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01)
101. 있다 없으니까 -4
‘완전히 다른 팀이다.’
전반전 45분을 마친 AC 밀란의 선수들, 그리고 밀란의 감독 스테파노 피올리가 공통적으로 한 생각이다.
불과 한 달 사이 세 번째로 맞붙게 된 피오렌티나였다.
한 달 전, 그리고 지지난 주.
그 두 경기에서 밀란은 모두 2대0 승리를 거뒀었다. 총 180분 동안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압승을 거뒀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오늘, 45분 만에 벌써 2골을 내줬다.
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앞선 경기들에서 무실점을 했다고 그다음 경기에서도 무실점을 할 거란 보장은 없는 게 축구니까. 강팀도 약팀에게 얼마든지 실점을 할 수 있는 게 축구이기도 하고.
그러나 단순히 2점을 실점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게, 그게 진짜 문제였다.
문제는 경기력.
경기력 자체가 완전히 다른 팀이었다.
물론 핵심 에이스인 이지안이 복귀했다는 게 그 차이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이지만, 간혹 1명의 플레이어가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오늘 두 골 모두 그 이지안이 깊게 관여되어 있었고, 그런 점에 있어 지난 두 경기와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 또한 하늘과 땅 차이로 변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전체적인 경기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톱니바퀴 하나가 빠지면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핵심 선수가 들어오면 팀 전체가 시너지를 받는 경우야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라.
오늘 피오렌티나 선수들은··· 단순히 팀적인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퍼포먼스까지 지난 경기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다른 선수들이었다.
그래서 밀란 선수들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Ahi ahi ahi-!
Magica Viola-!!
후반전을 위해, 여전히 시끄러운 필드로 향하는 AC 밀란 선수들의 발걸음이 사뭇 무거웠다.
*
똑같이 먼 길을 걷더라도,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
쉬지 않고 달렸을 때 3km까지가 한계인 사람도 결승선이 3.5km 지점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어떻게든 0.5km를 더 뛸 수 있겠지만.
만약 결승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모르고 달린다면, 그 사람은 한계 지점인 3km에서 포기하고 말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앞으로 500m만 더 가면 끝이라는 걸 아는 사람의 심리 상태와, 그 끝을 모른 채 무작정 뛰기만 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 차이는 결국 희망이다.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과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그 희망이라는 것의 여부에 따라, 같은 개체도 다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모여 봐.”
하프 타임이 끝나갈 무렵, 피오렌티나의 주장 비라기가 선수들을 불러 모은다.
이내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형광 조끼를 입은 선수들 구분 없이 모두 비라기를 중심으로 모여 선다.
다들 어깨동무를 하여 상체를 살짝 숙이고 경청하는 가운데, 비라기가 말했다.
“다들 느꼈을 거야. 지난번 경기와는 다르다는 거. 우리도 다르고, 상대도 달라졌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몸으로 느꼈다.
다르다는 걸.
지지난 경기와도, 지난 경기와도 모든 게 달라졌다.
경기장의 분위기며, 상대 선수들의 표정, 움직임, 기세.
모든 게 달라졌음을 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사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건 단 하나뿐이다.
근데 그 하나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이길 수 있어. 아니, 우리가 이겨야 하는 경기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이거, 우리가 이겨야 되는 경기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존재 유무만으로 그 희망을 만들어내는 동료가 지금은 있다.
그렇기에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딱 하나만 확실히 하자. 이기고도 억울하게 탈락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수비, 목숨 걸고 클린 시트로 끝내보자. 우리가 그것만 해주면 이기는 게임이야.”
“SÌ!”
모두의 힘찬 대답에 비라기가 고개를 끄덕이다,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우리는 로마로 간다.”
코파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치러진다.
따라서 팀의 캡틴인 비라기는 배의 뱃머리를 결승전으로 돌리고자 했다.
그 지시에 모든 선원이 한마음으로 노를 모은다.
“Uno, due, tre!”
이어진 카운트에 선수들이 모은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외친다.
“Andiamo a Roma (로마로)─!!!”
언뜻 광기가 섞인, 믿음이 가득한 눈을 한 피오렌티나 선수들이 우르르 필드로 향했다.
*
파아앙-!
테오 에르난데스의 패스가 하파엘 레앙에게 향한다.
