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02)
102. 쉬운 건 없어요 -1
“Fantastico, estroso, incredibile, pazzesco, meraviglioso, splendido······”
뜬금없이 시작되는 단어 시험에 귀를 쫑긋인다.
순간 수업 시간이 생각난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침을 튀기던 기자는 넉살 좋게 웃더니 내게 사과한다.
“미안해요. 모두 같은 뜻이니까 외울 필요는 없을 거예요. 환상적인, 정말 놀라운 복귀전이었어요. 피오렌티나를 결승으로 이끄는!”
“···감사해요.”
주먹까지 불끈 쥐어가며 말하는 기자의 모습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럴 시간에 어서 라커룸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으나.
오늘도 나는 역시나 카메라 앞으로 끌려온 신세가 되었다.
“일단, 몸 상태는 완벽했군요. 어땠어요? 아무 문제가 없던 거죠?”
“네. 없었어요. 이상이 있었다면 경기에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타이밍 좋게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쉬는 동안 완벽하게 회복했고, 이에 많은 도움을 주신 의사 선생님과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낼게요.”
오늘 제일 고마웠던 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어 준 종아리였고, 그런 종아리를 만들어준 선생님들이었다.
제 컨디션으로 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이에 먼저 선생님들께 감사를 표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표정을 지은 기자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뭐, 사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죠. 완벽한 경기력이었으니까요. 오늘은 뭐랄까요. 메시를 보는 것 같았다니까요!”
음··· 그건 좀 아닌데.
감히 언급해선 안 되는 이름에 나도 모르게 입이 툭 튀어나온다.
이래 놓고 자기들끼리 제2의 누구니, 코리안 누구니 할 거잖아.
정작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특히 첫 번째 골이요. 메시가 엘 클라시코에서 터뜨렸던 유명한 득점 장면이 떠오를 만큼의 놀라운 골이었는데요. 그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직접 들어볼 수 있을까요?”
첫 번째 골이라.
나는 그게 벌써 옛날의 일인 것처럼 느껴져 잠시 기억을 더듬은 뒤 대답해야 했다.
90분 동안 치열하게도 싸웠나 보다.
그게 벌써 옛날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잘 모르겠어요.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인 것뿐이니까요.”
“오오, 그저 몸이 가는 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거 또 오해를 살 수 있겠다 싶어 얼른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모든 걸 계산하고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요.”
“말 그대로 본능에 따라 움직인 거군요. 이거야말로 천재만이 할 수 있는 대답 아닐까요?”
으음.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럼 두 번째 골은요? 그건 완벽한 계산으로 보였는데요. 뒤에 사포나라가 쇄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그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기자가 신나게 말을 이어간다.
“어시스트로 집계되진 않겠지만, 누가 봐도 득점 지분의 90퍼센트 이상은 당신에게 있었다고 말할 거예요. 받아먹기만 하면 되게끔 다 떠먹여 줬잖아요?”
···선입견이라는 건 분명 좋지 않은 거라고 배웠지만,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기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짙어져감을 느낀다.
물론 앞에 서 있는 게 나니까, 내가 듣기 좋은 말을 해주려는 그 의도는 알겠다만··· 정작 나는 듣기 좋지 않으니 방법이 틀렸다.
누군가 틀린 말을 해도 굳이 정정하려 들지는 않는 게 내 성향이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하는 법이다.
“그건 아니에요. 상대와 경합을 이겨내고 크로스를 올린 로메로가 그 득점의 도움자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한 사포나라가 득점자죠. 제가 상황을 다 만들어 준 게 아니라··· 팀 플레이를 한 것뿐이에요.”
내가 득점을 올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도움을 올린 것도 아닌 상황에서까지 내게 주목이 돌아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건 동료들 앞에서도 부끄러운 일일뿐더러··· 이러다 나중엔 내가 벤치에 앉아 있어도 내 덕에 이겼다고 할까 봐 무섭다.
