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8
제138화. 모방체
-깡! 깡!
오늘도 요란한 망치 소리가 가득한 울타비스의 대장간.
대장간의 주인은 망치질을 하다 말고 돌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의 무기를 만드는 괴짜 대장장이로 살아온 지 어언 30년.
그 긴 세월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기척이 그의 땀샘을 자극했다.
울타비스는 망치질을 멈춘 채 대장간 정문 쪽을 주시했다.
“호? 자네가 웬일인가?”
대장간을 찾아온 의문의 손님, 바로 이노투스였다.
그는 대답 없이 대장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몸을 칭칭 감은 붕대는 여전하군. 그거 아니었으면 못 알아볼 뻔했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이노투스는 바로 용건부터 들이밀었다.
“당신이 제작 중인 마혈석 브로치를 제게 넘기십시오.”
“브로치?”
울타비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러다가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최근 색욕 쪽 관조자한테 일이 생겼다더니만, 아무래도 자네와 관련이 있는 모양이군. 안 내주면, 나도 그 아이처럼 만들 건가?”
이노투스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에궁! 왜 말은 안 해주고, 무섭게 째려만 보나? 질문 한 번 더했다간 그대로 목이 날아가겠군. 쯧쯧.”
흠칫 몸을 떨며 혀를 차던 울타비스는 곧 구석에 있던 나무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선 은빛의 브로치가 나왔다.
보석이 박혀있어야 할 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늙을수록 목숨 귀한 줄 아는 법이지. 내 괜히 고집부리다 죽고 싶지 않으니, 그냥 주겠네. 가져가게나.”
브로치를 던지려던 울타비스는 잠시 멈칫했다.
“어디에 쓸지 정도는 알려주지 않겠나? 그래도 내 손때가 묻은 작품인데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는 알아야지! 이건 대장장이로서 지켜야 하는 상도의일세!”
“원래 하려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원래 하려던 일?”
울타비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왕 후보에 대적할 힘을 키워서, 그들의 자리를 대신한다……. 이를 위해 움직일 뿐입니다.”
“자네가 그럴 깜냥은 되고?”
이노투스는 불쾌감을 느낀 듯 말없이 턱을 치켜세웠다.
“아이구야! 더 물었다간 진짜 목이 날아가겠구먼! 어여 가지고 떠나게!”
울타비스는 브로치를 미련 없이 던졌고, 그대로 이노투스의 손 위로 안착했다.
“오늘은 영 망치질할 기분이 아니구먼. 나가서 공기라도 좀 쐬든가 해야지! 자네는 앞으로 다신 찾아오지 말게!”
물건을 강매당한 것에 신경질이 난 듯,
울타비스는 이노투스를 뒤로한 채, 대장간을 나갔다.
산책 나가는 노인 마냥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나가는가 싶었지만,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
대장간을 나오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의 손에는 조금 전, 이노투스에게 넘긴 것과 똑같은 브로치가 쥐여 있었다.
“이 망할 중재위원회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뛰는 와중에도 중재위원회를 향한 욕을 잔뜩 남발했다.
이노투스에게 넘긴 건 진품이 아닌, 모조품.
그가 달라 했던 진짜 브로치는 아직 울타비스에게 있었다.
“내가 어떻게 만든 건데, 제값도 주지 않는 놈한테 순순히 넘겨줄 줄 알고? 어림도 없지! 망치질 인생 30년을 물로 보면 안 될……!”
-콰쾅!
부리나케 달리는 그의 앞으로 돌벽이 솟았다.
앞길이 막힌 것에 혼란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콰쾅!
앞길만이 아닌 좌우, 돌아서는 길목까지 전부 벽이 솟았다.
삼면이 막힌 그에게 남은 길은 이제 뒷길뿐이었다.
그 뒷길에서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렸다.
“산책을 굉장히 급하게 하시는군요.”
발소리에 이어 이노투스의 목소리도 들렸다.
울타비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황급히 감정을 다스렸다.
“내가 산책을 뛰어서 하든, 기어서 하든 자네가 무슨 상관이지? 눈도 안 좋은 노인네 벽에 부딪히면 어쩌려고 이런 걸 세우나?”
“아무리 그래도 물건값은 받아 가셔야죠.”
“그럼 대충 대장간에 두고 가면 되지! 뭐 하러 따라오나?”