발 바깥쪽으로 그 패스를 잡아둔 레앙은, 계속 발 바깥쪽으로 공을 컨트롤 하며 박스를 향해 접근한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미끄러져 들어가며 박스 왼편을 타격한다.
뻐어어어어엉-!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슈팅이 뻗어 나가는데, 다행히 골대를 아슬하게 벗어난다.
그 아쉬운 슈팅에 레앙은 잔디를 차고, 고함을 지르며 아쉬워한다.
“집중해! 집중!”
전반 막판의 분위기는 그대로 후반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딱 한 골이 필요한 상대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막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벌써 몇 번의 슈팅이 우리의 골문을 위협했는지 새기도 어렵다.
확실한 건 유효 슈팅이든, 몇십 센티 차이로 유효 슈팅이 되지 못한 슈팅이든.
간담을 서늘케 하는 슈팅이 빗발치듯 우리의 골문을 위협했다는 거고, 그중에서도 골망을 흔든 슈팅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78:25
FIO 2 : 0 MIL
전광판을 바라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그러나 시간의 숫자만 바뀌었을 뿐 스코어는 바뀌지 않았다.
후반전 35분 중 3분의 2가 상대 공격에 쓰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사이에서 많은 기회를 얻고 있지는 못했지만··· 공이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다.
타탓-!
우리가 골킥을 준비하는 사이, 슬쩍 수비 뒷공간으로 향할 듯 발을 구르자 상대 수비수들이 움찔한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선수, 토날리는 실제로 몇 걸음을 뛰어갔다가 다시 내 곁으로 걸어오기까지 했다.
나나 상대 팀 선수들이나··· 입고 있는 유니폼만 다르지,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못된 일이긴 하지만.
오늘 우리는 승자와 패자를 나눠야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속고, 속여야 한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시길, 후반전엔 높은 위치에서 머물며 상대 수비의 시선을 이끌라고 하셨다.
내가 낮은 위치에서 수비에 참여하는 것보다 위쪽에 자리를 잡는 게 더 도움이 되는 포지셔닝이라고 하셨다.
내가 높은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 상대는 라인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다만, 그렇다고 가만히 멀뚱멀뚱 있을 수도 없고, 우리의 수비 시간이 대부분이었기도 해서.
나도 수비수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여태 공격수는 수비의 시선에서 사라져야 한다고만 배웠는데, 때로는 주의를 끌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배운다.
그러니 내 걸음 한 번에 수 걸음씩 헛걸음하는 상대 선수들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피오렌티나 공격수로서의 본분을 다할 뿐이다.
타타탓-!
하프 라인 근처에서 배회하다, 이번에도 요란하게 발을 구른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로 전방을 향해 속력을 높인다.
상대를 속이려면 수많은 거짓말 사이에 진심도 섞어줘야 하는 법.
여기서 문득 지우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뻐어어어어엉-!
내가 스타트를 끊자, 조금 늦은 타이밍이지만 패스가 날아온다.
상대 진영의 좌측면을 향하는 로빙 패스.
내가 무려 180센티미터의 키를 가지게 되었다곤 하나, 상대 수비수들에 비하면 큰 키도 아닐뿐더러.
공중볼 경합이라는 게 키로만 하는 건 아니기에, 아직 중앙에서의 내 경쟁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지라.
“떨굴게!”
낙구 지점을 포착해 수비와 힘을 겨루는 건 사포나라 선배의 몫이고, 나는 그 공을 주울 수 있는 위치로 향한다.
파아아앙-!
이윽고 뛰어오른 선배 머리에 맞은 공이 상대 풀백의 뒷공간으로 흐르고, 그 공간을 향해 달리던 내 발아래로 들어온다.
툭-
나는 그 공을 오른발 바깥쪽으로 잡아두며 슬쩍 고개를 돌려 필드를 넓게 바라본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면 동료들 모두 밀고 올라올 법도 한데, 그렇지는 않다.
박스 근처에 자리를 잡은 건 사포나라 선배, 그리고 교체로 돌아온 소틸 선배뿐.
나머지는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지금은 득점보다 실점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동료들에게 숨구멍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치민다.
숨구멍을, 뚫어준다.
툭, 툭-
공을 몸 중심에 놓은 채로 어느새 앞을 가로막은 상대 풀백에게 다가간다.
그는 자세를 잔뜩 낮춘 채, 몸의 정면이 나의 오른쪽을 향하도록 비스듬히 서서 기다린다.