과대 포장 당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이렇게 겸손한 천재라니. 모두가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이거 봐.
끔찍하다니까.
“그럼 마지막으로요. 지난 한 달 동안 복귀만을 기다렸던 팬들에게 한마디 해줘요. 지금, 저렇게 환호하고 있는 팬들에게요.”
음음.
마지막 질문이라는 말에 목을 가다듬은 뒤 대답한다.
“팬들이 저를 기다려주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도 엄청 기다렸어요. 여기에 다시 서게 될 날을요. 있다 없으니까 알겠더라구요. 이런 응원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조금 오글거릴지도 모르지만, 계속 진심을 뱉는다.
“경기하는 내내 질 것 같지가 않았어요. 팬들의 목소리 덕분에요. 만약 내가 원정팀의 입장으로 여기서 경기한다면 정말 무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팬들 덕분에 이긴 거예요.”
내가 골을 넣고, 우리 팀이 밀란을 이길 수 있는 건 다 누군가의 응원 덕분이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Grazie mille.”
그래서 더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ㆍㆍㆍ
“저쪽은 애들 방이고. 뭐, 별거 없지? 급하게 구했던 집이라서.”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데요.”
“야, 넌 마음만 먹으면 훨씬 좋은 집 구할 수 있잖아.”
사포나라 선배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내 뒷목을 주물거린다.
“아무튼, 좀 더 큰집으로 구할 걸 그랬어. 애가 둘이니까 공간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고. 너는 나중에 결혼하면 꼭 큰집으로 가라.”
“···결혼할지 말지도 아직 모르는데요.”
뜬금없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니 사포나라 선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여자친구 결혼 생각 없대?”
“···뭔 소리예요?”
“뭐야. 설마 아직도 아무 사이 아니라고 우기는 중인 거야?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지.”
“···저 집에 갈래요.”
“알았어, 알았어.”
얼굴이 뜨거워짐에 퉁명스럽게 말하자 선배는 껄껄 웃으며 내 승모근을 주무른다.
뭐야.
아까부터 왜 자꾸 주물러대는 거야.
“내려가자. 슬슬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게 다 된 것 같아.”
“···식사하는 중엔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안 할게. 안 할게.”
영 불안하지만 선배의 손에 이끌려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간다.
이곳은 사포나라 선배의 집이고, 내가 지금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선배의 집을 구경하고 있던 건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뜬금없긴 하지만 꼭 한번 밥을 먹이고 싶다나 뭐라나.
“내 사랑! 잘 돼가?”
1층으로 내려가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고, 부엌엔 두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중 한 명이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는데, 저분은 선배의 와이프,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하더라.
모르겠다.
이름이 안드레아라고 했으니 그냥 안드레아라고 부르련다.
어쨌거나 안드레아가 요리를 하고 있고, 그 옆에선 지우가 어깨너머로 구경을 하고 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신난 얼굴이다.
“앉아, 앉아. 오늘은 나랑 내 사랑이 제대로 대접해 줄 테니까.”
한창 테이블 위로 접시가 옮겨지고 있는 중이어서 뭐라도 도울까 싶었지만, 선배가 강제로 의자에 앉히는 바람에 꼼짝없이 앉는다.
곧 지우도 끌려와 내 옆에 나란히 앉았고, 우리는 조금 뻘쭘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를 앉힌 사포나라 선배가··· 감히 미성년자들을 앞에 두고 낯 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였기 때문이다.
“내 사랑, 고생시켜서 미안해.”
“전혀.”
부끄러워서 자세히는 못 말하겠는데, 쪽쪽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는 것 정도만 알아 두면 된다.
···가만히 요리하고 있는 사람은 왜 방해하는 건지 모르겠다.
크흠.
“자, 오래 기다렸어.”
어쨌거나, 근사한 접시들이 차례대로 테이블 위를 채우고.
나와 지우 앞에 놓인 잔엔 미성년자들을 배려한 과일 주스까지 채워진다.
