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26)
2022년 9월 5일.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랑키.
오늘도 하늘은 어김없이 푸르고, 경기장은 가득 찬 관중들로 시끄럽다.
매주 주말, 홈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으레 보는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묘한 낯섦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낯섦이 어디서 오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면, 일단 오늘이 주말이 아니라 주중이라는 점 하나.
그리고 관중석 한켠, 원정팀 팬들을 위한 공간인 원정 서포터즈석에 처음 보는 유니폼을 입은 팬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게 두 번째 이유가 될 듯하다.
뭐 아니면 그저 나 혼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동료들의 표정 역시 무언가 다른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분명 오늘 이곳의 공기는 달랐고, 그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챔피언스 리그라는 것이었다.
파아앙-!
파아앙-!
발등, 발 안쪽, 발 바깥쪽을 이용해 공을 통통 튕기며 가볍게 감각을 깨우는 와중.
내 시선은 자꾸만 경기장 입구를 흘끗거리고 있었다.
필드 위엔 우리 팀 선수들만 나와 몸을 풀고 있었고, 상대 팀은 아직 나오지 않아 필드 절반이 놀고 있는 중.
언제쯤 나오려나.
원래 좀 늦게 나오는 편일까.
아니면 우리 정도는 몸 좀 덜 풀어도 이길 수 있으니 늦게 나와도 괜찮다는 것일까.
비싼 몸값만큼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상대에 별생각을 다 하게 된다.
버스 안에서 감독님은 그냥 똑같은 축구선수일 뿐이라고, 상대의 이름값 따위 신경 쓰지 말고 경기에 임하라고 하셨지만.
그 이름값이라는 게 세계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가 되면··· 아무리 신경 쓰기 싫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왜 이렇게 안 나와···”
그들을 기다리는 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옆에 있던 로메로가 중얼거리는 게 들려온다.
로메로 역시 발로는 공을 튕기고 있으면서 시선은 입구 쪽에 고정이 되어있었다.
나도 나지만 로메로는 아르헨티나인이라.
조 편성이 확정된 그 날부터 설렘을 감추질 못했었다.
신을 같은 필드 위에서 영접하는 영광을 얻게 되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냐며 호들갑을 떨더라.
그 눈빛에서 무슨 광기마저 느껴지는 게, 그냥 비유적인 표현으로 ‘신’이라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신을 말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오늘 감독님께 단단히 경고를 받기도 했다.
전반전 끝나고 하프 타임이 되면 헛짓거리하지 말고 곧장 라커룸으로 돌아오라고 말이다.
그 말에 시무룩해진 걸 보면, 로메로는 아마 하프 타임 때 메시와 유니폼 교환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정신이 나간 거지.
경기 끝나고 나서도 아니고.
“···어, 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와중, 갑자기 커지는 로메로의 눈동자에 나 역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느릿느릿.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안 쓴다는 듯, 라커룸에서나 할 법한 바지 추켜올리기-를 선보이며 등장하는 파리 생제르망 선수들의 모습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
그중에서도 내 시선은 역시나, 서로 뭔가를 속삭이더니 낄낄 웃음을 터뜨리는 두 명의 선수에게로 고정이 된다.
둘 다 축구 경기장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카페 사장과 알바생으로 오해했을 법한··· 그러나 경기장에서 마주친 이상 몸이 굳을 수밖에 없는.
저게 네이마르와 메시구나.
툭-
발등으로 통통 튕기던 공을 잠시 땅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다리를 툭툭 털면서, 눈으로는 메시와 네이마르가 몸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한다.
“···”
···한참이나 늦게 나왔으면서 둘은 급하지도 않은 모양.
다른 선수들은 힘차게 웜업을 시작한 반면, 둘은 그때까지도 뭐가 그리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임을 주고받다 웃음을 빵 터뜨리길 몇 번이나 반복한다.
그러고 나서야 건네받은 공 하나로 서로 패스를 툭툭 주고받기 시작하는데··· 그제서야 나는 왜 그 둘이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지 알 것 같았다.
뻐어어엉-!
뻐어어엉-!
가까운 거리에서 공을 주고받던 둘은 이내 점점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고, 나중엔 아예 서로 터치 라인 가까이까지 거리를 벌리고 공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거리를 벌리는 와중에도 공은 땅에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 먼 거리에서··· 공을 바운드시키지 않고 주고받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둘은 여전히 여유만만.
전혀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별거 아닌데.
