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09)
109. 뱉은 말은 지키는 타입 -6
“하아···”
잔디 위에 누워 검은 하늘을 바라본다.
여기저기가 푹푹 파인 잔디가 그 어떤 침대보다 편하게 느껴지고, 검푸른 하늘이 그 어떤 천장보다 아늑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잠들고 싶을 정도다.
어차피 오늘 할 일 다 했으니까.
아··· 아니다.
양치 안 했구나.
아빠가 살아계시는 한 양치 안 하고 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힘겹게 상체를 일으킨다.
“···와.”
다리에 철썩 달라붙은 스타킹을 내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불쑥 배신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들 나한테 달려와 날 하늘 위로 몇 번이고 집어 던지더니.
어느 순간 날 바닥에 버려두고 다들 각자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누구는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땅에 박고 기도를, 누구는 벤치로 달려가 환호를, 누구는 관중석 가까이에서 팬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아무리 다들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바닥에 버려두고 가냐.
“후우.”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먼 곳을 둘러본다.
관중석의 절반은 침묵, 절반은 마치 끓는 냄비처럼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그중 보라색 물결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유심히 그곳을 바라본다.
유심히···
···음. 신기하네.
아무리 내가 눈이 좋은 편이라지만, 저 많은 관중들 사이에서 10초도 걸리지 않아 찾아내다니.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순간 나는 둘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둘을 향해 걸어간다.
“인마!”
“상 받을 준비 됐지!?”
“네가 최고다, 이 녀석아!”
그런 와중,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동료, 코치님들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잠시만, 잠시만요.
기쁜 건 알겠는데 잠깐 다녀올 데가 있단 말이에요.
선배들의 과격한 손아귀에 종이 인형처럼 나풀거리기를 몇 번, 나는 겨우 자유의 몸이 되어 관중석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으읏···”
왜 이렇게 힘드냐.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광고판을 넘는다.
그리고 관중석에 가까이 다가간다.
···울고 있네.
관중석 맨 앞자리에 앉은 아빠나 지우나, 모두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아니, 지우야 그렇다 치는데 아빠는 또 왜 저렇게 서럽게 울고 계신 건지.
저렇게 아기처럼 우는 아저씨는 처음 봤다.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찍었을 텐데, 저걸 나만 보고 끝내야 된다니 아쉽다.
“리! 리! 리!”
“날 가져줘요! 리!”
“사랑해! 사랑한다고!”
관중석과 가까워지니 팬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유니폼 셔츠를 벗었다.
평소 유니폼을 크게 입는 편이라 다행이다.
다른 선배들처럼 딱 맞는 유니폼이었으면 벗을 때 꼴이 되게 웃겼을 텐데.
나름 좀 멋있게 벗었다.
그리고 그걸 울고 있는 지우와 아빠에게, 팔을 길게 뻗어 건넨다.
이걸로 콧물이라도 좀 닦으라고.
얼굴이 저게 뭐야, 저게···
“지··· 아··· 흐어어엉!”
“아덜··· 아덜···!”
어이구.
둘 다 3살 시절로 돌아갔는지 말도 제대로 못 한다.
누가 볼까 창피해서 얼른 몸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광고판을 넘어 그라운드로 돌아와,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얼마나 더운지 눈에서도 땀이 났다.
*
짝짝짝-
일렬로 늘어서, 우리 앞을 지나가는 인테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심으로 강한 상대였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구원처럼 들렸던 건 인테르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
이에 존경과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허나, 인테르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단상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몇몇이 인테르에서 뛴 적이 있는 비라기 주장과 악수를 할 뿐, 모두 풀죽은 얼굴.
원래 축구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스포츠고, 특히 결승전은 더욱 잔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쨌든 패자가 된 인테르 선수들을 보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착한 척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저 입장이었다면 지금 얼마나 슬플까 생각해봤더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더라.
뭐, 다른 선배들도 다들 마음은 비슷한지.
엄숙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는데···
“···흐유.”
“···?”
빈첸초 감독님과 인사를 나누던 상대 팀 감독이 내 앞에 오더니, 묘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날 바라본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기에 나는 엉겁결에 그 손을 맞잡았고, 그는 웃으며 나를 지나쳤다.
그런 뒤, 이번엔 빈첸초 감독님이 껄껄 웃는 얼굴로 내게 오더니 말씀하셨다.
“너만 아니면 이겼을 거라고 하더라. 하하하!”
“···아.”
···글쎄. 과연 그럴까.
입술을 삐죽 내밀며 상대 팀 감독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무득점으로 졌으면서.
“자, 슬슬 우리도 올라가 볼까?”
“챔피언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어쨌거나 준우승 메달 수여가 끝나고, 이제는 우리가 단상에 오를 차례가 되었다.
“오늘 좋았다, 토레이라!”
“클린 시트, 클린 시트! 우리 센터백들 최고!”
“로메로, 인마! 라치오보다 여기가 낫지? 복귀하지 말고 그냥 눌러앉아!”
