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21)
121. 프리 시즌 -7
툭-!
오른발등으로 공을 톡톡 건드리며 앞으로 다가선다.
동시에 상대의 스텝과 상체의 기울기를 눈으로 가늠하고, 머릿속으론 시뮬레이션을 그려본다.
여기선 어느 쪽으로 흔든 뒤 돌파하는 것이 좋을까.
왼쪽으로 페이크를 주고 오른쪽?
아니면 그 반대가 나으려나.
그 짧은 찰나에 그럴싸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스쳐 지나가며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전력 분석지에 쓰여 있길,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친구, 가비는 자그마한 체구에 비해 수비력이 꽤 좋은 편이라고 했다.
뭐, 수비수들처럼 수비 기술이 좋은 것은 아니나 승부욕이 강해 끈질기게 달라붙는 타입이라고.
어쨌거나 1대1을 하기에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이 순간 유독 어떤 식으로 돌파를 해야 할지 신중해지는 게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친구는 천재다.
17살에 바르셀로나 1군에서 뛴 선수를 천재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천재는 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상식 안에선 그렇다.
그렇기에 나로서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왠지 내 수를 다 읽고 있을 것 같다.
왠지 내 페이크가 뻔해 보일 것 같다.
왠지 내 드리블 따위는 우습게 보일 것 같다.
그러한 쓸데없는 걱정들이 몸을 휘감으며, 이 경기장의 높은 관중석처럼 나를 작아 보이게 만들고 있다.
한 편으론 이런 천재들을 두고 내가 천재라고, 지우에게 허세를 떨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툭-!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공을 톡톡치며 다가간다. 뒤나 옆으로 공을 넘기거나, 공을 가지고 멀찍이 도망가는 대신 눈앞의 상대를 향해 다가선다.
작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탓-!
상대가 발을 뻗으면 공에 닿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왼쪽으로 치고 달릴 듯 왼발을 왼쪽 앞으로 길게 뻗어 지면을 딛는다.
동시에 체중을 왼 다리에 완전히 싣고, 오른발로는 뒤처진 공을 앞으로 끌어당길 수 있도록 갈고리 모양을 만들어 공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체중을 실었던 왼발로 지면을 강하게 밀어 앞으로 나가는 동시에 오른발로 공을 끌어 당겨온다.
이에 상대가 내 앞을 몸으로 가로막으려는 듯, 몸을 반 바퀴 돌려 어깨를 집어넣는다.
···지금.
탓-!
왼발을 다시 지면에 박아넣는다. 그리고 오른 발목을 틀어, 당겨오던 공을 오른쪽으로 민 뒤 상대를 슬쩍 손으로 밀어내는 동시에 오른쪽으로 튀어나간다.
그러자 나는 공과 나는 오른쪽으로, 가비는 왼쪽으로 향하는 형태가 완성된다.
···제친 것 같다.
타타탓-!
굴러가는 공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흘끗 뒤의 상황을 살핀다.
그러자 재차 따라오려는 상대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잡힐새라 공을 앞으로 차 놓은 뒤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1대1에서 완벽히 이겨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싶으나 지금은 다음 플레이를 이어가야 할 때였다.
뻐어어어엉-!
상대 우측 센터백과 풀백 사이로 땅볼 패스를 찔러넣는다.
상대의 수비 라인이 꽤나 높았던 까닭에 힘을 주어 강하게 밀어 넣었다.
촤아아아아-
그 패스를 향해 로메로가 발발거리며 뛰어가고, 나 역시 그 뒤를 따른다.
동시에 어느 쪽으로 뛰어가 자리를 잡아야할지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려는 찰나.
타타탓-!
이내 뒤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에 급격히 속도가 줄기 시작한다.
갑자기 낙하산을 멘 기분.
누군가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가비가 단단히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내 유니폼을 붙잡고 있었다.
뻐어어어어엉-!
그사이 로메로는 슈팅을 가져갔으나 하늘로 떠버리고 말았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춘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우리 진영을 향해 돌아가는데, 등 뒤에서 씩씩대는 가비의 거친 숨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
전광판의 시계가 어느덧 전반 35분을 가리킨다.