진짜 별거 아닌데, 그것만으로도 타고난 천재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뭐랄까.
챔피언스 리그라고 며칠 전, 아니 몇 달 전부터 잔뜩 긴장하며 준비를 해 온 우리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준비를 해왔는데··· 저들은 그저 놀러 온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다들 모여!”
“모여-”
“모이랍니다!”
어느새 내 본분마저 잊고 그들을 구경하던 와중, 떨어진 집합 명령에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다 같이 모여 본격적인 웜업에 들어갈 시간.
“···”
잔뜩 긴장한 얼굴들을 한 선배들 뒤로 줄을 서는데,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진다.
천재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저런 괴물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뭐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왠지 놀러 온 듯한 그 태도를 보니.
꼭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챔피언스 리그라서 특별한 걸까.
아니면 특별하기에 챔피언스 리그인 걸까.
웜업을 마친 뒤 경기용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터널에서 대기하다 사인에 맞춰 경기장으로 입장한 다음.
일렬로 나란히 서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마치 챔피언스 리그는 그 경기의 시작부터 특별해야 한다는 듯이··· 센터 서클엔 별들이 그려진 챔스 로고가 무려 센터 서클 만한 크기로 나부끼고 있고.
그걸로 모자라 왠지 마음이 경건해지는 동시에 두근거리게 만드는 음악까지 울려 퍼지고 있는 중.
모르긴 몰라도 유명한 노래인가 보다.
자리에서 일어난 관중들 모두가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는 걸 봐도 그렇고···
“the champions···!”
양옆에 선 선배들도 가사를 중얼거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왜 다들 울먹거리는 소리를 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웅장함에 뻣뻣이 굳어있길 잠깐.
이윽고 노래가 멈추고, 관중석에선 거대한 박수가 터져 나왔으며, 동료들은 자리에서 풀쩍풀쩍 뛰며 파이팅을 외친다.
그리고 상대 선수들이 우리 쪽으로 오며, 한 명씩 악수를 하고 스쳐 지나가기 시작한다.
“···”
음바페, 네이마르, 메시··· 이름만 들어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선수들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오히려 별생각이 안 든다.
머리가 하얘졌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무언가 감정이 불쑥 드는 건 상당히 강인한 인상의 하키미였다.
딱 봐도··· 굉장히 남자다운 느낌.
그와 악수를 나누는 주장의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지길래 나 역시 무섭지만 그의 눈을 노려보며 손을 맞잡았다.
···물론 금방 피하긴 했다.
그도 피하지 않고 날 노려보길래.
손아귀 힘이 엄청나게 쌔더라.
어쨌거나, 그렇게 페어 플레이를 약속하는 인사치레를 마친 뒤.
다시 두 줄로 서서 카메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우리 진영 한가운데서 다시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전의를 다진다.
내 어깨에 둘러진 선배들의 팔들에서 묘한 긴장감이 전해져 온다.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훈련한 대로. 어? 쫄 거 없어, XX.”
스피치를 하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
긴장하지 말라는데, 사실 누구보다 긴장한 것 같다.
평소 잘 하지도 않는 욕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비싼 몸들이라고 봐주지 말고 조지자고. 소송 들어오면 내가 책임지고 내 연봉에서 깔 테니까. 오케이?”
“오케이!”
···으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도 좀 보태야 하지 않을까.
주장은 가족이 있는데.
머리가 하얘진 나머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 주장이 날 바라보더니 말한다.
“그래. 막내를 봐. 저 설레는 표정을 보라고. 우리도 즐겨 보자.”
“즐기자, 즐기자···”
···거울이 있다면 잠깐 내 얼굴을 보고 싶다.
대체 어디가 설레 보인 걸까.
긴장돼서 침도 잘 안 삼켜지는데.
다만, 다들 너무 긴장한 게 보여 나라도 긴장하지 않은 척하고 있던 건 사실이다.
문득 시상식장에서 떨던 지우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뭐, 어쨌거나.
“자, 가자! 포르자─!!”
“비올라─!!!”
경기할 시간이었다.
*
모든 게 특별하지만, 휘슬이 울리고 나면 다를 건 없다.
경기는 우리의 선축으로 시작이 되었고, 전반 5분여를 지나는 무렵.
나는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로부터 한 발 떨어진 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경기 초반,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나만의 지도를 완성하는 시간이 필요한 나이기도 하거니와.
감독님이 준 전술적 움직임도 ‘동떨어져 있어라’였던 만큼.
