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23)
122???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작은 나라, 루반 공국은 에네브 강을 경계로 삼아 두 개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물론 세 나라 모두 제국의 통치 아래에 있기에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세 나라의 왕궁만이 아니라 제국마저 오가며 거금으로 공작을 벌였고, 신기에 가까운 협상 끝에, 삼국 사이에서 붕 떠 있다시피 하던 에네브 강의 소유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 그들이 벌인 일은 놀라운 것이었다.
넓은 지류를 지닌 에네브 강 중에서도 삼국의 경계가 겹친 작은 섬에 물자를 모아서 도시 하나를 뚝딱 만들어 보인 것이다.
기껏해야 강줄기를 오가며 장사나 좀 하겠거니 하고 지켜보던 삼국은 어처구니없어했다.
하지만 이미 황실의 승인까지 받은 이상, 삼국으로서는 그들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삼국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삼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도시를 기점으로 그들은 삼국만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서 사 온 온갖 물품을 거래하며 막대한 부를 쌓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부의 도시이자, 츄리온 민족에 의해 세워진 대륙 최초의 자유무역 도시, 츄리오넬의 시작이었다.
영혼조차 황금으로 돼 있다는 츄리온 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온갖 물품이 오가는 츄리오넬.
강 위에 떠 있는 물의 도시, 혹은 부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그곳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매달 열리는 축제였다.
실상은 정기적인 축제를 통해 츄리오넬을 관광지화함으로써, 더욱 많은 재보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유명한 행사인 것은 분명했다.
그중에서도 매년 첫 번째 달에 열리는 축제인 ‘여신제’는 일 년의 시작을 의미하는 만큼 특히 화려하고도 중요하게 치러지는 행사로, 이것만을 보기 위해 대륙 끝에서부터 찾아오는 여행자조차 있을 지경이었다.
하나 지금, 이 순간 그 여신제를 주최하는 츄리온 민족의 장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쥐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 일을 대체 어쩐다요!”
원탁에 앉아 있던 이들 중에서도 가장 키가 작고 수염이 성성한 노인의 외침에, 다른 상인들은 머리를 긁적이거나 딴 데를 보거나 자는 척하는 등 각각의 방법으로 그 시선을 피했다.
“여신제가 코앞인데 아직까지 여신을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니. 이게 말이나 된다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날뛰는 노인. 그 말에 유독 통통한 체구의 상인은, 영 마땅치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어쩔 수 없다요. 눈에 띄는 미녀가 하나도 없는 걸 어쩌겠다요.”
“말이면 단 줄 안다요? 여신제가 망쳐지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대체 얼마나 적자가 나는지 알고 하는 말이다요!”
“그렇다고 없는 미녀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요.”
“돈 앞에 안 되는 일은 없다요! 미소녀든, 미녀든, 미중년이든, 하다못해 미소년이나 미청년을 데려와서 여장을 시켜서라도 무조건 여신을 구해야 한다요!”
“우와. 그거 완전 사기다요.”
중년인이 기가 막힌다는 듯 내뱉은 말에 다른 상인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존경 어린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돈을 잘 버는 것만이 미덕인 그들에게는 사기든 뭐든 돈만 된다면 상관없는 것이 진리!
그런 의미에서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이라도 가리지 않겠다는 노인의 열화와 같은 태도는 츄리온 상인들의 황금 혼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좋다요! 한번 해 보겠다요!”
“힘내자요! 인신매매만 빼고 다 해 보겠다요!”
“최고급 화장품하고 변장 기술자도 구해 보겠다요!”
“그럼 나는 가발하고 의상을 미리 준비하겠다요!”
…너무나 의욕이 만발해서 이미 본취지를 벗어난 것이 문제였지만. 그런 소란 속에 츄리오넬은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도 요란한 축제는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