내가 오른쪽, 그러니까 중앙 쪽으로 접고 들어가는 걸 더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오른쪽으로 몸의 중심을 크게 이동시킨다.
탓-!
그러자 상대가 마치 내 거울이라도 되는 듯 똑같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나는 공을 건드리지 않고 몸만 움직였을 뿐이다.
탓-!
내 체중을 그대로 받아 버티고 있는 오른 다리를 있는 힘껏 펴고, 왼발로는 공을 왼쪽으로 치며 스프링처럼 튀어나간다.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는 걸 깨달은 상대가 다리를 뻗어보지만, 그것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다.
타타탓-!
페널티 박스 왼쪽 면을 향해 대각선으로 공을 몰고 간다.
한 명을 제쳐내긴 했으나 여전히 박스 안엔 수비들이 우글거린다.
그래서인지, 덩치 큰 수비 하나가 제자리를 비우고 마중을 나오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도 나는 계속해서 골라인 방향을 향해 달려가다가···
수비가 내뱉는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
타앗-!
오른발로는 브레이크를 밟고, 왼발로는 공을 감싸 공이 내 오른발의 뒤로 향하도록 접어낸다.
그리고 날 따라오던 수비수가 그대로 지나가도록 흘려보낸 뒤, 흘러가는 공을 향해 큰 보폭으로 뛰어간다.
이어 가볍게,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깎아내듯 쓸어낸다.
뻐어어어어엉-!
나는 과학에 대해 잘 모른다.
때문에 이론적으로 왜, 회전이 걸린 공이 휘는 건지에 대해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현상을 필드 위에서 만들어낼 줄은 안다.
강하게 회전이 걸린 공이, 골대를 벗어날 듯 향하다 크게 휘어 골대 안으로 향한다.
슈우우우우웅-
철썩-!!!
그리고 그 공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나는 드디어 팬들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앞서 두 골이나 넣고도 팬들 앞에 설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젠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쾅-!
내가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이었나.
나도 모르게 광고판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날 향해 함성을 내지르는 팬들을 향해 나 역시 두 팔을 흔들며 함성으로 맞섰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 꼴이라니.
누가 보면 우리가 싸우는 줄 알겠지만, 이건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걸 확인하는 의사소통일 뿐이었다.
*
시각보다는 청각에 더 집중하며 공을 이리저리 굴린다.
안달 난 물고기들이 사방에서 달려드는데, 나는 내 먹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꼬리, 지느러미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해 펄럭인다.
그 꼴이 제법 우스울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우선 공을 지켜야 했다.
타탓-!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발을 피해 왼쪽으로 꺾고···
타탓-!
앞에서 뻗어오는 다리를 피해 공을 긁으며 뒤로 빙글 돌아선다.
그러자 조금 열린 공간이 보이고, 나는 살기 위해 그곳으로 움직인다.
타타탓-!
그러나 달려가는 와중에 깨닫는다.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다 보니 어느새 막다른 골목까지 왔다는 걸 말이다.
나는 어느새 코너 플래그까지 도달해 있었고, 등 뒤에선 서너 명의 선수가 달려들고 있는 게 느껴진다.
최대한 청각에 집중하며 몸으로 공을 지켜낸다.
그러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밀려났을 때 나는 손으로 공을 잡아버렸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공을 지키고 싶었던 건 아니고, 기울이고 있던 귀에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삑, 삐익, 삐이이익-!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닌 세 번의 휘슬이 울렸다.
그 말은 곧 경기가 끝났다는 뜻이고, 우리가 3대0으로 승리했다는 뜻이었다.
뻐어어어어어엉-!
오늘 여러 번 내 스스로에게 놀라는데, 아까 광고판을 차버렸던 것처럼 손에 든 공을 하늘 높이 차올린다.
그리고 그 너머로 동료들이 내게 달려온다.
“지안-!!!”
“우리가 해냈어! 이겼다고!”
“네 덕분이야!!”
이내 동료들 사이에 파묻혀 숨이 막힐 뻔하다가, 갑자기 세상에 내 발아래에 펼쳐진다.
키가 3미터쯤 되면 이런 기분일까.
동료들이 나를 들어 올린 것이다.
그 덕에 나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키고 있던 중, 이내 사레가 걸리고 만다.
“크억!”
하늘 높이 차올렸던 공이 하필, 뒤늦게 달려오던 로메로의 머리 위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