내 몸에 주입하면서, 나만의 힘을 키웠어.”
“대체 누구의 마력을 주입했다는 건데?”
“있는 듯, 없는 듯 마왕 후보의 주변을 배회하고 관찰하는 존재…….”
수수께끼 같은 아리송한 답변이었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모두는 전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페로나는 결심이 선 눈으로 루비아, 이사벨, 세나를 차례대로 쳐다봤다.
“당신들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이 마왕 경합이 정말 마왕이란 선출하기 위해서만 있는 건지?”
“그거 말고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이사벨의 침착한 대답에 페로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다음 말을 이으려는 순간,
“아악!”
페로나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심장을 움켜쥐었다.
“왜 그래? 페로나! 무슨 일이야?”
언니의 물음에도 페로나는 신음만 낼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한 사이,
“브, 브릴리스 님?”
저택의 여 시종이 문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며 브릴리스를 불렀다.
“소, 손님이 오셨어요…….”
“지금은 돌려보내세요! 손님을 받을 상황이 아닐뿐더러, 벨져 님은 계시지도 않습니다!”
“그, 그건 아는데, 그분도 벨져 님을 찾아온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경합 중재위원회에서 왔다고…….”
경합 중재위원회에란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누가 왔다고요?”
“경합 중재위원회에서 위즈 메디아 님이라고…….”
예상치 못한 손님에 모두의 눈에 의문이 차올랐지만,
페로나의 눈엔 어째서인지 공포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