그런 뒤 선배가 자기 잔엔 다른 걸 채워 넣는데··· 누가 봐도 와인인데, 저거.
순간 이걸 감독님에게 일러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 어느새 테이블은 완성이 되었고 모두가 둘러앉았다.
“자, 다들 잔 들고!”
먼저 잔을 든 선배를 따라 잔을 든다.
그러자 뭐가 웃긴지 지우도 싱글싱글 웃으며 잔을 들었고, 선배가 말했다.
“그동안 꼭 밥이나 한번 같이 먹고 싶었는데 이제야 꿈을 이루네. 자, 우리 팀의 보물이자 나의 은인, 그리고 그의 사랑을 위하여. Salute!”
유리잔을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음에 드는 건배사는 아니지만, 좋은 분위기를 망칠 용기는 나지 않아 선배를 노려보며 주스를 꿀꺽꿀꺽 들이킨다.
이상한 소리, 한 번이라도 더 하기만 해 봐.
감독님한테 와인 마시는 거 이를 거니까.
“얼른 음식도 먹어 봐. 기가 막힐 거라는 건 내가 보장할게. 내 사랑이 만든 거니까.”
내가 노려보거나 말거나, 선배는 우리에게 음식을 권하더니 또 쪽쪽 소리를 낸다.
그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음식을 떠먹는다.
그리곤 나와 지우가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꽤 괜찮은 반응이었는지, 안드레아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더 빨리 초대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아, 아뇨.”
“이 사람이 하도 말을 많이 했거든요. 자기가 아직 이 팀에 붙어 있을 수 있는 게 다 지안 덕분이라고.”
···그건 또 뭔 소리인지.
선배를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어제 경기 끝나고 와서도 울었던 거 모르죠?”
“···누가요?”
“이 사람이요.”
“그런 얘기는 굳이 할 필요 없지 않아?”
“없는 얘기는 아니잖아. 어제 인터뷰 보다가 엉엉 울었다구요. 이 사람.”
인터뷰를 보고 울었다니··· 왜?
영문을 모르겠어서 또 선배를 바라보자, 선배의 큰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한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안드레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솔직히 나도 눈물 찔끔했어요. 내가 봐도 슛만 차면 들어가게끔 양보를 해주던데.”
음.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 얘기인가 보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인터뷰로 챙겨주기까지 하니까 감동이지. 이 사람 어린애처럼 울었어요. 그게 어찌나 웃기면서도 눈물이 나던지.”
선배가 금방이라도 또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안드레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그러자 안드레아는 선배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또다시 불편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진짜 여러모로 불편한 자리네.
나는 불편한 나머지 고개를 저으며 오해를 정정해준다.
“제가 뭐라고 누굴 챙기겠어요. 저는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요.”
챙긴다면 선배들이 나를 챙겼지, 내가 어떻게 선배들을 챙긴다는 얘기인가.
난 날 챙기기에도 바쁜 몸이다.
“그래도 쉬운 골 기회를 만들어 준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나 안드레아의 집요함에, 나는 그녀가 축구를 해본 적 없다는 걸 확신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쉬워 보였다면 제 덕이 아니라, 선배가 열심히 훈련한 덕인 거죠.”
멀리서 본다면 쉬워 보일 수도 있겠으나, 가까이서 보면 쉬운 건 없다.
골키퍼와의 1대1 상황조차 그렇다.
“어려운 거였어요. 그 어려운 게 쉬워 보였다는 건 그만큼 노력한 거고요.”
선수들이 그 상황에서 쉽게 득점하는 건, 그게 쉬워 보일 정도로 훈련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연한 얘기를 한 것뿐인데···
“내 사랑···!”
“누구 얘기하는 거야. 나, 아니면 지안?”
“두··· 둘 다···”
사포나라 선배는 또 안드레아의 품에 안겨 금방이라도 울 듯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또 불편해졌다.
옆에서 조용히 키득키득 대는 지우가 얄미워질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