“그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물건을 잘못 주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울타비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 물건을 잘못 주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따위 모조품으로 절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우드득
이노투스는 잘게 부서진 브로치의 잔해를 바닥에 떨궜다.
떨군 손에선 금빛의 오라가 일렁였다.
“목숨 귀하신 줄 안다는 분들이, 왜 그 소중한 목숨을 함부로 다루시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뭐, 뭐야? 자네 설마? 그 힘은?”
구체 생성을 완료한 이노투스는 그대로 울타비스에게 질주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울타비스는 죽음을 인지하고 눈을 감았다.
-채앵!
죽음 직전의 순간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쇠붙이가 다른 것과 부딪힐 때 나는 맑은소리.
울타비스는 눈을 떴다.
“자, 자네는 또 여긴 웬일인가?”
흑빛 검신의 장검을 휘두르는 흑발의 익숙한 마족.
“목숨 구해준 은인에게 그게 하실 말씀이십니까?”
벨져가 등장했다.
* * *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단 생각은 했다.
전신에 화상이라도 입은 듯 붕대를 돌돌 감은 몸.
그러고 다니는 놈들은 대개 두 개의 분류로 나뉜다.
미친놈이거나,
혹은 감출 비밀이 많은 놈이거나.
지금에 와선 후자라고 봐야겠지.
비만 마족을 감시하던 관조자가 다름 아닌 놈의 퍼밀리어인 걸 안 상황에서 암시장에 계속 있을 순 없었다.
이에 메이와 코흐를 비롯해 수면 중이던 마르샤까지, 전부 데리고 나왔다.
범인을 안 상황에서 다음 할 일은 뭘까?
당연히 범인이 있는 곳을 찾는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만 마족에게 찾아가, 네 퍼밀리어 어딨냐고 물어보는 거겠지.
물론 대답을 받을 거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얼 위해서,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현재로선 아는 게 없다.
대신 페로나와 마르샤 다른 두 관조자를 녀석이 건드렸음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추론을 해볼 순 있다.
이노투스 그는 지금,
또 다른 관조자에게 향하고 있을 거란 추론을.
그래서 현재 알고 있는 유일한 관조자가 있는 곳으로 수호를 타고 급히 날아와 봤다.
그랬더니 또 난장판이 펼쳐지고 있었네?
이 괴짜 대장장이 나 아니었으면 오늘 돌아가셨다.
“일단 이거부터 받게!”
구사일생한 울타비스는 내게 대뜸 뭔가를 건넸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익숙한 브로치였다.
“하이구야! 이제 좀 살겠구먼!”
어영부영 넘기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이번엔 이노투스를 향해 소리쳤다.
“봤지? 내 손에 이제 브로치가 없네! 여기 벨져 후보에게 있으니! 원하면 그보고 달라 하게나!”
이 영감탱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를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니,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얘기는 나중에 하지! 난 이제 좀 쉬겠네!”
얼씨구? 이젠 아예 방바닥에 눕듯 대자로 누워버렸다.
일단 이 괴짜 대장장이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고,
나는 이 사태의 장본인과 마침내 마주했다.
“너 이거 가지러 온 거였냐?”
브로치를 흔들자, 붕대 속에 감춰진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건 전에 봤던 마혈석 브로치다.
마혈석도 없는 놈이 저건 왜 가지러 온 거지?
가만 보니 허벅지에 딱 붙인 놈의 왼손엔 책으로 추정되는 물건도 보였다.
왠지 내가 찾아야 하는 의뢰품일 거란 느낌이 들었다.
“너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거 네 주인도 아냐?”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쪽 발을 슬그머니 뒤로 옮겼다.
그대로 달아내려나 본데, 허용해줄 내가 아니다.
-콰쾅!
한 걸음 물러선 이노투스의 사방으로 돌벽이 솟았다.
녀석이 울타비스를 막기 위해 생성한 벽과 동일한 형태였다.
당연하게도 내가 만든 건 아니다.
“그 이상은 못 가세요!”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이노투스는 곧 내 뒤에서 지팡이를 잡고 서 있는 메이를 발견했다.
아직 들어야 할 게 사실인데, 이대로 가면 곤란하지.
놈은 순순히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은 듯,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그다음엔 나를 향해 양팔을 천천히 내뻗었다.