스코어는 0대0.
그렇기에 판정으로 들어가면, 훨씬 높은 볼 점유율을 기반으로 경기를 주도해나간 바르셀로나의 판정승을 점칠 수 있겠으나.
턱에 손을 올린 채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필드를 지켜보고 있던 바르셀로나의 감독, 사비 에르난데스의 표정은 그닥 밝지 못하다.
그 이유에는 주문한 것보다 느린 공수 전환이라든가, 삐걱대는 파이널 써드에서의 부분 전술이라든가.
혹은 몇몇 선수들의 폼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들이 있었으나.
사실 주된 원인은 본인들의 문제보다 상대 팀에 있었다.
자꾸만 시선을 이끄는 피오렌티나의 20번, 이지안이었다.
“···”
사비의 시선이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매의 그것처럼, 이지안에게 고정되어 움직인다.
어느 시점부터 계속 이랬다.
그의 시선이 이지안에게만 머문 것 말이다.
그렇게 수십 분여 동안 계속해서 지켜본 결과.
사비는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어째서 라 마시아 출신이 아닌 거지?’
바르셀로나의 유스 아카데미인 라 마시아에서 축구를 배운 선수가 아닌데, 대체 어떻게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걸까.
혹은 왜 저런 선수가 라 마시아에 입단하지 않은 것일까.
그도 그럴 게, 이지안의 플레이가 그랬다.
기본적인 패스나 공을 다루는 기술, 공간을 이해하고 동료를 활용하는 능력, 하다못해 쉴 새 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시야를 확보하는 습관까지.
모든 게 라 마시아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들이었고, 이지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런 가르침을 모두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든 듯한 모습이었다.
한 마디로 사비가 가진 의문은, 저런 선수가 왜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피오렌티나에서 뛰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
물론 당연하게도 정말 몰라서 갖는 의문은 아니었다.
의문보다는 아쉬움 혹은 감탄의 의미.
이지안은 이미 전부터 바르셀로나 측에서도 유의 깊게 팔로우하고 있던 선수였고, 사비 감독 역시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이번 프리 시즌 경기가 잡힌 것도 그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싶다는 이유가 조금은 있었고.
물론 영상으로 봤을 때도 감탄을 자아낸 적이 많았으나, 실제로 보니 더욱 군침이 돈다.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공이 없을 때 플레이가 더 완벽한 탓.
“···”
여전히 이지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사비 감독이, 이내 제자인 가비와 페드리에게 눈을 돌린다.
각각 17세와 18세인 가비와 페드리는 최근 바르셀로나의 미래로 떠오른 라 마시아 출신의 신예들이다.
메시를 필두로 한 황금 세대 이후 근 몇 년간, 라 마시아가 배출해낸 선수들이 그에 못 미치는 성장을 보여주기도 했기에.
간만에 등장한 진짜 재능들, 가비와 페드리에게 쏟아지는 기대는 엄청났고, 그 둘을 사비와 이니에스타에 빗대는 찬사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비에겐 그 둘의 플레이가 아직 완벽히 눈에 찰 수는 없었다.
둘은 아직 한참 더 성장을 해야 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
사비의 시선이 다시 이지안에게로 향한다.
아직 성장이 필요한 가비와 페드리에겐 교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완벽한 교보재가 저기 있었다.
사비 감독은 오늘 녹화한 이지안의 플레이를 가비와 페드리에게 수시로 보고 배울 것을 지시할 생각이었다.
물론 자존심은 상하는 일이다.
라 마시아 출신 선수에게, 라 마시아 출신이 아닌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라고 한다니.
그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 본인부터가 라 마시아 출신인 사비 감독은 잘 알고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화가 나고 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둘 역시 자존심을 상해할 것이고, 더욱 열심히 훈련에 매진할 것임이 분명했다.
“···”
이지안을 바라보는 사비가 다시 한번 침음을 흘린다.
저 선수가 왜 라 마시아 출신이 아닌지, 또다시 의문과 아쉬움이 들었다.