한 명 한 명 단상으로 향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서로 축하의 한마디를 건넨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차례가 되어 단상으로 향하는데···
“아, 아!”
내게는 축하뿐만이 아니라 손들이 막 날아오더라.
아니, 왜 때려요···!
“이 미친놈! 너한텐 이 말밖에 해줄 게 없다!”
“경기 중엔 내가 다 무섭더라! 표정이 싹 바뀌어 가지곤!”
“우리 막내! 네가 여기 이 아저씨들 은퇴하기 전에 우승 한번 시켜주는구나!”
아이고, 죽겠다.
선배들의 격렬한 축하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앞에 반짝이는 게 별인지 메달인지 잘 구분도 가지 않고.
“이리와! 이리와!”
“여기! 네가 가운데 서라!”
어쨌거나··· 메달을 목에 건 뒤 미리 단상에 오른 선배들에게로 향한다.
선배들이 어깨를 잡고 이끄는 통에 가운데에 섰고, 이어서······
“우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주장이 트로피를 들고 우리에게로 왔다.
상대가 인테르였기에 더 기뻐 보이는 얼굴의 주장이 트로피를 무릎 아래 높이로 들고 오자, 모두가 손을 아래로 하고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나는 차마 소리를 따라 내진 못하겠고, 그냥 적당히 몸짓만 따라 했다.
그러다가··· 주장이 내렸던 트로피를 머리 위로 힘차게 들어 올리는 순간.
“예에에에에에에-!!!”
“이햐아아아!”
퍼퍼퍼펑-!
귀가 따가운 폭죽 소리와 함께, 우리는 다 함께 하늘 위로 손을 들어 올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Campióne~! Campióne~!”
“우승이다! 우승!”
“와아아아아!”
모두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우리를 향해 환호하고 있는 팬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하늘에선 꽃가루가 휘날린다.
내가 아직 16년밖에 살아보지 못하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꽤··· 아름다웠다.
*
트로피 세레머니가 끝나고, 나는 대회 MVP 메달까지 따로 목에 걸었다.
그것으로 모든 대회가 마무리 되었으나···
Ahi ahi ahi-!
Magica Viola-!!
È triste il mio cuore lontano Da te-!
Magica Viola alè-!!
파티는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팬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 채 응원가를 부르며 떠날 생각이 없는 듯 보였고···
“내 사랑! 왜 울어.”
“고생했어, 내 사랑···!”
동료들의 가족들은 펜스를 넘어와 선배들을 끌어안으며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음.
그 사이에서 혼자 뻘쭘하게 있으려니 왠지 초등학교 졸업식 때가 생각이 나던 와중.
저 멀리서 주장이 누군가를 이쪽으로 끌고 오는 모습이 보인다.
지우와 아빠였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졸업식 때가 생각이 난다.
시간도 흘렀고, 장소도 한참 바뀌었지만··· 결국은 또 저 둘이다.
“지안아!”
“이지안!”
지우와 아빠가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달려온다.
···포옹은 별로인데.
아직 샤워를 못 해서 땀 냄새가······
“억!”
“고생했어! 고생했어!”
“아이고, 고생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그, 지금 다칠··· 것 같은데요. 숨 막혀서···”
아빠와 지우가 동시에 안기는 통에 숨이 턱 막혀 온다.
아니, 잠깐만.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야.”
나는 내 품에 안긴 지우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그러자 지우가 훌쩍대면서 날 올려다본다.
“···좀 떨어져 줄래?”
“···아!”
그제야 제정신이 든 건지, 지우가 화들짝 놀라며 내 품에서 떨어진다.
아니, 아무한테나 그렇게 막 안기면 어쩌자는 거야···
“크흠.”
“으흠···!”
결국 나는 아빠의 독차지가 되고, 지우와 나는 서로 딴 곳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왜 갑자기 심장이 골 넣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뛰냐.
어이가 없네.
그리고 왜 하필 지금이냐고.
땀 냄새 많이 났을 것 같은데··· 씨.
“지안! 사진 찍어줄게!”
괜히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사이, 주장이 트로피를 가져오더니 말한다.
트로피를 우리 사이에 내려놓은 주장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지우에게 핸드폰을 받아갔다.
···역시 막내 챙기는 건 주장밖에 없다.
“야, 나 이거 만져도 돼?”
트로피를 사이에 두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와중, 지우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
“당연히 안 되지.”
“안 돼? 힝. 치사해.”
“트로피는 우승팀의 일원만 만질 수 있는 거야. 안 되는 건 안 돼.”
“히잉. 알겠어.”
트로피 좀 만지게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게 내 개인 트로피가 아니라 팀의 트로피라서 그렇다.
내가 내 멋대로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
“···”
그런데 지우가 한껏 토라진 표정을 짓길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 찍는데 저 표정으로 찍으려는 건가.
어쩔 수 없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목에 걸고 있던 메달을 벗어든다.
이건 내 거니까 뭐··· 내 맘대로 해도 되겠지.
“이거라도 걸든가.”
“···진짜?”
“그럼 가짜냐.”
“···헤헤.”