처음엔 뭘 하려는 건이 알 수 없었지만,
-우우웅!
곧 양 손끝에서 발현된 금빛의 오라를 보곤 바로 눈치챘다.
성력을 발현한 것이다.
성력의 팔찌도 없이.
“조심하세요 벨져 님!”
메이의 외침에 이어, 녀석이 부동을 풀고 달려들었다.
이에 응하고자 나 역시 앞으로 달렸다.
이전에도 느낀 거지만 마족의 몸으로 성력의 힘과 정면으로 붙는 건, 지양하는 게 좋다.
나와 껴안다시피 거리를 좁힌 이노투스는 성력의 구체를 대놓고 들이밀었다.
닿기 직전의 순간, 왼쪽 어깨를 뒤로 내빼서 몸을 비틀었다.
이노투스의 손은 그대로 내 몸을 지나쳤다.
틈이 생겼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검을 사선으로 두 번 휘둘렀다.
-서걱!
성력을 발현했던 놈의 양 팔이 몸과 분리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이후엔 목을 겨누고자 다시 놈의 얼굴 쪽으로 눈을 돌렸다.
보자마자 눈이 확 뜨였다.
뭐야 이거?
눈이 보여야 할 자리에 눈은 없고, 대신 놈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붕대가 풀리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라졌어?”
이거였다.
진짜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방금 전에 잘라버린 두 손도 전부 빛의 가루가 되어 하늘로 휘날렸다.
어이없는 상황에 멍을 때리고 있는 사이, 메이가 달려왔다.
메이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허나 주저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붕대와 주변 상태를 살폈다.
“본체가 아니에요!”
본체가 아니다.
그 말은 즉,
“그럼 가짜란 뜻이니?”
“네! 정확히는 모방체예요! 예전에 제가 벨져 님을 모방했을 때와 똑같은 형태예요! 똑같은 힘과 능력을 구사할 수 있는…….”
모방 마법으로 만들어낸 가짜.
가짜와 놀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기보단, 그냥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처리하고 나서야, 가짜라는 걸 알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방체라고?
그놈 대체 정체가 뭐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드니, 놈이 있었던 자리에 남겨진 책 한 권이 보였다.
나는 메이와 함께 다가가 책을 주웠다.
책의 겉면을 확인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이 책이 그 상인 할머니가 찾아달라던 마도서인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책 겉면엔, 우리로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전대 마왕 벨시페르의 퍼밀리어이자, 메이의 선조인 그의 이름이.
* * *
“허억!”
사경 속에서 눈을 뜬 중재위원회 소속 마족 카넬.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그의 앞으로 마검의 칼날이 드리워졌다.
칼날의 끝엔 검의 주인 페르와 다일이 자리했다.
“다, 다일 후보?”
“이제야 만나는군요. 경합 중재위원회.”
둘의 표정이 실로 대비되는 상황.
다일은 턱을 치켜든 무심한 시선으로 카넬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당신들이 여기 있다는 건, 우리가 찾는 관조자도 근처에 있었단 뜻이겠죠. 대답하십시오. 경합 중재위원회는 뭘 꾸미고 있습니까?”
이노투스와의 전투로 이미 힘이 소진된 상태로 맞서기는 불가능했다.
하물며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에 물러서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카넬은 이를 갈면서도 자꾸만 레트나 화산 쪽을 쳐다봤다.
“그곳에 있는 관조자라면 이미 벨져 후보가 갔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러니, 신경 끄고 제 질문에나 대답하시죠.”
“차라리 나를 베시오 다일 후보. 그대들에게 알려줄 건 아무것도 없으니.”
카넬은 죽음을 각오한 듯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떨궜다.
“검을 물려라 페르.”
페르가 지시에 따라 검을 물리니, 다일은 몸을 숙여서 다시 카넬과 눈을 마주했다.
이미 의지를 굳힌 카넬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교만하군요.”
귓가에 울린 나직한 읊조림에 카넬은 순간 호흡이 멎었다.
“그대가 지키려 하는 그 비밀이, 그대의 목숨보다 귀중하단 겁니까?”
“난 신의를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자기 목숨보다 귀중한 건 없습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교만한 마음을 품은 당신에게…….”
다일은 카넬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목숨의 소중함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