*
전광판의 시계가 어느덧 90분을 향해 다가가는 중, 나는 벤치에 앉아 휘슬이 울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전반 45분, 그리고 교체되어 벤치에서 보낸 후반 45분.
어느 때보다 집중해 시합을 하고 지켜봐서 그런지 상당히 짧게 느껴지는 90분이었다.
어쨌거나, 경기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인 지금··· 내 마음 한구석 어딘가엔 여전히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글쎄, 잘 모르겠다.
오늘만큼은, 바르셀로나의 선수들만큼은 내게 ‘천재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줄 거라 기대했었는데.
그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된 순간도 있긴 했으나, 모든 게 완전히 해소된 기분은 아닌 것이다.
이 또한 프리 시즌이기 때문일까.
나는 똑같은 거에 두 번 속는 바보였던 걸까.
덕분에 들려오는 휘슬 소리가 썩 후련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과 인사치레를 주고받은 뒤.
먼 길을 찾아와준 원정 팬들을 찾아가 인사를 한 다음, 라커룸으로 향하기 위해 필드를 걷고 있을 때였다.
유니폼 여기저기에 흙 자국이 가득한 바르셀로나 선수 한 명이 내게로 걸어오는 게 보인다.
가비였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더니, 얼굴을 찡그리듯 웃으며 말했다.
“아, 힘들었네. 수고했어. 유니폼 교환 돼?”
분명 스페인어로 말하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알아먹겠는 게 신기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고, 그러자 그가 고민도 없이 셔츠를 벗기에 나도 어물쩍 따라 벗었다.
그리고 각자의 것을 주고받았다.
“내 것만 더러운 것 같아서 미안하네. 괜찮지?”
“···전혀 괜찮아.”
“전혀 괜찮아? 하하. 말 재밌게 하는구나. 아깐 진짜 짜증 났는데.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그땐 제대로 할 거니까 각오해.”
···음.
역시 오늘은 제대로 하지 않은 건가.
침을 꿀꺽이며 고개를 끄덕이니, 가비가 킥킥 웃더니 다시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맞잡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다음에 만나자니.
난 그닥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데.
“···”
“···”
어쨌거나, 그렇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 다시 갈 길을 가려는데··· 어차피 라커룸으로 향하는 출구는 하나뿐인지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란히 걷는 어색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게 나만 뻘쭘한 게 아니었는지, 옆에서 걷던 가비도 슬쩍 나를 흘끗 보더니 또 말을 걸어온다.
“넌 어쩌다 이탈리아에서 뛰는 거야?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건 아닐 거 아냐.”
“···유학 왔어.”
“아, 그래? 그럼 스페인으로 오지. 왜 이탈리아로 갔어?”
“어쩌다 보니까···”
“음. 넌 딱 우리 스타일인데. 네가 스페인에서 뛰면 훨씬 더 재밌을걸.”
이야기가 길어지니 조금 곤란해져,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빠르게 흘러가는 스페인어에서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단어들을 골라내, 그걸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이해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자, 가비가 혼자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너 같은 천재는 스페인에도 몇 없어. 그러니까 오면 잘할 수 있을 거야.”
다만 이번엔 나도 곧바로 대답한다.
“천재는··· 아니야.”
“누가? 네가?”
“응.”
“네가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인데?”
으음.
곤란한 질문이다.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아무튼 난 아니야.”
그런 나의 대답에, 가비가 왠지 모르게 내 옆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말한다.
“너한텐 천재의 기준이 뭐야?”
“···기준?”
천재의 기준이라니.
뜬금없이 철학 수업 시간이 된 것 같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생각이 어찌나 길어졌는지, 내가 다시 입을 뗀 건 출구를 지나 각자의 라커룸으로 헤어져야 할 때가 되어서였다.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사람···”
중얼거리듯 그렇게 대답하니, 가비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곤 홈팀 라커룸 쪽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뭐야. 기준 엄청 높네.”
그러면서 이내 몸을 돌려 걸어가는데,
“그런 사람이 어딨어.”
가비는 그렇게 한 마디를 덧붙이곤 바르셀로나 측 라커룸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