메달을 건네니 언제 토라졌냐는 듯 지우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 단순한 모습을 보니 나도 괜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자, 찍을게!”
어쨌거나, 사진은 웃으면서 찍어야 하는 거니까.
트로피를 가운데 두고 셋이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쳐다본다.
가운데에 내가 서고, 왼쪽에 아빠, 오른쪽에 지우.
아직 사진은 좀 어색해서 엄지를 치켜세우고 핸드폰을 바라보는데, 주장이 혀를 쯧쯧 차더니 말했다.
“뭐야. 왜 이리 어색해. 좀 더 다정하게 좀 해 봐. 어깨동무라도 하든지.”
어깨동무?
주장의 말에 왼손을 아빠의 어깨 위에 올린다.
“반대쪽도, 인마.”
···흠.
반대쪽도 살포시 올린다.
“웃어! 하나, 둘, 셋!”
그리고 입가를 어색하게 들어 올린 채 찰칵.
자꾸 졸업식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이렇게 셋이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때는 내가 셋 중에 제일 작았지만, 지금은 내가 제일 크다.
음하하.
“다 찍은 것 같으니까 손 치워줄래?”
“어, 그래.”
어쨌거나, 그렇게 사진을 찍고 트로피를 다시 주장에게 넘겼다. 주장은 그 트로피를 들고 또 다른 동료에게 가서 사진을 찍어주더라.
그런 주장을 보며, 나도 만약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 한 팀의 주장이 된다면 저런 주장이 되어야겠다 마음먹는 와중.
“야! 야! 뺏어봐!”
방정맞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어디서 주워온 건지 지우가 공을 밟고 서 있었다.
한쪽 발로 공을 밟고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는 모습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뺏어 보라니까? 쉽지 않을걸?”
마음만 먹으면 1초 만에 뺏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남는 게 없다.
이럴 땐 그냥 장단을 맞춰 줘야지.
“옷! 으익!”
적당히 수비해주는 시늉을 하는데, 지우가 깨방정을 떨며 혼자 난리를 피운다.
얘 뭐 하냐.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마치 공이 뜨겁기라도 한 것처럼 발을 가만히 못 둔다.
그 모습이 웃겨서 웃음을 터뜨리자, 왠지 모르겠지만 지우는 오히려 자신감이 붙은 듯···
“간다! 막아봐!”
내 쪽으로 공을 몰고 오기까지 한다.
얼씨구.
드리블하는 폼이 무슨 갓 태어난 송아지 같다.
자세를 좀 더 낮추고, 고개는 들어야지.
팔은 또 왜 저렇게 부자연스러워. 무슨 로봇도 아니고.
그 모습이 웃겨서 내 옆을 지나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더니, 지우가 신난 목소리로 말한다.
“제쳤다! 제쳤다!”
뭐, 그래··· 네가 좋으면 됐다.
픽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이번엔 지우가 공을 내게 넘긴다.
그러더니 무슨 처음 골키퍼 해보는 사람처럼 자세를 취한다.
“나 뚫어봐!”
“···”
“스읍,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못 막지?”
···어이가 없네.
큐트하다, 큐트해.
“뭐해! 와봐!”
가소롭고 하찮아서 가만히 있었더니 들어오라기에, 적당히 공을 몰고 가준다.
명색이 프로 선수가 되어서 당연히 진심을 다할 순 없고.
대충 가다가 일부러 공을 툭 건드려 지우에게 패스를 해준다.
그러자 지우가 만세를 하더니 코웃음을 친다.
“뺏었다! 뺏었다! 뭐야, 이지안. 별거 아닌데?”
···킹 받네.
그래도 내 연기가 꽤 그럴싸해 보였나 보다.
저렇게 진심으로 기뻐하는 걸 보면.
쟤는 지금 진짜 자기가 뺏은 줄 알고 있다.
“그냥 나 축구 시작할까? 지금 시작해도 좀 잘할 것 같은데?”
그래, 그래.
착각은 자유니까 굳이 진실을 가르쳐주진 않기로 한다.
버릇이 좀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뭐······
“···음?”
픽 웃던 중,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는데··· 뭐야.
어느새 한쪽에 모인 선배들이 다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다들··· 뭔데.
왜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보고 있는 건데.
에에?
몇몇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엄지를 세워 보이기까지 한다.
“···”
갑자기 입이 툭 튀어나온다.
얼굴도 뜨거워지는 것 같다.
“야, 다시 막아봐!”
그런 와중, 공밖에 안 보이는 지우는 또 갓 태어난 송아지 드리블을 하며 내게 다가온다.
나는 선배들의 시선을 느끼며, 다리를 슬쩍 뻗어 공을 가볍게 빼앗아냈다.
그리고···
“···어?”
진심을 다해.
스텝 오버, 플립 플랩, 라 크로케타, 레인보우 플릭 등을 총동원해 지우를 몇 번이고 제쳐내며 마침내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지우는 대체 뭐가 지나간 건지 보지도 못한 듯 멍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고, 나는 그런 지우를 프로의 눈빛으로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