왼쪽 터치 라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남 일 보듯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
내 시선은 자꾸만 나와 똑같은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는 상대 30번에게로 향한다.
리오넬 메시다.
“···”
그 역시, 경기가 시작된 직후가 아니라 경기가 끝난 직후인 것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있다.
심지어 어떨 땐 가만히 서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어쩌면 전반 5분까지의 활동 거리를 쟀을 때, 골키퍼보다도 그 거리가 짧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가만히 서서 주변을 관망하는 모습이 실로 무섭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글쎄, 나 따위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만히 서서 관망만 하는지는 말이다.
어쩌면 들었던 대로, 그냥 원래 잘 안 뛰는 스타일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감독의 지시일 수도 있고.
혹은, 나처럼 우리의 대형과 움직임을 관찰하며···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부술지 방법을 떠올리고 있는 걸 수도 있고.
만약 그게 마지막 이유 때문이라면··· 등골이 오싹할 만큼 섬찟한 일이다.
그와 비교될 수 없는 나조차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떻게 움직여야 뚫어낼 수 있을지 감이 올 때가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머리를 엄청나게 쥐어 짜내야 하지만, 어쨌든.
하물며 나도 그러한데··· 그는 어떨까.
그라면, 그저 슥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샘솟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그의 머릿속에선 어떻게 득점을 해야할지 구상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 부족한 머리론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으니 섬찟할 뿐인 거다.
“···”
그 섬찟한 상상을 지워버리기 위해, 시야를 내 주변으로 좁힌다.
때로는 모든 걸 신경 쓰기보다 내 눈앞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내가 감히 상대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한다.
지금은 우리가 공을 가지고 있고, 그 공은 경기장 반대편에서 돌고 있다.
그렇게 공과 전혀 상관없는 위치에 나와 함께 서 있는 건 상대 우측 풀백인 하키미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높은 위치에 서 있어야만 하키미가 쉽게 공격을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하셨다.
주장이 뭐 아무에게나 털릴 정도로 형편없는 수비수가 아닌 만큼, 하키미는 수비수임에도 웬만한 공격수보다 공격 능력이 좋은 선수라.
내 주변에 머물도록 만드는 게 최우선 목표.
그런 감독님의 말을 되뇌며 꽤 높은 위치에 서 있던 나였는데··· 문제는.
정작 하키미는 내게 등을 보인 채로 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보다 다섯 걸음은 더 우리 진영과 가까운 쪽에 서 있었다.
덕분에 그 뒷공간이 휑할 정도로 내 앞에 열려 있다.
그 위치 선정만으로도 그가 날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게, 공격을 올라갈 생각만 가득하다는 게 느껴지는 모습.
평소 같았다면 고맙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수비가 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공격수 입장에선 당연히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하키미가 공격을 올라가면 그를 막아야 하는 사람은 주장이다.
오늘 내 역할이 그를 내려오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과, 주장이 그와 불편한 재회를 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다는 점 때문에.
슬슬 움직여야 할 때임을 느끼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마침 공이 보나벤투라 선배의 발에 있을 때이기도 했다.
타탓-!
가만히 서 있다 급발진을 하듯 앞으로 움직이며 손을 높게 든다.
이에 용케 그런 나를 발견한 보나벤투라 선배가 크게 발을 당긴다.
뻐어어어어엉-!
공이 한참을 반대편에서 머문지라, 넓게 펼쳐진 내 앞 공간을 향해 공이 날아오고··· 그 공을 향해 달린다.
동시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는데, 나는 달리는 와중 흘끔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하키미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게 아님을 깨닫는다.
타타탓-!
빨랐다.
너무나 빨라서, 멀찍이 앞서 있던 그였음에도 금세 내 뒤를 따라붙기 시작한 거다.
그 속도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빨랐던지라 마음이 급해지려 하나, 최대한 차분하려 노력하며 공이 떨어질 위치에 자리를 잡고 선다.
그리고 발목에 힘을 푼 뒤 별들이 그려진 공을 부드럽게 받아낸다.
파아앙-!
그사이 이미 하키미는 내 옆까지 다다라 있다.
이에 빈집을 터는 게 불가능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드나··· 한 편으론 왠지 모를 유치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치미는 게 느껴진다.
그래.
한 번 붙어보자.
타타탓-!
저 멀리서 메시가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한 일이라, 왠지 여기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게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는 기분이 들어 머쓱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그런 것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나는 주장의 원수를 앞에 두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